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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12화 (412/818)

제412화. 운수대통

이준과 한샘이 모천행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영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가 실력을 회복한 건 사실이나, 모천행에 한샘, 아라에 서천우까지, 무려 네 명의 투종을 상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염력을 실은 발로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수 십 갈래의 두꺼운 물기둥이 솟구쳐 나오며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다들 움직여!”

그러나 영산이 막 몸을 날리려는 찰나, 모천행이 금빛 염력을 폭발시키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흥.”

이와 동시에 영산의 소매에서 날카로운 단검 하나가 솟아나왔다.

“어림없지!”

그가 새하얀 손톱으로 단검을 툭 치자,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단검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잠시 상대의 시야를 막은 그는 곧바로 다시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하하. 영감, 어딜 가려고!”

하지만 또 다시 그의 눈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솟아오르더니 그의 얼굴을 향해 열기가 가득한 주먹 하나가 날아올랐다.

펑!

영산 노인은 황급히 주먹을 뻗어 이에 맞섰고, 이내 천둥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 흑각성의 옛 강자답군. 실력이 비범해. 하지만 이 네 명을 상대로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진 않군.”

이번에 영산을 막아선 것은 한샘이었다.

두 강자에게 발목을 붙잡힌 사이 어느새 서천우와 아라까지 날아와 그의 퇴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네 사람의 기운에 꽁꽁 둘러싸인 영산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리수의 점액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투존이라 해도 힘들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 고민하던 영산이 돌연 옥 상자 하나를 꺼내 허공으로 집어던졌다.

“들고 꺼져!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

“저 늙다리가 우릴 바보로 아나?”

하지만 한샘은 차갑게 웃으며 콧방귀를 뀔 뿐 그가 던진 옥상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천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라와 서천우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꼼짝도 않고 자리를 지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멍청한 자식들!”

네 명의 투종이 미동조차 하지 않자, 영산이 황급히 방금 전 자신이 집어던진 옥 상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가 움직였을 때, 보물이 든 옥 상자는 이미 검은 망토를 입은 청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영산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리수의 점액을 던져주면 네 사람이 곧장 쟁탈전을 벌이리라 생각했던 그의 계산이 완전히 빗나가 버린 것이다.

옥 상자를 손에 넣은 이준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던 것 뿐 인데, 그 귀한 보물이 이렇게나 쉽게 손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 한 듯 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준은 잽싸게 정신을 차리고 옥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속에는 정말로 살아있는 것처럼 둥둥 떠다니는 초록색의 액체가 들어있었다.

“설마 진짜였어?”

옥 상자 속에 정말로 보리수의 점액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네 명의 투종 강자들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당연히 그 옥 상자가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어떻게 이런 일이!”

자리에 있던 투종들 중 가장 당황한 것은 모천행이었다. 그는 보리수의 점액에 염력으로 표식을 남겨둔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방금 영산이 던진 옥 상자에서는 자신이 남겨둔 염력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보리수의 점액에 이상한 짓을 해놨다는 것을 알자마자 그 표식을 지워버렸지. 이 영산이 네 놈의 잔꾀에 두 번 당할 줄 알았느냐?”

“이준, 잘 확인해 보거라! 저 교활한 자가 뭔가 속임수를 썼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천우가 그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말했다. 만에 하나 보리수의 점액이 가짜라면 절대로 자리를 떠서는 안 됐다. 반대로 이준의 손에 들린 물건이 진짜 보리수의 점액이라면 아라와 자신은 최대한 빨리 이준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서천우의 말을 들은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영혼 탐지 능력을 활용해 잽싸게 보리수의 점액을 한 번 검사 해 보았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이준에게로 쏠렸다. 그렇게 십 분과도 같은 몇 초가 지났다. 그리고 이준의 고개가 살짝 아래로 움직이는 찰나, 한샘이 번개처럼 이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쯧.”

그러나 한샘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은빛 섬광이 터져 나오며 이준의 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서 은빛 섬광과 함께 사라졌던 이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자, 두 사람의 투종이 이준을 향해 날아가고, 곧바로 보람이 따라 붙었다. 이제부터는 네 사람이 똘똘 뭉쳐 보리수의 점액을 지켜야했다.

뒤이어 마염곡의 장로들이 상공으로 떠올라 이준 일행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샘과 마염곡의 장로들이 움직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모천행 역시 몸을 움직였다.

영산은 그러거나 말거나 멀리 떨어진 채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 이었다.

“모 종주, 이번에 우릴 도와주면 투종의 열쇠를 드리죠. 하지만 저 자와 손을 잡는다면 투종의 열쇠는 영영 날아갑니다. 내가 보리수의 점액을 갖고 달아나는데 성공한다면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설령 내 손에서 이 물건을 뺏는데 성공한다 해도 또 다시 영산과 마염곡의 장로들과 싸움을 벌여야 할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이준의 말에 모천행의 몸이 잠시 주춤거리며 멈춰 섰다. 투종 강자 둘에 투황 둘……. 확실히 마염곡의 장로들과 힘을 합친다고 해도 보리수의 점액을 탈취할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게다가 보리수의 점액을 빼앗는데 성공한다 해도 마염곡 장로들에게 포위당해 협공을 당할 것이 뻔했다.

“모 종주, 저 놈의 술수에 넘어가선 안 돼! 이쪽도 투종이 둘이야! 거기다 방언 장로에 다른 장로들까지 있는데 뭘 고민하는 거야!”

생각해보니 한샘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게다가 상대가 정말로 약속을 지켜 투종의 열쇠를 넘긴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 종주, 나는 어차피 투종의 열쇠와 이 물건을 교환하려 했습니다. 원한다면 저 자들을 물리치자마자 당장이라도 투종의 열쇠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모천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때, 한샘이 그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게 정말인가?”

“나중에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밝혀지면 모종주도 곧바로 마염곡으로 군사를 보내 책임을 물으면 될 것 아닌가.”

이를 들은 모천행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이를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 번 믿어보지.”

“걱정 말게.”

한샘에게 몇 번이나 다시 거래 조건을 확인한 모천행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준을 바라봤다.

“이준 선생, 아까 그 제안은 거절하겠네. 지금 이 분이 그보다 훨씬 더 좋을 물건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

모천행의 눈빛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무엇을 주겠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샘이 보리수의 점액에 대한 대가로 투종의 열쇠보다 더 어마어마한 물건을 내건 것이 분명했다.

“좋습니다. 부디 후회하지 마시길.”

상대를 회유하는데 실패한 것이 확실해지자, 이준은 곧바로 정신을 집중해 염력을 끌어올렸다.

옆에 있던 서천우, 아라 그리고 보람 역시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하하……”

모천행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한샘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멀리 떨어져있는 영산에게로 다가갔다. 영산까지 그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이준 일행은 독안에 든 쥐 신세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산은 한샘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손을 내저으며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기는 놈이군. 내 손에서 보리수의 점액을 빼앗아 가놓고 나에게 거래를 하려들다니, 헛수고 하지 말게. 난 끼어 들 생각이 없으니까. 알아서들 해결하게.”

말을 마친 영산은 번개처럼 몸을 돌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로 자리를 떠나버리는 영산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샘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너무나 여유롭게 자리를 빠져나가는 영산의 모습에 서천우와 이준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보리수의 점액처럼 귀중한 물건을 이리도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해결하자꾸나. 어쨌든 지금 보리수의 점액은 우리 손에 있지 않느냐. 그리고 조금만 버티면 이씨 가문과 가람아카데미의 강자들이 도착할 거야.”

서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평선 끝 쪽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익숙한 얼굴들이 이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흥. 애송이 몇 명 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서천우와 저 여자는 나와 모종주가 맡는다. 마염곡 강자들은 이준을 잡아! 보리수의 점액이 걸려있다! 목숨을 걸고 저 물건을 빼앗아와!”

살의에 찬 한샘의 목소리가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뜨렸다. 마염곡과 흑황종의 강자들은 이미 노골적으로 살기를 피워대며 이준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잽싸게 이씨 가문과 가람 아카데미 강자들에 대항할 인원과 이준을 공격할 사람들을 나누었다.

오늘 마염곡과 흑황종에서 데리고 온 강자들은 모두 각 세력의 최정예로, 능히 이씨 가문과 가람 아카데미를 누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많은 강자들을 이찬 쪽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준 쪽 보다 많은 인원이 남아 있었다.

이찬을 막으러 간 부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투를 시작했다.

양측이 격돌하며 순식간에 웅장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곳곳에서 형형색색의 염력이 폭발했다.

마염곡과 흑황종의 정예들이 이씨 가문 사람들을 막아내는 것을 보자마자 한샘의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곳은 흑황종의 구역이다. 오래 끌어봤자 너희에게 좋을게 없어. 그러니 보리수 점액을 내놓거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네 놈 성격에 이런 소리나 늘어놓는 걸 보면 상당히 자신이 없나본데? 자신이 있었다면 곧바로 우리를 죽이려 들었겠지.”

이준은 한샘의 말에 대꾸하면서 곁눈질로 이씨 가문과 가람 아카데미에서 온 지원군들 쪽을 살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아마도 진짜 강자는 모두 이쪽에 배치하고, 저쪽에는 비교적 실력이 떨어지는 인원들을 보낸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번 전쟁의 핵심은 이준과 서천우를 비롯한 넷 이었다. 이 넷이 당한다면 가람 아카데미와 이씨 가문의 강자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방언, 자네가 둘째 장로와 셋째 장로를 끌고 이준을 상대해.”

“네, 걱정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보리수의 점액을 뺏어 오겠습니다.”

“조심해. 저 자식을 투황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저 자식은 투왕에 불과했을 때도 투종에 가까웠던 나에게 치명상을 입힌 놈이니까.”

그 사이 한샘은 방언과 마염곡의 장로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방언 역시 이준과 관련된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으니, 상대를 평범한 투황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이준을 치기로 한 두 명의 장로는 모두 투황 최고 수준의 강자였고, 자신은 이미 투종에 반쯤 발을 들인 사람이 아니던가.

“저 보라색 머리 여자애는 저와 기 장로가 상대하겠습니다.”

모천행 뒤에 있던 모어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좋아.”

모천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서천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어와 기 장로가 힘을 합친다면 투황 계급에서 그들의 적수가 될 만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보라색 머리의 소녀도 제법 강한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두 사람을 이길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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