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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46화 (346/818)

제346화. 운남종의 결말

상대의 몸 속에 염력이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진율희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푸른 장검을 단단히 붙잡은 채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결투를 위해 기운을 끌어올렸다.

“스승님…”

그 때, 진율희의 곁에 있던 나설아가 이준의 몸에서 들끓는 염력을 보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나부터 쓰러뜨려!”

“나설아! 이건 이준과 운남종의 일이니 끼어들지 말거라!”

나설아의 등장에 나원승이 화들짝 놀라며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 이준의 실력이라면 나설아는 한 합도 버티지 못할 것이 자명했다. 뿐만 아니라 나씨 가문 전제가 곤란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설아는 아래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 이었다.

“이준 선생, 잠시만 기다려주게! 이 노인네가 잘 설득해보겠네!”

이에 나원승은 미친 사람마냥 펄쩍 뛰며 이준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이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들어 나원승의 말을 끊어 버린 뒤, 아래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나설아를 향해 돌진했다.

이준이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자, 나설아도 안색이 변해 곧바로 팔을 치켜 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쉭!

나설아의 검을 가볍게 피한 이준이 등 뒤의 청록색 날개를 펄럭이는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상대가 돌연 종적을 감추자, 나설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준의 움직임은 도저히 투왕 수준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나설아가 사라진 상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막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그녀의 등 뒤에서 새까만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나설아는 번개처럼 손을 뻗어 염력을 쏘아냈고, 이와 동시에 청록색 불꽃이 그녀를 덮치며 허공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청록색의 화염과 푸른 염력이 맞부딪혀 사라지는 찰나, 검은 형상이 또 다시 나설아의 시야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핏대가 솟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나설아의 새하얗고 가녀린 목을 붙잡았다.

불과 한 합 만에 목숨줄을 붙잡히자, 나설아의 얼굴이 당혹감과 공포로 새파랗게 변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운산을 죽인 사람이 정말 이준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생사의 관문을 넘어서면 이준을 뛰어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준! 설아를 건들지 마!”

“이준 선생, 한 번만 봐주시오!”

분노에 휩싸인 이준이 나설아의 목을 움켜쥐는 순간, 나원승과 나원철, 진율희가 약속이나 한 듯 한 목소리로 이준을 만류했다.

반면 동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이미 운남종은 완전히 끝장이 났고, 진율희가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이제와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설아의 목을 움켜쥔 이준의 표정은 마치 납덩이처럼 차가워 금방이라도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을 기세였다.

“죽여라!”

그 때, 산 아래쪽에서부터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개미떼처럼 달려와 칼날처럼 솟은 산봉우리 위를 완전히 포위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군대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광장에 있던 운남종 제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고, 황군은 먹이를 노리는 이리떼처럼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잠시 후, 군인들이 길을 비키며 그 사이로 초아 공주가 걸어 나오자, 이를 발견한 가철이 빠르게 그녀의 앞으로 날아갔다.

“할아버지, 운남종의 병력들을 모두 처리했어요. 이제 명령만 내려주시면…”

“일단 급하게 굴 거 없다. 이준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자.”

초아의 곁에 도착한 가철은 곧바로 공중에 있는 이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운남종의 운명은 온전히 이준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의 한 마디면운남산 전체가 시체로 뒤덮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에 초아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지금 운남종의 운명이 누구에게 달려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 때, 몰려오는 군인들과 그 옆에서 사색이 된 율희를 바라보던 이준의 손아귀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나갔다.

“콜록! 콜록!”

이준이 손을 놓자마자 나설아의 하얀 얼굴이 붉게 물들며 격렬하게 기침을 터뜨렸고, 율희가 날아와 나설아를 자기 몸 뒤로 끌어 당겼다.

“스승님…”

진율희는 손을 들어 설아의 말을 끊은 뒤 아래쪽에서 살기를 내뿜는 군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다 죽여 버려야 속이 시원하다는 거지?”

“그럼 이 원한을 누구한테 갚아줄까?”

죽음을 각오한 듯 담담한 진율희의 표정을 보는 순간, 이준의 가슴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갚지.”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진율희의 푸른 장검이 주인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스승님!”

진율희의 행동에 아래 쪽 사람들은 물론 나설아마저 아연실색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공기를 가르고 진율희의 가느다란 목에 닿으려는 찰나, 무언가가 날아들어 서슬 퍼런 칼날을 꽉 붙들었다.

갑자기 검이 움직임을 멈추자 흠칫 놀란 진율희는 칼날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검을 집어 던졌다. 그녀의 눈앞에는 얼음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준이 맨 손으로 칼날을 잡은 채 서 있었다.

“네가 죽으면 운남종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따라 가게 될 거야.”

이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망토 자락에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네가 운남종에게 당한 게 많으니 내가 이 목숨을 끊어서라도 보상을 하겠다는데! 대신 운남종의 제자들만 살려주면 돼. 저 아이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아무 것도 모른다고!”

진율희의 행동에 또 다시 이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목소리는 이전의 그 살기등등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보상? 퍽이나 보상이 되겠다! 네가 죽는다고 이씨 가문 사람들이 살아 돌아와? 네가 죽는다고 내 아버지랑 스승님이 다시 돌아와?!”

이준이 보여준 뜻밖의 행동에 광장 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진율희는 물론 운남종의 모든 제자를 시체로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미쳐 날뛰던 자가 대체 왜 운남종의 종주를 살려준단 말인가?

“내 목숨을 대가로 거래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내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그렇지만 난 운남종의 종주야. 그리고 난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모두 죽게 놔두고 나만 살아남을 만큼 뻔뻔하지 못 해…”

이어지는 진율희의 말에 순간 이준의 눈이 갈피를 잃었다.

그 때, 진율희의 뒤에 숨어 있던 나설아가 머리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사실 이 일들은 전부 나로부터 시작된 거잖아…그러니까 스승님은 놔줘. 내가 노비가 되어서라도 빚을 갚을 테니까.”

나설아의 발언에 나원승과 나원철은 화들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글쎄…노비 하나가 수 천 명의 목숨 값만큼 비싸단 말이야?”

이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신랄한 말에 나씨 가문의 삼대는 모두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사제가 서로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이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무언가 익숙하고 따뜻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한 달 안에 운남종을 해체해. 아니면 다 같이 무덤으로 가든지.”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 운집한 수천 명의 제자들이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떨궜다. 목숨을 부지했다는 안도감과, 가한제국 최고의 명문 종파가 이토록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비통함이 동시에 가슴을 채워나갔다.

“이게 네가 말한 복수야?”

이에 진율희는 한참동안이나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다가 고뇌가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준…이제 운남종은 너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아. 조금만 너그럽게 봐줄 순 없는 거야?”

“옛정을 봐서 이 정도 양보한 거야. 네 손으로 해체 시키거나 아님 내가 다 죽이거나. 선택은 네가 해.”

하지만 이준의 태도는 단호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에 수 백, 수천 개의 눈동자가 진율희에게로 집중됐다. 이제 수 천 명의 목숨이 오로지 그녀의 결정에 달려있었다.

“그래…여기서 마무리 짓자. 더 얘기 해 봤자야.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운남종 제자들을 살려두는 조건으로 내가 책임지고 한 달 안에 운남종을 해체시키겠어.”

결국 율희가 이준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광장 곳곳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약속 반드시 지켜.”

이준은 그 짤막한 한마디를 끝으로 초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초아 공주, 군대를 해산 시키시죠.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잠시 산 아래 쪽에 대기하다 흩어지는 게 좋을 듯합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듯하자, 공주는 곧바로 손을 들어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오늘 다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약속드린 보수는 상처가 치료되고 난 뒤 바로 올리겠습니다.”

이준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가철, 해길 등의 사람들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을 뿐 이었다.

“하하! 급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씨 가주님의 건강이 아니겠습니까.”

한편, 은평강을 비롯한 세 사람은 완전히 입이 귀에 걸린 상태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갑자기 이준의 등 뒤에 달린 청록색의 날개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의 몸뚱아리가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동생! 괜찮은 거야?”

떨어지는 이준을 붙잡은 것은 동해였다.

이준은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괜찮은 척 손을 휘저었지만,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끔찍한 고통에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부상이 심각해. 게다가 연금비약으로 염력을 강제로 끌어올렸으니, 어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어.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니 말이야…”

“하하, 고마워요 선배님… 그런데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할 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동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준은 말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운산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할 일은 바로 운산의 시체를 저장반지에 넣는 것이었다. 비록 스승의 영혼은 적의 손에 넘어갔지만, 언젠가 약로의 영혼을 되찾고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종의 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체를 챙기는 이준의 모습에 진율희는 인상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죠, 선배님”

“그래. 가지.”

동해가 기진맥진한 이준을 든 채 날개를 펼쳐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가철, 해길, 메두사 등의 강자들도 줄줄이 그 뒤를 따라 운남산을 떠났다.

* * *

“설아야. 이 일이 다 끝나고 나면 너도 집에 돌아가 보거라. 어머니랑 못 본지도 삼 년이나 되지 않았니.”

이준과 그가 데려온 강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뒤, 나원승과 나원철이 나설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듯 말했다.

나설아가 긴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도 비로소 마음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진율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곧바로 날개를 펼쳐 황도를 향해 날아갔다. 이미 쑥대밭이 되어버린 운남산에 잠시라도 남아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승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어떻게 하겠니… 이준 입장에서도 큰 양보를 한거야. 남은 장로들과 함께 운남종의 재산이나 보물들을 정리해서 제자들이 떠나기 전에 여비라도 챙겨줘야지. 그래도 운남종의 제자라면 어디 가서 굶어죽지는 않을 거야. 다들 실력들은 있으니까.”

햇빛이 구름 사이로 부서져 내리며 진율희의 몸을 따뜻하게 비췄다. 입가에 걸린 허탈한 미소가 그녀의 심경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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