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해결방법
“일단 중요한 얘기부터 나누자구나. 구름불꽃은 흡수가 끝난 게지? 그럼 두 개의 불꽃을 융합하는데도 성공했겠구나?”
스승의 질문에 이준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음을 짓더니 손가락을 들어 불을 피워냈다. 그러자 연한 청녹색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융합에 성공했구나!”
이준의 「청연의 불꽃」이 자아내는 신비한 청록색의 불꽃에 약로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천지의 불꽃 하나만으로도 연금술사나 불 속성 투사는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니, 두 개, 세 개를 얻게 되었을 때는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축적된 에너지는 실로 천지를 불태울 수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약로의 흥분한 표정을 바라보던 이준은 씩 웃으며 청록색의 불꽃을 두 덩이로 나누어 보였다. 그러자 신비한 청록색의 불꽃이 푸른색과 옅은 유백색의 불꽃으로 나뉘었다.
“융합 후에도 다시 분리시킬 수 있는 게냐? 놀랍구나…”
“하지만 분리시키면 염력을 더 소모하게 돼요. 나눴을 때는 두 불꽃의 특성을 그대로 쓸 수 있어요. 하지만 파괴력만 놓고 따졌을 때는 두 불꽃을 합쳐서 사용하는 편이 나아요.”
이준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이 녀석의 위력이 천지의 불꽃 중에서 몇 번째 정도나 될까요?”
“흐음…글쎄다. 나도 모든 천지의 불꽃을 본 것은 아니니 무어라 단정 지을 수가 없다만…내가 가진 얼음불꽃의 정수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스승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이준은 아쉽다는 듯 어깨를 한번 들었다 내렸다.
“구름불꽃 융합에 성공했으니 수련법도 진화 했겠구나?”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2격 수준까지는 올라간 것 같아요.”
이준이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확신 없이 답했다.
“그럼 지금 한번 수련법을 사용해 보거라.”
약로가 자신의 심장 부근에 손을 갖다대자, 준은 곧바로 혈관을 따라 염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주위의 에너지가 빠르게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 정련을 거쳐 그의 염력 회오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음.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구나. 하지만 아직도 2격 하에서 중급 수준에 머물러있어.”
약로가 이준의 가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스승님의 육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건가요?”
“흐음…아마도 네가 가진 두 개의 불꽃과 내 얼음 불꽃의 정수가 더해진다면 큰 문제는 없을게다. 그렇지만 연금술로 몸을 만들어 내는데에 필요한 재료들이 하나 같이 희귀하니…시간이 필요할게다.”
“흑각성에 제 세력이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약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찾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내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약재가 필요하거든.”
마침내 스승이 약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이준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다.
“첫째, 뼈와 생명의 비약. 둘째, 7레벨 마수의 피. 셋 째, 투종 강자의 뼈 마디…이 세 가지가 필요하지.”
약로가 언급한 세 준비물에 이준은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뼈와 생명의 비약은 7레벨 최고급 연금비약으로, 죽은 사람의 목숨도 살린다는 소문이 나있는 전설의 영약이었고, 7레벨 마수의 피라면 메두사 여왕의 피를 가져오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투종 강자의 뼈라니…약로의 설명이 끝나는 순간, 준의 얼굴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넋을 놓은 듯한 이준의 표정을 바라보던 약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웃으며 제자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하, 괜찮다. 하나 같이 손에 넣기 힘든 것들이니 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아직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해결해보자구나. 이 노부는 네 마음만으로도 위로가 되느니라.”
하지만 약로의 다정한 말에도 불구하고 준의 얼굴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7레벨 마수라면 투기 대륙 전체를 뒤져도 찾기 어려운 수준의 마수가 아니던가.
설사 어찌어찌 찾는다 해도 7레벨 마수는 투종 최상위급 강자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목숨을 건다 해도 그 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투종 강자의 뼈를 떠올리자니 더욱 말을 잇기 어려웠다. 투종 강자처럼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대부분 강대한 세력을 갖고 있었고, 만에 하나 투종 강자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해도 그 시신은 휘하의 세력에 의해 철저히 보호됐다.
뼈와 생명의 비약도 손에 넣기 쉬운 물건이 아니었다. 7레벨 연금비약은 약로라 해도 온 힘을 다해야 간신히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이었고, 제조에 필요한 약재들이 얼마나 귀한 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평범한 영혼을 수용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데는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이 붙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혼의 힘이 강력할수록 더욱 많은 제약이 붙게되지. 영혼의 힘과 육체의 힘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몸이 붕괴하거나, 최악의 경우 폭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던 약로의 얼굴에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일 네가 재료를 다 모아 나의 영혼을 담을 만한 신체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전성기 시절보다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게다. 영혼 에너지도 훨씬 더 강해지겠지.”
이에 어둡기만 하던 이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서천우의 말에 따르면 약로는 일찌기 「투존」의 경지에 올랐었던 전설적인 강자였으니, 약로를 부활시키는데만 성공한다면 전설속의 투성을 스승으로 모시게 될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하지만 이준의 표정을 읽은 약로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꿈 깨거라. 강해진다 하더라도 투성은 꿈도 못 꾼다. 뭐…운이 좋아 투성이 된다면 네 여자친구의 가문과 이야기 정도는 해볼 수 있겠구나.”
투성이나 되어야 ‘이야기 정도는 해볼 수 있다니.’ 스승의 말에 준은 이은의 가문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를 새삼 실감했다. 이는 투존 정도로는 이야기조차 해볼 수 없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네요…”
제자의 표정이 다시 한번 어두워지자, 스승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말거라. 네 재능이라면 머지않아 네 여자친구 옆에 설 자격이 주어질 게다. 하하. 20살에 투왕 강자가 된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텐데, 욕심도 많구나.”
이준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벌렸다가 차마 말을 하지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제자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약로는 곧바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아이의 가문에 대해 묻고 싶은 게지? 그렇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다. 지금 알려줄 수 있는 것은, 그쪽 가문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엄청난 힘과 비범한 재능이 되물림된다는 것뿐이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투기대륙은 끝을 모를 정도로 광활하고, 온갖 신비한 것들이 가득하지. 지금까지 네가 본 것들은 모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껄껄, 이 늙은이가 말해주지 않아도,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겠지.”
결국 이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됐으니 이제 몸부터 회복하거라. 날 깨우겠다고 모든 힘을 소진했으니 빨리 회복하지 않았다가는 되려 실력이 떨어질 수 있어.”
스승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아 염력을 회복하려던 준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저장반지에서 두루마리 하나와 괴상한 약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약병 주위에서는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새빨간 피안개 같은 것이 은은하게 떠돌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봉인이 되어 있는 연금비약이라니…”
“우연히 초월의 비약과 그 조합표를 얻었습니다.”
“끄응…그렇다면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구나. 대체 이것을 어디서 구한 것이냐? 이 물건은 이미 오래 전에 그 주인과 함께 대륙에서 모습을 감춘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제 둘째 형이 산 속에서 얻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네 둘째 형이 이 연금비약을 먹은 게 아니길 빌어야겠구나.”
제자의 표정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자, 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며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문질러댔다.
“언제 먹었느냐?”
“2년 전입니다. 제가 지하로 떨어지고 며칠 뒤에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위해 이 약을 삼켰다고 해요. 스승님…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이준의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약로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약존」이라 해도 쉬이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했다.
“만물에 음과 양이 있듯 독약이 있으면 해독약도 있는 법이지…자신은 없다만…한 번 도전해볼 수는 있을 게다.”
형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다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준은 곧바로 수중에 있던 두루마리와 약병을 노인에게 건네며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그럼 스승님께서 해독제를 만들어 주세요. 스승님의 능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면…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야죠.”
약로는 준이 내민 연금비약을 받아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이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네 둘째 형에게도 단단히 일러놓거라.”
“하하, 제가 누구 제자인데요. 진작 말 해뒀죠.”
“허허! 그래, 내가 제자 하나는 잘 둔 것 같구나. 그럼 어서 돌아가서 쉬거라. 지금은 네 몸을 추스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형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친 준은 그제서야 자리에 앉아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잠시 뒤 호흡이 평온하게 가라앉으며 몸 주변에 미세한 파동이 일어나고, 순식간에 고갈되어 있던 염력을 가득 채워갔다.
수련 상태에 진입한 이준을 가만히 바라보던 약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손에 쥔 두루마리를 만지작거렸다.
“초월의 비약 조합표를 손에 넣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흐음…참으로 걱정스럽구나.”
수풀이 우거진 적막한 산봉우리 위에서는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이 미동조차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주위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청년의 주위로는 끊임없이 천지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며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고,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주위가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신의 주위에 소용돌이치던 에너지가 모두 사라지자, 그의 눈동자에서 연한 청록색의 불길이 너울거리다 이내 자취를 감췄다.
천계의 탑에서 빠져나오며 실력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급하게 성장한 터라 그 후로는 수련에 큰 진전이 없었다. 더욱 나쁜 것은 갑자기 불어난 염력과 영혼 에너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점 이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 밤낮없이 청연의 불꽃을 조절하며 시간을 보낸 덕에 자연스럽게 염력과 불꽃을 조종하는 능력 모두가 향상되었으니, 염력 자체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실력은 이전과는 또 다른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