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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03화 (403/818)

제403화. 사기 혹은 도박

그 사이, 2격 중급의 그림자 속성 염력 수련법이 경매대에 올랐다. 2격 중급의 수련법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인데, 그 귀한 그림자 속성의 염력 수련법이니 그 가격 역시 하늘을 찔렀다.

2격 중급의 염력 수련법이 경매대에 오르는 것을 보자 이준의 머리에도 불현 듯 ‘불개’를 진화시키는 문제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불개를 그 수준까지 수련하려면 또 다른 천지의 불꽃이 필요했지만, 새로운 천지의 불꽃을 구하기는 커녕 천지의 불꽃에 대한 소문조차 들리지 않았으니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휴……. 서천우 대장로님에게 물어보면 천지의 불꽃에 대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이준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애써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막막한 일에 부딪힐 때 마다 스승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스승이 있다고 곧바로 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갈피를 잡지 못 하고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준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돌연 늙은 경매사의 목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970만 골드에 낙찰입니다.”

970만 골드라니……. 6레벨 연금술사인 이준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준의 가격이었다.

1000만 골드에 육박하는 염력 수련법을 사들인 것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매부리 코를 가진 노인이었다.

“어느 세력에서 보낸 사람이지? 저 정도 돈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 한데…….”

이준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노인을 유심히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노인 역시 말없이 이준을 바라봤다.

“이런, 탐지 능력이 대단한 노인이군.”

노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이준은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 노인이 만약 투종 강자가 아니라면 뭔가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지 바라봤을 뿐인데 정확히 자신을 되돌아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상대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이준은 잽싸게 경매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이지 만만치 않은 인간들이 잔뜩 모여 있네. 보리수의 점액을 구하는게 생각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허허, 이번에 내보일 경매품은 조금 기괴한 물건이지만, 아마 어떤 분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물건이 될 겁니다.”

그 사이 경매대에는 또 다른 상품이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시체 썩은 내가 나.”

곧이어 거구의 사내 몇 몇이 하얀 천으로 뒤덮인 거대한 물건 하나를 들고 나왔다. 보람의 예상대로였다.

백발의 경매사가 하얀 천을 걷어내자, 거대한 시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크기가 제법 거대했지만, 죽은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듯 마를 대로 말라 있었다. 형태로 보아 사람은 아니었고, 아마도 고레벨의 마수인 듯 싶었다. 마수의 시신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기묘할 정도로 커다란 날개였다. 이미 백골이 되었음에도 그 거대한 날개에서는 신비한 빛이 은은하게 새어나고 있었다.

“이 마수의 시체는 우리 흑황종에서 깊은 산골짜기에서 발견한 것으로, 적어도 7레벨에서 8레벨 사이 마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정도 마수라면 인간으로 치면 투존 강자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헌데 그런 마수가 산중에서 죽어 시체가 되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었다.

그 순간, 이준의 머릿속에 퍼뜩 얼마 전 손에 넣은 보물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철새의 날개는 본래 금안종의 종주 낙안성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비행 무투기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철새의 날개를 통해 만들어진 비행 무투기가 얼마나 쓸모 있느냐 하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데 쓰인 재료가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었다. 고급 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 심지어 투종 강자라 하더라도 탐낼만한 날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비행 무투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바로 비행 마수의 날개였다. 2격 무투기인 ‘번개의 춤’을 사용하는 이준조차 우습게 여기던 낙안성의 철새의 날개를 만드는데 쓰였던 것은 6레벨 마수의 날개였다. 그렇다면 7레벨 이상의 마수의 날개로 만든 비행 무투기는 대체 얼마나 빠를까? 그런 생각을 하자, 이준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준이 번개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을 때, 곁에 있던 보람이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왜 그래?”

“잘 모르겠어. 그런데 저 시체를 보니까 뭔가 몸이 불편해.”

“설마 저 시체가 너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

보람의 본체는 매우 희귀한 상고시대의 마수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서장로의 말에 따르면, 가람 아카데미에서 그녀를 발견한 것은 아주 깊은 산속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 눈앞의 신비한 마수의 시체도 깊은 산속에서 우연하게 발견했다고 하니, 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흥, 아닐걸.”

하지만 저 마수가 자신의 먼 친척일 가능성이 있지 있냐는 이준의 추측을 듣자마자 보람은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같은 종의 마수라면 보람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보람이 느끼는 것은 같은 종의 마수에게 느끼는 특유의 친밀감보다는, 불쾌할 정도로 전신을 타고 흐르는 어떤 종류의 ‘적의’였다. 그것은 대체로 마수들이 자신의 천적에 해당하는 종을 만났을 때 느끼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네가 이 마수의 하위 종은 아닐까? 비슷한 종이라도, 자기보다 상위 종을 만나면 천적을 만난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고 하니까.”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보람은 조금 납득한 듯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이유야 뭐가 됐든, 그녀는 마수의 시체에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기묘한 경매품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준만이 아니었다. 귀빈석에 있는 대다수의 실력자들이 그 마수의 시체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서로 눈치를 봐 가면서 수군대기 시작하는 걸로 미루어보아, 다들 이 물건에 적지 않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수의 시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방언을 비롯한 마염곡의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분, 이 마수의 시체는 우리 흑황종에서 줄곧 완벽하게 보관하고 있어 일말의 손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마수의 몸에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기에 체내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정석이 들어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노인의 한마디에 장내의 분위기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8레벨 마수의 시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끝도 없었지만, 연금술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안에 있는 마정석이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빨리 시작 가격이나 말하시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마수의 시체는 쉽게 그 가격을 가늠할 수가 없기에 이번에는 금화가 아닌 물물교환으로 경매를 하겠습니다.”

이준을 비롯한 귀빈들의 추측대로, 마수의 시신에 대한 경매는 돈이 아닌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졌다. 대개 이런 진귀한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돈이라면 아쉬울 것이 없는 자들이었고, 이런 물건을 내놓는 사람 역시 돈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었으니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곧이어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흑확종의 노인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며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사실 이 마수의 시체는 노인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8레벨 마수의 시신이니만큼 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미 죽은 지 몇 년이나 지난 탓에 체내에 있는 에너지가 거의 다 새어나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본래 고급 마수의 시체에 마정석이 있을지는 하늘만이 아는 일 이었으니, 그 가치는 더욱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었으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정적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자, 노인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가치가 얼마나 되든 흑황종 내부에서는 이 물건이 제법 값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만일 이 물건이 낙찰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연 귀빈석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혼의 정수 두 개와 황금단 하나를 내놓겠습니다.”

이준의 한마디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졌다가 이내 시장통처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영혼의 정수와 황금단은 모든 투왕과 투황들이 바라 마지않는 고급 연금비약 이었고, 아무리 큰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그렇게 쉽게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때문에 보통 한 지역을 통치할만한 세력쯤이나 되어야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고,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외부에 그것을 내놓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보통 거대한 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황금단이나 영혼의 정수는 차기 종주가 될 인물을 길러내는데 쓰이거나, 유력한 실력자를 자신들에게 포섭하는데 쓰였다.

그런데 이런 귀한 연금비약을 한 번에 세 개나 내놓겠다니, 장내에 소란이 이는 것도 당연했다.

이준의 한마디에 백발의 경매사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이 정도 물건이라면 제 값을 받지 못 했다며 쓴 소리를 들을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 영혼의 정수와 황금단보다 더 좋은 걸 내 놓을 분 계십니까?”

“2격 무투기를 내놔도 될까요?”

뒤이어 누군가가 2격 무투기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2격 무투기도 비록 평범한 물건은 아니지만 저 선생이 내놓은 것에 비하면…….”

“일단 설명을 들어보시지요.”

이준과 마수의 시체를 놓고 경쟁을 벌일 사람은 다름 아닌 마염곡의 장로 ‘방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방언은 이준을 향해 공손한 자세로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무투기의 이름은 ‘화룡의 숨결’로 수행 과정이 꽤 복잡하고 힘들어 반드시 불 속성을 가진 자만이 이 무투기를 연마할 수 있습니다. 이 무투기를 익힌 자는 체내의 불꽃 속성 염력을 실체를 가진 불꽃으로 바꿀 수 있지요. 그리고 본인의 염력 수준에 따라 그 불꽃은 천지의 불꽃 못지 않은 위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무투기를 익힌 자는 어떠한 불꽃이라도 더 능숙하게 다를 수 있게 됩니다. 이 정도라면 황금단과 영혼의 정수에 비할만하지 않겠습니까?”

방언이 설명을 마치자, 경매장 곳곳에서 또 다시 소란이 일었다. ‘화룡의 숨결’이라는 무투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자가 많았지만, 천지의 불꽃은 투기 대륙의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그것에 비할만한 불꽃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이준 역시 화룡의 숨결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장내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준이 주목한 것은 ‘천지의 불꽃에 비할만한 위력을 가진 불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이미 천지의 불꽃이 있는데, 뭣하러 그것만 못한 것을 탐낸단 말인가? 그것보다도 이준의 관심을 끈 것은, ‘어떠한 불꽃이라도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말 이었다.

그는 이미 여러 개의 불꽃을 다루고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은 불꽃을 다루어야 했다. 게다가 불꽃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 불꽃들을 다루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천지의 불꽃을 흡수할 때 마다 그것을 길들이는데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 ‘화룡의 숨결’은 그야말로 그에게 가장 필요한 무투기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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