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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37화 (337/818)

제337화. 혼례

마수 간에 이런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하나는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월등하게 뛰어나기 때문이었고, 나머지 한 가지는 한 마수가 압도적으로 상위종인 경우 하위종인 마수는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력으로 따지자면 자신이 보람보다 한 수 위였으니, 황실의 수호 마수는 곧바로 보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느꼈다.

‘저 꼬마 여자아이도 마수란 말인가? 내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면…상고 시대 마수의 혈통이라도 된단 말인가?’

“자자,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어서 시작하지.”

그렇게 두 마수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가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준비 됐겠죠? 시작할 때는 조금 아플 수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좀 전의 기 싸움 덕분인지 바다 괴물의 말투는 한결 온순해져 있었다.

곧이어 이준이 가볍게 웃으며 청록색 불꽃을 소환해 혼의 구슬을 감싼 뒤 손가락을 튕겨 불꽃에 휩싸인 연금비약을 바다괴물의 머리 위에 올려 두자, 신비한 광채가 폭발하며 바다 괴물의 온 몸을 휘감았다.

청록색의 빛이 몸에 닿는 순간, 괴물이 고통스러운 듯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 표면에 있던 상처가 천천히 치유되며 온 몸에서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수호 마수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걸 감지한 가철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빛이 쏟아지기를 한참, 마침내 연금비약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청색의 연금비약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이준 역시 청록색 불꽃을 거두어 들였다.

“웬만한 상처는 이제 다 치료됐을 겁니다.”

“정말 고맙네. 앞으로 이씨 가문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하지! 내 약속하네!”

“아닙니다. 다 제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니 그리 감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틀 후의 전쟁에서 황실이 약조를 지켜주시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하하하하! 걱정말게! 내 황실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가철의 약속을 받아낸 이준의 입꼬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운남종과의 전쟁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으니, 다시 한 번 가철과 수호 마수라는 두 강자의 확답을 받아냈다는 것은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성과였다.

수호 마수의 상처를 모두 치유한 뒤, 이준은 조용히 운남종과의 전쟁에 대비했다.

그 사이 황실, 연금술사 협회, 유씨 가문, 문씨 가문, 나씨 가문에서는 운남종과의 일전을 준비하기 위해 가한제국 곳곳에 뿌려진 가문의 강자들을 불러들였다.

가한제국을 호령하는 가문의 강자들이 속속 황도로 모여드는 모습에 모든 사람들은 곧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운남종은 마치 이런 모든 일들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듯 그저 자신들의 본거지인 운남산에 틀어박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 *

이씨 가문 저택의 뒤뜰.

이준은 높은 건물 위에 서서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칼날 같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이씨 가문의 운명은 한 번의 전쟁으로 결정 될 것이다. 이기면 가한제국 전체에 이씨 가문의 이름이 퍼져나가겠지만, 패배한다면 이씨 가문이라는 이름은 운남종에 대적하다 멸망한 어리석은 가문으로 역사 속에 기록되리라.

그렇게 이준이 상념에 잠겨있을 때,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 하나가 느껴졌다.

“며칠간 안 보여서 어디 가버린 줄 알았네.”

이준이 입을 열자 등 뒤의 한 공간에서 파동이 일어나며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이 나타났다. 메두사 여왕이었다.

“흥, 약속한 연금비약만 받으면 제발 남아달라고 빌어도 떠날테니 걱정하지 마시지.”

“정말 그것만 받으면 떠나게?”

이준이 장난스럽게 되묻자, 메두사의 얼굴에 얼음처럼 싸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흥, 네 놈이 갈수록 기고만장해 지는구나. 내가 혼백의 비약을 먹고 네놈의 목을 몸에서 떼어놓으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그녀는 금방이라도 이준에게 달려들 듯 살벌한 말들을 쏟아냈지만, 메두사의 살기등등한 말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피식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글쎄…정말 칠색 이무기의 영혼 때문에 날 못 죽이는 거야? 정말 내 목숨을 가져가려면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어. 정말로 이무기 때문에 손을 못 쓰는 거라면, 운산의 손에 죽도록 내버려두기만 해도 간단히 해결될걸? 이번이 기회라고.”

“흥, 그럼 바라는대로 해주지. 운산이 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 죽여줬으면 좋겠군.”

“하하, 그래.”

계속되는 메두사의 살벌한 말을 듣던 이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시간이 늦었어. 들어가 쉬는 게 좋을 거야. 내일이면 전쟁이 시작되니까. 죽고 사는 일은 하늘에 맡기자고.”

말을 마친 이준은 빠르게 계단 쪽으로 몸을 날려 메두사의 시야를 벗어났다.

메두사 여왕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말없이 자리를 지키다 조용히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황궁.

“십 만 명의 황군이 모두 운남종과 멀지 않은 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내일 전쟁이 시작되면 그들이 바로 산을 봉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운남산으로 가는 것은 할아버님과 바다 마수, 그리고 황실의 투왕 셋입니다.”

“승산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너무 걱정 마세요. 제 아무리 운남종이라 해도 이 정도 전력이면 어찌할 도리가 없을 거예요.”

“휴우. 그랬으면 좋겠구나…이번 전쟁에 가한제국의 명운이 걸려있으니…”

* * *

유씨 가문.

“동해 선생님, 가문의 정예병을 총 집결 시켜두었습니다.”

주희가 창가에 서 있는 노인을 향해 공손히 보고를 올리자, 노인이 애써 담담한 척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준비는 끝났으니…하늘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지켜볼 일만 남았구나.”

* * *

하늘이 밝아오자, 황도의 거대한 거리 안에 각 세력의 강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준비 되셨나요?”

마침내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자, 자리에 모인 강자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으로 향했다.

“우리 황실은 오늘 이씨 가문과 힘을 합쳐 운남종을 처단하겠다!”

“유씨 가문도 이씨 가문과 힘을 합쳐 운남종에 맞서겠습니다!”

“연금술사 협회 역시 더 이상 운남종의 횡포를 두고 볼 수 없네!”

“문씨 가문도 마찬가지요!”

“나씨 가문도 힘이 되겠습니다!”

각 세력의 수장들이 힘찬 목소리로 운남종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자, 이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마침내 그 날이 온 것이다.

* * *

한편,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은 운남산 곳곳에는 화려한 붉은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종주 진율희의 결혼은 운남종 사람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게다가 진율희와 혼인을 치르게 된 상대는 그 유명한 단왕 고하였으니,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삼대가문과 황실, 이씨 가문이 모두 힘을 합쳐도 자신들에게 맞설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듯 평화롭게 잔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근원은 바로 가한제국 유일의 투종 강자, ‘운산’이었다.

“하하! 오늘 이후 자네는 진정한 운남종 사람이 되는 걸세. 내가 없어지면 자네와 율희가 운남종을 이끌어주게!”

운산이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고하는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직 한창 때인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 예상이 맞다면 이준 그 잡놈이 오늘 운남종에 쳐들어 올 것이네. 그 녀석은 항상 율희를 탐냈지. 율희도 그 녀석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적이 있었고. 아마 혼사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어떻게든 망치러 오겠지.”

“그 누구도 저, 단왕 고하의 혼례를 망칠 수는 없습니다.”

기대감에 부푼 고하의 표정에 운산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이 던진 회심의 수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걱정 말게. 이준이 아니라 누가 나타나도 자네와 율희의 혼례를 망칠 수는 없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걱정 없이 이 기쁨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 * *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 운남산의 축제 분위기는 정점에 이르렀다.

커다란 광장은 온통 붉은색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고 운남종의 제자들 역시 하나 같이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단상 위에는 운산이 앉아 있었다. 그의 주위로는 축하 인사를 전하러 온 하객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 고하는 단정한 혼례복으로 갈아입은 채 축하하러 온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신부 도착이요!”

시끄러운 광장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리자,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 되었다. 사람들의 눈이 향한 곳에서는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고, 주위로는 열댓 명의 시녀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주인공이 등장하자 광장은 더욱 활기를 띠었지만, 정작 신부의 얼굴은 목각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 *

“하하! 오늘 제 사랑하는 제자의 결혼식이 진행 됩니다. 제가 오늘 운남종을 대표해 자리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운산의 한 마디에 광장 안에서 파도처럼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가한제국 최고의 연금술사와 가한제국 최고 종파의 후계자가 만났으니, 이만하면 그야말로 천생 연분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지요.”

운산의 축사가 계속 되는 동안, 고하는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미소로 화답하면서 연신 율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시체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럼 가한제국의 수많은 강자들 앞에서 진율희와 고하의 결혼을 정식으로 선언합니다!”

쉬익-

하지만 즐거운 분위기가 계속 되던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울리며 축제의 끝을 알렸다.

갑작스러운 바람 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리는 찰나,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콰직!

다음 순간, 묵직한 충돌음과 함께 검은 형상과 운산이 맞부딪히고,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 하나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하하, 운산! 최후의 만찬은 잘 즐기셨나?”

하늘에서 우렁찬 웃음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위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등 뒤에는 형형색색의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운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청록색 날개를 펄럭이는 청년을 쏘아보았다.

“흥, 꼬리를 말고 도망친 개 주제에 실력이 조금 늘었다고 아주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고작 3년 만에 이 운산을 꺾을만한 실력을 쌓았다고 생각하느냐!”

운산의 한마디에 광장 안에서 파란이 일었다. 그의 말로 미루어보아, 상대는 3년 전에 운남종에 패해 달아난 이준이 틀림없었다.

“저 사람이 정말 이준이야?”

“하하, 그런 것 같은데? 운남종과 원수지간인 건 알았지만 3년만에 다시 가한제국으로 돌아올 줄이야.”

“유씨 가문을 치러갔던 운남종 부대가 이준 손에 다 매장됐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제 아무리 운남종이라도 어렵지 않겠어?”

아래쪽에서 떠드는 소리를 얼핏 들은 이준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운산을 가리켰다.

“운산. 오늘 네 머리를 베어 이씨 가문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주마.”

하지만 운산은 이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곧바로 해길과 가철을 가리켰다.

“가철, 해길. 저딴 애송이에게 휘둘려 운남종에게 맞서겠다는 건가?”

“운산. 우리가 이준에게 휘둘려 여기까지 왔겠나? 지난 3년 간 자네가 벌인 일들을 생각해보게.”

“으하하! 좋아, 좋아. 아주 좋아!”

가철의 말에 운산은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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