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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61화 (361/818)

제361화. 대혼란

청산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이준은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음을 직감했다. 사람들로 가득하던 거리에는 적막만이 가득했고, 사람들이 사는 집은 물론이고 상점들마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으며, 높고 단단한 성벽 위로 거무튀튀한 사람 머리 몇 개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쥐새끼 하나 돌아다니지 않고 있었다.

“젠장. 독술사들이 어떻게 가한제국 중심부까지 온 거야? 불의 연맹과 황실이 막고 있는 거 아니었어?”

“삼대 제국이 연합해서 가한제국을 공격하니까 불의 연맹이라 해도 별 수 있겠어? 한쪽 방어선이 뚫린 틈을 타서 저 짜증나는 새끼들이 들어온 거야.”

“그럼 어떡해? 가운데 있는 저 녀석 가슴에 달려 있는 휘장을 보니 4레벨 독술사인 것 같던데…투왕급의 투사가 아니라면 상대가 안 된다는 소리잖아.”

“휴. 청산마을에서는 흑표 용병단 비호 단장님만 8레벨 투령이고, 나머지는 거의 무투사나 대투사 정도잖아. 4레벨 독술사가 독을 뿌리면 거의 다 쓰러져버릴 것 같은데.”

“염병. 정 안 되면 우리라도 가서 싸워야지. 우리 쪽 사람이 몇 명인데…열 명을 못 당하겠어?”

“우린 순순히 문이나 열어주게 될 걸? 저놈들이 제일 잘하는 게 일 대 다수 싸움이야. 엄청난 강자가 아니고서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모두 같은 용병단의 휘장이 달려 있었다. 그 중에는 흑표 용병단의 단장인 비호를 비롯해 카은과 라엘 등 이준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굳은 얼굴로 성벽 밖에 있는 십 여명의 괴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째 삼촌, 어떡할까요? 이렇게 지키고만 있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천둥산에 있던 독술사들이 계속 마을로 들어가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고요.”

라엘이 아래쪽 사람들을 노려보며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지키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4레벨 독술사라면 나조차도 승산이 없어. 청산마을에서 마수의 공격을 막기 위한 성벽을 짓지 않았으면 진작 전멸했을 게다.”

하지만 비호는 어둡게 내려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우선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곳은 가한제국에 속한 땅이니 조금만 버티면 불의 연맹에서 지원을 올 거야.”

이를 듣던 라엘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불의 연맹의 실력자들은 모두 삼대제국의 강자들에게 붙잡혀 있을 텐데, 이런 구석진 곳까지 지원을 올 수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 성벽 아래쪽에서 회색의 망토를 걸친 사람 하나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의 가슴팍에는 알록달록한 독사 네 마리가 새겨져 있는 휘장이 달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차가운 눈빛으로 성벽을 응시하며 경고하듯 말했다.

“10분의 시간을 주지. 문을 열지 않으면 독 연기를 풀겠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말을 마친 노인은 팔짱을 낀 채 성벽 위에서 소란이 일어나도 짐짓 모르는 체 하며 눈을 감고 조용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누구도 문을 열지 않은 채 10분이 지났고, 이에 노인의 얼굴에는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이 성벽이 진정 너희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인의 얼굴에서 괴이한 초록색 빛이 솟구쳐 나오더니, 곧이어 크고 짙은 녹색의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독 안개가 나타나자 노인 뒤에 있던 젊은 사람들 몇 명이 곧장 두 손을 펼쳐 거센 바람을 일으켰고, 이내 세찬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 독안개가 온 청산 마을을 덮쳤다.

“염력으로 몸을 보호해! 숨 쉬지 마!”

빠른 속도로 몰려오는 녹색 안개를 발견한 비호가 다급히 소리쳤다.

“껄껄. 애송이들이서 내 독을 막아보겠다는 건가?”

노인이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젓자, 그의 뒤에 있던 이들이 몸 속 염력을 끌어내 더욱 큰 바람을 일으켰다.

“제길. 저 새끼랑 붙어야겠군. 얘들아, 가자!”

결국 참다못한 비호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옆에 있던 라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4레벨 독술사가 있는 전장에 흑표 용병단이 들어간다면 단원들의 반 이상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면 모두가 죽게 되는 상황이었다.

주변에 서 있던 흑표용병단원들은 단장의 지시를 듣고 몸을 떨었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중의 검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들 역시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성벽 아래로 내려가며 독 안개에 맞서려던 그 때,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며 녹색 안개를 녹여버렸다.

갑자기 펼쳐진 뜻밖의 상황에 양측 모두 화들짝 놀라 서로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곧이어 천둥산 쪽에서 두 갈래의 그림자가 나타나 눈 깜짝할 새에 마을의 상공까지 이르렀다.

“투왕 강자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들의 등 뒤에 달린 염력 날개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두 형체 중 앞에 있는 자의 몸은 온통 청록색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조금 전 열기는 그의 몸에서부터 발산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보랏빛 날개를 가진 여자 아이 하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독을 내뿜는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 불꽃이 천천히 파동을 일으키다 사라지자, 불꽃에 휩싸여 있던 정체불명의 강자의 얼굴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준 연맹주!”

갑자기 등장한 강자를 발견한 노인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는 가한제국에서 보낸 강자인 듯했다. 노인은 재빨리 녹색 안개로 변해 숲 쪽으로 날아갔고, 그와 함께 왔던 십 여 명의 사내들도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이에 허공에 떠있던 이준은 싸늘한 눈으로 도주하는 적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튕겨 청록색의 불꽃을 쏘아냈다.

쉭! 쉭!

다음 순간,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재로 변해 사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이준은 번개같이 성벽으로 날아가 기절해버린 용병들을 향해 연금비약 몇 개를 던졌다. 곧이어 이준이 손가락을 살짝 굽히니 청록색 불꽃이 연금비약을 감싸며 약 냄새가 퍼져나갔다.

이준의 연금비약이 타들어가며 사방으로 약기운을 뿌려대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혼절한 용병둘이 하나 둘 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빠르게 응급처치를 마친 준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비호를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준의 질문에 비호는 잠시 넋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제국에 이렇게 큰 일이 벌어졌는데도 가한제국 최고 세력의 주인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한동안 산에 틀어박혀 있어서……”

이준이 먼저 사정을 밝히자, 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요 일 년 사이 가한제국이 완전 발칵 뒤집어 지고 말았습니다. 일 년이나 산에 계셨던 것 입니까?”

“일 년이요? 제가 일 년이나 자리를 비웠었군요.”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비호는 더욱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온 나라가 뒤집어 졌는데 일 년 동안이나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그보다, 가한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아까 그 자들은 독술사 같던데…어떻게 가한제국에서 열 명이 넘는 독술사가 한 번에 몰려다닐 수 있는 거죠?”

“가한제국 사람이 아니니까…”

그 때, 곁에 있던 라엘이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구름제국의 독술사입니다.”

이에 비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라엘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준 연맹주께서 저희 흑표 용병단을 구해주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제국에서 가한제국을 침공하려 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국가의 군대가 맞붙었고, 한 달 정도 지나자 구름제국에서 독술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독술사들의 활약으로 인해 가한제국의 국경이 뚫려버렸지요.”

“왜 독술사들이……”

“요 몇 년 사이, 구름제국에「독종(毒宗)」- ‘맹독파’라는 종파가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세력을 만든 지 불과 5년이 지나지 않아 구름제국의 모든 종파를 무너뜨리고 그곳의 유일무이한 지배자가 되었지요. 심지어 구름제국의 황실도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독종의 독술사들인 듯합니다.”

잠자코 비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독종(毒宗)의 수장은 실력이 어느 정도 되나요?”

“투종 강자라고 들었습니다. 여튼 그자들이 참전하면서 불의 연맹도 가한제국 황실을 돕게 되었지요. 두 세력은 상당히 팽팽하게 맞섰지만…반 년 전 독종의 종주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황이 크게 기울었습니다. 동해와 가철, 황실의 수호마수까지 나섰지만 독종의 종주에게 패배하고 말았으니까요.”

가철에 동해에 수호마수까지 당했다는 소식에 이준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갔다.

“계속 말해주시죠.”

“하지만 세 분이 위험에 처해있던 그 때, 갑자기 메두사여왕이 나타났습니다. 정말이지…가한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귀를 의심할만한 일 이었지요. 어쨌든 메두사 여왕이 가세한 덕에 독종의 종주가 물러났고, 그 후로는 뱀 인간들이 불의 연맹과 연합해 독종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메두사도 모자라 뱀 인간들이 불의 연맹을 도왔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독종이 가한제국을 침범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메두사 뿐 아니라 뱀 인간들이 불의 연맹을 도왔다고요?”

비호는 귀신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준을 앞에 둔 채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네. 그것 때문에 뱀 인간들도 굉장히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됐습니다. 뭐…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가한제국 황실에서 이 전쟁이 끝나면 뱀 인간들에게 그들이 살 공간을 마련해주기로 약조했다고 들었습니다.”

“메두사와 뱀 인간들이 가세했는데도 구름 제국을 이기지 못 했다고요?”

이준은 뱀 인간들이 불의 연맹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세력이 연합해도 독종을 이기지 못 하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제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 해도 어떻게 생긴지 5년 밖에 안된 세력이 그 막강한 두 세력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네, 원래대로라면 그래야 했지요. 하지만 뱀 인간들이 가한제국과 연합하겠다고 발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제국에서 다른 두 제국을 끌어들였습니다.”

“다른 두 제국이요?”

이준의 머릿속에 순간 두 개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낙안제국과 모란제국.

“네…그 두 제국만 해도 가한제국보다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독종에 이어 두 제국의 최대 종파 두 개가 이 전쟁에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금안종과…모란종이지요.”

“금안종…모란종…”

이준은 생소한 이름들을 중얼거리며 실눈을 떴다.

“금안종은 낙안제국의 최대 세력으로, 그 수장은 투종 강자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란종에는 투종 강자는 없지만 세 명의 투황이 연합해 투종 강자도 꺾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더군요. 그리고 그 셋은 굉장히 독특한 무투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이준의 표정에 점점 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그가 말한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가한제국과 불의 연맹의 이름이 모두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의 연합이 그리 공고하지 않다는 점 정도인 것 같습니다. 서로 강자들을 잃을 것이 두려워 메두사 여왕과 붙으려 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비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 보셨던 독술사는 아마 몰래 들어온 독종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입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어떻게 한 번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어왔냐 하는 점입니다. 전쟁이 벌어진 이래 불의 연맹에서 순찰을 돌며 국경을 지키고 있어 어쩌다 몰래 들어오는 사람이 있더라도 한두 명이 전부인데 이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했는지, 비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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