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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66화 (366/818)

제366화. 최강자의 등장

세 장로 중 하나가 중상을 입고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메두사와 대결을 벌이던 낙안성의 목구멍에서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모란종의 장로 셋이서 투황 강자 하나를 못 이기다니!”

반면, 메두사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제 아무리 고고하고 콧대 높은 메두사라도 이준의 성장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준과 그녀의 실력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날에 상대가 자신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이제 네 놈을 죽여버리고 저 두 노인네를 치워버리면 되겠군.”

* * *

한편, 요새 밖에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달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모란종의 장로를 받아내고 있었다.

호랑이 머리 장로의 목숨을 거두지 못한 이준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남은 두 장로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비록 상대를 죽이지는 못 했지만, 저 정도의 부상이라면 단시간 내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두 장로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던 짐승 머리 모양의 염력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하자, 이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져갔다.

“한 놈을 잃어버렸으니 이제 그 ‘야수의 진’인지 뭔지 하는 비술도 쓸 수 없는건가?”

“흥, 조금 전 그 공격에 네 녀석도 꽤나 타격을 입은 것 같은데?“

이에 곰 머리의 장로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도 그 쪽을 처리할 힘 정도는 남아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이 정도 상처는 운산과의 대결에서 입었던 부상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이 없어도 우린 두 명이다. 곧 네 놈의 뼈를 산산조각 내서 가루를 만들어주마!”

사자머리 장로가 독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준은 한마디 대꾸조차 없이 체내의 염력을 뿜어냈다.

“키아악!”

그 때, 돌연 날카로운 매의 울음소리가 이준의 귓등을 때렸다.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새 모양의 마수 하나가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마수의 모습에 요새 위에 있던 강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못 한게 아니었나?”

허공에서 메아리치는 매의 울음소리에 이준의 맞은 편에 있던 모란의 두 장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큭큭, 지금 네 상태로 투종 강자를 한 명 더 상대할 수 있을까?”

곰 머리 장로의 입가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내려 앉아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매의 몸은 온통 어두운 파란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는 흉흉한 빛이 가득했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마수의 모습에 삼대 제국의 연합군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키아악!”

파란 마수가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 위에서 날갯짓을 해대자,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매의 머리 위에는 보라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소매에는 화려한 금색 자수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울긋불긋한 옷과 금색의 자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집중시키는 것은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이었다.

백발의 여인이 등장하자 순간 요새를 둘러싼 인원의 절반 가량이 황급히 앞으로 튀어나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종주님을 뵙습니다!”

메두사와 낙안성 역시 잠시 전투를 멈추고 뒤로 물러선 채 상황을 지켜봤다. 낙안성은 입가의 핏자국을 빠르게 닦아내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거 참 아쉽군요. 모란종의 장로가 당한 것은 뜻밖이었지만, 대세는 저희 쪽으로 기운 것 같습니다.”

메두사는 얼어 붙은 표정으로 낙안성 쪽으로 다가오는 백발의 여인을 노려봤다.

낙안성이 뒤로 빠지자, 이준 주위에 있던 모란종의 두 장로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거대한 매 근처로 달아났다.

곧이어 환호성이 울려 퍼지던 요새 위로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 앉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거대한 마수 위에 올라탄 백발의 여인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낙안성이나 세 장로가 나타났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표정이었다.

“젠장…부상을 입어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게 아니었나?”

동해가 파르르 떨며 간신히 입을 열자, 가철과 해길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의 표정 역시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공중에 있던 이준은 굳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는 두 장로를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려 거대한 매 위에 올라타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몸에서는 메두사 못지 않은 무시무시한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저 여자가 독종의 종주다.”

메두사의 한마디에 이준의 마음이 또 한번 무겁게 내려 앉았다. 오늘 그녀의 표정은 그 무시무시했던 운산을 상대할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저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어?”

“어렵겠지. 붙잡아 두는 게 고작이야. 목숨을 걸고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어.”

이어지는 메두사의 답변에 이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정적이 내려 앉은 성벽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잠시만 저 여자를 막아줘. 모란종의 세 장로는 이제 평범한 투황 둘이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낙안성을 맡을게.”

메두사는 잠시 망설이며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는 커녕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 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검은 산 요새를 내어준다면 가한제국의 운명도 그걸로 끝이었으니, 그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과 메두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거대한 매 위에 올라탄 여인이 낙안성과 모란종의 두 장로를 바라보며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실망스럽군요.”

그녀의 한마디에 낙안성과 모란의 두 장로 모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 세 장로가 투황 계급 녀석 하나도 못 잡고 ‘야수의 진’까지 깨져버려 그렇습니다.”

낙안성의 가시 돋친 말에 자존심이 상한 곰 머리의 노인이 노발대발하며 삿대질을 해댔다.

“낙 종주! 저 녀석은 보통 투황이 아니란 말이오! 아까 저 녀석이 사용했던 불꽃은 당신이라 해도 어쩌지 못 했을거요! 절대로 평범한 화염이 아니란 말이요!”

“흥, 그래봤자 겨우 투황 아닙니까! 서북지역 삼대 세력 중 하나라는 모란종의 장로들이 합심해서 투황 하나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된단 말입니까?”

“거 말이 심한 거 아니오?”

계속되는 낙안성의 독설에 모란종의 두 장로도 참지 못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야수의 진은 무슨…셋이 힘을 합치면 투종 강자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더니…”

“당신…!”

“끝났나요?”

그 때, 세 사람이 기 싸움을 펼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백발의 여인이 냉담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녀의 서늘한 표정에 세 사람은 연신 씩씩거리면서도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제 모란종의 두 장로는 부대 속에 들어가 싸우세요.”

백발의 여인이 덤덤한 표정으로 명을 내리자, 모란종의 두 장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야수의 진’이 깨진 이상 그들은 평범한 투황에 불과했으니, 이대로 메두사와 맞붙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두 노인이 날개를 펼쳐 지상으로 날아가자, 백발의 여인은 곁에 있던 낙안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메두사는 제가 맡죠. 저 투황 놈을 처리해주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메두사와 이준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고는 못 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 녀석이 여기 있지?”

여인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지자, 이를 의아하게 여긴 낙안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종주, 왜 그러십니까?”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이준을 바라보던 여인은 낙안성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듯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녀석을 잘 처리해주세요.”

“걱정 마시죠. 저는 모란종의 장로들과는 다르니까요. 단숨에 저놈을 죽여버리고 함께 메두사를 처리합시다.”

낙안성의 답변에 또 다시 여인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요. 반드시 산채로 잡아주세요.”

적의 수장으로 보이는 인물을 산채로 잡아오라니,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다. 하지만 낙안성은 그 이유를 묻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인하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독종의 종주가 내린 명이니만큼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사실상 그녀가 주도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실력 역시 그녀가 가장 강했으니,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당연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대군들도 함께 침공 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요새를 부수면 상대의 사기도 대폭 꺾일 겁니다. 가한제국 강자들도 좌절감에 휩싸일 테고…그렇게만 된다면 저희 쪽도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녀 역시 낙안성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적과 대면하니 왠지 모르게 그런 식의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됐습니다. 저 두 사람만 잡아 놓으면 가한제국은 힘 쓸 필요 없이 자연스레 무너질 테니까요.”

여인이 고개를 젓자, 낙안성은 불만스러운 듯 입을 씰룩거리면서도 차마 이유를 묻지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전 메두사 여왕을 상대하지요.”

말을 마친 여인이 발을 한번 구르니 공중에 가만히 떠있던 거대한 매가 순식간에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앞쪽으로 돌진했다.

“메두사, 항복하시죠. 그럼 가한제국을 멸망시킨 뒤 뱀인간들에게 만족할만한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신다면 당신네 종족도 무사할 수 없습니다.”

“한 번 해보시지.”

메두사가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자, 여인의 얼굴에 다시 살기가 내려앉았다.

“당신이 독종의 종주인가요?”

그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낙안성과 대치하고 있던 이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불의 연맹주, 이준입니다.”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이름을 듣는 순간, 백발 여인의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불의 연맹이 항복한다면 한 명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이어지는 여인의 말에 낙안성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제안을 잇달아 거절한 것도 모자라 한 명도 해치지 않겠다니, 확실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제안은 고맙지만 됐습니다.”

이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자, 여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아마 메두사를 믿고 설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메두사를 먼저 쓰러뜨려주지. 네 놈이 얼마나 버티는 지 보자고.”

“건방진 계집…어디 한번 해보거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메두사의 몸에서 일곱 빛깔의 화려한 염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동족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에 이어 자신을 쓰러뜨리겠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모양이었다.

두 투종의 싸움이 시작되려하자, 낙안성이 곧바로 이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까 모란종의 장로들 상대하는 것을 보니 실력이 아주 제법이더군.”

이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낙안성의 모습에 황급히 날개를 펼쳐 뒤로 물러섰다. 모란종의 세 장로들과 달리 낙안성은 진정한 투종 강자였으니, 아직 자신에게는 버거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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