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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45화 (345/818)

제345화. 운남종의 종주

약로는 더욱 상황이 나빴다.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한 약로의 영혼체는 도영호가 뿜어낸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 하고 거의 흩어지기 직전이었다.

“킥킥. 약로. 내가 말했지. 너는 내 손을 벗어날 수 없어!”

다음 순간, 음산한 웃음 소리와 함께 약로의 앞에 검은 형상이 나타났다. 이에 메두사는 피를 토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검은 형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흥!”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메두사의 모습에 도영호가 콧방귀를 뀌며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검은 장막이 펼쳐지며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칠흑같은 장막에 메두사를 묶어둔 도영호는 칼날 같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약로의 영혼체를 공격했다.

하지만 약로는 상대의 공격을 막지 않고 아래로 시선을 옮겼고, 그 순간 희미한 빛줄기 하나가 이준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이제 널 지켜주기 어려울 것 같구나. 앞으로는 스스로 해결해 나가거라. 껄껄, 나도 언제까지나 네 뒷바라지나 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이 관문만 지나면 너는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삶을 살 것 같구나. 다시 만날 그 때를 기다리마.”

빛이 이준의 이마에 닿는 순간, 온화한 노인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너무 걱정 말거라. 네 스승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테니. 이 불은 얼음불꽃의 정수의 본체다. 차분히 익혀나가면 언젠가는 네 힘으로 얼음불꽃의 정수를 쓸 수 있을게다. 내가 목숨을 잃으면 네 이마에 새겨진 불꽃 문양이 절로 사라질게야. 그 땐 얼음불꽃 정수의 주인이 사라지는 셈이니, 네가 흡수해 「불개」를 진화 시키거라.”

“아아, 그리고 내가 영혼의 저장반지에 숨겨둔 ‘뼈의 반지’ 안에는 네 둘째 형이 삼킨 초월의 비약의 해독법이 들어있으니, 내 옛 친구인 ‘바람의 신’을 만나면 반지를 보여주거라. 그럼 친구가 널 도와줄 것이다.”

“하하하, 안심하거라. 영혼의 궁전이라 해도 감히 이 약로의 영혼을 그리 쉽게 소멸시키는 못할게다. 나는 너를 믿고 최선을 다해 버텨볼테니, 너도 죽을 힘을 다해 강해지거라. 하지만 힘을 갖추기 전에는 절대로 영혼의 궁전에 맞서서는 안 된다.”

부드러운 웃음 소리가 뇌리에서 천천히 흩어지며 이준의 이마에 하얀색의 불꽃 문양이 새겨졌다.

그 순간, 도영호의 손톱이 약로의 몸을 꿰뚫었다.

한조각 빛도 없던 하늘에 갑자기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더니 검은 장막이 벌어지며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약로의 영혼을 저장반지 안에 봉인하는데 도영호는 자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메두사를 무시한 채 곧바로 이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킥킥. 스승과 함께 지옥으로 가주는 것이 제자의 도리지!”

말을 마친 도영호는 눈 깜빡할 사이에 메두사 여왕의 추격을 벗어나 이준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이준은 마치 죽은 사람마냥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젠장! 빨리 이 녀석을 데리고 가!”

동해와 가철이 몸을 날리려는 찰나, 돌연 도영호의 눈 앞에 자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보람이었다.

“뭐해! 어서 데리고 가라고!”

보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동해는 빠르게 염력을 쏟아내 멍하니 서있는 이준을 끌어당겼다.

“이 계집애가 죽고 싶어 환장했군!”

갑작스레 나타난 훼방꾼에 분노한 도영하가 손을 휘두르자, 또 다시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보람을 덮쳤다.

그 순간, 보람의 눈동자에서 기이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쏟아져 나온 보라색 광채는 보람의 양팔을 휘감으며 단단한 보라색 수정으로 변화했고, 단단한 수정층에서는 산 하나도 거뜬히 부술듯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쾅!

둔탁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도영호가 에너지를 응집 시킨 공격이 파동을 일으키며 천천히 흩어졌다. 보람이 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보람이 검은 안개를 막아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무지개 빛 장검하나가 도영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

“메두사 여왕님께서는 굳이 저희와 척을 질 이유가 없을텐데요?”

칼날처럼 예리한 손톱으로 메두사 여왕의 장검을 막아낸 도영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여전히 예의바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메두사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또 다시 염력을 끌어 올렸고, 이에 도영호의 얼굴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이준…운이 좋군. 오늘은 일단 네 스승을 만나러 온 셈이니 여기까지만 하지. 다음에는 네 스승과 함께 저승길로 보내주마. 킥킥…”

이번에는 정체불명의 꼬마와 메두사에게 포위되자, 결국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도영호는 냉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개새끼! 스승님 영혼을 내놔!”

그러나 도영호가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벽력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이준의 등 뒤에서 청록색의 불꽃 날개가 돋아났다.

만신창이인 몸으로 자신을 공격하려는 이준의 모습에 도영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 때, 메두사가 번개처럼 날아들어 이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충동적으로 굴지 마. 네 스승을 살리고 싶다면 냉정해져야 해. 네가 잡히면 누가 네 스승을 구하지?”

메두사의 따끔한 한마디에 이준은 찬물을 끼얹은 듯 머리가 식는 것을 느꼈다.

이준이 냉정을 되찾은 듯 하자, 도영호의 입가에서 아쉬움 섞인 탄식이 새어나왔다.

“끌끌…네 스승은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니니 우리 궁전에서도 곧바로 어떤 조치를 취하진 않을거다. 그러니 우리를 찾아오거라. 내가 기다려주마.”

도영호는 그 말을 끝으로 검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고, 이준은 도영호가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고 온 몸을 파르르 떨었다.

스승을 잃은 제자는 그 상태로 한참이나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다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 앉았고, 피눈물이라도 흘린 듯 새빨갛게 충혈된 이준의 눈을 보고 메두사마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 스승을 구하려면 우선 실력을 길러야지. 모든 희망을 너에게 걸고 사라졌으니 실망 시키지 말라고. 이제는 너는 혼자도 아니고 이씨 가문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으니 뭔가 방법이 있을거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고통에 차 울부짖는 이준의 모습에 동해, 가철 등의 사람들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진율희 그리고 나설아 역시 고통에 신음하는 이준을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 * *

“스승님, 이제 어쩌죠? 운산 스승님이 돌아가셨으니…”

한참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나설아가 처참하게 널브러진 장로들의 시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율희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상황을 자신의 제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물론 운산의 죽음에 관해서도…

설명을 이어나가는 내내 진율희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준의 분노가 다시 운남종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었다. 그의 스승을 잡아간 영혼의 궁전이 운산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분명했으니, 이준이 다시 미쳐 날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나설아와의 갈등에 이어 아버지의 납치, 그리고 스승의 문제까지…실로 이준과 운남종의 악연은 끝을 모르고 계속됐다.

진율희와 나설아는 약속이나 한 듯 광장에 엎드려 미친 사람마냥 통곡하는 이준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오늘 운남종에 찾아온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 * *

온 산에 울려 퍼지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갑자기 광장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숨이 끊어져라 울부짖던 이준이 고개를 드는 순간, 운남종의 제자들은 온 몸의 피가 말라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준의 표정을 살피던 동해도 흠칫 놀라 곧바로 그의 곁까지 날아갔다.

상대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진율희의 안색 역시 더욱 더 새파랗게 변했다.

“너…너 뭘 어쩔 셈이야!”

운산이 죽고 장로들마저 죽임을 당한 이상, 사실상 운남종의 운명이 자신의 어깨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 이준과 가철, 해길, 동해 같은 강자들을 상대한다면 그 결말은 불 보듯 뻔했다. 나설아가 강해졌다고는 하나 그래봐야 투왕 최정상급 수준. 오늘 이준의 한마디로 인해 운남종은 정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준은 멍하니 텅 빈 허공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적막이 계속되기를 한참…갑자기 이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뭘 어쩌긴? 아버지를 납치하고, 가문 사람들을 개돼지 잡아 죽이듯 학살하고, 이젠 스승님까지 영혼의 궁전에 끌려갔어…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모자랄 판에, 뭘 어쩔 셈이냐고? 하하하! 아하하하! 이런 개 같은 것들!”

실성한 사람처럼 비통하게 울부짖는 이준의 모습에 진율희 역시 죄책감을 느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설아의 일부터 시작해 그의 아버지, 가문, 그리고 스승의 일에 이르기까지, 운남종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 사실이었다.

“스승님이 하신 일들이… 잘못된 건 나도 알아. 인정할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도 운남종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잖아. 아직도 분이 안 풀린 거야?”

“분이 안 풀렸냐고?”

진율희의 질문에 이준의 두 눈이 더욱 더 차가운 빛을 발했다.

“이만큼 했으니 분이 풀리지 않았냐고? 우리 가문 사람들과 아버지의 목숨과, 스승님의 목숨을 두고, 감히 분이 풀리지 않았냐고!?”

“우리도 많은 사람을 잃었어, 스승님은 물론이고 장로들…그리고…”

“푸하하!”

진율희의 말을 듣던 이준은 또 다시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너희들은 왜 유씨 가문까지 찾아와 이씨 가문의 남은 사람들을 모두 학살하려 했지? 그만큼 했으면 분이 풀려야 하는 것 아니야? 아버지를 잃고, 형이 불구가 되고,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죽임을 당했어! 그런데 너희들이 멈출 생각을 했던가? 내가 오늘 운남종을 박살내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은 이씨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을 죽일 때까지 계속했을 텐데?”

이준의 가시 돋친 말에 진율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운남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 이씨 가문에 일에 관해서는 우리 운남종이 잘못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는 운남종의 종주야. 네가 끝내 운남종을 완전히 멸망시키겠다고 하면… 잘잘못을 떠나서…내 책임을 다해야 해.”

“진율희…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운남종을 용서할 것 같아? 이씨 가문과 운남종은 같은 하늘아래 존재할 수 없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단 한 가지 사실만이 선명해졌다. 이준과 진율희, 그리고 이씨 가문과 운남종의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 말이다.

결국 진율희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굳은 표정으로 푸른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렇다면 나부터 쓰러뜨려.”

자신을 향해 칼을 뽑아 드는 율희의 모습에 이준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준의 성난 목소리에 진율희는 붉은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운남종의 종주로써 해야 할 마지막 도리를 져버릴 수는 없었다.

이준은 진율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저장 반지 속에서 연금비약 한 무더기를 꺼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연금비약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빠른 속도로 염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제로 염력을 보충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만큼 염력이 빠르게 소진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준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동생, 나서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

이성을 잃은 듯한 이준의 행동에 동해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직접 해야 해!”

하지만 이준은 갈라진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연금비약을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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