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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64화 (364/818)

제364화. 모란종

낙안성은 순식간에 메두사와 거리를 좁힌 뒤 곧바로 황금색 장검을 휘둘러 그녀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폭풍처럼 쏟아지는 상대의 공세에도 메두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손가락을 꽉 쥐어 일곱 빛깔의 검을 소환해 그것을 막아냈다.

그녀가 팔목을 살짝 돌리자, 그녀의 검 끝이 낙안성의 금색 장검과 강하게 맞부딪히며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챙! 챙!

하지만 메두사가 낙안성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사이, 폭음과 함께 붉은 색 염력이 그녀의 등 뒤를 덮쳤다.

“하하. 제 아무리 메두사라 해도 독종의 종주는 쉽지 않았나 보군요. 생각보다 칼끝이 무디십니다.”

붉은 색의 염력이 폭발하자마자 당황한 듯 몸을 빼는 메두사의 모습에 낙안성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메두사는 냉랭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할 뿐 대꾸조차 하지 않고 더욱 더 거칠게 염력을 뿜어냈다. 이에 낙안성을 비롯한 세 장로 역시 더욱 폭발적인 기세로 염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휴… 상황이 너무 안 좋아.”

한편, 요새에 남아 메두사의 전투를 지켜보던 동해를 비롯한 가한제국의 강자들의 표정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독종의 종주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힘을 소진한데다 부상까지 입은 탓에, 지금 메두사의 상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허공 위에서 갑자기 맑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제가 아주 적절한 때에 돌아온 것 같군요.”

호탕한 웃음소리가 곳곳에 천둥처럼 울려 퍼지며 많은 사람들의 청각을 자극했다. 요새에 있던 이정을 비롯한 이들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동생이군! 동생이 돌아왔어!”

동해가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가철 역시 말없이 이마의 식은 땀을 닦아냈다.

이정은 천천히 등받이에 기대 앉아 긴 한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오늘 일은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 되겠네요…”

옆에 있던 이들 역시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 정도의 실력이라면 모란종의 세 장로를 막아낼 수 있었고, 메두사의 실력이라면 부상을 당한 상태라 해도 낙안성 정도는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이준 뒤로 보라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작은 체구의 여자 아이 하나와 뱀인간 하나가 날아왔다. 보람과 월녀였다.

세 사람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요새에서 흥분에 가득 찬 함성소리가 폭발했다.

“성공인가?”

메두사의 질문에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몸이 부상당한 것 같은데?”

“별 것 아니다. 네 놈 따위가 걱정할 일은 더더욱 아니고.”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이준의 말에도 메두사는 여전히 냉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시선을 낙안성과 세 노인에게로 옮겼다.

“저 노인네들을 맡아줄 수 있나?”

“편한 상대로 골라. 나머지는 내가 맡지.”

“하하. 겨우 투황 주제에 우리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이준의 태도에 낙안성의 표정이 대번에 돌변했다. 메두사야 자신과 모란종의 세 장로가 달려들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갑자기 나타난 새파란 애송이 하나가 자신을 무시하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젊은 혈기에 저승길을 재촉하는군.”

세 노인 중 머리가 호랑이로 변한 장로 하나가 이준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무언가를 눈치 챈 낙안성은 다시 정신을 집중해 이준을 훑어보았다.

“설마 네가 불의 연맹의 연맹주인가?”

이준은 상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월녀와 보람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일단 물러나 있어.”

“너…너 괜찮겠어? 투종 정도 되는 강자인 것 같은데.”

보람은 망설임 없이 바로 요새 안으로 들어갔지만, 월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머뭇거리며 이준의 주위를 떠나지 못했다.

“걱정할 거 없어요.”

이준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손을 젓자, 월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요새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낙안성은 내가 맡지. 나머지 세 놈은 네가 맡아. 조심해야 할 거야. 놈들의 협공은 서북 지역 전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니까.”

메두사가 눈앞의 낙안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진짜 투종보다는 세 사람의 힘을 합쳐 투종에 가까운 힘을 낼 수 있는 세 사람을 이준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알겠어.”

이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난폭해 보이는 야수의 머리를 달고 있는 세 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걱정 말고 낙안성만 잘 처리해. 이 세 놈이 절대 방해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

메두사가 자신을 지목하자, 낙안성의 얼굴에서는 완전히 웃음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빨리 처리하시고 저를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낙안성의 요청에 세 장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대단해봤자 결국 투황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호랑이 머리 노인의 짤막한 답변에 낙안성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금색의 염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조심해.”

낙안성의 몸에서 솟구치는 황금빛 염력에 메두사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이준에게 조언을 남기고는 곧바로 앞으로 돌진할 준비를 했다. 그 때, 이준이 메두사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어주며 말했다.

“이걸 먹어. 상처 회복을 도와줄 거야.”

메두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보일락 말락하게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연금비약을 입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번개처럼 낙안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메두사가 낙안성과 맞붙자, 곧바로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이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세 장로와 낙안성이 손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를 두려는 모양이었다.

“큭큭. 불의 연맹주가 이렇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자식일 줄이야. 가한제국이 망해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군,”

사자 머리의 장로는 이준을 냉정한 시선으로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빨리 끝내버리자고. 낙안성 혼자서 메두사를 상대하기는 어려울테니까.”

호랑이 머리의 장로가 나지막이 말하자, 나머지 두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요새 쪽 사람들은 하나 같이 숨 죽인 채 공중에서 대치하고 있는 양 측을 바라봤다. 이제 전쟁의 판세는 이준이 장로 세 명을 붙잡을 수 있을지에 달려있었다.

모란종의 세 장로가 공중에 부양한 채로 웅장한 염력을 쏟아내자, 붉은 색 염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각각의 실력은 분명히 투황이었지만, 세 사람이 ‘야수의 진’을 펼치면 투종의 실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하. 불의 연맹주. 네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곧 깨닫게 될 거다. 운남종이라면 모를까… 이제 막 만들어진 불의 연맹 따위는 우습지도 않지.”

사자 머리의 장로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떼자, 이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째서 운남종을 쓰러뜨린 불의 연맹이 운남종만 못할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그 비술이라는걸 쓰면 겉모양만 짐승처럼 변하는 게 아니라 머리도 짐승수준으로 퇴화되나보지?”

말을 마친 이준이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청록색 불꽃이 온 몸을 타고 돌며 폭발적인 에너지가 그의 체내를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이준의 힘은 1성 투황 정도였지만, 스승이 남겨준 수련법으로 인해 그의 몸은 어지간한 3성, 4성 투황보다도 강했으며, 천계의 불꽃을 사용하면 7성이나 8성 투황 강자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천지의 불꽃의 힘이 더해지면, 투황 최고 수준의 강자나 투종 초입의 강자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투종 강자와 싸우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풍부한 실전 경험과 고급 무투기로 메꿀 수 있었다.

이준의 힘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세 장로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다음 순간, 이준의 발 밑에서 은빛 섬광이 번쩍이더니 이내 뇌성과 함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이에 호랑이 머리의 장로가 앞으로 한 발자국 성큼 걸어 나오며 이준의 공세를 막아섰고, 그의 주먹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 강하게 주먹을 휘두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힘에 공간이 뒤틀리며 사방으로 굉음이 터져나갔다.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만한 상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태연한 표정으로 몸을 피할 뿐이었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부터 짙은 청록색 불꽃이 빠르게 솟구치며 검은 송곳을 감싸 안았고, 이내 검은 송곳이 호랑이 머리를 한 노인의 주먹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검은 송곳과 노인의 단단한 주먹이 맞부딪히는 순간,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강자의 격돌에서 비롯된 소음에 실력이 약한 사람들은 고막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검은 송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강한 에너지에 이준은 손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실력은 명백히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상대의 실력에 놀란 것은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랑이 얼굴의 노인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나다가 제자리에 멈춰서서 이를 악물었다. 그의 주먹은 고온에 화상을 입은 듯 새빨갛게 부어 올라 있었다.

“천지의 불꽃? 네 놈이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이준의 검은 송곳에서 쏟아져 나왔던 청록색 불꽃은 틀림없는 천지의 불꽃이었다. 세 사람의 힘이 합쳐진 붉은 에너지가 청록색 불꽃에 타들어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의 경험상, 자신의 붉은 에너지를 무효화 시킬 정도의 열기를 가진 불꽃은 오직 천지의 불꽃뿐이었다.

“우리도 놀고 있지 말고 같이 움직이자고. 저 놈을 죽여야지!”

상대가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나머지 두 장로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

모란종의 세 장로는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빠르게 상대를 향해 돌진한 뒤 번개같이 삼각형의 대형을 만들어 이준을 포위했다.

이준은 곧바로 자신의 모든 퇴로가 세 사람에 의해 차단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온 정신을 집중해 더욱 빠른 속도로 염력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등 뒤의 털이 바짝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준은 망설임 없이 뒤쪽을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쾅!

검은 송곳이 다다른 곳에는 곰 머리를 한 장로가 서 있었다. 그는 두 손에서 붉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곰 발바닥으로 이준이 휘두른 검은 송곳을 꽉 붙잡고 있었다.

당황한 이준은 황급히 팔을 끌어 당겼지만, 검은 송곳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힘으로 검을 빼낼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한 이준이 청록색 불꽃을 쏟아내자, 붉은 에너지에 뒤덮인 곰 발바닥에서 ‘치익’ 소리가 나며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괴성을 내지르며 무서운 힘으로 이준의 검은 송곳을 빼앗았다.

다음 순간, 돌연 이준의 발 밑에서 은빛 섬광이 번뜩이더니 그의 형상이 거짓말처럼 눈 앞에서 사라졌다.

“태초의 힘!”

곧이어 노인의 가슴 앞으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담긴 주먹 하나가 날아들며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진동했다.

콰직!

갑작스럽게 두 배는 빨라진 상대의 속도 앞에 곰 머리 노인은 도망칠 틈도 없이 이준의 공격을 그대로 얻어맞고 말았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노인은 수십 걸음이나 뒤로 날아가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설 수 있었다.

자신의 주먹이 세 장로 중 하나를 뒤로 날리는 그 순간, 이준은 자신의 민감한 영혼 탐지 능력을 통해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상대의 실력이 갑자기 절반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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