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393화 (393/818)

제393화. 성 안으로

이준의 물음에 오하늘의 얼굴에서 곧바로 웃음기가 가셨다.

“마염곡은 흑각성의 유명한 거대 세력 중 하나야. 생겨난 지는 얼마 안 된 세력이지. 그리고 얼마 전에 이씨 가문과 충돌이 있었어.”

“무슨 일인데?”

이씨 가문이 언급되자, 이준의 얼굴에 곧바로 살기가 돌았다.

“이씨 가문이 너무 빨리 발전한 탓이지. 지금 이씨 가문은 흑각성에서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고 있거든. 그게 문제였어. 얼마 전부터 마염곡에서 여러 강자들을 내보내 이씨 가문을 공격했지. 이씨 가문은 거의 매번 졌고. 뒤에 가서는 가람 아카데미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마염곡의 침공을 막아내고 몇몇 강자들을 죽였어. 그랬더니 곧바로 마염곡놈들이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습격하기 시작했어. 벌써 수 십명의 학생이 놈들 손에 목숨을 잃었어. 덕분에 이제는 가람 아카데미도 마염곡과 전쟁을 선언한 상태야.”

오하늘은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람 아카데미에서 전쟁을 선포한지 얼마 안되서 마염곡이 다른 세력과 연합해 가람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사냥하기 시작했어. 네가 아니었다면 오늘 이 아이들도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을거야.”

“마염곡이 그렇게 대단해? 가람 아카데미에도 쟁쟁한 투사들이 많잖아.”

잠자코 오하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렇지…….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전력인 가람 아카데미의 수호자들은 아카데미의 존폐 여부가 달린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않으니까. 한샘이 본원을 공격하던 날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잖아.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야.”

“그럼 서천우 대장로님은? 설마 상대에게 투종 강자가 있다는거야?”

이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서찬우 장로는 명백한 투종 강자였다. 그의 힘으로도 해결 못할 정도의 세력이라면 그쪽에도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있다는 의미였다.

“응, 마염곡의 곡주도 투종 강자야. 하지만 꽤 오랫동안 흑각성 주위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거든. 덕분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조차 몰라. 흑각성의 검은 명단에도 별 관심이 없을 정도니까.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김씨 형제조차 한 수 접어주는 실력자라더군.”

이어지는 오하늘의 설명에 이준은 그 사이 흑각성에 한샘을 능가하는 새로운 강자들이 생겨났음을 직감했다.

“2년 사이에 또 새로운 강자들이 잔뜩 나타난 모양이군…….”

그 때, 이옥이 다가와 이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보다, 너는 왜 갑자기 흑각성에 온거야? 이씨 가문이 마염곡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대장로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 그리고 본원 천계의 탑에 있던 구름 불꽃도 다시 충전해야 하지 않아?”

“어이구, 기억은 하고 있구나?”

이옥의 반응에 이준은 민망한 듯 뒷통수를 긁적였다.

“자자, 됐어.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준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 어찌됐든 대장로님을 뵈러 가는 거면 우리랑 같이 가자.”

이옥의 핀잔에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오하늘이 끼어들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에 이준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흑황성에서 경매를 진행한대서 그 곳부터 들러야 할 것 같아. 약재도 좀 필요하고……. 혹시 그 곳에서 필요한걸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지.”

“흑황성 경매? 나도 들어본 적 있어. 게다가 올해는 역대급 규모로 진행한다더군. 조심해. 거긴 흑각성의 강자들이 모두 모일테니까. 게다가 마염곡에서도 참가한다고 들었어. 이씨 가문과 관계가 좋지 않으니 네가 이씨 가문의 수장이라는걸 알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거야.”

오하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걱정할 거 없어. 그리고 이번 기회에 마염곡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나을지도 몰라. 어차피 전쟁이 벌어졌다면 상대의 실력 정도는 확인해둬야지.”

“그럼 마음대로 해. 네 기운이 안 읽히는걸 보니 투종 강자를 만나서 싸우진 못해도, 도망은 칠 수 있을 것 같네.”

말을 마친 오하늘은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자. 내가 같이 갈 수 있는데 까지는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중에 경매가 끝나면 다시 아카데미 쪽으로 돌아갈게.”

“그래 주면 고맙지. 전방 성만 가도 훨씬 안전할 거야.”

오하늘은 흔쾌히 이준의 제안에 응했다. 이준이 자신들을 바래다 준다는 말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의 얼굴에도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화가 마무리되자, 오하늘은 조금도 꾸물대지 않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고, 그의 뒤로 수많은 제자들이 뒤따랐다.

* * *

산골짜기를 나와 두 시간 정도 이동하자, 높은 산맥 사이로 서서히 성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준은 그 곳에서 오하늘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흑황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 오하늘 역시 흑황성의 대형 경매에 관심이 많았지만 흑황성은 더럽고 혼잡하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함께 그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학생들을 데리고 한시라도 빨리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오하늘과 헤어진 이준 일행은 쉬지 않고 날아 하루만에 흑황성 인근에 도착했다.

흑황성과 가까워지자 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아마도 모두 흑황성의 경매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인 듯했다.

흑황성 같은 혼란한 지역에 사람이 많다는 것은, 싸움이 잦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니, 곳곳에서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졌다. 아라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싸움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람과 이준만큼이나 익숙해졌다.

그리고 황혼이 내려앉을 무렵이 되자, 거대한 성의 윤곽이 점차 세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흑황성은 그 이름에 걸맞게 먹구름 같은 새까만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 햇빛이 쏟아지며 거대한 검은 성벽이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모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흑황성의 성벽은 굉장히 보기 드문 흑경석(黑鏡石)이라는 돌로 만들어져 어지간한 공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벽으로 세우기에 딱 좋은 재료지만, 그만큼 귀하고 비쌌으니, 전체가 흑경석으로 만들어진 성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역시 재력가라 이건가…….”

감탄사를 내뱉던 이준은 천천히 성벽에서 시선을 돌려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흑각성의 무법자들을 바라봤다. 저마다 살기를 내뿜어대는 무법자들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다.

이준은 두리번거리는 보람을 옆구리로 끌어당긴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성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정말로 얌전히 있어야 해. 귀한 약재가 있다고 아무 것에나 손대지 말고. 절대로 사고 치면 안돼. 알겠지?”

이준의 진지한 표정에 보람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아라 역시 천천히 이준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내리막길을 걸어 한참을 내려가자, 커다란 성문이 눈 앞에 펼쳐졌다. 성문 밖에는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중 한 곳에는 옷을 훌렁 벗은 채 상처투성이인 몸을 드러낸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오, 저 여자 엄청 예쁜데?”

“큭큭. 어린 애도 훌륭하네, 오밀조밀한 게 딱 내 스타일이야.”

아라와 보람이 성문 앞에 나타나자 사내들은 곧바로 둘에게 관심을 보이며 노골적인 눈빛을 보냈다.

세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사내들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욕설과 음담패설을 뱉어댔다.

하지만 아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화가 나 씩씩대는 보람의 얼굴을 감싸며 이준을 쳐다봤다.

“가자.”

그 순간, 이준의 입 꼬리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아라 또한 고개를 돌려 사내 무리를 보더니 씨익 웃음을 짓고는 보람을 끌고 성문으로 걸어갔다.

“허……!”

이준의 태도에 모여 있던 남자들은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야!”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상대의 태도에 사내들 중 서넛이 욕설을 내뱉으며 이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순간, 기묘한 폭음과 함께 서너 명의 사내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순간에 새까만 잿더미가 되어버린 사내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기이하고도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 험악한 흑각성의 무법자들은 모두 사신이라도 본 것마냥 이준을 피해 슬금슬금 자리를 떳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이준은 조용히 아라와 보람을 데리고 커다란 성문 곁에 있는 회색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곁에 있는 커다란 검은 문과는 달리, 회색 문 쪽에는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자체가 거의 없었다.

이준이 아라와 보라를 이끌고 회색 문 앞에 도착하자, 십 여 명 남짓의 완전 무장한 사내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그들을 바라봤다. 문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에게서는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 문은 흑황종에서 흑각성의 유명 강자들을 위해 특별히 설치한 문으로, 최소한 투황 강자가 아니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준 일행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회색 문으로 걸어가자, 회색 문 앞에 서있던 한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보게 친구들, 거긴 투황 강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야.”

“그쪽은 5성 투왕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제가 투황 강자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별하시죠?”

이준은 노인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고, 이에 노인의 표정이 곧장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그 때, 누군가 그의 곁으로 달려와 귓속말을 건넸다. 무언가 급히 보고를 하는 듯했다. 그러자 노인은 놀란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흠, 혹시 자네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 어느 세력 손님이지?”

“임현이고 무소속입니다.”

“아아, 임현 선생. 경매장에 온 것임이 분명하겠지?”

이준의 이름을 확인한 노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네. 이제 들어갈 수 있겠죠?”

“허허, 물론이네…….”

노란 도복을 입은 노인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뒤 저장 반지 속에서 청색 휘장 하나를 꺼내 이준에게 건넸다.

“임현 선생, 흑황성에는 사람이 득실거려 묵을 곳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걸세. 우리 흑황종에서 흑각성 강자들을 위해 특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준비했으니 성 중심의 흑황각으로 오게나.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걸세.”

이준은 노인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아라와 보람을 데리고 회색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라져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용히 사람 하나를 불러 명을 내렸다.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닐 거야. 혹시나 무슨 마찰이 일어날지도 몰라……. 사람을 붙여 감시하게.”

“네!”

명령을 받아 든 사람이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자, 노인은 담뱃대를 만지작거리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임현이라? 흑각성에서 이렇게 어린 투황은 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참 신비로운 녀석이군. 아까 죽은 늑대파의 녀석들이 곧 저 자의 실력을 확인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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