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0화. 의외의 수확
선화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연금술사의 탑에서는 누구라도 좋으니 이 불꽃을 가질 수 있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이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불꽃을 언제까지고 봉인해둘 수는 없을 테니까요.”
“설마 외부인에게도 기회를 주는 거야?”
이준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네.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투기대륙에서는 30년에 한 번씩 연금술계에서 가장 성대하고 영향력 있는 연금술대회를 열죠. 주최 세력은 당연히 연금술사의 탑이고요.”
“연금술 대회라니?”
“연금술사의 탑에서 주최하는 연금술 대회는 투기 대륙 최고의 권위를 가진 연금술 대회지. 내 기억으로는 약존께서도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명성을 날리셨지.”
서천우가 웃으며 설명을 보탰다.
노인의 설명에 깜짝 놀란 이준은 멍한 표정으로 서천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약로가 연금술대회에 참여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서천우의 말에 옆에서 듣던 선화 역시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이준을 바라봤다. 연금술사의 탑에서 주최하는 연금술 대회에서 우승을 한 거물 밑에서 연금술을 배우다니……. 같은 연금술사 입장에서 이보다 더 부러운 일은 없었다. 이는 어지간한 천지의 불꽃 하나와 바꿔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행운이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부럽다는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찌됐든, 그 대회에서 10위 안에 들면 별의 불꽃을 흡수할 기회가 주어져요. 되고 안 되고는 자기 능력에 달린 일이지만, 어쨌든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죠. 어때요? 이 정도면 저를 도와줄 맘이 좀 생기나요?”
선화가 말을 마칠 무렵에는 이미 이준의 입이 귀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정도면 오히려 그쪽이 손해인 것 같은데?”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럼 최선을 다해주세요.”
별의 불꽃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을지도 모를 기회를 얻게 된 이준 역시 기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제 악마의 반점을 제거하고, 스승과 아버지를 구출해내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부터 움직일까요? 가람 아카데미와 중주 지방은 꽤 거리가 있는데.”
선화의 질문에 이준의 시선이 곧바로 서천우에게로 향했다.
“일단 천계의 탑 일부터 해결하고 얘기하지.”
그 역시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바로 중주로 도망을 가버린다면 서천우 대장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굴 거 없다. 게다가 지금 이준의 실력으론 네 가문이 다시 장로직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없어. 6레벨 연금술사가 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금술사의 탑은 차원이 다른 곳이니까 말이야.”
서천우가 충고하듯 말했다.
“헤헤,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 나이에 6레벨 연금술사가 된 사람은 연금술사의 탑에도 거의 없으니까요.”
기대로 가득한 선화의 목소리에 서천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이준을 바라봤다.
“넌 짊어진 것들이 많으니 하루 빨리 실력을 기르고 싶겠지. 아마 실력을 기르기에는 중주만한 곳이 없을게다. 그 곳에서 이름을 알린다면 좋은 인연도 많이 얻을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좋은 인연을 얻을 기회가 많은 만큼 목숨을 잃을 위험도 많은 곳이니 항상 주의하거라.”
서천우의 진심 어린 충고에 이준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돌아가서 쉬거라. 숙소는 내가 마련해놨으니 못한 얘기는 내일마저 하는 게 낫겠구나.”
이준과 선화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서천우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는 조심스럽게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 * *
회의실을 나오자, 이미 하늘에는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문 밖으로 나온 이준과 선화는 짧게 몇 마디를 더 나누고는 곧바로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온 이준은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보리수의 점액을 얻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힘을 쏟았던 탓인지 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별의 불꽃에 대한 정보를 얻은 지금, 몸과는 반대로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연금술사의 탑이라…….”
중얼중얼 그 이름을 되뇌는 이준의 마음속에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자신이 그 곳에서 이름을 날린다면 스승님이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중주는 대륙의 중심지대인만큼 차원이 다른 강자들이 모여 있었고, 가한제국은 물론 흑각성 같은 지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곳 이었으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으음……. 역시 그 곳에 가기 전에 준비가 좀 필요하겠어.”
중주에서 만날 강자들을 생각하자,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이준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저장반지에서 8레벨 마수의 날개를 꺼냈다.
8레벨 마수의 날개는 여전히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만일 이 마수의 날개로 제대로 된 비행 무투기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의 속도는 지금보다 몇 배는 빨라질 것이 분명했으니 여차하면 적의 추격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거대한 날개를 바라보던 이준이 손을 휘두르자, 황금빛 두루마리 하나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준은 온 신경을 집중해 그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갔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한 글자도 빠짐없이 안에 적힌 내용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손에 들린 황금색의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철새의 날개는 보기 드문 비행 무투기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준이 가지고 있는 재료라면 얼마나 대단한 비행 무투기를 만들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철새의 날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급 비행 마수의 날개 뿐 아니라 다른 재료들이 필요했다. 물론 재료를 구하기 위해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날개의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니까.
다만 골치 아픈 것은, 철새의 날개를 만들기 전에 마수의 날개에 남아 있는 마수의 에너지를 모두 제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제련해야 할 에너지는 무려 8레벨 마수의 것이었다.
마수의 시신을 해체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선뜻 작업을 시작하기가 두려웠다. 그 날 마수의 살덩이에서 추출한 붉은 액체에 담긴 에너지로 미루어보아, 이 마수의 날개에 담긴 에너지를 제련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망설이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이준의 눈이 투지로 불타올랐다. 마침내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래, 몇 년 전에 죽은지도 모를 마수의 시체 따위에 이렇게 겁을 먹으면 앞으로 영혼의 궁전을 어떻게 상대하겠어!”
결심을 굳힌 이준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손을 휘둘러 마수의 날개를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곧이어 그의 심장에서부터 영혼 에너지가 새어나와 조심스레 거대한 마수의 날개를 감싸 안았다.
펑!
영혼의 힘이 날개에 접촉하는 순간, 묵직한 폭음이 머릿속에서 터져 나오며 돌연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잿빛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날개 속인가? 남은 기운은 어디 있는 거지?”
잠시 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이준의 민감한 영혼 탐지 능력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기묘한 회색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의 안개는 천천히 실체를 갖추었고, 이내 안개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크악!”
다음 순간, 회색의 안개가 흉악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이준을 향해 날아들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들짝 놀란 이준은 잽싸게 영혼의 힘을 끌어올려 장벽을 만들어 냈다.
영혼의 장벽이 만들어지자, 회색 안개는 잠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천천히 마수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회색 안개로 만들어진 마수는 다시 한 번 섬뜩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고, 마수의 형상과 이준의 영혼 에너지가 맞부딪히며 거대한 파문을 만들어냈다.
마치 바위가 달려드는 듯한 묵직한 느낌에 이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영혼 에너지를 끌어올려 자신의 몸 주위를 둘러싼 장벽을 보강했다. 만일 이 공간 안에서 부상을 입는다면 영혼이 상처를 입어 고생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굳은 얼굴로 재빨리 회색 연기에 침식당한 영혼의 힘을 없애 버린 뒤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내 자신의 몸을 보호할 만한 방어막을 하나 더 세웠다.
영혼의 장벽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신비로운 마수의 허상은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돌진해 이준이 만들어낸 장벽에 맞부딪혔다.
쾅!
“후.”
또 한 번의 격렬한 충돌이 이어졌다.
연이은 충돌로 이준의 이마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영성을 가진 듯한 회색 안개는 눈 하나 까딱 않고 다시 한 번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겠어…….”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에 이준은 가만히 기회를 엿보다가 마수의 형상이 돌진하는 순간 잽싸게 인을 변화시켰다.
치익!
인이 변화하자, 무형의 불꽃이 폭발하며 주인의 몸을 완벽하게 감싸 안았다. 회색 안개는 무형의 불꽃과 충돌하자마자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을 쳐댔다.
“어때? 아까처럼 달려 들어보지 그래?”
회색 안개가 한층 옅어진 것을 확인한 이준은 피식 웃으며 더욱 세차게 불꽃을 피워 올렸다.
본격적으로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하자, 주위의 공기가 뜨거워지며 삭막한 잿빛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무형의 불꽃이 겁을 먹고 주춤거리는 회색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회색의 안개는 번개같이 몸을 날려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무형의 불꽃은 마치 독사처럼 끈질기게 마수의 형상을 쫓아다녔다.
그렇게 쫓고 쫓기기를 한참, 마침내 무형의 불꽃이 회색 안개를 집어삼킨 뒤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이준은 자신의 영혼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혼의 힘은 염력과 달리 아주 천천히 성장했고, 그 힘을 키워주는 연금비약이나 약재 역시 너무나 귀했다. 뿐만 아니라 어렵게 영혼 에너지를 키워주는 약재나 연금비약을 구하더라도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무런 약재도, 연금비약도 쓰지 않고 영혼의 힘을 키운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소득에 놀란 이준은 점점 더 많은 불꽃을 뿜어대며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회색 안개를 빠른 속도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잿빛 공간 안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회색 안개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회색 안개를 모두 흡수한 이준은 넘실거리는 영혼의 힘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안에 잠들어있던 흉악한 기운을 모두 흡수해서인지 날개에서는 한층 더 부드러운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며, 이전까지 느껴지던 거칠고 탁한 기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준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그의 몸 앞에 멈춰 섰다.
잠시 후, 이준의 손끝에서 청록색의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온도로 타오르던 불길이 천천히 눈앞에 놓인 날개를 뒤덮자, 거대한 불덩이가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