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397화 (397/818)

제397화. 흑황각

영혼의 힘이 강해지는 것은 연금술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연금술사의 재능은 곧 영혼의 강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준이 이 나이에 이런 실력을 얻은 것은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보다 더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때 은빛성에서 저장반지에 들어있던 약로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고, 가문에서 버려지다시피 했던 이준을 이렇게까지 성장시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 이었다.

결국 이준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온 것 역시 영혼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리심을 손에 넣는다면……. 더욱 큰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영혼의 힘은 염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디게 성장하니, 어쩌면 투황에서 투종이 되는 것 이상으로 보리심을 구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몰랐다.

“장로님이 하신 얘기가 다 사실이라면 그 보리심은 정말로 엄청난 보물이겠군요.”

도연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그녀 역시 보리심에 대해 들은 바는 있지만 백발노인이 말한 것처럼 이렇게 상세하게는 알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장로님, 그 나무가 어디에 가면 있을까요?”

“허허, 글쎄요. 그 나무가 이렇게 신기한 효능을 갖고 있으니 누구나 찾으려고는 하지만 아직 찾았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알고 있었더라면 당장에 그 물건을 찾으러 떠났겠지요.”

“흐음……. 그럼 그 점액을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겠네요.”

“아닙니다. 그저 보리수의 점액을 찾는 거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로님, 그게 무슨 뜻이죠?”

백발 노인의 의미심장한 말에 이준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허허, 아쉽게도 저희 천약방에는 없지만, 이번 경매에 보리수의 점액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노인의 말에 이준과 아라의 얼굴에 동시에 웃음 꽃이 피었다. 그들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것이 이곳에 있다니, 기쁘지 않을리 없었다.

“그럼 보리수의 점액을 얻으면 보리심에 관한 소식도 얻을 수 있을까요?”

“허허, 글쎄요. 그것까진 이 늙은이도 모르겠군요. 보리수의 점액에 관한 이야기도 단지 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르지요. 흑황종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해 퍼뜨린 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구한 이준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허허, 선생님이 넘긴 영혼의 정수는 사실 세 가지 약재와 바꾸기에는 너무 귀한 물건입니다. 그러니 은혜는 갚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장로님이 해주신 이야기는 저에게는 정말로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정보입니다.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 바로 떠나지만,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연이 닿으면 또 뵙겠습니다.”

도 방주와 백발 노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이준은 곧바로 아라와 보람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설마 여기에서 보리수의 점액에 관한 소식을 들을 줄이야.”

“근데 경매회에서 보리수의 점액을 얻는 게 결코 쉽진 않을 것 같아.”

백발 노인의 말을 떠올린 아라는 양미간을 찌푸린 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봐야지. 우선은 몸을 기댈 곳부터 찾은 뒤 레벨이 좀 높은 연금비약을 제조해야겠어. 그런 귀한 물건을 구하려면 돈만 가지고 되지는 않을테니까.”

“고마워.”

이준이 자신의 재난독체를 해결하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쓴다는 사실에 아라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이젠 고맙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 그 때 네 몸에 있는 그 독을 꼭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잖아.”

“아니야,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아라는 작고 빨간 입술을 꽉 깨물며 몇 번이고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시 만난 이래 가장 밝은 표정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 어디로 가면 돼?”

“음, 먼저 그 흑황각이라는 곳부터 가볼까? 일단 거기 가서 발을 붙여야만 연금비약을 제조할 수 있을 것 같아.”

“흑황각에 간다고? 기문산이라는 그 영감탱이가 흑황종 사람인데 거기에 가는 건 좀 그렇지 않겠어?”

“크게 걱정할 거 없어. 그 영감탱이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일부러 일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투종에 투황이 둘인데 뭐 큰 일이야 벌어지겠어?”

이준의 말에 아라 역시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흑황각은 흑각성 내에서 꽤 이름 있는 강자들을 묵게 하는 곳으로,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흑각성 내에서 제법 명성을 떨쳤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흑황각 주위 직경 백 미터 이내는 흑황종의 수위들이 직접 지키고 있어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은 그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이준 일행이 흑황각 앞에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 같이 출중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듣던 대로 강자들만 올 수 있는 곳이군. 저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진짜로 보통 사람이 아니겠네.”

이준 일행이 흑황각에 발을 들이려 하자, 파란 색 도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여긴 흑황종에서 초대한 손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준에게 말을 걸어온 노인은 대략 6,7 성 전후의 투황 강자로, 이는 흑황성 내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릴 법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에 이준은 성문 입구에서 만났던 노인에게서 받은 휘장을 꺼내보였다.

휘장을 건네받은 노인은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세 사람을 찬찬히 훑어봤다.

“저는 흑황종의 장로 차승덕이라고 합니다. 세 분 얼굴은 좀 낯선데 혹시 성함이…….”

“네. 임현이라고 합니다. 까마득한 후배로, 여기 흑강성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흑각성에서 큰 경매를 연다고 해서 한번 구경이라도 할까 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허허, 이 휘장을 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너무 겸손하시군요.”

차승덕이라는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실력으로는 이준과 보람이 투황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앳된 외모와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강자라는 것 역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있는 여인은……. 그 둘 보다도 아득히 위에 있는 수준의 강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되나요?”

“그럼요. 안에 들어가시면 묵게 될 곳을 안내해 드릴 겁니다.”

하지만 이준 일행이 막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그 때, 등 뒤에서 그의 귀를 잡아끄는 소리가 들렸다.

“마염곡의 방언 장로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마염곡에서 이번에 저 영감탱이를 보낼 줄 몰랐네.”

“아마도 그 보리수의 점액 때문에 왔겠지. 그게 아니라면 여기까지 올 사람이 아니야.”

“이번 경매회가 꽤 재미있겠는걸. 이 흑황성 내에 이미 적지 않은 세력들이 모여 들었는데, 그게 모두 보리수의 점액 때문이라는 거야.”

빨간 머리를 한 노인의 등장에 이준의 주위에 있던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마염곡의 사람이라고?”

“근데 저기 맨 뒤에 회색 망토를 걸친 사람이 좀 수상하지 않아?”

아라의 말에 회색 망토를 걸친 사람 쪽으로 시선을 보내던 이준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기운이 어딘가 생소하지 않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서 느껴본 기운인지는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시 한번 상대를 확인해 보고 싶어 머리를 돌리자, 회색 망토를 걸친 사람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흑황각의 내부는 흑확종의 귀빈을 모시는 곳 답게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커다란 대문을 지나자, 광장처럼 넓은 대청이 이준 일행을 맞이했다.

흑각성의 대청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누가 흑각성의 일부가 아니랄까봐, 이곳저곳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매를 위해 흑각성의 많은 강자들이 한 곳에 모였으니, 이 정도의 소동이라면 오히려 얌전하다고 느껴질 정도에 불과했다. 바깥이었다면 이미 시체가 나뒹굴었을 테니까.

삿대질을 해가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이 흑각성이란 곳은 단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곳 이었다.

세 사람이 흑황각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시종 하나가 그들 쪽으로 다가와 영패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공손한 태도로 셋을 이끌고 그들의 숙소로 향했다.

흑황각의 면적은 실로 거대해, 천 명 정도는 쉽게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흑각성의 귀빈들을 모시는 곳 답게, 숙소는 실력과 세력에 따라 구분되어 있었다. 이준 일행이 거주하는 구역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4성 구역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이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는 밀실이 있는 방이면 족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이준은 바로 방에 들어가지 않고 아라와 보람을 데리고 그 안을 구경해 보기로 결정했다.

떠들썩한 대청을 지나 창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자, 빼곡한 숲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자, 대청 안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도 한결 작게 느껴졌다.

이준은 시녀가 올린 차를 마시면서 조금 전 보았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기억해보려 애썼다. 온 몸을 뒤덮은 커다란 망토 덕에 상대의 얼굴은 구경조차 하지 못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태 만났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인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묘한 것은, 영혼 탐지 능력을 사용해도 상대의 영혼의 강도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 이었다.

“에휴……. 답도 안 나오는걸 고민해서 뭐하겠어.”

이준은 그 기묘한 자의 정체에 대한 생각을 접고 다시 주위의 시끄러운 잡음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이곳에서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다.

주의 깊게 한참을 듣다 보니 적지 않은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번 경매에 참여한 많은 세력들 중 이씨 가문이 있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곧바로 이씨 가문의 사람을 찾으려 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것 말고도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보리수의 점액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준을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 물건에 관심이 많은 걸 보니 이번 경매의 핵심은 아마도 보리수의 점액인 것 같았다.

보리수의 점액에 관한 소식을 얻으려고 애쓴 지난 반 년 동안의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경매회가 정식으로 열리려면 아직도 삼 일이 남았으니까, 삼일 내에 더 많은 강자들과 세력들이 오겠지? 듣던 대로 흑각성은 구름제국, 가람제국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대단하구나…….”

아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준은 천천히 생각을 갈무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들어가자. 시간도 늦었으니 일단은 좀 쉬고, 내일은 연금비약을 제조해야겠어.”

“응. 들어가자.”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준 일행 쪽으로 거들먹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을 한 걸 봐선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느낌이 안 좋네.”

이준은 그 사람들의 팔뚝에 늑대 문신이 새겨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며칠 전 성문 앞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의 몸에 있던 문신과 똑같은 문신이었다.

하나같이 덩치가 산만한 이들이 대청 위로 걸어오자, 자연스레 사람들이 시선이 그 곳으로 쏠렸다.

“늑대파 놈들이군. 돈이라면 목숨을 건다지?”

“엥? 어쩌다 흑황성에 저 인간들도 온 거지?”

쾅!

그 순간, 늑대파의 거한 중 하나가 포효하는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이준 일행이 앉아 있던 탁자를 내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