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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72화 (372/818)

제372화. 행동

다음 순간 검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헤돈과 헤파스의 몸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투황 강자인 헤돈은 몇 걸음 정도 밀려나다 멈추는데 그쳤지만 헤파스는 수 십 걸음을 밀려난 뒤에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주위에 몰려든 뱀 인간들은 이준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잇지 못 했다.

며칠 전 대전쟁에서 뱀인간족의 강자들은 성 여러 곳으로 흩어져 다른 성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산 요새에서 일어난 싸움을 목격하지 못했다. 이는 헤돈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이준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쉭—

그 때, 초록색의 형상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번갯불처럼 빠르게 헤돈의 가슴을 가격했고, 이에 헤돈은 순간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헤돈을 공격한 초록색 형상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자세히 보니 녹색 의 나뭇가지였다.

이준은 멍한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뭇가지 하나로 투황 강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하나 메두사 뿐 이었다.

“헤돈, 헤파스!”

얼음 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헤돈과 헤파스는 급격히 창백해진 안색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준은 우리 종족의 귀한 손님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유 없이 그를 괴롭힌다면 나에 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메두사의 한 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뱀인간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인간이 뱀인간들의 장로를 만나고 여왕의 비호를 받는 단 말인가.

메두사의 분노 앞에 뱀인간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양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메두사는 목소리만 낼 뿐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어휴, 진짜… 멍청한 놈……”

이준은 한숨을 푹 쉬며 자신의 머리를 연신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분명 메두사는 자기 입으로 혼자 칠색 이무기를 키우겠다고 했고 뱀인간들 역시 그것을 원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매정하게 돌아선 것이 잘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 해야겠다…”

이준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검은 산 요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불의 연맹이 있는 검은 산 요새로 돌아온 뒤에는 이정, 동해를 비롯한 연맹의 장로들과 회의가 진행됐다. 낙안성과 모란종의 세 장로가 부상을 회복하기 전에 그들을 쳐야했으니 한시가 급했다.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고 ‘암살 작전’의 결행일은 다음 날로 정해졌다.

* * *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이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뱀인간족의 대장로가 준 ‘이무기의 정수’의 조합표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무기의 정수’의 처방전은 굉장히 독특했는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끔 모체 안에서 약효를 발휘하는 식이었다. 에너지가 제대로 공급만 된다면 아이가 태어나게 됐을 때 훨씬 더 강한 신체와 잠재력을 갖고 태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많은 무투기를 비교적 쉽게 터득할 수 있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대를 이어 그 강함을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약로가 남겨 놓고 간 물건 중에도 뱀인간들의 7레벨 연금비약과 비슷한 처방전이 두 가지 정도 있었지만 이 물건만큼 효과가 뛰어난 것은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 강한 연금비약이다 보니 보통의 태아들은 약효를 이기지 못 하고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결국 오로지 메두사의 핏줄에게만 유효한 실로 뱀인간들을 위한 연금비약이었다.

“7레벨……”

이준은 두루마리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람의 체질을 변하게 만드는 연금비약은 제조 난이도가 상당하며, 실패 확률도 몹시 높다.

더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레벨의 연금비약이 솥에서 나왔을 때 천지의 에너지가 크게 변화하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 이었다. 게다가 그 폭발의 위력은 투황 강자라 하더라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7레벨 연금술사라 해도 이런 폭발성 연금비약의 제조를 극도로 꺼려할 수 밖에 없었다.

‘후…뱀인간들이 이 연금비약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군. 이래서야 7레벨 연금술사를 찾았다 하더라도 절대로 연금비약을 얻어내지 못 하겠어.’

게다가 필요한 약재를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2년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 정도였다.

생각을 마친 그는 손바닥을 움직여 저장반지에서부터 또 하나의 빨간색 족자를 꺼내 들었다. 흑각성의 깊은 산에서 우연히 얻게 된 ‘초월의 비약’의 처방전이었다.

처방전을 바라보던 이준의 입가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불의 연맹이 발 빠르게 발전하는 중인 것은 사실이나 독종이나 금안종, 모란종에 비하면 아직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초월의 비약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초월의 비약은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이었으니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정과 동해를 비롯한 연맹의 장로들과 상의한 결과, 불의 연맹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충성심 있는 병사를 선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생의 비약을 먹는다 해도 최대 13년 내에 투황이 되지 못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가한제국의 명운이 걸려있는 상황이니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합표는 큰형에게 주고 몰래 연금술사들을 시켜 초월의 비약을 만드는 수밖에 없겠군. 하아…”

생각을 마친 이준은 착잡한 표정으로 조합표를 곁에 내려놓은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단 급한 일들이 대충 마무리 되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낙안성과 모란종의 세 장로를 상대하며 소모한 염력을 회복해야 했다.

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속에 염력이 차오르고 영혼의 힘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역시 전투를 해야 빨리 성장을 한다니까.”

그렇게 눈을 감고 수련에 매진하기를 꼬박 하룻밤, 어느새 창문 사이로 눈부신 태양빛이 뚫고 들어와 그의 얼굴 위로 내리쬐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군.”

* * *

검은 산 요새와 멀지 않은 작은 산봉우리 위에서는 이준, 이정 그리고 동해 등이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메두사는 돌아오지 않았나?”

동해가 미간을 찌푸린 채 검은 산 요새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을 보내 연락을 해뒀으니, 이제 곧 뱀 인간들 중에 강한 사람들을 추려서 이쪽으로 올 거예요.”

그 때, 멀리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대규모의 인파가 그들 쪽으로 날아왔다.

메두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동해를 비롯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암살 작전에 그녀가 빠진다면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땅에 내려선 메두사는 이준을 한번 힐끗 바라보고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비가 다 됐다면 떠나지.”

“이번 암살은 원래 세웠던 계획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셋째와 메두사 여왕이 성에 잠입해 낙안성과 모란종의 세 장로를 죽이고, 만일 들키게 되거나 암살이 실패한다면 바로 밖에 잠복해 있던 동해 장로님 쪽 사람들이 투입될 겁니다. 만일 실패한다면 무리하지 말고 곧바로 후퇴해야 합니다.”

이정의 설명에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다면 저는 검은 산 요새에 남아 있으면서 상황을 살피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이정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고, 잠시 후 이준을 필두로 메두사와 다른 강자들이 연달아 염력 날개를 펼쳤다.

“우리도 가지. 기억해라. 내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너희는 무조건 동해라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내가 없는 동안은 그가 나를 대신해 너희를 지휘할 것이다. 명령에 불복한다면 돌아와서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메두사가 자신을 따라온 뱀 인간족의 강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자, 메두사는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공중으로 떠올라 순식간에 이준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등 뒤로는 뱀 인간족의 강자들이 재빨리 쫓아오고 있었다.

삼대 제국의 연합군은 아라의 명령으로 일시 후퇴했지만, 완전히 물러선 것은 아니었으며, 구름제국과 가한제국의 접경 부분에 위치한 변두리 성에 모여 반격할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 * *

삼국연합군이 머물고 있는 곳은 검은 산 요새와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한 시간 가량을 날아가자 성과 가까운 산이 하나 나타났다.

이준 일행은 강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면 적에게 발각될 것을 고려해 아직 목적지까지 제법 거리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숲 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적진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들은 곧바로 적을 치지 않고 조용히 대기하며 상황을 살폈다.

이준은 사람들에게 기척을 숨길 것을 명한 뒤 작은 산의 나무 꼭대기에 올라 적들이 주둔하고 있는 성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했다.

성벽 위로는 병사들이 부지런히 순찰을 돌고 있었고, 투왕 계급 강자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아래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 옥조각을 부수면 구름 제국의 병사들이야 철수하겠지만, 금안종이나 모란종 놈들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 그 계집이 약속을 지킨다 해도 몰래 숨어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맞아. 하지만 처음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온 거니까, 이대로 돌아갈 순 없잖아.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움직이자. 우리 두 사람 실력이라면 저쪽 사람들도 눈치 채기 어려울 거야.”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저장 반지 속에서 아라가 준 회색 옥 조각을 꺼내 손으로 부순 뒤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일단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보자.”

잠시 후, 이준이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제 일은…미안했어.”

이준의 말을 들은 메두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흥, 됐다. 네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목소리만큼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이준의 사과가 나름대로 효과를 거둔 모양이었다.

이에 이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무기의 정수를 바로 만들어내기는 조금 힘들어. 그래도 2년 안에는 꼭 성공할 거야, 걱정 마.”

그 순간, 메두사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손을 휘둘러 무언가를 낚아챘다. 그녀의 백옥 같은 손에는 어느새 다리에 작은 편지가 묶여있는 새까만 박쥐 한 마리가 쥐어져 있었다.

잠시 후, 박쥐의 다리에 묶여 있는 편지를 확인한 메두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 독충 같은 계집애가 보낸 편지로군. 성이 그려진 지도야. 낙안성과 모란종 장로 놈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군.”

이어지는 메두사의 말에 이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적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암살에 성공할 확률이 배 이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낙안성은 성 북쪽에 있고 모란종 늙은이들은 서쪽에 있군. 찢어져서 움직여야겠어. 낙안성은 투종이니 내가 맡지. 모란종의 늙은이들이야 둘이서는 쭉정이나 다름없으니 네 놈이 맡아라.”

이준이 말없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메두사의 입가에도 아주 잠깐이지만 미소가 스쳤다.

“우선은 해가 지길 기다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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