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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47화 (347/818)

제347화. 종파 대회

운남종에서 벌어졌던 일대 사건이 가한제국 방방곡곡에 퍼져나가자, 제국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운남종이 가한제국에서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세력이었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특히나 운산이 투종이 된 이래, 가한제국은 문자 그대로 운남종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운산의 운남종을 대신해 이준과 이씨 가문이라는 이름이 가한제국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운남종의 제자들은 하나 둘씩 짐을 챙겨 산을 내려갔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평범한 가한제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불과 보름 만에 운남종의 제자 중 8할이 떠나버렸고, 수련의 성지처럼 여겨지던 산 역시 쓸데없이 높기만 한 산봉우리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운남종이라는 이름마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 * *

황도.

성 중심부에 자리 잡은 이씨 집안의 저택은 제도에서 가장 많은 시선이 집중 되는 장소가 되었으며, 매일 같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 시끌벅적한 이씨 저택 내부의 한 방안에서는 검은 망토를 입은 청년 하나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하. 녀석, 어때? 상처는 좀 나았고?”

호탕한 웃음소리 하나가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소리가 난 곳에서는 휠체어에 앉은 사내 하나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뒤로는 또 다른 사내 하나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검은 망토를 입은 청년은 서서히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이마에는 새하얀 불 문양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에서는 은은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찬과 이정을 보며 이준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상처는 다 치료된 거야?”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해서…아마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수 많은 전투에서 온갖 부상을 다 입어본 준이었지만, 이번 부상은 다른 어떤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체내의 염력이 완전히 고갈됐을 뿐만 아니라 영혼 에너지도 손상됐다. 주먹은 거의 팔뚝 아래 붙은 장식품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어. 후유증이 안 생기는 게 중요하니까. 넌 이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 네 건강에 가문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라고.”

큰 형의 다정한 말에 이준은 도저히 못 당하겠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남종은 어떻게 됐어?”

“이미 절반이 흩어졌대. 운남종 안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긴 한데, 보름 정도만 더 지나면 완전히 해산할 것 같아.”

“어쨌든 목표는 달성한 셈이잖아. 그리고 운남종에 남은 평범한 제자들을 학살해봤자 크게 득 될 것도 없고, 나중에 우리 가문에 대해 안 좋은 소문만 퍼질 수도 있으니 멀리 봤을 때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을 거야. 무엇보다, 네 행동이 맞든 틀리든 우리 가문 사람들은 항상 널 응원할 거고.”

두 형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 이었다. 사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 자비를 베푼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굳이 형들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튼 네 덕분에 우리 이씨 가문의 명성이 하늘까지 치솟겠어. 매일 선물 주겠다고 오는 사람들만 상대하려고 해도 날이 새겠더구나. 아버지가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이어지는 이찬의 말에 이준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지셨는지 대충 단서를 찾긴 했는데, 찾으러 나서기엔 내 힘이 많이 부족해…”

“괜찮다. 우린 널 믿으니, 너무 서두를 것 없어. 네가 결정을 내리면, 가문 사람들 모두 총력을 다해 널 도울거야.”

큰 형의 믿음 가득한 한마디에 이준의 얼굴에도 금세 생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세 사람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시종 하나가 종종 걸음으로 들어와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동해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하하. 동생, 대체 뭘 먹으면 이렇게 빨리 상처가 낫는 거야? 최소한 한 달은 휴식해야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보름 만에 이만큼이나 회복하다니. 참으로 놀랍군, 놀라워.”

동해는 이준을 보자마자 연신 웃음을 지어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준의 도움으로 전성기 때의 실력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명실상부한 가한제국 최강의 세력을 꺾었으니, 제 아무리 얼음왕이라 해도 웃음을 참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해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네 기운이…”

이준의 기운이 오르락내리락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이는 승급의 전조 증상과 비슷했다.

“역시 선배님이시군요. 곧 투황이 될 것 같습니다. 확신은 못하겠지만요.”

“하하, 동생…이거 조만간 나를 앞지르겠구만 그래! 역시 운산 같은 괴물이랑 맞붙으니까 실력이 한 번에 쑥쑥 자라는 건가?”

동해 자신도 투왕 최고 단계에서 투황이 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었으니, 이준의 성장 속도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빙긋이 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구름 불꽃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너무 큰 성장을 한 탓에 최소 2년 이상은 그 수준에서 머무를 것이라는 것이 준의 예측이었다.

그러나 운남종에서의 목숨을 건 대전투로 또 다시 죽음의 경계를 수차례나 오갔고, 그 덕분에 잠재된 힘이 모두 발휘되며 순식간에 투황 단계로 들어서는 문고리를 잡게 된 듯했다.

“허허, 여튼, 날 이쪽으로 부른 이유가 뭔가? 동생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오라가라 할 사람도 아니고,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건가?”

하지만 투황의 문턱에 오른 기쁨도 잠시, 이어지는 동해의 질문에 이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선배님…혹시 「영혼의 궁전」에 대해 아십니까?”

“영혼의 궁전? 운남종에 나타났던 이상한 강자가 그쪽 세력 사람인가보지?”

“네.”

도영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동해의 얼굴 역시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사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그렇지만 요 며칠 사이 나름대로 수소문을 좀 해봤지. 아쉽게도 정보가 많지는 않더군. 확실한 것은, 그 세력이 이상할 정도로 강하고, 베일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그리고 대륙을 떠도는 육체 잃은 영혼들을 사냥한다는 것 정도네.”

“아버지와 스승님이 전부 그쪽에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씨 가문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고요. 어쩌면 조만간에…저를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운남종에 이어 더욱 무시무시한 세력이 이준을 노린다는 소식에 동해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도영호인지 뭔지 하는 괴물놈만 봐도 알겠지만, 놈들의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네.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 정도니까. 우리 가한제국 내에서는 놈들과 접촉할만한 힘을 가진 세력이 전무해. 놈들은 투기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 같더군.”

동해는 쓴 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반면 운남종은 가한제국 안에서나 일류 세력이지 대륙 서북지역에서 열리는 종파대회에서는 이류 취급을 받는 수준이었으니까.”

“종파 대회요?”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가한제국이 위치한 곳은 대륙 서북지역이야. 그 안에만 해도 백 개 가까이 되는 크고 작은 국가들이 있지. 가한제국도 그 중 하나이고. 제국마다 크고 작은 종파 세력들이 있지. 다 합치면 그 수도 꽤 될 테고. 종파 대회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인데, 서북지역에서 가장 강한 세력에서 개최하네.

대회 목적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어. 야심 가득한 놈들이 모여서 서북쪽 세력을 통일하고 대륙의 거대 세력과도 붙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만들려고 하는거지. 그런데 아직까지 그 야망을 실천한 사람은 없네. 서북지역이 너무 넓기도 하고, 강대한 세력들 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으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패자가 나타나지 않고 여러 세력들이 함께 이끌어가는 판세야. 물론, 그 강자 중에 운남종은 포함되지 않네. 말이 좋아 대운남종이지, 서북지역 전체에서는 이류 세력에 불과하니까.”

“흥미롭군요…”

이준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동해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건 운산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야. 운산이 투종이 되고나서 미친 듯이 세력을 키운 이후 간신히 일류 세력으로 인정을 받았었지. 그런데 동생이 운남종을 때려 부쉈으니…허허허.”

설명을 이어나가던 동해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치며 이준에게 바짝 다가왔다.

“하하. 그렇지. 예전에 문씨 가문에서 만났던 두 투황 강자 기억 나나? 그 자들이 바로 서북지역에서 잘나가는 일류세력이야. 운남종보다 뛰어난 건 물론이고, 최근에는 흑각성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네.”

“그 하늘뱀 족의…투황을 말씀하시는건가요?”

동해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세력이 운남종보다 강하다니…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 이었다.

“하늘뱀족은 서북지역 중심지대인 한울 제국의 초일류 세력이지. 운남종이 가한제국에서 갖는 위세랑은 차원이 다른 수준이야. 주위 국가들도 하나 같이 놈들에게 고개를 조아린다고 하더구만.

가한제국은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고, 거기에다 지역이 서쪽으로 치우쳐져 외부 강자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지. 가한제국의 몇 몇 거대 세력이나 황실이 아니면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몇 없을 거야.

그 때 예린이란 여자애만 아니었다면 백 년이 지나도 하늘뱀족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걸세. 뭐 아무튼 운남종이 흩어졌으니, 이젠 가한제국에서는 일류 세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셈이야.”

계속되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동해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동생, 자네는 아직도 너무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데만 집착하고 있어. 물론 그건 중요하지. 하지만, 이번 운남종과의 대전에서 나나 다른 투황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네가 운산을 이길 수 있었겠나? 그러니까 내말은, 혼자 숨어서 수련하고 실력을 키워 영혼의 궁전에 맞서려 하지 말고,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소리네. 운남종이 박살났으니 지금이 최적의 시기야. 기회를 잡아야지. 서북지역의 강대 세력으로 부상하면 놈들도 그리 쉽게 이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리지는 못 할 거야. 만일 서북 지역의 패자가 된다면 그쪽 사람들도 벌벌 떨게 될지도 모르지. 게다가 아버지와 스승을 구하고 싶을 텐데, 온 대륙을 자네 발로 다 뒤지려면 대체 어느 세월에 찾겠나?”

한참동안 말없이 동해의 말을 듣고 있던 이준은 그제서야 이해하겠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당장 서북지역의 강대 세력으로 인정받는 것도 어렵거니와… 세력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어서…”

이어지는 이준의 답변에 동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봐, 동생. 자네 정도 능력이 있고 미래가 창창하면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네. 그런 사람에게 조직을 맡겨두고 자네는 계속해서 수련에 정진하면 되는 거야. 게다가 지금 자네는 가한제국 최고의 명사야. 손만 들어도 달려오는 사람들이 수백, 수천은 된다고.”

과연 가한제국 십대 강자이자, 오랫동안 유씨 가문을 이끌어 온 사람다운 혜안이었다. 이에 이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상처가 다 낫고 난 다음, 선배님이 다른 세력의 수장들을 다시 한 번 모아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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