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3화. 바다의 힘
두 투황이 보람에게 가로막혀 절절 매고 있는 사이, 전산의 등 뒤로 사신과도 같은 불길한 검은 형체가 달려들었다.
“안 돼!”
살기등등한 이준의 기세에 전산은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태초의 힘!”
순간, 이준의 주먹에서 묵직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단숨에 상대의 등허리 부분을 가격했다.
쾅!!
곧이어 거대한 에너지가 폭발하며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전산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허공 위에 전산의 피가 흩뿌려지자, 독종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전산의 등 뒤의 달려있던 염력 날개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의 몸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전산의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사라지자 이준의 입가에서 한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가주님!”
아래로 추락하는 전산의 모습을 보던 전갈파 강자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저 새끼를 죽여야 돼! 복수하자!”
곧이어 분노에 찬 시선들이 이준을 향해 쏟아졌다.
“하하. 미안한데 너희 상대는 우리다!”
그 때, 독종의 강자들이 일사분란하게 날아와 이준과 전갈문 강자들 사이를 막아섰다.
“임현님, 들어가서 좀 쉬고 계시죠. 앞으로는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독종 강자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이준에게 말했다.
이준은 굳이 거절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장반지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세 명의 투황 강자와 연달아 전투를 치른 탓에 그 역시 염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몸속을 채워나가는 순도 높은 에너지를 느끼며 메두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준은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며 공중에 떠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켜봤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두 사람이 뒤엉켜 날아다니며 살벌한 기세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두 투종 강자의 무시무시한 염력에 의해 공간이 일그러지는 광경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가까이 가지 못 하고 멀찍이 떨어져 넋을 놓고 구경할 뿐 이었다.
“채린 언니 상황은 어때?”
그 때, 이준의 곁으로 조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보람이었다. 그녀 역시 동그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다른 강자들과 마찬가지로 먼발치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 파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의 실력이 비슷해. 아마 결과가 빨리 나오진 않을 것 같아.”
메두사와 천영호의 싸움을 바라보던 이준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의 말을 듣던 보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회보랏빛 연기가 가득한 염력 감옥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준에 의해 전갈문이 세 명이나 되는 투황을 잃게 되면서 두 세력간의 전투는 이미 상당히 독종 쪽으로 전세가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싸움의 승패는 사실상 투종간의 전투에 달려 있었다. 메두사와 아라가 패배한다면, 천영호와 전필환이 독종의 투황과 투왕들을 쓸어버리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 상황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었다.
챙!
또 다시 장검과 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지며 허공에 파도같은 에너지 파동이 일었다.
메두사는 손에 잡고 있던 장검을 다시 한 번 천영호의 두 팔을 향해 휘둘렀다.
장검으로 공격을 마친 메두사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천영호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장검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지만, 천영호의 몸을 둘러싼 안개가 격렬하게 뒤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의 공격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 듯 했다.
“네 년……. 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구름 제국에 이런 강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메두사가 자신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또 다시 장검을 치켜들자, 천영호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내려 앉았다.
‘빌어먹을, 전갈문의 투황 놈들이 이렇게나 약할 줄이야. 상황이 너무 나쁘군.’
그는 불안한 얼굴로 전필환과 이준 쪽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행여나 전갈문의 강자들을 물리친 독종의 강자들이 메두사를 돕는다면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 자명했다.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전필환이 아라에게 패배하고, 투종인 아라가 메두사와 함께 자신을 협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 지겠군.’
천영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뻗자, 그의 손 끝에서 검은 연기 한 덩어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못내 아쉽다는 듯 잠시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검은 색의 연기 덩어리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격렬하게 뒤흔들리며 영혼체 하나가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곧이어 천영호의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그 작은 영혼체를 감쌌다. 그 순간, 영혼체가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흥.”
발버둥치는 영혼을 바라보던 천영호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입을 벌려 그것을 자신의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영혼체를 삼키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연기가 더욱 짙어지며 체내의 염력이 폭등했다.
영혼체를 삼킨 천영호는 또 다시 검은 연기에서 영혼체를 하나 꺼내 집어삼켰다. 그리고 하나, 또 하나……. 그가 영혼체를 흡수할 때 마다 검은 연기가 점점 더 크게 자라나며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점점 더 강해졌다.
“채린! 움직여! 절대 영혼을 삼키게 하면 안돼!”
그 때, 천영호의 행동을 지켜보던 이준의 머릿속에 문득 운산의 영혼을 흡수한 도영호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가 더 이상 영혼을 삼키게 내버려두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천영호가 삼킨 영혼체는 운산의 영혼만큼 강하지 않았지만, 대신 영혼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천영호의 실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준이 소리치자, 메두사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며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장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녀의 장검에서 뿜어져 나온 무지개 빛 염력이 검은 안개에 맞부딪히는 순간, 검은 연기 덩어리 안에서 무수히 많은 영혼체들이 쏟아져나와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게 전부 영혼체라니…….”
이준은 족히 백 개는 넘을 것 같은 영혼체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내 영혼주머니를 파괴하다니!”
도망가는 영혼체를 보며 천영호의 눈이 분노로 붉게 달아 올랐다. 그 영혼체는 그의 일 년치 수확이었다. 만일 이번에 돌아가 위에서 요구한만큼의 영혼체를 바치지 못 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곧이어 새까만 쇠사슬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메두사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천영호의 분노에 찬 일격에 메두사는 황급히 몸을 피하며 염력을 내뿜었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뱀 모양의 장검에서 더욱 찬란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다음 순간, 시커먼 쇠사슬과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장검이 뒤엉키며 날카로운 금속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네 이년! 감히! 네 년을 죽여 잃은 영혼을 보충해야겠다!”
갑자기 메두사가 수세에 몰리자, 전장 밖에 있던 보람이 초조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봤다.
“가서 채린언니를 도울래.”
하지만 이준은 그녀를 붙잡은 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 상황에서는 되려 채린에게 짐이 될지도 몰라. 일단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도와줘.”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복잡한 인을 맺기 시작했고, 인을 맺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하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챙! 챙! 챙!
하늘 위에서는 휘황찬란한 무지갯빛과 검은 사슬이 교차하며 쉴 새 없이 거대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영혼체를 흡수하기 전과 달리, 지금은 메두사가 완전히 수세에 몰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천영호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또 다시 사슬을 내던지자, 메두사의 수중에 들린 검에서 수 십 갈래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 * *
한편, 전장 밖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준은 창백한 얼굴로 계속해서 인을 맺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던 보람은 이준의 안색을 보며 더욱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 강력한 무투기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이준 역시 무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다의 힘’을 시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바로 투황 계급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이제 막 투황이 되었으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간신히 바다의 힘을 사용할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그간 고급 무투기와 ‘불개’, ‘천지의 불꽃’이나 ‘화련’, ‘천계의 불꽃’ 등을 활용해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한 상대들을 물리쳐 왔지만, 염력의 양이나 염력 통제 능력만 놓고 따지자면 그의 실력은 여전히 1성 투황에 불과했다.
‘제발! 이번엔 절대 실수해선 안 돼!’
이준은 이를 악문 채 쉴 새 없이 인을 맺어나갔다. 그간 사용해 왔던 무투기들과는 달리 ‘바다의 힘’은 염력의 움직임과 인의 변화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무투기였다.
게다가 바다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인은 다른 무투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 온 정신을 집중해도 간신히 성공할까 말까한 것이었다.
하지만 메두사가 수세에 몰리며 마음이 초조해지자, 정신이 흐트러지며 몸 속의 염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바다의 힘을 시전하기는커녕 통제를 잃은 염력이 체내 곳곳에서 날뛰며 되려 본인의 몸만 상할지도 몰랐다.
“후우…….”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해 체내에서 어지러이 날뛰는 염력을 갈무리 했다.
‘안으로!’
이준이 속으로 소리치자, 통제를 잃고 밖으로 튀어 나가려던 염력이 다시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염력을 통제하는데 성공한 이준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인을 만드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엄지를 안쪽으로 집어넣고 나머지 손가락을 엇갈리게 교차시킨 뒤 검지 손가락을 마주대자, 마침내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준의 몸 속 염력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손바닥에서 찬란한 녹색 빛이 발산되더니 기이한 청록색의 에너지 결정이 그의 손바닥 위로 모여들었다.
갑자기 흘러나오는 강력한 에너지에 전투 중이던 두 투종 강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채린! 비켜!”
이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메두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바다의 힘!”
그와 거의 동시에 이준의 손바닥 위에 형성된 녹색의 수정체가 그의 손을 벗어나 천영호를 향해 발사 됐다.
“바, 바다의 힘?! 말도 안 돼! 네 놈이 어떻게 제왕의 권을!”
녹색의 수정체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에너지를 감지한 천영호가 황급히 검은 연기를 방출해 자신의 몸을 둘러싸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