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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04화 (404/818)

제404화. 물물교환

그렇게 모두가 ‘화룡의 숨결’과 영혼의 정수, 황금단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갑자기 경매장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 방 장로께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 같군요. 비록 이 늙은이가 속세를 떠난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마염곡과 화룡의 숨결에 대해서는 제법 들은 바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 화룡의 숨결은 사용할 때 마다 사용자의 몸을 상하게 해 자주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물건입니다. 헌데 그런 중요한 내용을 쏙 빼놓고 말씀하시다니요.”

다음 순간, 그림자 하나가 사람들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경매대 위로 날아들더니 눈 깜짝할 새에 황금빛 망토를 두른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언의 말에 토를 단 것은 다름 아닌 흑황종의 종주, 모천행이었다.

이에 방언은 곧바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콧잔등을 긁었다. 그의 실력으로 투종 강자인 모천행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고 싶어 환장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경매대에 오른 모천행은 곧바로 이준을 바라보며 직접 흥정을 시작했다.

“이보게, 젊은 친구. 이 마수시체에 마정석이 있다면, 영혼의 정수 두 개와 황금단 하나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겠나? 그러니 이 늙은이가 한가지 제안을 하지. 만약 영혼의 정수 다섯와 황금단 네 개를 건네준다면, 흑황종 종주의 권한으로 바로 이 물건을 자네에게 넘기겠네.”

이어지는 모천행의 말에 이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마정석이 있을지 없을지는 오직 하늘만이 아는 일이었다. 게다가 같은 마수 수십 마리를 잡아야 겨우 마정석 하나를 구하는 판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마정석 하나를 놓고 영혼의 정수 다섯 개와 황금단 네 개라니,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나 다름이 없었다.

“세 개의 영혼의 정수와 하나의 황금단을 내놓겠습니다.”

“아니, 네 개의 영혼의 정수와 세 개의 황금단.”

“종주님께서도 이런 연금비약을 만드는 데 드는 약재의 가격을 모르시는 바가 아닐텐데요. 게다가 약재가 있다고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더 이상 값을 흥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 개의 영혼의 정수와 두 개의 황금단으로 되면 낙찰하고 안 되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이준의 단호한 태도에 모천행은 잠시 고민하는 척 양미간에 잔뜩 힘을 주더니 자못 손해를 감수하는 척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 그럼 이 마수의 시체 주인은 이미 나왔습니다.”

거래를 마친 모천행은 등을 돌리고 입이 찢어져라 웃음을 지었다. 말라비틀어진 마수 하나로 영혼의 정수 세 개에 황금단 두 개라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었다.

하지만……. 망토 아래 감춰진 이준의 입가에도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영혼의 정수 세 개와 황금단 두 개라는 말에 경매장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귀빈석에 자리한 사람들조차 이준과 모천행을 번갈아 바라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사실 이준은 이 마수 시체 안에 다른 보물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하나, 그 신비한 빛을 발하는 8레벨 마수의 날개뿐이었다.

그에게 그 날개를 얻는다는 것은 곧 투종 강자보다도 더 빠르게 하늘을 누빌 수 있는 비행 무투기를 얻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니, 영혼의 정수 세 개와 두 개의 황금단을 내놓더라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생각대로, 그 마수의 시체는 이미 말라 버릴 대로 말라버려 마정핵은커녕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다. 이준 역시 그 날개를 이용해 비행 무투기를 제조할 수 없었다면, 절대로 그런 거래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뛰어난 영혼 탐지 능력을 통해 그 날개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이에 기꺼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거래에 응한 것이다.

주인이 정해지자, 건장한 사내들이 시체를 들고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 모천행은 가볍게 손짓을 해 백발의 경매사를 경매대 아래로 내려 보냈다. 보아하니 이제 남은 경매는 흑황종의 종주인 모천행이 직접 진행을 할 모양이었다.

모천행의 행동에 귀빈석에 자리 잡고 있던 흑각성의 강자들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종주가 직접 경매를 진행한단 말인가.

그는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저장 반지에서 보라색 장갑을 하나 꺼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바닥이 열리며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들이 걸어 나왔다. 노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엄숙하기 짝이 없었다. 대열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노인의 손바닥 위에는 노란색 천으로 덮인 작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상자를 든 노인을 제외한 나머지 노인들은 마치 매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면서 약간이라도 수상한 점이 보이면 곧바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모두가 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마른 침을 삼키며 경매대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내 모천행이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에 오신 여러분들 중 거의 대부분은 아마도 이 물건 때문에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리수의 점액이 확실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상자 주위로 노인들이 빙 둘러서경매대를 봉쇄했다.

흑황종의 이런 삼엄한 경계만 봐도 보리수의 점액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흑각성의 난다 긴다 하는 세력에서 모두 강자들을 파견해 이 경매에 참여한 것 아니겠는가.

흑각성 같은 무법지대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리수의 점액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면 투종 강자라 하더라도 체면을 내려놓고 경매품을 강탈하려 들지도 몰랐다. 만약 흑황종 정도 되는 세력이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경매장이 피바다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모천행이 염력을 조종해 상자 위에 덮인 노란 천을 벗기자, 드디어 노란 천 밑에 놓인 투명한 수정으로 된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정으로 된 상자 안엔 한줄기 신비한 빛이 감돌고 있었고, 그 빛의 한가운데에는 녹색 빛을 발하는 주먹만 한 크기의 액체가 떠 있었다. 녹색의 액체는 마치 살아있는 듯 끊임없이 꾸물거리며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허공에서 꾸물거리는 녹색 액체의 신비한 자태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홀린 듯 눈을 떼지 못 했다.

아라와 이준 역시 작은 상자 안의 녹색 액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자, 이것이 바로 그 보리수의 점액입니다.”

모천행의 한마디에 숨소리만 가득했던 경매장 안의 분위기가 소리 없이 달아올랐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과 거친 숨소리만으로도 눈앞의 물건을 얼마나 탐내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 보리점액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 * *

경매장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욕으로 눈을 빛내면서도 감히 그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그 보물을 손에 넣을 주인공은 귀빈석에 자리한 실력자 중 하나일 것이 뻔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보리수의 점액은 진정한 보물중의 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경매 방법도 다른 것들하고는 조금 다르게 진행해야 겠지요. 만일 이 점액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직접 단상에 올라와 가지고 계신 물건을 이 늙은이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럼 이 늙은이가 여러 분들이 들고 나온 물건들 중 가격이 가장 높은 물건과 이 보리수의 점액을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모천행의 말에 몇 몇 사람들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보리수의 점액이 워낙 진귀한 물건이니,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오늘 경매를 위해 준비한 물건들 역시 제법 만만찮은 보물들이었다. 헌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이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개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경매를 주최한 흑황종 측이 그런 문제 하나 고려하지 않았을리 없었다. 잠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던 모천행은 안심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짐짓 온화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곳에 있는 모두에게 물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종주인 저, 모천행에게만 물건을 보여주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준도 처음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니 이런 경매 방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만천하에 내보이지 않으면서도 입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보다 약간 느슨해진 분위기를 느낀 모천행은 곧바로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흔들었다. 그러자 바로 그의 몸 주위로 빛줄기가 솟아오르며 단상 주위가 점점 어렴풋해졌고, 나중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단상 주위를 둘러싼 진한 빛 속에서 모천행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로써 단상 밖의 사람들이 안에서 무슨 물건이 오고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제가 직접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천행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귀빈석에 있던 한 중년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경매대로 향했다.

단상 위로 올라간 사내와 모천행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이준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 하고 자신의 저장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귀빈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만만찮은 인간들이었으니,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털어 넣더라도 보리수의 점액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아라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말없이 잘근잘근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가장 먼저 단상 위로 올랐던 사내는 불과 3분이 지나지 않아 빛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사내의 얼굴은 들어갈 때와는 달리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표정만 보아도 그가 제시한 물건이 모천행의 관심을 끌지 못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음침한 인상을 한 노인이 황색 옷깃을 펄럭이며 단상 위로 올랐지만, 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로도 쉬지 않고 귀빈석에 앉아있던 자들이 줄줄이 단상에 올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선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갔다.

이준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그 때, 이번 경매에서 무려 천만 골드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고 그림자 속성의 염력 수련법을 구매했던 매부리 코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노인은 쏟아지는 시선을 뒤로한 채 잠시 종적을 감췄다가 돌연 단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노인이 두 명으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의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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