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도씨 삼형제
준은 눈을 뜨자마자 다시 「산의 힘」의 수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새로운 무투기는 한번 시전하는데도 너무 막대한 양의 염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말로 무투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염력을 운용하고 인을 맺는 것을 연습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아…아무리 연습해도 매끄럽게 되지가 않아.”
한참동안이나 무투기를 연습하던 그의 발밑에서 갑자기 은빛 섬광이 터져나왔다. 뒤이어 벼락과도 같은 굉음과 함께 이준의 몸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번개의 춤은 이제 2레벨까지는 수련이 된 것 같은데…”
준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두 발 아래에서 번갯불이 튀는 것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번개의 춤」역시 익히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하, 녀석. 드디어 체력을 회복한 게냐.”
그 때, 온화한 노인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더니 이내 반투명한 영혼체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눈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스승의 모습을 보자, 이준의 입가에도 웃음이 걸렸다.
“흐음…상처를 회복하면서 실력까지 증가했구나.”
“천계의 탑에서 나온 지 몇 달이 됐는데 아직도 제 몸 하나 못 가누면 어느 세월에 운남종을 꺾겠어요.”
“운남종이라…하하. 그러고보니 가한제국을 떠난지도 3년이 되었구나.”
“그러게요. 또 3년이 갔어요…”
3년, 공교롭게도 나설아에게 굴욕을 당해 수련을 하던 시절과 같은 시간이었다.
“언제 돌아갈 생각이냐? 지금 실력이라면 운남종과 한판 붙어볼만 하지 않느냐?”
약로의 한마디에 이준의 얼굴에 순간 살기가 돌았다.
“곧이요. 여기서의 일을 다 정리한 다음 돌아가야죠. 흑각성에 제 세력을 만들어 두었으니 운남종과의 전쟁에서 도움이 될 거예요.”
“허허, 녀석…2년 새에 정말 많이 컸구나. 이렇게 멀리 내다볼 줄도 알고 말이야.”
예전의 이준은 아버지가 실종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앞 뒤도 가리지않고 운남종으로 날아간 적이 있었다.
게다가 유일하게 아버지의 행방을 알고 있는 운령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 덕에 아버지에 대한 단서마저 모두 잃었고, 운남종의 원한을 사 가문을 멸문 위기로 몰아넣기까지 했으니, 실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염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크게 성장해 있었다.
“하하…사실 스승님이 없었다면 몇 번이나 목숨을 잃고 말았겠죠.”
약로의 칭찬에 머쓱해진 준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스승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자신은 차가운 시신이 되어 지하에 누워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뻔뻔한 녀석 같으니, 이제 알았느냐? 이 은혜를 어찌 갚을테냐 이 말썽꾸러기 녀석아!”
“하하, 그래서 스승님에게 몸을 만들어 드리려고 이렇게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잖아요!”
2년 만에 다시 만난 사제는 농을 주고 받으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잠시 스승과 투닥거리던 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머나먼 남쪽을 바라봤다.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천 킬로미터…드디어 그 곳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운남종…기다려라.”
* * *
샘화의 널찍한 회의실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시녀들은 대청을 돌아다니며 귀빈들에게 차를 나르고 있었다.
“하하. 이찬 형제님. 연금비약 경매를 연 뒤로 샘화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습니다. 흑맹이 점령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전성기를 맞았어요.”
호탕한 웃음소리가 대청에 울려 퍼졌다. 팔을 드러내고 있는 그 자의 팔뚝에는 포효하는 사자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이씨 가문과 손을 잡은 「사자단」의 주인, 광철이었다.
광철의 웃음 소리에 곁에 앉아 있던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둘 역시 얼마 전 이씨 가문과 손을 잡은 「반달」과 「은빛 칼날」의 수장이었다.
지난 세 달, 그들은 엄청난 돈을 벌어 들였다. 심지어 지난 6개월 간의 수익을 모두 합쳐도 세달간 벌어들인 돈의 반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니,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이 당연했다.
“이게 모두 다 같이 노력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이찬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자, 광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이찬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찬의 뒤에는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음침한 얼굴의 세 남자가 묵묵히 서 있었는데, 생김새가 비슷비슷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형제인 것 같았다.
“이제 도씨 삼형제까지 수하에 두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으시겠군요. 김씨 형제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흑각성에서 세 분을 거두어 드리려는 세력이 없었는데, 이씨 가문을 만나서 참 다행입니다.”
노인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자, 이찬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세 분을 저희 수하에 두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다만 귀빈으로 모시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이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삼형제는 흑각성 최고의 투사인 김씨 형제를 앞에 두고도 고개를 숙일 줄 몰라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로 고집 세기로 유명한 자들이었으니, 자진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면 저렇게 누군가의 뒤에 기둥처럼 서 있을 리가 없었다.
삼형제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서 있자, 세 수장이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나저나 이찬 형제님, 헌데 벌써 세 달이나 가주님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군요. 흑각성의 모든 세력들이 샘화를 탐내고 있으니 이씨 가문의 가주께서 지키고 계셔야 탈이 안 날 텐데요.”
여인의 발언에 나머지 두 명도 덩달아 귀를 쫑긋 세웠다.
비록 처음에는 메두사 여왕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협약을 맺었지만, 이준이 세 달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다 샘화의 이윤은 메마를 날이 없으니 마음속 한구석에 밀어넣었던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세 수장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이찬은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
“저희 삼 형제가 어디 얽매여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요즘은 산에 틀어박혀 귀한 약재를 찾고 있는 것 같더군요. 혹시 얼굴을 보고자 하신다면 불러오겠습니다.”
이찬 역시 흑각성에서 잔뼈가 굵은 자였으니 여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리 없었다. 그가 넌지시 경고의 말을 던지자, 노인이 손에서 찻잔을 놓고 웃음을 지었다.
“이찬 형제님, 곧 있으면 투종이 있는 운남종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가주께서 통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날 이후로 가주께서 아무런 언질도 없이 자리를 비우신지 벌써 석달이니, 저희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괜한 오해는 마시지요.”
“하하. 그럼 오늘 그 얘기를 마저 해볼까요?”
그 때, 갑자기 검은 망토를 두른 소년이 웃음을 터뜨리며 대청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이에 광철을 포함한 세 사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허허, 가주님도 양반은 못 되시는군요.”
“하하, 혹여 제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다른 마음을 품으신 것은 아니지요?”
이준의 위협적인 발언에 세 사람은 온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안에 가한 제국에 갈 계획입니다. 일이 끝나면 약속 했던 황금의 비약을 드리도록 하지요.”
“두 달이요?”
준의 단호한 말투에 세 사람은 잠시 당황한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투종이 거느리고 있는 거대 세력을 상대하려니 덜컥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황금의 비약에 샘화에서 나눈 막대한 이윤을 생각하면 도저히 발을 뺄 수 없었다. 결국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서 계획을 세워야겠군요.”
세 사람은 이준과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황급히 자리를 떴고, 이에 이준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청 안에 자리를 잡았다.
“교활한 인간들 같으니, 틈만 나면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는군.”
“뭐, 처음부터 그들이 의리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잖아?”
동생이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이찬이 이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요즘 샘화는 어때?”
“아주 좋아. 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김씨 형제의 코를 납작하게 했으니감히 누가 우리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겠어. 샘화의 경매장은 이미 흑각성 전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매장이 됐다고. 시장도 매일 같이 발 디딜틈 없이 붐비고 말이지.”
만족스러운 답변에 이준은 씩 웃으며 이찬 뒤에 있는 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세 사람에게서는 투왕 계급의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은 누구야?”
“도씨 형제, 가주님을 뵙습니다!”
세 사람이 엄숙한 표정으로 이준을 향해 무릎을 꿇자, 이찬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씨 삼형제라고, 흑각성 내에서 명성이 자자한 투왕들이야. 하지만 김씨 형제와 마찰이 있어서 조금 입장이 곤란했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연이 닿아서 내가 샘화로 데리고 왔어.”
운남종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세 사람의 투왕이 합류했다는 사실에 이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 환영합니다. 이제 우리 가문의 일원이 되었으니, 김씨 형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이준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김씨 형제가 그들을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주님, 제가 삼형제 중 맏이입니다. 번거롭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첫 째, 둘 째, 셋 째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간단명료한 소개에 이준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 이제 사람들을 모아야 할 것 같아. 모을 수 있는 강자란 강자는 모두 다 끌어 모아 두 달 안에 가한제국으로 돌아가자고.”
“드디어 준비가 끝난거냐?”
동생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이찬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했다. 드디어 가한제국 내에서 쥐새끼처럼 비굴하게 숨어 살고 있는 가문의 일원들을 핍박에서 구해낼 날이 온 것이다.
“나는 잠깐 본원에 들릴테니, 사람들을 모으는건 형이 맡아줘.”
“그래, 걱정 말고 다녀와라. 내가 알아서 하마!”
* * *
본원에 들어서자, 생기발랄하게 길가를 왕래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본원의 학생들이 보다 높은 순위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매일 같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흑각성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준은 메두사 여왕을 대동한 채 본원을 방문한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선이 둘을 향했다. 무시무시한 실력은 둘째 치고,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만으로도 뭇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메두사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눈빛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결국 사람들의 이목이 부담스러워진 이준이 가볍게 신호를 보낸 뒤 곧바로 날개를 펼치자, 메두사 역시 그 뒤를 따라 한줄기 빛이 되어 빠르게 이동했다.
두 사람이 번개처럼 사라지는 모습에 주변을 메우고 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본원에 저렇게 빠른 사람이 있었나?”
“그러게…처음 보는 얼굴인데…저렇게 엄청난 실력자인데 왜 본적이 없지?”
“멍청아, 비석의 수장인 이준이잖아. 천계의 탑에 동상까지 세워져 있는데, 저 사람이 누군지를 못 알아본단 말이야?”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이준을 알아보고 핀잔을 주자, 주위에 몰려있던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이 날아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