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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91화 (391/818)

제391화. 독수리 발톱

각오를 굳힌 오하늘이 싸늘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염골의 네 장로가 오면 아예 기회조차 없을 거예요. 네 선생님께서 저와 목숨을 걸고 녀석들을 막아 봅시다. 이옥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앞만 보고 달리세요. 절대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래.”

오하늘의 말에 이옥은 붉은 입술을 깨물며 끄덕였다. 그의 실력으로 투왕 두 명을 막아선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의미였다.

……

마침내 오하늘이 등 뒤의 걸린 묵직한 장검을 뽑아 드는 순간, 그의 몸에서 선연한 핏빛 염력이 솟구쳤다.

순간 붉은 색 선 하나가 어두운 골짜기를 가로지르며 입구 쪽으로 돌진했고, 학생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하하. 어디 그 기세가 얼마나 가나 두고 보지! 쳐라!”

회색 망토를 걸친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자, 휑했던 산골짜기 위에서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괴한들이 벌떼처럼 나타나 날카로운 무기를 든 채 오하늘 쪽을 향해 내달렸다.

“죽이자!”

곧이어 오하늘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고, 이내 붉은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몇 명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선혈이 사방으로 솟구치자, 마염곡 투사들의 공세가 잠시 주춤하더니 천천히 오하늘을 비롯한 가람 아카데미 사람들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챙! 챙!

순식간에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검은 옷을 입은 마염곡의 투사들이 한데 엉겨 붙으며 여기저기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측 모두 눈이 완전히 뒤집힌 상태였다. 학생들은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과연 각지에서 모인 최고의 인재들답게 침착하게 상대의 공세를 막아냈다.

오하늘을 선두로 한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산골짜기 입구와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공중에서 두 갈래의 염력이 폭발하며 오하늘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오하늘은 전력을 다해 염력을 끌어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챙!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불똥이 튀며 사방으로 파문이 일었다.

오하늘과 검을 맞댄 두 명의 투왕은 빠르게 뒤로 몸을 물렸고, 오하늘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을 노려보며 살기로 눈을 번뜩였다. 단 한번 맞부딪혔을 뿐인데, 벌써부터 손아귀가 저렸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는 기합 소리를 지르며 몸 속 염력을 최고 수준으로 폭발시켰다. 이에 따라 붉은 염력이 핏빛 안개처럼 그들 주위를 뒤덮으며 온 산골짜기에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오하늘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두 투왕 강자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 앉았다.

“역시 혈검이란 이름이 붙을 만도 하군. 이 정도로 짙은 피의 염력은 혈종 놈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그 때, 산골짜기 한구석에서 돌연 낯선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마염골 투왕들의 얼굴빛이 순간적으로 환해졌다. 반면, 오하늘을 비롯한 가람 아카데미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완전히 핏기가 가시고 말았다.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온 곳에서는 청색 도복을 걸친 노인이 하나 서 있었다.

청색 옷을 입은 노인이 허공에서 염력 날개를 천천히 펄럭이자, 주위의 공기가 물결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을 가진 노인은 마치 겨울나무처럼 바짝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매 사이로 드러난 양 손만은 이상할 정도로 커다랬고, 손가락 역시 기이하게 길었다. 그의 손톱은 빛을 받아 칼날처럼 반짝이며 섬뜩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노인의 등장에 마염곡의 투왕 강자들은 재빨리 뒤로 날아가 무릎을 꿇고 공손한 태도로 머리를 조아렸다.

“넷째 장로를 뵙습니다!”

오하늘은 심각한 얼굴로 공중에 부양 중인 노인을 응시했다. 그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오하늘은 그 노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마염곡 넷째 장로의 이름은 석진으로, 흑각성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6성 투황 강자였다. 그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바로 ‘독수리 발톱’이라고 불리우는 특유의 근접 공격술이었다.

이씨 가문과 마염곡이 대치할 때 수 많은 이씨 가문의 강자들이 그에 의해 큰 부상을 당했었다.

이옥 역시 그 노인을 잘 알고 있었으니, 표정이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잠시 후,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온 노인이 커다란 바위 위에 선 채 오하늘 일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투왕 둘이서 저런 애송이 하나 해결 못하다니.”

노인의 한 마디에 두 명의 투왕은 몸을 벌벌 떨며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닙니다 넷째 장로님!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넷째 장로님이 오시기까지 기다린 것 뿐입니다.”

“큭큭……. 혹시 몰라 기다리기는. 같은 투왕이라도 저놈의 염력 수련법과 무투기는 확실히 ‘혈검’이란 별명이 붙을만한 것이다. 거기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놈이니 당할까봐 겁을 먹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의 변명에 석진은 가소롭다는 듯 킥킥대며 웃음을 터뜨렸고, 이에 두 투왕은 민망한 듯 고개를 떨구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마염곡의 두 투왕이 침묵하자, 석진의 시선이 곧장 오하늘에게로 향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뛰어나다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 생각 이상이야. 자네 같은 자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온다면 여러 세력들에게 적잖은 위협이 되겠군.”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검을 붙잡고 있는 오하늘의 모습에 석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끌끌…… 배짱도 보통이 아니야. 확실히 물건이군. 그래서, 끝까지 해볼 생각인가?”

“네 놈들에게 항복하느니 이 자리에서 죽는 게 낫지.”

오하늘의 짤막하고도 단호한 답변에 석진의 입가에는 더욱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표정을 보고 항복을 할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봤다. 그럼 어디 매번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는 혈검의 실력을 한번 확인해볼까?”

석진은 상대가 그런 답변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상대가 전투태세를 갖추자, 오하늘은 자신의 붉은 장검을 움켜쥔 채 번개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오하늘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석진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붉은 검이 코앞까지 다가오길 기다린 뒤 거대한 손을 굽혀 기이할 정도로 커다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다섯 손가락을 굽히자, 웅장한 염력이 솟구치며 붉은 검이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고정 되어 버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너무나 손쉽게 가로 막히자, 오하늘의 안색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이를 갈며 붉은 검에 더욱 힘을 불어넣어 보았지만, 집게발 같은 발톱에 붙잡힌 붉은 장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 실력으로 내 앞에서 허세를 떤 거냐?”

바르르 떠는 오하늘의 모습에 석진의 입가에는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 곧이어 그가 손가락을 튕겨 에너지를 폭발시키자,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오하늘의 몸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오하늘의 발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기다란 흔적을 남겼다. 붉은 검을 쥔 손은 쉬지 않고 떨렸고, 새빨간 피가 검을 타고 흐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장로님!”

한 합 만에 오하늘이 피를 흘리며 뒤로 나가 떨어지자, 가람 아카데미 학생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괜찮아?”

이옥이 황급히 오하늘의 등 뒤로 날아가 상대의 염력을 밀어내며 급박하게 물었다. 현재 가람 아카데미의 투사들 중 가장 강한 자는 오하늘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들 저항다운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아직은요.”

오하늘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염력을 폭발시키자, 그의 얼굴이 한 순간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새빨간 피가 붉은 안개가 되어 하늘을 뒤덮더니 빨간 연기에 둘러싸인 오하늘의 몸에서 눈을 찌르는 붉은 섬광이 폭발했다.

붉은 안개의 출현과 함께 오하늘의 몸에서 더욱 강렬한 염력이 폭발하자, 석진의 입가에 또 다시 묘한 미소가 걸렸다.

“흠, 잡기술이 많군. 그렇지만 그딴 잡기술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석진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기다란 손톱을 구부렸고, 이내 짙은 백색의 염력이 그의 손바닥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감았다.

“투황의 힘을 보여주마!”

염력이 석진의 몸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그는 냉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굽혀 오하늘과 함께 날아오는 붉은 검을 잡아내더니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혈검이 오하늘의 손을 벗어나 낭떠러지 저 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곧이어 석진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오하늘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이에 중상을 입은 오하늘은 새빨간 피를 뿜어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오하늘이 부상을 당하자, 이옥을 비롯한 이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교사 몇 명이 다급히 날아갔지만 오하늘의 곁에 가기도 전에 강력한 에너지가 날아와 감히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뒤로 몸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석진은 냉담한 시선으로 어떻게든 일어나려 발버둥치는 오하늘을 내려다 보며 오하늘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이옥을 비롯한 가람 아카데미의 다른 사람들은 석진의 움직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 역시 석진을 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확연한 실력 차이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끌끌, 어쩌면 네가 몇 년만 더 수련을 했어도 날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를텐데 말이야.”

그가 손을 뻗자, 붉은 장검이 순식간에 석진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기 무기에 죽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것도 없겠지?”

석진은 혈검을 휙휙 흔들며 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검을 들어 오하늘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주변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린 채 그 장면을 응시하고 있던 그때, 돌연 청록색의 염력이 날아와 석진의 손에 들린 혈검을 때렸다.

캉!

정체불명의 염력에 얻어맞은 혈검은 그대로 석진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죽음을 각오했던 오하늘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염력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 순간, 커다란 검은 송곳 하나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석진의 발치에 박혔다.

익숙한 검은 송곳의 모습에 오하늘은 방금 전 날아온 청록색의 염력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이준!”

“하하하하!”

너무나 익숙한 검은 송곳의 등장에 오하늘은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오하늘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단 한사람, 이옥만큼은 오하늘과 마찬가지로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하. 오하늘, 정말 오랜만이군. 상황을 보니 내가 아주 적절한 때에 찾아온 모양인데?”

곧이어 밝은 웃음 소리와 함께 젊은 사내 하내가 천천히 허공을 가르며 골짜기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준……. 정말 이준이야 하하!”

낯익은 얼굴의 등장에 긴장이 풀린 이옥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옥 선생님, 저 친구는 누구죠?”

마치 상황이 다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안도하는 이옥의 모습에 젊은 교사들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곁에 모여들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가람 아카데미의 초급 교사였고,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 때 한 소녀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준? 혹시 그 이준 맞아요? 비석의 창립자요!”

소녀의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과 교사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홀연히 나타난 사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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