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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65화 (365/818)

제365화. 번개 분신

이준이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갑자기 강력한 염력이 그의 등 뒤를 덮쳐왔다. 이에 이준은 재빨리 폭발하는 화산처럼 청록색 불꽃을 몸 밖으로 쏟아내며 불꽃 갑옷을 만들어냈다.

불꽃 갑옷이 형성되자, 상대의 염력이 곧바로 튼튼한 갑옷 위에 부딪히며 또 다시 고막을 찢을듯한 폭음이 일었다.

배후를 공격 당한 이준은 황급히 번개의 춤을 사용해 상대의 공격 범위 밖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또 다시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공격이 상대에게 제법 충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 머리의 노인은 상대를 쫓기는커녕 순순히 뒤로 물러나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노인이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의 기운이 투종 수준에서 투황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준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 오른 주먹에 청록색 불꽃을 씌운 뒤 호랑이 머리를 한 노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다음은 틀림없이 호랑이 머리를 한 노인의 차례였다.

슉!

이준은 그와 가볍게 한 번 맞부딪힌 뒤 잽싸게 뒤로 몸을 날렸다.

호랑이 머리의 노인 역시 일격을 날린 뒤 다른 두 노인과 마찬가지로 은근슬쩍 뒤로 물러섰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염력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였군.”

열세에 처한 이준을 보며 요새 위에 있던 많은 이들의 얼굴에 또 다시 그늘이 드리웠다. 이준이 무너진다면 상황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걱정 말게. 별 일 없을 거야. 아직 비장의 무기는 꺼내지도 않았으니까.”

성벽 위에서 이준을 바라보는 동해가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듯 중얼거렸다.

이에 가철을 비롯한 이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초조한 마음을 가라 앉혔다. 아직 이준에게는 ‘화련’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월녀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준의 실력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그저 이준이 세 노인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요새에 있던 몇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다시금 공중에서 펼쳐지고 있는 가한제국의 운명을 건 전투를 바라봤다.

* * *

이준이 청록색의 날개를 힘차게 펄럭이며 공중에 떠오르자, 그의 까만 눈동자에 청록색 불꽃이 일었다.

눈 앞에 있는 세 노인의 염력은 또 다시 투황 수준으로 돌아가 있었다.

세 노인은 돌아가며 한 사람씩 공격을 하고 있었고, 결코 세 사람이 동시에 공격을 하지 않았으며, 공격을 하는 순간에만 실력이 투종 수준으로 치솟았다가 이내 다시 투황 수준으로 돌아갔다.

‘공격을 하는 순간에 한사람에게 염력을 몰아주는건가…’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투종 힘을 가진 사람의 공격만 잘 피한 뒤 나머지 두 사람을 공격하면 될 일이었다.

세 장로는 이준이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곧바로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호랑이 머리를 한 장로는 빠르게 대형에서 벗어나 이준을 향해 날아가며 묵직한 울음 소리를 토해냈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은 점점 더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호랑이의 발톱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노인이 호랑이 발톱을 공중에 휘두르자, 허공 위에 붉은 발톱 자욱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발톱에 담긴 힘으로 미루어보건데, 청연의 불꽃으로 몸을 보호한다 해도 제대로 걸린다면 단번에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죽어라!”

쉬익!

그러나 흉흉한 붉은 색 발톱이 이준의 목줄기를 관통하는 순간, 노인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표정만 봐서는 이준이 아니라 노인이 공격을 당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잔상이잖아?”

자신의 발톱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자, 호랑이 머리를 한 장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그 순간, 그의 발이 닿은 곳에서 까만 형상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자 머리를 한 노인의 앞에 나타났다.

“태초의 힘!”

하지만 이번에는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던 이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사자머리를 한 장로의 몸에서 에너지가 폭발하더니 순간적으로 투종 수준의 염력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콰앙!

주먹이 노인의 가슴에 꽂히는 찰나, 그의 가슴이 기이할 정도로 깊은 곡선을 그리며 움푹 들어갔다.

곧이어 사자머리 노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상대의 복부를 세차게 가격했고, 이번에는 이준의 배가 안쪽으로 푹 꺼졌다.

“크윽…!”

완벽하게 상대의 수법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이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뒤쪽으로 멀찍이 몸을 날렸다.

“저 녀석, 뭔가 알아차린 모양이군. 어서 끝내야겠어.”

호랑이 머리의 장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은 다시 이준을 포위했다. 그들은 단번에 이준의 속셈을 꿰뚫은 것이다.

“야수의 진은 우리 모란종이 자랑하는 비술이다. 네 놈의 얄팍한 잔머리로 깨부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것이었다면 우리 모란종이 서북 지역 최고의 세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겠느냐? 큭큭…네 생각대로 야수의 진은 한 사람씩 투종의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비술이야. 하지만 우리 셋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어 아주 짧은 순간에 힘을 옮겨 쓸 수 있지. 네 녀석의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 말이야.”

사자 머리 장로는 가슴을 툭툭 털며 이준을 비웃었다. 야수의 진은 원리는 사실 그리 큰 비밀이라 할 것도 없었다. 실력이 조금 있는 자라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간단한 원리였다. 하지만 이 간단한 비술로 모란종은 서북 지역에서도 손에 꼽는 세력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리 쉽게 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이, 거기 세 장로님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요? 투황 하나 때문에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다니!”

그 때, 멀리 있던 낙안성이 분노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이 녀석이 평범한 투황 강자가 아니니까 그렇지.’

호랑이 머리의 장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궁시렁대면서도 곧바로 나머지 두 장로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빨리 끝내자고.”

“그래야지.”

순간 나머지 두 장로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나며 그들을 둘러싼 붉은 에너지가 더욱 세차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이준이 긴 한숨을 내쉬며 살며시 눈을 감자, 발바닥에서 돌연 전에 본 적 없는 거대한 은빛 섬광이 폭발하며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번개의 춤…! 번개 분신!”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복잡한 인을 맺으며 춤을 추다 멈추는 순간, 이준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두 개의 은색 빛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중에서 갑자기 이준이 셋으로 불어나자, 성벽 위에서 대결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입을 쩍 벌린 채 홀린 듯 눈을 떼지 못 했다.

세 개의 은빛 형상에 동해 역시도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저런 무투기는 한 번도 본적 없는 것 같은데?”

이에 가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녀석이 자주 사용하던 무투기인 것 같군. 다만 전에 선보였던 것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은데?”

“저 세 갈래 빛…자네들은 저 중에서 누가 본체인지 알아볼 수 있나?”

뛰어난 영혼탐지 능력을 가진 해길조차 세 개의 형상 중 무엇이 본체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 갈래 빛에서 모두 이준의 기운이 느껴졌다.

해길의 질문에 가철과 동해는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한편 공중에 있던 모란 세 장로는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세 명의 이준을 보며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그들 역시 동해와 마찬가지로 누가 진짜 이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가 옮겨갈 새도 없이 누군가는 이준의 공격에 당하게 될지도 몰랐다.

“조심하게! 본체를 발견하면 곧바로 염력을 자기 쪽으로 끌고 가야 해!”

호랑이 머리의 노인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노인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세 명의 이준 중 하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싸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본체군!”

몸 속에서 요동치는 에너지를 느낀 순간, 호랑이 머리의 장로는 확신에 차 나머지 두 장로의 염력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그의 주먹은 순식간에 붉은 빛으로 둘러 싸였고, 이내 피비린내를 풍기며 이준에게로 날아갔다.

쾅!

호랑이 머리를 한 장로의 강력한 일격에 온 천지를 뒤덮을 듯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허공 위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노인의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구겨지기 시작했다.

“조심해. 이 녀석은 가짜야!”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신에게 몰려든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해냈다.

곰 머리를 한 장로는 곧바로 다른 장로에게서 배출된 에너지를 흡수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쉭!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곰 머리를 한 노인의 안색이 급격히 굳었다. 이번에도 분신이었다.

“조심해, 본체가 그쪽에 있어!”

그의 외침을 들은 사자 머리 장로는 황급히 두 장로의 에너지를 몸 속으로 끌어 당겼지만, 비술이 제대로 발휘되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자신의 코 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쾅!

곧이어 온 천지를 뒤흔들듯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새파란 하늘 위로 청록색의 불길이 퍼져나갔다.

“쿨럭!”

그 순간, 공중에 있던 세 사람의 장로 중 하나가 피를 뿜어내며 순간 날개 잃은 새마냥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준의 공격이 성공한 듯 하자, 전장이 온통 침묵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사자 머리의 장로도, 곰 머리의 장로도 아닌 호랑이 머리의 장로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자 수많은 사람들은 눈을 꿈뻑이며 시선을 위로 옮겼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검은 망토 청년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꽃 갑옷은 이미 완전히 깨어진 상태였고, 그의 가슴에는 선명한 주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호랑이 머리 장로를 속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종의 힘이 실린 일격을 받아낸 뒤 공격을 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동료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머지 두 장로는 완전히 돌처럼 굳은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요새 위에 있던 동해는 넋을 잃은 채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저 녀석…너무 무모한 것 같은데…”

가철 역시 못 당하겠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단하군. 나라면 절대 저런 방법을 쓰지는 못 했을 것 같네.”

휠체어에 몸을 기댄 이정의 입에서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이에 동해를 비롯한 몇 몇 강자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란종의 비술이 깨졌으니, 이제 나머지 둘은 더 이상 투종급의 힘을 낼 수 없었다.

이준 역시 부상을 입긴 했지만, 투황급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이 투종 강자 한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게다가 메두사가 버티고 있는 상태에서 세 장로 중 한 사람에게 큰 부상을 입혔으니 본래 시간을 벌기로 했던 이준으로서는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이었다.

만일 메두사가 낙안성을 쓰러뜨리고 돌아와 나머지 두 장로를 처치하면 가한제국이 맞은 위기는 한 순간에 해결될 것이 틀림없었다.

성벽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월녀는 말없이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폐하께서 왜 저 녀석을 믿으셨는지 알겠군…엄청난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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