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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51화 (351/818)

제351화. 불의 연맹

이준의 시선을 받은 해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대답을 회피했다. 물론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연금술사 협회는 운남종과는 또 다른 의미로 가한제국 최강의 세력이었다.

협회에 소속된 연금술사들의 실력 그 자체로만 따지면 가한제국 최강이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들의 인맥이나 영향력을 모두 합친다면 운남종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길만 해도 수년간 연금술사 협회의 회장직을 역임해오며 수 많은 강자들과 연을 맺고 있었다.

게다가 연금술사들은 모두 부자이고, 고레벨의 연금술사라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 굳이 이준이 만드는 새로운 세력에 동참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해길이 끝내 답을 하지 않자, 회의실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철과 초아를 비롯해 동해, 무이신, 나원승 등 모든 이들이 조용히 침묵 상황을 지켜봤다. 사실 가철과 초아는 내심 해길이 이준의 제안을 거절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준이 결성한 연맹이 너무 강력해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길 회장님, 연금술사공회가 연맹에 합류하면 연금술사들이 필요로 하는 약재를 연맹에서 지원할 것 입니다. 이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약재만 충분하다면 연금술사들의 레벨을 올리는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연금술사협회가 그리 큰 구속력이 없다고 하셨지만, 해길 회장님께서만 동의만 하신다면 아마 많은 연금술사들이 뒤를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길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본 다음에야 결정할 수 있겠네.”

“해길 회장님 혹시 연금술사공회에 5레벨 연금술사는 몇 명 정도 있나요?”

“아마 다섯 명 정도 될 걸세. 나 역시 지금은 5레벨 연금술사이긴 하네만…곧 6레벨이 될 것 같군.”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승급에 대해 확신이 서신 건가요?”

이준의 질문에 해길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연금술사의 실력은 영혼의 힘에 비례했다. 하지만 영혼 에너지를 모으는 것은 염력을 상승시키는 것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또, 보통 염력의 등급이 올라야 영혼의 힘이 커지지만, 해길은 이미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데다가 투종으로 승급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 6레벨 연금술사가 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했다.

“해길 회장님께서 연맹에 가입해 주신다면 10년 안에 연금술사 협회의 5레벨 연금술사를 열 명 이상으로 늘리고, 회장님의 실력도 6레벨까지 올려드리겠습니다.”

이준의 자신만만한 발언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연금술사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5레벨에서 6레벨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 투황에서 투종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정도는 그들도 알고 있었다.

평범한 투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을 연금술사 협회의 회장인 해길이 모를 리는 없었다. 이에 해길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준을 바라보며 의심스럽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허허…달콤한 제안이지만,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준은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웃음을 지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저는 13살에 연금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7년 만에 6레벨 연금술사가 된 사람입니다.”

자신이 6레벨 연금술사라는 말에 다른 강자들은 물론이고 해길마저 말을 잇지 못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길은 이준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 근거 없이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먼저, 자신이 그동안 봐온 이준은 결코 이런 문제로 거짓말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은 어린 시절 약로를 만나 약간의 도움을 받은 것만으로도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으니, 그의 문하에서 7년간 가르침을 받았다면 스무살의 나이에 6레벨 연금술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그렇다면 우리도 자네가 만든다는 그 연맹에 참여하겠네. 대신, 약속은 꼭 지켜주어야 하네.”

마침내 해길의 입에서 원하던 답이 떨어지는 순간, 이준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제가 회장님 앞에서 한번이라도 허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절대로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좋아좋아. 그럼 자네만 믿겠네.”

3대 가문과 황실은 물론이고 운남종조차 포섭하지 못 했던 연금술사 협회마저 연맹에 가입하자, 자리에 있던 다른 강자들은 크게 기뻐하면서도 속으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20살 남짓한 청년이 운남종을 무너뜨리고 가한제국의 모든 세력을 통합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자신들뿐 아니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삼대 가문의 여러분들에게는 10년 후 최소 세 명, 혹은 그 이상의 투황 강자를 만들어드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이준이 연달아 내놓는 파격적인 제안에 무이신, 나원승을 비롯한 이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가철과 초아 역시 놀라 멍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말 했더라면 콧방귀를 뀌고 말았을 테지만, 이준은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이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한 말을 어겨본 적이 없었으니, 이 믿기 어려운 제안들마저 다 현실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금까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철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크흠…이준 선생…우리 황실도 연맹에 가입할 수 있는건가?”

가철의 깜짝 제안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이준과 가철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초아 역시 가철의 돌발 행동에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가철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투사는 수만 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부대 하나를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으니, 연맹에 가입한 다른 세력들이 정말로 10년 뒤에 세 명의 투황을 갖게 된다면 황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황실도 그만큼의 투황을 가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가철의 갑작스런 말에 깜짝 놀란 이준은 잠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생각지도 못 했던 제안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최선을 다해 황실에서 보낸 인재를 키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새로운 세력의 건설에 동참하기로 결정이 내려지자, 가철이 환히 웃으며 이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하. 그럼 연맹의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사실은 연맹을 만들기 전부터 생각해둔 이름이 있습니다만…”

“뭔가? 말해보게.”

“불의 연맹, ‘불의 연맹’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불의 연맹? ‘불의 연맹’이라… 좋은 이름이군. 앞으로 불의 연맹이 운남종을 뛰어넘어 서북지역 전체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저도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가철이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짓자, 이준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럼 이제 정식으로 연맹이 결성 됐으니 연맹주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준 선생이 맡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운남종을 쓰러뜨린 것도, 이 연맹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이준 선생이니까요.”

가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이신이 기다렸다는 듯 이준을 연맹주로 추대했고, 이준 역시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연맹주 자리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단, 한 가지 확실히 할 것은, 불의 연맹이 제 소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런 일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으니, 앞으로의 의사결정은 모두 원로원의 장로님들께 맡기겠습니다.”

“그럼 연맹을 만들었으니, 연맹을 위해 건배 한 번 하시죠!”

“하하하!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가한제국의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쳤으니, 조만간 서북 지역 전체에서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의 연맹을 위해! 건배!”

이정이 먼저 술잔을 들며 건배를 제의하자, 자리에 있던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잔을 들었다.

마침내 운남종이 쓰러진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세력이 생겨난 것이다.

* * *

각 세력의 수장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마지막 한 사람마저 저택을 나서자, 이준은 긴장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마무리 됐네.”

“음…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너무 큰 권한을 쥐어준 거 아니야? 연맹주보다 장로회가 더 큰 결정권을 갖는다는 게… 내 생각에는 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 말이야.”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세 형제만이 남게 되자, 회의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이찬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지금은 그냥 안심시켜주는 단계야. 나도 몰래 손을 써서 원로들 중 대부분을 우리 가문 사람이나 우리 가문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채워넣을 테니까. 다른 문제는 형들에게 맡길게.”

“그래. 걱정 말아라. 그 문제는 찬이와 내가 어떻게든 해보마.”

“고마워 형, 아참, 둘째형 내가 찾아달라는 약재는 어떻게 됐어?”

연맹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친 이준은 곧바로 ‘장생의 비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약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 형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이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씨 가문에서 구해줬어. 대충 다 모으긴 했는데… 동해 선배님 말로는 네가 원하는 약재가 너무 귀한 거라 유씨 가문의 경매장을 통해 구할 수 있는 것도 몇 개 안 된다나봐. 일단은 두 알 정도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약재를 받았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쓰면 두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더군.”

“좋아, 그럼 내 방으로 약재를 보내줘.”

충분한 양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형의 목숨이 걸린 이상 최선을 다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첫 째 형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덕분에 이정 역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필요로 하는 연금비약이 무엇인지, 약재가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준은 연금술사이니, 약재를 찾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 즉시 무슨 약재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래, 그럼 난 나가볼게.”

대화를 마친 이찬이 이정의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자, 이준은 곧바로 채린을 향해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마웠어.”

사실 오늘 회의에서 자리에 참석한 강자들이 순순히 ‘불의 연맹’에 가입한 것은 투종 강자인 그녀가 무언의 압박을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시종일관 말없이 뒤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는 메두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흥, 답답한 놈. 처음부터 힘으로 하면 될 것을. 왜 그런 번잡한 짓거리를 하는 거지? 본보기로 두세 놈 정도만 시체로 만들어주면 편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이준의 감사인사에도 불구하고 볼멘소리를 해대는 메두사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이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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