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423화 (423/818)

제423화. 진정한 공포

그렇게 한샘과 서천우의 전투가 시작되려는 찰나, 마로 역시 이준과 아라의 지척까지 다가서 있었다.

“한꺼번에 덤빌 테냐, 아니면 한 명씩 나올 테냐?”

이에 아라의 몸에서 곧바로 회보랏빛 염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할 게. 지금 네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하지만 이준은 이 괴물 같은 노인네를 아라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만일 그녀와 마로가 일 대 일로 맞붙는다면 십중팔구 그녀는 목숨을 잃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죽는다면, 다음은 곧바로 자신의 차례였다. 그럴 바에는 목숨을 걸고 둘이 함께 부딪히는 편이 승산이 있었다.

“아니야. 혼자서는 무리야. 그리고 나도 내 한 몸 지킬 정도의 힘은 있어. 어차피 네가 당하면 다음은 나야. 그럴 바에는 목숨 걸고 한판 붙어 보는 게 낫지.”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보람을 바라봤다.

“너는 끼어들지 마. 절대로. 알았지?”

평소대로라면 순순히 이준의 말을 들을 리가 없는 보람이었지만, 정말로 죽음을 각오한 듯한 상대의 표정에 이번만은 그녀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준의 고집에 아라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준은 한 번도 고집을 꺾은 적이 없었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미 몇 번이나 목숨을 걸었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그에게 무슨 말을 한다고 한들 먹힐 리가 없었다.

“결정이 됐나?”

십 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준과 아라를 바라보던 마로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조롱기 섞인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흥.”

아라는 말없이 팔을 휘둘러 상대를 향해 자신의 회보랏빛 염력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노인은 까딱하지 않은 채 가볍게 발을 굴러 검은 색의 한기를 폭발시켰고, 이내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강렬한 냉기가 폭발하며 아라의 독을 막아냈다.

“독술사라……. 갈수록 재미있는 계집이군.”

다음 순간, 새하얀 그림자가 귀신처럼 노인의 앞에 나타나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둘렀다.

챙!

날카로운 손톱과 노인의 몸을 두르고 있던 검은 한기가 맞부딪히자,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과 함께 검은 색의 수정이 부서졌다.

아라가 다시 한 번 손톱을 휘두르려는 순간, 돌연 노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준, 조심해!”

아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의 앞에 노란 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건방진 놈. 내 오늘 친히 네게 가르침을 주마.”

서늘한 냉기가 어린 노인의 손이 이준의 목덜미를 막 붙잡으려는 찰나, 갑자기 이준의 등 뒤에서 기이한 보라색 빛을 내뿜는 거대한 날개 한 쌍이 돋아났다.

쉬익!

뼈로 만들어 진 그 거대한 날개가 가볍게 펄럭이자, 이준의 몸은 어느새 저만치 먼 곳으로 달아나 있었다. 그의 날개 주위로는 미세한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공중에 있던 아라는 이준이 마로의 공격을 피한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쳇……. 뭐하느라 방에 쳐박혀 있나 했더니……. 저걸 만들고 있었나보네. 말이라도 해주지.”

곧이어 그녀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이준의 곁에 나타났다.

하지만 마로는 이준의 그 신비한 날개를 보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 평온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두 사람에게 다가갈 뿐 이었다. 그가 앞으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검은 한기가 점점 짙어지며 주위의 온도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라의 눈빛은 더욱 진지해졌다.

‘6성에서 7성이라더니……. 이건 확실히 7성 투종이잖아.’

투종간의 싸움에서 3성 차이라면 투왕과 투황의 차이보다 더 큰 격차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늘 정말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fms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다음 순간, 노인의 손끝에 검은 한기가 응집되더니, 이내 열 갈래의 염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얼음 가시!”

쉭! 쉭! 쉭!

노인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자, 그의 손을 떠난 열 갈래의 염력이 갑자기 수백 개의 작은 얼음 칼날로 변해 아라를 덮쳤다.

“맹독 방패!”

하지만 아라 역시 투종 강자이니,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독성이 담긴 염력으로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백 개의 얼음 가시를 막아냈다. 맹독이 담긴 장벽과 손바닥만 한 얼음 칼날이 맞부딪히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색의 얼음 가시가 순식간에 액체로 되돌아갔다.

“얼음 검!”

그러나 다시 한 번 마로가 인을 맺는 순간, 손바닥만 하던 얼음 가시가 순식간에 한 곳으로 모여들어 거대한 얼음검으로 변화했고, 그대로 장벽을 가르며 아라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맹독의 살수!”

갑작스런 변화에 화들짝 놀란 아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다음 수를 펼치자, 거대한 회색 장벽이 커다란 손 모양으로 변화해 얼음검을 움켜쥐었다.

“폭!”

쾅!

그 순간, 짧은 한마디와 함께 거대한 얼음 검이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다.

얼음 검이 폭발하며 만들어낸 충격에 의해 아라의 염력이 흔들리는 찰나, 얼음 검이 또 다시 수 백 개의 얼음 가시로 변해 아라를 덮쳤다.

눈 깜짝할 새에 자신의 주위를 빼곡하게 뒤덮은 얼음 가시에 아라는 사색이 되어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수 십 미터 바깥까지 달아났지만, 이미 그녀의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

“끌끌……. 그 나이에 투종이라니,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군. 하지만 고작 4성 투종이 7성 투종인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

“쯧쯧……. 그래봐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

하지만 마로가 막 다시 손을 들어 인을 맺으려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돌연 찬란한 빛이 폭발했다.

“바다의 힘!”

이준의 손에서 터져 나온 해일과도 같은 염력에 마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떴다. 4성 투황이 어떻게 이런 무투기를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청록색의 수정이 이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마치 물결이 일 듯 주위의 공간으로 기이한 파문이 퍼져나갔다.

“흥!”

하지만 마로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 하더라도, 7성 투종인 그가 4성 투황의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쾅…!

곧이어 태양이 땅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부신 빛이 폭발하며 주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이, 이런……!”

그러나 청록색의 수정체가 자신의 염력과 맞부딪히는 순간, 마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주먹만한 수정안에 담긴 에너지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고, 그의 염력과 맞부딪히는 순간 미친 듯이 팽창하며 다시 한번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려 했던 것을 후회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은 냉기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콰아앙!

다시 한 번 대지와 바다를 뒤엎을 것만 같은 폭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폭발이 만들어 낸 거대한 소리에 실력이 부족한 이들은 귀에서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곧이어 눈부신 빛이 폭발하며 7성 투종 강자를 집어삼켰다.

* * *

“쿨럭…….”

모두가 이준이 펼친 무투기에 놀라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아라가 다시 날아와 이준의 곁을 지키고 섰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바다의 힘을 시전한 이준의 얼굴은 어느새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심해. 이 공격으로 그 사람을 쓰러뜨리는 건 아마 불가능할 거야.”

아라의 말에 이준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바다의 힘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가진 무투기인 것은 분명했지만,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7성 투종에게 치명상을 입힐만한 위력을 끌어낼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아래 거대한 빛이 서서히 잦아들자, 거대한 검은 색의 장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섬뜩할 정도의 검은 빛과 함께 쉴 새 없이 냉기를 뿜어대는 에너지 장막의 모습에 아라와 이준의 등 뒤에서는 한줄기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잠시 후……. 에너지 장막이 사라지며 노란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홀연히 걸어 나왔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폭발이었건만, 상대는 머리카락 한 올 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고작 4성 투황 놈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꼴이 뭔가 믿는 구석 하나는 있다 싶었더니, 이걸 믿고 그리 건방을 떨었던 것이냐?”

다음 순간, 노인의 모습이 돌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갑자기 이준의 목줄기를 향해 냉기를 머금은 검은 손톱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의 공격이 막 이준의 목덜미에 닿으려는 찰나, 회보랏빛 염력이 짙은 독향(毒香)을 내뿜으며 그의 등 뒤를 덮쳤다.

“흥!”

콰앙!

두 투종 가자의 손이 맞닿자, 허공 위에는 또 다시 거대한 파문이 일며 아라의 몸이 저만치 멀리 튕겨나갔다.

한 방에 아라를 밀어낸 마로는 곧장 몸을 돌려 이준을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자신을 향해 이를 갈며 날아오는 노인의 섬뜩한 모습에 이준은 반사적으로 날개를 펄럭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준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뇌성이 울려 퍼지며 허공에 잔상을 남겼다. 그의 속도는 투황 강자라 해도 간신히 그 흔적을 쫓을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그러나 마로는 사냥감을 쫓는 야수마냥 끈질기게 이준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사이, 노인의 공격에 의해 저만치 멀리 날아갔던 아라가 이를 악물고 인을 맺기 시작했다.

잠시 후, 미친 듯이 날아다니던 두 개의 물체 사이로 새하얀 그림자 하나가 날아들었고, 이에 몇 분간 이어지던 추격전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시 나타난 아라의 몸에서는 불과 몇 분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염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이년……. 무슨 짓을 한 게냐? 어떻게 내 공격에 맞아 부상을 당하고도 갑자기 실력이 치솟은 거지?”

“아라야 너 설마…….”

갑작스럽게 염력이 증가한 아라의 모습에 이준은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재난독체의 봉인을 푼 것이다.

지금 아라가 재난 독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길어야 1년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봉인을 풀다니, 이제 그녀는 정말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준이었으니, 순간 그의 가슴에서도 불길이 일었다.

“아라야 미안해. 한번만 더 저 노인네를 붙잡아줘.”

광기 어린 표정으로 마로를 노려보는 이준의 표정에 아라는 그에게 아직 무언가 비장의 수단이 남아있음을 직감했다.

“알았어. 내가 시간을 최대한 벌어볼게……”

이준은 한숨을 쉬고는 마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또 다시 뒤로 몸을 날렸다.

달아나면서도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준의 모습에 마로의 머릿속에 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도망가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딜!”

마로는 곧바로 손을 휘둘러 이준을 향해 얼음 칼을 날렸다.

쾅!

하지만 얼음 칼이 그의 손을 떠나기 무섭게 회보라색 연기가 그의 얼음 칼날을 막아냈다.

“당신 상대는 나야…….”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아라의 긴 백색 장발이 바람결에 춤추듯 흩날렸다.

“흥, 무슨 수를 써서 실력을 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5성 투종 정도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글쎄…….”

다음 순간 갑자기 아라의 온 몸에서 회보라색 염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두 마리의 거대한 뱀으로 변했다.

쉬익!

염력으로 만들어진 두 마리의 거대한 뱀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노인을 덮쳤고, 이에 마로는 번개같이 손을 놀려 검은 색 얼음 조각을 날렸다.

쉭!

두 뱀이 입을 벌려 독 연기를 뿜어내자, 예리한 얼음 조각이 눈 깜짝할 새에 부식되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