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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15화 (415/818)

제415화. 음모

한편, 투종 네 명의 싸움은 다른 강자들의 싸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했다.

그들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해일과도 같은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주먹이 맞부딪힐 때 마다 대지가 뒤집히고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모천행과 아라의 실력은 모두 4성 투종 정도였지만, 특유의 독술로 인해 아라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3성 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서천우 대장로는 한샘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한샘은 투존의 몸을 얻어 크게 실력이 향상된 데다가 한 때 흑각성의 ‘약황’이라고 불리 정도의 연금술사였다.

따라서 그 영혼의 힘 역시 평범한 투종 강자와 비할 바가 못 됐으니, 제 아무리 가람 아카데미의 대장로라 해도 그를 상대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종 강자간의 싸움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었고,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며칠간 계속될 정도로 장기전이 되는 경우도 흔했으니 한샘과 서천우 사이에 약간의 실력 차가 있다고 해도 그리 빠르게 승부가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네 명의 투종이 사투를 벌이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하늘 위에서는 검은 망토를 걸친 청년 하나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퍽!

공중에서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둔탁한 파열음이 허공에 울려 퍼지며 한 사람이 뒤쪽으로 멀찍이 밀려났다.

밀려난 것은 서천우였다.

“큭큭. 서천우 대장로.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만 못하군. 아니면 내가 너무 강해진 건가?”

일격에 투종 강자인 서천우를 날려 보낸 한샘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내려 앉아 있었다.

“흥,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죽다 살아난 놈 치고는 주먹이 제법 맵구나.”

‘죽다 살아난 놈’이라는 말에 구름 불꽃을 눈앞에서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었던 그 날의 기억이 또 다시 한샘의 뇌리를 스쳤다.

“빌어먹을 늙은이가……. 내가 바다의 불꽃만 잃지 않았어도 네 놈은 벌써 재가 되어 있을 거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무시무시한 열기가 폭발했다.

“이준 이 자식!”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검은 망토를 입은 청년이 양손에 서로 다른 색깔의 불꽃을 융합시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익숙한 열기와 에너지에 한샘은 저도 모르게 사지를 바르르 떨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무투기였다.

“한샘! 저 녀석을 막아!”

이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열기를 느낀 것은 모천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아라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 이준을 막으러 가지도 못하고 한샘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방언……. 이 한심한 놈 같으니, 설마 셋이서 저 놈 하나를 못 막은 것이냐.”

한샘이 이를 갈며 이준을 향해 몸을 돌리려는 찰나, 서천우가 백발을 휘날리며 날아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 놈이 감히 나를 두고 한 눈을 팔아?”

“빌어먹을 노인네가!”

분노한 한샘이 염력을 쏘아 보내자, 노인은 곧바로 팔을 휘둘러 상대의 염력을 막아냈다.

“내가 널 쓰러뜨리는 건 힘들 수 있지만 막아두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 역시 이준이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을만한 무투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이준의 ‘화련’이 완성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 * *

펑!

서천우가 한샘을 붙들고 있는 사이, 모어에 이어 기문산 역시 본 모습을 되찾은 보람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크윽!”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는 무투기를 가진 모어조차 당해낼 수 없는 괴력을 기문산이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쾅!

다시 한 번 보람의 주먹이 그의 몸에 적중하는 순간, 바위가 깨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와 함께 기문산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한 주먹에 기문산을 쓰러뜨린 보람 역시 거친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실력으로는 본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불과 두 세 번의 공격만으로도 온 몸의 염력이 바닥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단 두 번의 주먹질만에 보라색 장발의 여인은 다시 작달막한 꼬마 아이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 보람의 얼굴은 조금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이준 쪽을 바라보자, 천지를 불태워버릴 듯한 열기를 뿜어내는 청록색의 작은 화염이 그의 손바닥 위를 떠도는 것이 보였다.

연꽃의 형상을 한 그 자그마한 불씨는 천천히 회전하며 신비로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화련을 완성시킨 이준은 보람을 향해 연금비약이 든 약병 하나를 던져준 뒤 씨익 웃음을 짓고는 모천행과 한샘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이준의 시선을 느낀 모천행과 한샘은 새파랗게 질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서천우와 아라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눈앞의 상대에게 온 정신을 집중해도 아차 하는 사이에 목숨이 날아갈 판에 등 뒤에서 생전 처음보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품은 무투기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으니 제 아무리 투종 강자라 하더라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임현 선생! 잠시만! 잠시만! 나와 얘기 좀 하세!”

모천행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을 부르자, 이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났다.

“글쎄요. 무슨 얘기를 하시고 싶으신가요? 잘 생각하고 말씀해 주세요. 허튼 소리가 나오면 이 불꽃은 바로 종주님에게 향할 겁니다.”

보리수의 점액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모천행의 머릿속에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 귀한 보물을 이리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준의 손에 들린 기묘한 무투기를 보는 순간, 온 몸의 털이 거꾸로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알겠네. 알겠어. 우리 흑황종은 이 일에서 손을 떼겠네.”

모천행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나오자, 한샘의 얼굴에서는 완전히 핏기가 가시고 말았다.

이제 그는 과거 자신의 숨통을 끊어 놓았던 그 무투기를 등 뒤에 둔 채 단신으로 아라와 서천우를 상대해야 했다.

말을 마친 모천행은 혹여나 이준이 자신을 공격할까 두려웠는지 황급히 뒤쪽으로 달아났다.

그 때, 흑황종의 투사들을 추슬러 퇴각하려던 모천행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수석 연금술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보람과 자신의 아들이 대결을 펼쳤던 곳에는 창백하게 질린 채 의식을 잃은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하. 꼬마 아가씨가 손이 참 맵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내 아들 놈에게도 아주 좋은 교훈이 됐겠어.”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시 싸움을 벌였다가는 모어가 아니라 자신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결국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이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뒤 모어를 품에 안은 채 흑황종의 투사들을 이끌고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흑황종의 병력과 사투를 벌이던 이찬이 날개를 펄럭이며 이준에게 날아왔다.

“괜찮아?”

“이제 흑황종은 이 싸움에서 발을 빼기로 했어.”

이준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화염 연꽃을 발견한 이찬은 못 당하겠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보리수의 점액을 손에 넣을 줄이야. 내 동생이지만 정말 대단한 놈이야.”

이에 이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염곡 놈들이랑 한샘이 남았잖아.”

그 때, 한샘이 애타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모천행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모종주, 저 어린 놈의 꼬드김에 넘어가면 어떡하나. 저 놈은 결코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 않으면 언젠가 흑황종을 칠거란 말일세.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나!”

하지만 그의 그 말은 가뜩이나 화가 나있던 모천행의 신경을 긁는 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흥,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네. 처음부터 네 놈의 쓸데없는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얌전히 투종의 열쇠를 받고 임현 선생을 도와줬더라면 모든 일이 잘 풀렸을 거야. 그러니 입 조심하게. 지금 당장이라도 임현 선생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자네를 죽여 버릴 수도 있어.”

모천행의 싸늘한 태도에 한샘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가 또 다시 잔머리를 굴렸다. 주위에는 투종 강자간의 싸움이 만들어 낸 소란으로 인해 어느새 흑각성의 강자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이준. 이런 식으로 보리수의 점액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염곡의 곡주가 널 가만두지 않을 텐데?”

한샘의 한마디에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에게로 향했다.

“보리수의 점액이 이준이라는 사람에게 있다고?”

“이준? 그 이씨 가문의 가주?”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느낀 이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한샘을 노려봤다.

“이준! 흑각성 놈들이 더 몰려올게다! 어서 자리를 떠야 해! 우선 가람 아카데미로 가자”

한샘이 또 다시 흉계를 꾸미는 듯 하자, 서천우가 이준에게로 날아오며 말했다.

“마염곡 곡주의 실력은 어느 정도죠?”

“으음……. 마로는 모천행보다도 윗세대의 강자다. 원장님과 나이가 비슷하지. 5성에서 6성 투종이라고 들었다.”

“최하 5성 투종이란 말이죠…….”

서천우의 대답에 이준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정도 수준의 강자라면 지금 자신의 화련으로도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마염곡에 그런 강자가 있었다니……”

“마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은거하면서 실력을 쌓고 있지. 마염곡에 정말로 큰 일이 나지 않는 이상 바깥 세상에 나오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일단 그 놈이 나타나면 지금 우리 실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해. 그러니 우선 가람 아카데미로 가야 한다. 그 자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원장님의 상대는 되지 못 해.”

이준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서천우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원장님께서는 도통 얼굴을 안 비추시니 믿고 의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가람 아카데미에서 그렇게 오래 지냈는데도 얼굴 한 번 못봤으니까요…….”

이준의 말 대로였다. 가람 아카데미의 많은 학생들이 원장이 정말 살아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을 정도로, 원장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크흠……. 원장님은 본래 여기저기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시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 사실 나도 못 뵌 지 십 년이 넘었으니까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 가람 아카데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이러나저러나, 일단 가람 아카데미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벌떼처럼 모여든 흑각성의 강자들을 바라보던 이준의 시선이 다시 한샘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감출 길 없는 살기가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한샘을 죽이려면 아라와 서천우도 상당한 힘을 소모해야 했고, 보람은 이미 많은 힘을 쓴 상태였다.

자신 역시 화련을 만드느라 적잖은 힘을 소모했으니, 이 상태에서 한샘을 죽이려 들었다가는 흑각성의 다른 강자들에 의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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