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8화. 보물찾기
껍질에 뒤덮여 있던 살점이 여전히 썩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 이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혼 탐지 능력을 통해 다시 한 번 마수의 시신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고깃덩어리에서는 어떠한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껍질에 둘러싸인 덕에 썩지 않았을 뿐, 그 안에 담겨 있던 힘은 모두 빠져 나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그렇게 칼을 들고 한참을 낑낑대며 고생한 끝에 마수의 날개를 등에서 분리해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신비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마수의 날개는 그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여전히 그 영롱한 광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날개를 빼낸 이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날개를 떼어내며 생긴 커다란 구멍 주위로 얼굴을 가져다댔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끔찍한 악취가 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새로운 점은 없었다.
“이 커다란 몸체에 진짜 이것밖에 쓸 게 없다고?”
검을 휘둘러 마수의 사체를 조각내자, 방 전체에 역겨운 악취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하네…….”
마수의 사체를 완전히 해체했음에도 새하얀 살덩이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하다. 내장들은 다 어디 갔지? 부식돼서 사라졌나? 근데 왜 이 속살들은 그대로 있는 거지…….”
이준은 양미간을 찌푸린 채 긴 검으로 속살을 싹둑 잘라냈다. 마수의 머리 부분도 잘라내 보았지만, 8레벨 마수의 두개골 안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텅텅 비어 있었다.
“진짜 이 한 쌍의 날개만 남았다고?”
사체를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아무리 뜯어보아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조금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아무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지만, 마정석은 고사하고 이렇게까지 텅텅 빈 쭉정이를 샀다고 생각하니 사기를 당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날개뼈를 노리고 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사체를 낙찰 받았다면 흑황종에 불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날개만 있어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니 뭐 됐어.”
결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이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에 들린 칼을 집어던졌다.
그 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이 한밤중에 뭐 하는 거야?”
방 안에는 어느 새 보람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잔뜩 짜증이 난 듯한 표정으로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너야말로 안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자려고 누웠는데 토할 것 같은 냄새 때문에 도저히 잘 수가 있어야지. 이 사체에서 나는 냄새야?”
“왜? 관심 있어? 가져갈래? 근데 이렇게 썩은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네. 배탈 나지 않겠어?”
그 순간, 돌연 보람의 눈에서 기묘한 보라색 빛이 번뜩였다.
“설마 진짜로 먹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이거 썩었다니까. 먹고 배탈 나도 난 모른다?”
이준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마수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던 보람은 갑자기 이준이 내던진 검을 집어 들더니 이미 새하얗게 변해버린 마수의 이빨을 빼내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이것 좀 태워 봐.”
보기 드물게 진지한 보람의 표정에 이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불꽃을 불러냈다.
천지의 불꽃이 이빨을 감싸자, 새하얀 마수의 이빨이 말랑말랑하게 변하더니 조금씩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크기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눈처럼 새하얀 빛깔을 띠고 있던 마수의 이빨은 어느 새 선명한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빨 끝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보람아, 설마 이 마수 사체에도 보물이 숨겨져 있는 거야?”
보람이 아니었더라면 마수의 이빨을 이화로 태워보아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영혼 탐지 능력이나 지식보다 보람의 신비한 육감이 더 쓸모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준은 작고 예리하게 변한 마수의 이빨을 들어 가볍게 탁자 위를 긁어보았다. 그러자 두터운 탁자의 상판이 마치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마수의 이빨에 의해 잘려진 면은 마치 유리처럼 반들거리며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와, 이 정도로 예리할 줄은….”
이준이 멍한 표정으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어대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보람이 갑자기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이빨을 다 태워 줘. 이걸 이용해서 장갑을 만들면 좋은 무기가 될 것 같아.”
이어지는 보람의 말에 순간 이준의 등줄기에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이 날카로운 이빨로 만든 장갑에 보람의 괴력이 더해진다면 그 어떤 투황 강자라도 감히 그녀에게 대적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수의 사체에 관한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진 이준은 군말 없이 보람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했다.
청록색 화염이 나머지 아홉 개의 이빨에 닿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아홉 개의 작은 이빨이 만들어졌다.
“대체 이 이빨이 천지의 불꽃에 닿으면 이렇게 변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안거야?”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 보였을 뿐이야.”
“진짜 저 사체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까? 죽은 지 너무 오래 돼서 원래 무슨 마수였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생겼는지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아무튼 나랑 같은 종은 아니야. 그래도 네가 저 사체를 완전히 토막 내는걸 보니 기분은 좋더라.”
“기분이 좋았다고? 그렇다면 너랑은 역시 적이었을까?”
“몰라. 나도 내가 무슨 마수였는지... 흠, 그러니까 나도 내 정체를 모르는데 저게 뭔지 어떻게 알아.”
“됐어. 그냥 한 말이야. 너한테 알아보라는 말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근데 이제 저 사체를 어떻게 처리하지?”
보람이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 하자, 이준도 더는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저것도 태워보면 되지. 뭐라도 나오면 좋은 거고, 안 오면 그냥 처치 곤란한 사체를 치웠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보람의 말에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손을 움직여 조각난 마수의 살점을 들어 올린 뒤 청록색의 화염으로 그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5분 정도가 지나자, 탁자 크기만 했던 고깃덩어리가 순식간에 주먹만 한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본래 하얀색이었던 고깃덩어리 위에는 약간 붉은 빛을 띤 수증기가 맺혀 있었다.
그 선홍색의 수증기는 화염이 가해질수록 점점 더 짙어지다가 천천히 응고되기 시작했고, 마치 피처럼 변해 새하얀 고깃덩어리 안으로 빨려들었다가 다시 화염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이준은 얼른 자신의 저장반지 안에서 최상급 약병 하나를 꺼내 그 액체를 받아냈다.
수증기가 다 증발한 고깃덩어리는 화염 속에서 점점 작아지다 완전히 사라져 한 톨의 재조차 남기지 않았다.
수십 덩어리로 토막 난 마수의 사체 조각 중 한 덩이가 완전히 사라지자, 이준은 황급히 조금 전 마수의 사체에서 흘러 나온 액체를 담은 약병을 꺼내들고 그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 순간,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전신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수하고도 거대한 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이준의 몸을 타고 돌다가 이내 그의 체내에 흡수되었다.
직접 그 신비한 액체의 에너지를 느낀 이준은 곧바로 사체 조각을 하나하나 들어 올려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고깃덩어리에서 그런 액체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몇 시간에 걸쳐 수십 개의 고깃덩어리를 모두 태웠음에도 그 붉은색 액체는 고작 다섯 방울 밖에 모을 수 없었다.
이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섯 방울의 붉은 액체를 모두 저장반지 안에 넣어두었다. 한 방울 만으로도 온 몸에 원기가 돌고, 심지어 살갗과 세포 하나하나까지 에너지로 충만한 느낌이었다. 급한 마음에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몸을 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준은 애써 흥분된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며 머리와 껍질만 남은 사체를 유심히 관찰했다. 가장 귀한 마정석을 찾지 못했다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보통 이런 레벨이 높은 마수들의 마정석은 이유 없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이빨과 붉은 액체처럼, 어쩌면 머리와 껍질 속에도 무언가 중요한 보물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준은 연신 마른 침을 삼키며 마수의 껍질과 머리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쓰레기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거야 살덩이와 이빨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천지의 불꽃으로 태우면 그 이빨이 검이 되고, 그 살덩이가 진귀한 영약이 되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흑황종에서도 이 귀한 물건을 덩그러니 경매에 내놨겠지. 이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눈을 뜬 이준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부드러운 바람이 바로 거대한 마수의 껍질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이준은 이번에는 또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불을 피웠다. 청록색의 화염이 껍질을 태우는 내내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불타는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마정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마수의 껍질은 아무런 변화 없이 마치 몸을 오그리고 있는 뱀처럼 그 크기만 줄어들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자, 거대한 마수의 껍질이 거의 두루마리 하나 정도의 크기까지 작아졌다. 그러나 이준이 그렇게 바라던 마정석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막막해진 이준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보람을 바라봤다.
“너 진짜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거면 그 이빨 도로 뱉어 내.”
“바보. 마정석의 에너지가 그 껍질에 있다고 해도 그 따위로 태워대면 그 안의 에너지는 다 날아가고 말걸?”
보람의 이 말에 이준은 황급히 불을 끄며 버럭 화를 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나한테 물어본 적 없잖아! 네 맘대로 태워놓고 왜 나한테 화를 내!? 됐어, 난 갈 거야! 혼자 알아서 해.”
보람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벌떡 몸을 일으키자 이준의 태도가 돌변했다. 지금 아쉬운 것은 보람이 아니라 그였다.
“자, 잠깐만! 흐흠… 화내서 미안. 예쁜 보람아, 방법을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지, 보람은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먼저 조금 전에 채취한 그 액체를 한 방울만 껍질에 떨어뜨린 뒤 다시 태워 봐. 그러면 마정석이 스스로 나오게 돼 있어.”
“정말? 확실해?”
“안 확실하면 어쩔 건데? 아님 또 맘대로 해보든가. 다 태워서 재로 만들든 뭐든 혼자 알아서 해.”
“그래, 네 말대로 해볼게.”
보람의 말에 따라 이준은 붉은 색 액체를 담아두었던 옥병을 꺼내 손바닥에 올린 뒤, 염력을 사용해 그 안의 내용물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붉은 색 액체가 사체의 껍질에 떨어지는 순간, 회백색의 껍질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시작했다.
“빨리 태워. 그러다 에너지 다 빠져 나간다.”
보람의 쌀쌀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준은 곧바로 청록색의 화염을 뿜어내 마수의 사체를 둘러쌌다. 그러자 고깃덩어리를 태울 때와 마찬가지로 껍질에서 선홍색의 안개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