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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52화 (352/818)

제352화. 제조

“이준! 네가 준 요리 다 먹었어! 아픈 것도 다 나은 것 같은데 빨리 먹을 거 내놔! 먹을 거!”

메두사의 곁에 있던 보람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댔다.

“알겠어.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봐.”

“빨리 줘. 나 또 강해질 것 같다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 아니면 잠들어버릴지도 몰라.”

이어지는 보람의 말에 이준과 메두사의 시선이 동시에 보람에게로 향했다.

“승급할 것 같다는 소리야?”

그들이 본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보람의 계급은 투왕이었고, 이는 마수의 등급으로 치자면 5레벨이었다. 물론 투왕에서 투황으로 승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보람이 그간 먹어온 약재들에 담긴 에너지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승급은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었다.

“마수가 승급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그리고 고귀한 혈통의 마수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이 꼬맹이가 그 동안 먹은 약재만 해도 엄청날 텐데 이제서야 겨우 승급을 하는 것을 보니 정체가 궁금하군. 정말 저 아이가 승급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채워줄 수 있겠어?”

보람의 승급 이야기가 나오자, 늘 냉담하기만 하던 메두사의 얼굴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너무 걱정 마. 승급에 필요한 에너지는 부족함 없이 다 채워줄 수 있게 해줄게. 그래도 날 따라서 본원을 나온 아이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 서천우 대장로님 볼 면목이 있지.”

“흥, 내가 아끼는 아이니까. 네가 책임지고 승급 시키도록 해.”

마치 제 새끼라도 되는 냥 보람을 챙기는 메두사의 태도에 이준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걸핏하면 죽이네 살리네 하는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탓이다.

“걱정 마, 그보다… 두 달 후면 약속한 그 날이네.”

다음으로 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보람의 손을 잡고 있던 메두사의 손이 딱딱하게 굳고, 온화해졌던 표정이 다시 차갑게 얼어붙었다.

“내가 혼백의 비약을 먹으면 넌 바로 내 손에 죽을 텐데? 지금 네 실력으로 나와 맞붙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메두사의 살기등등한 태도에 이준의 얼굴 역시 돌처럼 굳고 말았다.

“알아.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말을 마친 메두사는 싸늘한 시선으로 이준을 한번 노려보고는 보람의 손을 잡은 채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준의 입에서는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기 전, 메두사의 입에서 더욱 충격적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그리고…약재가 부족하다면 언제든지 얘기해. 도와줄 테니까.”

“도…도와준다고?”

불의 연맹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퍼지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 지고 말았다.

삼대 가문, 연금술사공회, 황실에 운남종을 쓰러뜨린 이씨 가문까지, 제국의 모든 이들은 이제 ‘불의 연맹’의 시대가 열렸음을 직감했다.

* * *

한편, 가한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장본인은 귀를 닫고 조용히 밀실에서 연금비약 제조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눈 앞에는 피처럼 붉은 빛을 내뿜는 붉은 약솥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곁에 있는 탁자 위에는 진귀한 약재가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장생의 비약…”

이준은 살며시 눈을 감은 채 장생의 비약의 조합표를 머릿속에 되뇌었다.

“후…”

약재와 약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하고 무거웠다. 형의 목숨이 앞으로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자신의 손에 있는 약재는 단 두 번 제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에 불과했으니, 자신의 실패가 형의 목숨으로 직결되는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준은 머릿속에 남아있는 잡념을 몰아내기 위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청록색의 불꽃을 피워냈다.

신비한 불꽃이 눈앞의 약솥으로 날아 들어가는 순간, 방 전체가 달구어진 솥마냥 뜨거워지고, 이내 가시 달린 청색의 열매가 짙은 향을 풍기며 약솥 안으로 들어갔다.

불꽃이 ‘불로의 열매’를 감싸자, 열매가 가진 강인한 생명력이 맹렬한 기세로 불꽃에 저항했다. 하지만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이 융합된 청록색 불꽃의 힘 앞에서는 무한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불로의 열매’조차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 하고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집중한 채 약 솥 안을 바라보고 있던 이준이 손을 휘젓자, 약솥 안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열매 대신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우유빛깔의 끈적한 액체뿐 이었다.

하얀 액체 덩어리를 바라보던 이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피워냈다.

그러자 사라져가던 불꽃이 다시 한 번 폭발적으로 타오르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액체를 감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 빛깔의 액체가 자그마한 진주알 같은 형태로 변화했다.

곧이어 새로운 약재가 붉은 약솥 안으로 던져지고, 그것이 액체로 변화하자, 또 다시 새로운 약재가 약솥 안으로 투여됐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약 솥에서 갑자기 강한 불길이 일어났다. 이준은 온 힘을 다해 억제했지만, 결국 힘들게 정련한 액체 세 종류가 한 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이준은 인상을 찌푸린 채 실패의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본 뒤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정련을 시작했다.

약솥의 불꽃은 이준의 섬세한 손길 아래 적절한 온도 변화를 이루며 미묘한 변화를 거듭했다.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기를 장장 다섯 시간. 마침내 약 솥 안에 울퉁불퉁한 마름모꼴 형태의 연금비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명을 연장하는 연금비약이라 그런가… 약향이 엄청나군.’

연금비약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찔할 정도의 향기는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케 하고도 남았다.

투황이든, 투종이든, 하늘이 주신 수명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 생명을 늘려주는 연금비약은 투기 대륙 전체에서 손에 꼽는 보물이었다. 게다가 수명이 늘어나는 건 실력이 발전할 기회도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투기 대륙 전체에 이 연금비약을 원하는 이들은 사막의 모래알만큼이나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연금비약의 표면이 불에 타며 점점 매끄러워지자, 장생의 비약에서는 6레벨 연금술사인 이준조차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상쾌한 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성공한 것 같은데…”

점차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새하얀 연금비약의 모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영혼의 힘이 계속해서 흘러들어가자, 새하얀 알약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약솥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약 솥이 튼튼해서 망정이지…평범한 약 솥이라면 진작에 깨졌겠어.”

곧이어 새하얀 알약이 약솥 벽을 때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장생의 비약이 반짝이며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백색의 광채에 뒤덮여 있는 연금비약은 약 솥 밖으로 날아가 도망을 치려했지만, 사방이 막힌 밀실 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정말로 내 손으로 이런 물건을 만들게 될 줄이야.”

연금비약을 바라보던 이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옥병을 저장 반지에 넣는 순간, 이준의 손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또 투황의 기운이 느껴지네. 정말로 이제 승급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던 이준은 한참 후에야 눈을 뜨고 한숨을 내뱉었다.

“느낌은 있는데…역시 쉽지 않군.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수련에만 집중하는게 낫겠어.”

벌써 몇 번째 투황이 될 것 같은 느낌만 어렴풋이 날 뿐, 계속해서 벽을 넘지 못하자, 결국 그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서 조용히 수련을 할 곳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 그것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생각을 굳힌 이준은 우선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고는 청록색 화염을 약 솥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가 손가락을 굽히자, 열 개의 옥상자가 저장반지 안에서 튀어 나와 그의 옆에 안착했다.

장생의 비약을 제조하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보람이 먹을 것을 만드는 일 이었다. 준은 망설임 없이 황실에서 보내온 진귀한 약재들을 꺼내 늘어놓았다.

보람 역시 자신처럼 승급의 경계에 서 있었고, 그간 그녀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으니, 그녀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약재들을 이용해 알약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보람은 이미 투왕 최정상급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힘으로 인해 어지간한 투황 강자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만일 순조롭게 투황 계급에 진입한다면 하급 투종 정도는 능히 상대할 수 있었으니 그녀를 위해 약재를 투자하는 것은 결코 아까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투황으로 만드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영혼의 궁전과의 일전에서 엄청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약재 경단을 만드는 것은 연금비약 제조보다 훨씬 간단했기 때문에,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않는 시간 안에 정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심지어 준이 만든 ‘요리’에는 쓴 맛을 싫어하는 보람의 입맛을 고려해 달콤한 맛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그렇게 총 세 병의 알약을 저장 반지 안에 넣고서야 이준은 한숨을 내리며 밀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 * *

밀실 밖으로 나와 앞뜰까지 걸어가니 류지안과 임동수를 비롯한 가람아카데미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한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이준을 보자마자 곧바로 기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다가왔다.

“하하. 연맹주라니. 왠지 어색하군.”

임동수는 이준을 발견하자마자 예의 그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를 놀려댔다.

이에 이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곧바로 임동수, 임수혁, 류지안 세 사람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세 분께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했었네요.”

“괜찮아. 따라오겠다고 한 건 우리였으니까. 사실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도 못했고… 운남종의 장로들이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하하, 운남종 장로들은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잖아요. 선배들은 아직 젊잖아요. 선배들이 그 사람들 나이 정도 됐을 때는 아마 투종이 되어있을지도 모르죠.”

이준의 말에 세 사람도 기운을 얻은 듯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번 싸움으로 꽤 많은 걸 얻었어. 며칠 전에 우리 셋 다 1성씩 올랐거든. 네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꽤 발전한 셈이지.”

임동수가 자랑하듯 말하자, 이준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선 세 사람을 바라봤다. 확실히 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운남종과의 대결 이전보다 한층 강해져 있었다.

“어쨌든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조만간 제가 영혼의 정수 하나를 제조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먹고 나면 1성 정도는 승급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세 사람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했다. 평범한 투왕이 1성을 뛰어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 이상의 선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하, 문주님, 그게……”

그러자 근처에 있던 은평강, 광철 그리고 소미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준의 눈치를 살폈다. 세 사람은 연금비약을 받기로 약속하고 온 것도 아닌데 그 정도의 선물을 주기로 했으니, 자신들과의 약속을 언제 지킬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세 분도 걱정 마세요. 보름 안에 약속했던 황금의 비약 세 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믿고 있었습니다. 다만 흑각성에 돌아갈 날이 다가와 혹시나 싶어 말씀드린 것이니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흑각성을 오래 비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연맹주님도 잘 알고 계실 테니…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먼저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을 꺼내놓고도 영 걱정이 되었는지, 은평강은 연신 준의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챙겨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흑각성에 돌아가실 때 저희 둘째 형도 같이 돌아가 이씨 가문을 관리할 생각이니,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준의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말이었고, 세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욱 거대한 세력을 거느리게 된 이준과 가급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물론입니다. 이제 목숨을 나눈 전우이니,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은평강의 대답에 이준 역시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지원이 있다면 이찬이 흑각성을 관리하기도 더욱 쉬워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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