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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25화 (325/818)

제325화. 내부 회의

“문철 여단장님, 오랜만입니다.”

“저…정말 네가 이준이란 말이야?”

“가한제국에서 저 말고 이준이 또 있었나요? 예전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강자가 되어 돌아온 이준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문철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여댔다.

“크흠… 하하! 아닐세, 사실상 자네 실력으로 관문을 지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는걸…”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 조절을 못해서 바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네요. 죄송합니다.”

거듭 고개를 숙이는 이준의 모습에 문철은 더욱 민망한 듯 손사레를 쳐댔다.

“아, 아니야 아니야. 왜 이러나. 자네가 아니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일세.”

“하하,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3년 만에 가한제국에 오는 거라 이곳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런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운남종이 가한제국 최고의 세력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황실과 충돌하는 것은 확실히 예삿일이 아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준은 가한제국 황실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군인인 문철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흐음…그게…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들어가서 얘기해도 되겠나?”

* * *

문철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엉망이 된 광장을 정리할 것을 지시한 뒤 이준과 함께 요새의 중심에 위치한 여단장의 거처로 향했다.

“하하. 그렇게 헤어지고 삼 년 만이군. 고작 3년만에 이렇게 강해지다니 대체 비결이 뭔가?”

대청에 올라선 문철은 곧바로 시녀들에게 차를 내오라고 명한 뒤 이준과 함께 온 이들의 면면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운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강자들이었다.

“하하, 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요. 그보다 여단장님…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제 아무리 운남종이라 해도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준의 질문에 문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흐음…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까. 자네가 가한제국을 떠나고 반년도 안돼서 부터였을 걸세. 운남종에서 새로운 제자들을 대거 모집했지. 뿐만 아니라 몰래 제국 곳곳에 제자들을 보내 반대 세력을 숙청하거나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나갔어. 삼대가문이나 황실도 운남종의 그런 작태를 알고 있었지만, 투종이 된 운산이 뒤에 떡 하고 버티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손가락만 빨 수밖에 없었지.”

말을 마친 문철은 잠시 이준의 눈치를 살피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서 몇 달 뒤… 갑자기 운남종이 이씨 가문을 습격했지. 정말 끔찍했네. 마치 이씨 성을 가진 자 전체를 제국에서 지워버리려는 것 같았어.”

문철은 또 다시 말을 멈추고 이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준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는 듯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문철은 이준의 그런 태도에 더욱 큰 공포를 느꼈다.

“어찌됐든, 그 사건 이후로 이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제국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숨어 살게 되었지. 덕분에 찾기가 쉽지 않을거야. 그 후로는 행방이 묘연해. 그리고…얼마 전에 알게 된 소식인데, 유씨 가문에서 이씨 가문 사람들을 숨겨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더군.”

이찬의 말에 따르면, 이씨 가문이 운남종에 의해 화를 입던 날, 동해가 유씨 가문의 사람들을 보내 이씨 가문 사람들을 구출했다고 했으니, 아마도 주희와 동해가 아직까지 이씨 가문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리라. 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려 운산에 대해 물었다.

“혹시 운산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까요?”

“흐음…글쎄…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운남종에서 지시를 내릴 뿐 직접 나서는 일은 없으니까. 다만 현재 운남종의 종주는 진율희가 아니라 전임 종주였던 운산이 되어있다는 것 정도…그리고 3년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정도가 전부일세.”

“네? 운산이 종주가 되었다니요? 그럼 진율희 종주는요?”

전임 종주가 현 종주를 밀어낸다는 것은 어떤 세력에서도 없는 일 이었다. 차기 종주가 전 종주를 몰아낸다면 모를까, 어째서 은퇴한 전 종주가 현 종주를 몰아내고 전권을 잡는단 말인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운남종을 떠나고 얼마 안 되서 운산에게 밀려났네. 그리고 운남종이 이렇게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 딱 그 시점부터였지.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지만, 이 일이 황실에 전해진다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 사실 며칠 전에 황실에서 연통이 왔는데…”

설명을 이어나가던 문철은 한참이나 망설이며 차를 들이키다가 결심을 굳힌 듯 굳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운남종이 삼대 가문을 칠 거라고 하더군. 물론 우리 문씨 가문이나 나씨 가문에 정말 손을 댈지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유씨 가문과의 전쟁은 거의 기정 사실인 것 같더군.”

“왜죠?”

“하하. 너도 아마 잘 알 거야. 유씨 가문의 동해라는 투황이 너와 연이 있다는 게 구실이지. 그리고 유씨 가문에서 이씨 가문 사람들을 숨겨주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된 것도 사실 이 일 때문이지. 황실에서 보낸 정보에 따르면, 운남종이 유씨 가문을 치려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당분간 제가 가한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비밀로 해야겠군요. 부하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그럼 오늘 일어난 일도 보고를 늦춰야겠군.”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설마…황도로 갈 생각인가?”

“시간이 없어요. 여기서 오래 머물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바로 일어나보겠습니다. 나중에 일이 잘 해결되면 다시 찾아와 보답을 하겠습니다.”

“하하, 보답은, 됐네 됐어.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보답은 무슨.”

“아닙니다. 언젠가 꼭 돌아와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허…참…그래, 그럼 맘대로 하게나.”

준은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문철 역시 그를 붙잡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상황이 얼마나 촌각을 다투는 일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대청을 나선 이준과 그의 일행들은 곧바로 비행 마수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렇게 준이 이끌고 온 십 여 마리의 비행 마수와 백 여 명의 강자들은 빠른 속도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 * *

거대한 산봉우리가 외롭고 황량한 들판에 우뚝 솟아 있었다. 칼날 같이 날카로운 산이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3년이 지나도, 1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이 신비롭고 장엄한 산은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정상에 위치한 운남종의 분위기는 불과 3년 만에 이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지금 운남산 정상에 위치한 거대한 광장에서는 칼 소리와 함성 소리, 욕설이 가득해, 예전의 경건하고 초연한 느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광장 뒤편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에 무장한 병력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양새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운남종 특유의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변해버린 거대한 건물의 중앙에는 아름다운 구름 무늬가 새겨진 백색의 도포를 입은 백발의 여인 하나가 서 있었다.

여인의 주위로는 운남종의 장로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운범쪽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운산의 질문에 자리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종주님…아직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흥, 그깟 조그마한 요새 하나를 치는데 무슨 시간이 이리 오래 걸린단 말이냐. 5일 안에 반드시 국경을 손에 넣으라 전하거라. 그리고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야. 황실의 군대는 이제 모두 운남종의 소유이니라.”

“네!”

“허허허… 종주님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운남종의 제자들을 은밀히 파견해 제국 전체를 손에 넣으시다니…”

중년의 사내 하나가 운산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시작이니라. 가한제국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면 운남종의 힘도 더욱 커지겠지. 그 때가 되면 투기대륙 서남지역 전체가 운남종의 영역이 될 것이다. 그럼 운남종은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강대한 세력이 되겠지.”

“허허. 종주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 때는 서남 지역의 모든 세력이 운남종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

사내의 아첨에 기분이 좋아진 운산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분부한 일은 어떻게 됐지?”

“종주님의 명에 따라 인원을 소집했습니다. 종주님이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황도로 들어가 유씨 가문을 뿌리 뽑을 수 있습니다! 다만…동해라는 늙은이를 상대할 자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동해’라는 이름에 다시 기분이 불쾌해진 듯, 운산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오른 편에 앉아 있는 두 노인을 가리키며 명을 내렸다.

“운기웅, 운형. 이번에는 너희 둘이 부대를 이끌어 유씨 가문을 깨끗하게 쓸어버리거라. 잊지 마. 그리고… 유씨 가문을 정리하면서 이씨 가문의 남은 인간들을 모조리 찾아내거라!”

“명 받들겠습니다!”

운산의 분부에 내내 침묵을 유지했던 노인 두 사람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하하. 운기웅 장로와 운형 장로께서는 3년 전 종주님의 도움을 받아 투황이 되셨다 들었습니다. 두 분께서 나서서 도와주신다면 제 아무리 얼음왕이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요!”

운기웅과 운형 두 장로가 동해를 상대한다는 말에 상황을 보고하던 장로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다.

“너희의 임무는 유씨 가문을 비롯해 남은 이씨 가문의 놈들을 철저히 말살 시키는 것이다. 방해하는 자는 상대가 누구라도 모두 죽여라.”

운기웅과 운형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운산은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손을 내저었다.

“그럼 각자 자리로 돌아가도록. 유씨 가문은 곧 정리하는 걸로 하고.”

운산의 말에 자리에 있던 장로들이 일사분란하게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춘 뒤 대전 안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모든 장로들이 자리를 비운 뒤…갑자기 대전의 구석진 곳에서 새카만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잊지 말게. 절대 이씨 가문의 씨앗을 남겨둬선 안돼! 지난 번 일은 조금 실망스러웠네.”

검은 연기가 운산을 향해 이동하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그런 손바닥만한 가문 하나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거지?”

“쓸데없는 호기심을 갖지 말게. 자네는 그저 우리와의 약속에 따라 이씨 가문을 말살시키면 되는 거야.”

정체불명의 존재와 이야기를 나누는 운산의 얼굴은 장로들의 앞에서 보여주었던 위엄 넘치는 그것과는 달리 어둡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씨 가문을 다 잡아 죽인다고 얻는 것도 없을 텐데?”

“아니. 우리가 찾는 물건은 분명 이씨 가문 손에 있다. 누가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못 찾는다면 가한제국에서 탈출한 이준을 찾아가는 수밖에.”

“이준? 흥, 그 놈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리가…”

“큭큭…이거이거, 소식이 느리군. 흑각성에서 이준을 본 자가 있다. 게다가 투황급 강자를 죽였다고 하더군.”

“뭐…뭐라고?”

사내의 말에 운산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물들었다. 투황을 죽였다는 것은 이준이 상급 투황, 최악의 경우 투종급의 실력을 지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게 일 처리를 잘하지 그랬나. 자네가 3년 전에 일을 확실히 처리했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을 텐데 말이야.”

사내의 모욕적인 언사에 운산의 눈빛이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흥, 투황 하나 잡아 죽였다고 이 운산을 어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끌끌… 그래, 부디 이번에는 깔끔하게 마무리를 좀 해주게. 우리 입장에서도 그게 좋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다음 일은 상상에 맡기지.”

검은 안개는 그 말을 끝으로 공중을 맴돌다가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잠시 후, 운산이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갈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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