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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55화 (355/818)

제355화. 이상한 산골짜기

산골짜기 안에서 10여분을 걷다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준은 그제서야 초가집을 발견했다. 세월이 오래 됐지만 초가집은 어디 하나 망가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초가집을 보자 이준은 공허함에 한숨을 푹 쉬었다. 몇 년 전 있었던 일이 몹시도 생생했지만 그때의 하얀 치마 입은 여자아이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이준은 마음을 진정하고는 천천히 초가집을 향해 걸음을 이동했다. 그가 점점 가까워지자 난폭한 울음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고 뒤이어 마수들이 그의 앞에 튀어나와 초가집을 동그랗게 감쌌다. 그들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이준을 향해 울어댔다.

그들의 행색을 보니 포식 중인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 의해 초가집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누가 벌써 여길 발견한 거야?’

이준이 속으로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식들이 진짜 귀찮게 하네. 처리할게!”

보람은 계속해서 위협의 울음소리를 내는 마수를 향해 콧방귀를 뀌더니 앞으로 성큼 걸어났다. 보석 같은 눈동자에서는 보랏빛이 쏟아졌고 기이한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메두사의 실력으로 인해 느껴졌던 위압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압박감이 쏟아졌다. 피와 영혼에서부터 쏟아지는 기운이었다.

보람의 작은 몸에서 폭발하는 위압감에 메두사와 이준마저도 화들짝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보람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강한 압력에 흉악한 눈빛을 한 마수는 순간 끼깅거리며 모두 도망가버렸다.

이를 보던 보람은 이준을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은 씩 웃으며 초가집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한쪽 손에는 불꽃이 일렁였다.

“조심해.”

메두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준은 끄덕이며 한 걸음씩 초가집을 향해 걸어갔다. 이준이 문고리를 잡으려던 찰나, 메두사의 눈빛이 번쩍이더니 빠르게 그의 손을 낚아챘다.

이준은 흠칫 놀라 메두사의 차가운 표정을 응시했다.

“독이 있어.”

메두사는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독 사용에 능숙했기 때문에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준의 얼굴색이 변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는 사방을 둘러봤고 눈빛이 훨씬 어두워졌다. 아마 이 초가집의 주인이 바뀐 듯했다.

“조심해……”

이준은 보람을 뒤로 끌어 당기고는 원기 바람을 날려 문을 밀어 열었다.

대문이 열렸지만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찾아볼 수 없었다.

“들어가지 마. 여기 사는 사람이 독을 아주 잘 쓰는 것 같아. 게다가 독성도 아주 강해서 잘못 붙게 되면 네 실력으로도 버티기 힘들어져.”

메두사는 텅 빈 집을 보며 말했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냉소 지으며 말했다.

“이보세요! 안 나오시면 이 산골짜기를 불태워버릴 겁니다.”

이준이 불러도 내부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준은 얼굴을 굳히며 불꽃을 틔워낸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탁한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이 곳을 망가뜨리면 너희 셋은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거다.”

그들은 황급히 고개 돌려 절벽 위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염력으로 몸을 뒤덮은 사람 형체가 서 있었다.

잡초가 무성한 산 벼랑 위에 검은 형상이 나타났다. 그의 몸은 온통 검은색 염력으로 덮여 있었고 성별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 세 사람을 향한 냉담한 눈빛만이 망토 속에서 번뜩일 뿐이었다.

이준 쪽 세 사람 역시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형상에 잠시 몸이 굳었다. 이 산골짜기 속에 누군가가 또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이준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영혼 에너지를 빛처럼 쏘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준이 영혼 에너지를 쏘아도 검은 형상과 가까워지는 순간 갑자기 탐색이 막혀버렸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한 그였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짐에게 그런 말을 할 배짱이 있다니.”

메두사는 정신이 돌아오자 특유의 냉랭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살기 충만한 눈빛으로 하얀 손가락을 튕겼고 순식간에 일곱 빛깔 에너지가 손끝에서 폭발적으로 날아가 공간을 가르며 검은 형상으로 돌진했다.

망토 아래의 섬뜩한 눈빛이 일곱 빛깔을 보며 번뜩였다. 그의 두루마기는 바람 없이 펄럭였고 농도 진한 회색 연기가 그의 몸에서부터 피어 올랐다. 회색 연기가 나타나자 검은 형상 주변에 있던 잡초는 단숨에 메말라 버렸고, 생기가 빠져나갔다.

이준은 잡초에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고 눈을 크게 떴다. 독을 사용하는 건 예상했었지만 염력에서도 독을 방출할 줄은 몰랐던 것.

“열 셀 동안 당장 이 산골짜기를 떠나라. 아니면 다 죽여버리겠어!”

회색 연기가 솟구치며 검은 형상을 휘감았고, 그를 향해 돌진하던 일곱 빛깔 염력은 연기 속에서 분해되며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메두사는 한 순간에 무(無)가 되어버린 일곱 빛깔 에너지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냉기가 더 짙어졌고, 폭발적인 염력을 끌어냈다.

“이준, 너희들이 도망가든 말든 난 이 자식을 좀 혼내줘야겠다. 나랑 멀리 떨어져 있어. 독이 묻으면 복잡해지니까.”

이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검은 형상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저 정도로 강한 실력은 가진 자라면 가한제국에서 소문이 자자했을 텐데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준이 생각에 빠져 있을 동안 상대는 열을 다 세었고, 벼랑에 서 있던 검은 형체는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하며 손을 휘둘렀다. 이내 짙은 회색 연기가 천지를 덮을 기세로 솟구쳐 나왔고 산골짜기를 집어 삼켜버렸다.

“젠장!”

메두사의 눈에서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빠르게 움직여 공중으로 떠올랐고 하얀 손을 움켜 쥐었다. 일곱 빛깔 에너지가 뱀 모양 검에서부터 솟아오르며 날카롭게 직선을 그리며 상대를 가격했다.

조금 전 메두사의 공격을 막아내며 검은 형태도 그녀의 실력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맞섰다. 그의 소매가 펄럭이며 긴 손이 드러났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회색 연기가 요동치고 있다가 빠르게 수축하며 눈깜짝할 새에 짙은 회색빛이 보랏빛으로 변하며 코 찌르는 비린내가 풍겼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연기 덩어리는 메두사를 향해 날아갔다.

코가 시큰 거리는 비린 향이 안개 덩어리 속에서 퍼져 나오며 메두사는 살짝 들이마시고도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구겼다.

그녀는 손의 인을 빠르게 바꿨고 일곱 빛깔 에너지가 눈앞에서 빠르게 응집되며 팔 미터 가량의 거대한 칠색 에너지 뱀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뱀은 입을 쩍 벌리고 회보랏빛 독을 집어 삼켰다.

회보랏빛 연기가 잠식되자 마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에너지 뱀도 한 순간에 소멸되어 버렸다.

“강력한 독이야.”

메두사는 눈을 가늘게 흘겼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심각하게 얼어붙었다. 독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이 만나봤지만 이토록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자는 처음 만나봤기에 당황한 그녀였다.

메두사가 또 한 번 힘을 주자 일곱 빛깔 에너지가 그녀의 몸에서 새어 나오며 신체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찰나의 순간, 절벽 쪽으로 날아가 검을 휘둘렀고 서늘한 한기 바람을 쏟아내며 검은 형상의 목을 가격했다.

메두사의 맹공격에 검은 형상도 몸을 움직였다, 그는 가볍게 한 걸음 딛더니 메두사의 검 공격을 가뿐히 피했다. 그는 손에 회색 연기를 뭉쳐 놓았고 이내 회색 장검을 만들어냈다. 검에서 은은한 비린내가 풍기는 걸 보아 독이 있는 검인 REMTGOTEK.

챙! 챙!

두 검이 교차했고 그들은 사방을 날아다니며 불꽃을 일으켰다. 그들의 공세에 산벼랑에 계속해서 가느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상대 검에 독이 가득한 탓에 메두사 여왕도 쉽사리 승기를 잡지 못했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메두사랑 저렇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니?”

벼랑 위에서 번쩍이는 두 사람을 보며 이준의 눈빛은 충격에 휩싸였다. 메두사의 실력은 운산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저 정체 모를 검은 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강한 놈이네. 채린 언니랑 이렇게 오래 싸울 수가 있다니. 게다가 이상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파.”

보람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때 이준은 공기에 연하지만 괴상한 향이 돌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잠깐 숨참아!”

이준은 얼굴을 굳히며 빠르게 저장반지 속에서 연금비약을 꺼내 보람의 입 속에 넣어 주었다. 독성이 너무 강해 아주 짧은 시간에 노출 된 보람이 두통을 호소했으니,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계속해서 독을 뿜게 두면 안돼. 산골짜기의 생물들이 다 죽고 말 거야……’

이준은 생각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손을 들어 청록색 불꽃을 손바닥에 틔워냈다. 순식간에 높은 온도가 퍼져 나갔다.

산골짜기의 온도가 올라가며 공기는 비정상적으로 건조해졌고 그 이상한 냄새도 조금씩 사라졌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

냄새를 소멸시킨 뒤, 이준은 고개를 돌려 보람에게 한 마리를 남기고는 빠르게 공중의 전투 현장으로 날아 올랐다.

공중에서 치열하게 겨루던 이들 주변에 일곱 빛깔 에너지와 기이한 회색 연기가 사방에 나타나고 충돌하기를 반복했다.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비릿한 향이 후각을 찔렀다.

두 검이 다시금 충돌했고 스파크가 일어났다. 메두사와 검은 형상은 함께 뒤로 밀려났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뜨거운 바람 실은 주먹을 검은 형상에게로 내리 꽂았다.

갑자기 날아온 원기에도 검은 형상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몸을 살짝 비틀었다. 이준의 주먹은 그의 도포자락에 스쳤다.

주먹 공격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준도 빠르게 후퇴했다. 이윽고 메두사가 옆으로 다가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검은 형상은 유유히 날아가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는 망토에 가려진 눈으로 이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냉담하게 돌아왔다.

“여길 떠나라!”

“저기 죄송하지만, 제 이름은 이준이고 여긴 저랑 제 친한 친구가 찾아낸 장소예요. 주인은 그쪽이 아니라 저라고요!”

이준은 냉소 지었다.

“이준…… 친한 친구……”

그때 망토 속 눈빛이 살짝 반짝했다. 그의 몸을 뒤덮은 회색 연기도 한결 약해진 듯했다.

“저 녀석이랑 수다 떨 시간이 있나? 그냥 죽여버리면 될 것을!”

메두사 여왕은 살의 짙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메두사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이준은 꿋꿋이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아는 분이실까요?”

검은 형상은 이준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더니 이윽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준은 갑작스레 움직임을 보이는 검은 형상에 경계를 높였다.

검은 형상은 천천히 산골짜기에서 멀어지다가 손을 휘둘러 무언가를 던졌다.

이준은 뒤로 황급히 물러났고, 부드러운 원기가 물건을 이준 앞까지 전달했다. 옥병이었다.

“너희 둘은 실력이 강해서 괜찮을 수도 있지만 아래쪽 저 여자아이는 아마 힘들어할 거다. 이건 해독제야. 몸 속 독을 녹여주지.”

이준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메두사 여왕과 눈빛을 나눈 뒤 염력을 이용해 조심스레 옥 병을 끌어 왔다.

“너와 네 친구가 찾은 곳이라 하니 돌려주도록 하지.”

검은 형상은 뒤 돌아 빠르게 산맥을 지나 날아갔다.

허무하게 사라진 검은 형상을 본 이준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 생각하다가 비로소 실성한 듯 소리쳤다.

“아라,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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