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396화 (396/818)

제396화. 낙찰

“이보게 젊은이, 바꿀 능력이 안 되면 나에게 그냥 넘기라니까. 도 방주, 이 경매라는 건 원래 가격을 높게 부르는 사람이 임자라면서. 그러니 만약 이 친구가 5레벨 연금비약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 늙은이가 바꿔 가지.”

이어지는 노인의 말에 도연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가 더 높은 가격을 내 놓는가에 따라 약재의 주인이 정해지는 것이 규칙입니다.”

“이건 5레벨 연금비약 ‘바람의 파편’일세. 복용하게 되면 짧은 시간 내에 속도가 증가해 만약 누군가에게 쫓길 때 먹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지.”

기문산에게서 옥병을 건네받은 도 방주는 조심스레 옆에 있던 백발의 노인에게 그것을 건넸다. 노인은 옥병 안에 든 연금비약의 색깔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5레벨 바람의 파편은 확실합니다. 다만……. 최상품은 아닙니다.”

모처럼 5레벨 연금비약을 내놓겠다고 하더니, 역시나 제대로 된 것을 내놓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5레벨은 5레벨 아닌가, 그럼 이 약재들은 내가 바꿔가겠네.”

기문산은 도연과 이준을 번갈아가며 바라본 뒤 뻔뻔하게도 또 다시 눈 앞에 있는 세 개의 옥상자로 손을 뻗었다.

“장로님,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닌가요? 제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 때, 이준이 다시 노인의 손목을 붙들었다.

“젊은이가 아직 어려서 뭔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이 정도도 아주 많이 참아 주는거야. 자네가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물러서게.”

“알지도 못 하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누구든, 저는 이 약재를 꼭 손에 넣을 생각입니다.”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옥병 하나를 꺼내 조심스레 탁자 위에 올려놨다.

“영혼의 정수입니다. 그 효능에 대해선 아마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알고 계실 거니까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영혼의 정수는 비록 5레벨의 연금비약이긴 하지만, 그 가치를 따지면 6레벨 연금비약과 비해도 손색이 없는 최고급 연금비약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연금술사가 그런 물건을 턱하니 내놓자, 기 장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기문산의 실력으로 영혼의 정수를 제조한다 해도 그 성공률은 채 반에 미치지 못 했다. 게다가 흑황종에게 약재를 받아 연금비약을 만든다면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라 흑황종의 것이었고, 그는 단지 그에 대한 소정의 대가를 지금 받을 뿐이었다.

물론 그 역시 영혼의 정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작 한 알의 영혼의 정수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 이 세 가지 약재를 위해 그것을 내놓을 마음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이준이 꺼내 놓은 옥병을 건네받은 백발의 노인은 조심스레 그 안에 들어 있는 동그랗고도 윤기 나는 초록색 연금 비약을 손바닥에 놓고 유심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장로님,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백발노인의 진지한 모습을 지켜보던 도 방주도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건 확실히 영혼의 정수가 맞습니다……. 그리고 이 영혼의 정수의 품질은 이 늙은이가 봐 왔던 연금비약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아무리 6레벨 연금술사라도 특별한 화염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을만한 수준의 물건입니다.”

현 장로의 안목은 흑황성 내의 모든 연금술사들이 인정하는 것 이었으니, 그의 판단은 틀림이 없었다.

순간 모든 연금술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에게로 향했다.

장내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 앉았다. 긴 정적을 깬 것은 기문산의 호통 소리였다.

“이보게 현장로, 제대로 본 게 맞는거야?”

“내가 약을 제조하는 능력은 자네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연금비약을 보는 안목은 자네보다 훨씬 낫다네.”

현장로의 확신에 찬 한마디에 기문산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흑황성 뿐 아니라 흑각성 전체에서도 현장로만큼 안목이 높은 인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영혼의 정수로 이 세 가지 약재를 구하실 생각인가요?”

도연은 완전히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세 가지 약재는커녕 하나나 구할까 말까한 싸구려 바람의 파편에서 갑자기 영혼의 정수라니, 입이 귀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 세 가지 약재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하지만 도연이 막 머리를 끄덕이려는 순간, 옆에 있던 기문산이 다급히 탁자를 두드렸다.

“잠깐!”

“장로님, 저도 장로님의 명성은 알고 있지만, 규칙은 규칙 아닙니까.”

“영혼의 정수가 뭐 별거라고 그러는가? 이 늙은이를 뭘로 보고?”

노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옥병 하나를 꺼내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평소답지 않은 노인의 행동에 장내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귀를 의심했다.

기문산이 그 약재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일종의 오기였다. 흑황종의 수석 연금술사가 새파랗게 어린 연금술사에게 약재를 빼앗겼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약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는 체면이 더 중요했다.

한편 도 방주와 현 장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기문산의 행동에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기문산이 꺼낸 영혼의 정수를 유심히 보던 현장로의 노인의 양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떤가요?”

“영혼의 정수가 맞긴 하지만, 품질이 저 젊은이 것보다 훨씬 못 해요.”

“헛소리하지 말게. 6레벨 연금술사인 내가 직접 제조한 건데 어찌 저 애송이 것보다도 못 하다고 하는가?”

크게 화를 내는 기문산을 뒤로 한 채, 현장로는 오른손에 이준의 영혼의 정수를 들더니 반대쪽 손에 기문산의 영혼의 정수를 들어 보였다.

“여러분들은 다 흑황성 내에선 명성이 있는 연금술사들이니 연금비약을 감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계시겠지요. 허니 이 두 영혼의 정수 중 품질이 더 좋은 게 어느 것인지 의견을 말해 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노인의 손에 쏠렸다.

색으로 보나 뿜어져 나오는 냄새로 보나, 이준의 연금비약이 기문산의 연금비약보다 한 수 위였다.

영혼의 정수의 효능은 투왕 레벨의 강자들로 하여금 실력을 한 단계 오르게 하는 것이었지만, 실패할 확률 역시 적지 않았다. 따라서 영혼의 정수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품질’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투왕 레벨의 강자가 이준과 기문산이 제조한 영혼의 정수를 각각 복용했다면 이준의 영혼의 정수를 복용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만약 연금비약을 사야 한다면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이준이 제조한 연금비약을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괜히 돈을 아끼겠다고 품질이 딸리는 영혼의 정수를 샀다가는 애먼 돈만 날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이준의 영혼의 정수가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못 했다. 누구도 흑황종 수석 연금술사의 분노를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내에는 한동안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상황이 이리되니, 기문산 역시 자신의 연금비약이 저 새파란 애송이의 것만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이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자, 그럼 이 세 가지 약재는 우리 젊은 선생님의 소유가 됐습니다.”

결정이 내려지자, 도연의 얼굴에도 웃음 꽃이 피었다. 장사치 입장에서야 닭 대신 꿩 이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이준은 뒤에 있는 기문산의 차가운 시선 따위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세 가지 옥 상자를 옮겨 받아 자신의 저장반지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뜨거운 기운이 날아들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 이었지만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아챈 이준은 곧바로 온 몸의 기운을 모아 뜨거운 염력을 뿜어냈다.

펑!

곧이어 무거운 굉음이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파문이 일었고, 당황한 사람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투황?”

공격을 막아 낸 이준은 한껏 살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기문산을 노려봤다.

“허허, 젊은 친구가 투황 강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군. 오늘 이 늙은이가 여러 모로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상대에게서 쏟아지는 살벌한 기운에 기문산은 어색하게 웃으며 뒷걸음질을 쳐댔다.

“설마 제가 흑황종의 수석 연금술사인 장로님에게 손을 쓰기라도 하겠습니까.”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기문산의 얼굴에 미묘한 경련이 일어났다.

단 한 번의 공방이었지만, 상대의 실력이 자기만 못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아니꼬운 애송이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둘이 붙어 있었으니, 여기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절대로 상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허허……. 그래. 다음에 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세!”

말을 마친 기문산은 창 밖으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그 공격을 막아내기만 하고 반격을 하지 않은건 정말 현명한 행동이셨어요. 다들 저 인간을 좋아하진 않지만, 저 인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흑황종에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상황이 대충 정리된 듯 하자, 도 방주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네. 충고 고맙습니다. 헌데 방주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물어도 될까요?”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이라면 당연히 알려드리죠. 뭔데요?”

“혹시 보리수의 점액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보리수의 점액이요?”

이준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도 방주와 그 옆에 있던 백발의 노인은 잠시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가 곧바로 무언가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깊은 생각에 잠긴 두 사람을 보면서 이준의 가슴에는 한가닥 기대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돌려 아라를 바라보자, 그녀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피어올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늙은이가 아는 바로는 인적이 극히 드문 깊은 산 속에 아주 괴이하고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나무의 이름이 바로 보리나무입니다. 땅 속 깊이 박힌 그 나무의 뿌리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모아 아주 이상한 효능의 점액을 형성하는데, 그 액체가 바로 보리수의 점액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보리나무가 보리심을 형성하려면 적어도 천 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내야 하고, 바로 그 보리심이 분비해 낸 신비한 물건이 보리수의 점액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장로의 말에 이준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이는 두 사람이 구름제국을 떠난 이래로 처음으로 접한 보리수의 점액에 대한 소식이었다.

“만약 이 보리수의 점액을 복용하면 육체가 새로이 구성되고, 체질이 바뀐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보리심이야말로 천지의 영기를 품고 있는 진정한 보물로, 심장을 대신할 수 있으며, 어떤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고,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노인의 말투에는 갈수록 힘이 붙고 있었다.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물건이다보니, 연금술사라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인체의 심장을 대체할 수 있고, 영혼을 강하게 한다고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준은 미심쩍은 듯 현장로를 바라보며 그 말이 사실인지를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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