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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24화 (324/818)

제324화. 문철

성 중심부의 넓은 뜰에서는 두 부대가 마주한 채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무기는 금방이라도 앞에 있는 적들의 살을 가를 기세로 더욱 섬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모성원. 네가 감히 국경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나를 치려하다니, 이번 일이 황도에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냐!”

“하하. 문철, 여전히 머리가 안 돌아가는군. 설마하니 내가 혼자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뭐라고…?”

모성원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린 문철의 등이 순간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설마 운남종이…!”

“킥킥…문철, 정말로 눈치가 없구나. 물론 그 덕분에 일을 꾸미기는 수월했지만 말이야.”

“이…이는 황실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흥, 가한제국은 이제 곧 운남종의 것이 될텐데, 그깟 황실의 권위 따위를 두려워 하겠느냐?”

“이…이노옴!”

분노한 문철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옷차림을 한 십여 명의 투사들이 광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몸놀림이었다.

특히 무리의 가장 앞에 서 있는 노인에게서 풍겨 나오는 위압감은 모성원의 전의를 잃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설마 운남종의 장로인가?”

노인의 등장에 문철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그는 수 년 동안 투령 계급에 머물다 이제 막 투왕 계급으로 올라섰지만, 아직 1성 투왕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3성, 4성 투왕의 경지에 오른 운남종의 장로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단 한치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하하하…! 모성원, 운남종… 좋다! 힘이 모자라다고 해서 황실에 대한 충정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법. 오늘 네놈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 죽더라도 그리 쉽게 이곳을 넘겨줄 수는 없다!”

“허허…허울뿐인 황실을 위해 대운남종에 대항하려 하다니,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구나. 좋다. 오늘 이 운범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고통없이 죽여주도록 하지.”

상대가 조금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자, ‘운범’의 몸에서 활화산과도 같은 기세로 염력이 터져 나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자신보다 몇 수는 위인 상대의 힘 앞에 문철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각오한 바였으니, 그는 곧바로 저장반지에서 거대한 도끼를 꺼내 자신의 모든 염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막 두 사람이 충돌하려는 순간, 호탕한 웃음소리가 둘의 귓등을 대렸다.

“하하. 3년 만에 찾아왔더니 제법 재미있는 일이 펼쳐지고 있군. 운산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드디어 노망이라도 났나보지?”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존재인 ‘투종’의 경지에 이른 운남종의 종주를 모욕하다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감히 누가 운산 종주님을 모욕한단 말이냐!”

운범은 살기 어린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열 마리가 넘는 대형 비행 마수가 공중을 배회하고 있었다.

곧이어 열 댓 명의 사람들이 마수의 등 뒤에서 뛰어 내려 마당에 착지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강자들이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홍수처럼 범람하던 운범의 기운이 밀려나며 빠르게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운범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한편 문철은 손을 들어 부대원들에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 것을 지시했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누구 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운남종의 종주를 욕보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운남종의 적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무리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이었다. 뭔가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마주친 강자인지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문철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초조하게 발끝을 까딱였다.

청년과 함께 광장에 내려온 자들은 하나 같이 운범 이상의 강자들이었고, 그 중 몇 몇은 어느 정도 수준의 강자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최소한’ 중급 이상의 투왕이라는 의미였다. 대체 이런 강자들이 왜 무리를 지어 가한제국을 찾았단 말인가.

운범 역시 갑자기 나타난 강자들이 뿜어내는 압박감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특히 우두머리로 보이는 청년과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운남종의 장로인 그 마저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자신 혼자서는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운범은 곧바로 태도를 바꾸어 그들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운남종의 장로 운범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어느 곳에서 오신 분들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검은 망토를 걸친 청년은 자신의 할아버지뻘 되는 노인의 인사를 본체만체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알아서 뭐하게.”

청년은 모욕감으로 눈썹을 파르르 떠는 노인을 무시한 채 곧바로 문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체불명의 강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공포를 느낀 문철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뒤로 걸음을 물렸다.

“하하, 문철 여단장님,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예전에 베푸신 은혜 잘 기억하고 있어요.”

이어지는 준의 말에 더욱 놀란 문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 거릴 뿐이었다. 이 정도의 강자들을 우르르 이끌고 나타날 정도의 인물에게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청년의 등 뒤에 걸린 기묘한 검은 송곳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누군가의 이름이 스쳐갔다.

“너… 너는… 이준?!”

문철이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네 놈이 살아있었단 말이냐!”

‘이준’이라는 이름에 운범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운범을 제외한 운남종의 제자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사지를 벌벌 떨기까지 했다. 눈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강자가 ‘이준’이라니,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늙은이도 살아있는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무덤에 들어가면 쓰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면…”

“쳐라!”

하지만 이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함 소리와 함께 운범이 몸을 날렸고, 운남종의 제자들 역시 분분히 몸을 날려 장로의 뒤를 따랐다.

쉬익-

그러나 날카로운 쇳소리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쓰러진 것은 이준이 아니라 운남종의 제자들이었다. 이준과 함께 나타난 강자들이 그들을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운남종의 제자들을 베어버리는 모습에 문철은 온 몸의 털이 거꾸로 곤두서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대체 어떻게 하면 3년 만에 투왕급 강자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투왕급 강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건만, 그 뒤에 있던 수하들조차 운남종의 장로가 이끌고 온 정예들을 단칼에 도륙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도끼부대, 저 자를 쳐라!”

그 때, 운범의 뒤에 숨어 있던 모성원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왔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몇 번 춤을 추자, 그의 부하들 역시 운남종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썩은 짚단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모성원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자리에 풀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좋아. 가한제국에 오자마자 운남종 놈들을 만나다니, 출발이 나쁘지 않군.”

운범의 손에 들린 진청색의 장검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자신의 실력으로 오늘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이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반드시 운남종에 전해야 했다.

결심을 굳힌 운범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은 모성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저 녀석을 붙잡고 있을 테니 너는 달아나서 이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종주님께 알리거라.”

할 말을 마친 운범은 모성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하늘색의 염력 날개를 펼친 채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어서 움직여!”

거듭되는 운범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모성원은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성 벽 쪽으로 내달렸다.

“어딜 가려고?”

하지만 이준이 가볍게 손을 내뻗는 순간, 기이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며 주위의 바위와 나무가 송두리째 뽑히고, 달아나던 모성원이 마치 회오리에 빨려들 듯 이준을 향해 날아왔다.

바로 그 때,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염력을 폭발시키던 운범이 검을 버리고 허공으로 달아났다.

“참으로 교활한 늙은이군.”

기다렸다는 듯이 달아나는 노인의 모습에 이준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범은 처음부터 모성원을 미끼로 자신이 달아날 생각을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에 임동수와 보람이 곧바로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이준은 곧바로 손을 들어 운범을 잡으려는 임동수와 보람을 제지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하지.”

곧이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모성원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이내 은빛 섬광과 함께 이준의 몸이 광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천둥소리와 함께 허공 위에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는 순간, 새하얀 옷을 입은 노인의 몸이 세차게 바닥에 내리 꽂혔다.

“제법 머리를 썼다만, 그 실력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내게서 달아나지 못 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이준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투왕이 아니라 투황이라 하더라도 저 정도로 빠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번개와도 같은 이준의 속도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허공에 있던 준의 모습이 사라지고, 또 다시 광장 위에 새카만 망토를 두른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실로 공포스러운 속도였다.

한편, 바닥에 처박힌 운범은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닦아내며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이준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이준. 네가 날 죽이면 운산 종주님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거다! 지난번에는 운 좋게 목숨을 구했을지 몰라도 두 번은 없어!”

하지만 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싸늘하게 웃으며 손바닥에서 청록색의 불꽃을 피워낼 뿐이었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불덩이가 나타나자, 주위의 공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걱정하지마라. 그 운산도 곧 무덤으로 갈 테니까 말이지.”

그리고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청록색의 불꽃이 주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운범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하고 재가 되고 말았다.

천지의 불꽃으로 인해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온도가 되었건만,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온 몸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이준이 망토 자락을 가볍게 휘두르자, 새까맣게 재가 된 운범의 몸이 바람에 흩날려 깨끗이 사라졌고, 이에 사람들은 더욱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도저히 이제 갓 스물이 된 청년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에 사람 하나를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지워버린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문철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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