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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14화 (314/818)

제314화. 연금비약 경매

약 한 시간이 지나자, 독특한 약향이 은은히 새어나오며 약솥 안에 농밀한 에너지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준의 두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커졌다. 붉은 약솥은 연금비약의 향과 에너지가 소실되지 않고 연금비약 안에 스며들도록 그것들을 약솥 안에 단단히 붙들어 두고 있었다.

“와아…”

붉은 약솥의 신비한 능력 앞에 감탄사를 내뱉던 준이 약솥의 뚜껑을 열자, 솥 안에 갇혀있던 농밀한 약 향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반짝 반짝 광택을 내는 보라색 알약은 한 눈에 보기에도 완벽한 6레벨의 연금비약이었다.

하지만 6레벨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탁자 위에 산처럼 쌓인 약재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에효, 당분간은 햇볕도 못 보고 약만 만들게 생겼군.”

* * *

그 후로 며칠, 하루가 멀다 하고 진귀한 연금비약이 이찬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찬은 그것을 곧바로 팔지 않고 신중히 쌓아둔 채 온 성에 경매를 연다는 소식을 퍼뜨렸다. 샘화는 이미 완전히 이씨 가문의 손에 넘어 왔으니, 성급하게 파는 것 보다 경매를 여는 편이 훨씬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흑각성에서는 매달 크고 작은 경매가 열렸지만, 진귀한 연금비약을 판매하는 경매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찬이 퍼뜨린 소식은 금세 온 흑각성에 전해졌고, 단 이틀 만에 샘화의 경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 * *

경매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샘화를 찾았다. 진귀한 연금비약은 만인의 관심사였다. 게다가 연금비약 전문 경매는 흑각성에서는 처음있는 일 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경매 전날이 되자, 샘화를 찾는 방문객들의 수는 절정을 이루었고, 심지어 흑맹의 전성기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매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경매 당일, 이준 역시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흑각성의 무법자들은 귀한 물건이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하는 자들이었으니, 자신이 직접 경매장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경매가 시작되자, 험악한 인상을 한 수 백명의 무뢰배들이 경매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준은 높은 누대에 선 채 바글거리는 인파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아, 네가 필요하다는 약재는 내가 모두 예약을 걸어 놨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하지만 물건을 찾으려면 돈을 들고 가야하니, 이번 경매가 반드시 순조롭게 끝나야 해.”

“응, 알고 있어.”

이준은 형의 말을 들으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경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무법자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그 역시 오늘 경매가 무사히 끝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잠시 후, 이준 곁에서 경매장을 훑어보던 이찬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뭔데?”

“내가 너무 요란하게 소문을 내서인지 검은 뿔 구역 온갖 세력들이 다 모이게 됐거든. 덕분에 예전 흑맹 구성원은 물론이고 김씨 형제까지 이곳에 와있는 것 같아.”

“그 사람들이 난동이라도 피울까봐?”

“응. 만만한 상대가 아니잖아. 특히 그 두 노인네 말이야. 가람 아카데미 앞에서는 벌벌 떨지 몰라도, 우리 둘로 감당이 될까?”

하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형과 달리, 이준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걱정할 거 없어. 다 죽어가는 노인들인데 뭐. 형은 경매장 운영에만 신경 써줘. 다른 일은 나한테 맡기고.”

“그게…그래.”

이찬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동생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호언장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경매장 앞쪽의 가장 좋은 위치에는 검을 뿔 구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인물들과 유명 세력의 수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편 경매장 오른 편에는 흑각성에서 꽤나 이름 날린다는 인물들이 줄줄이 서 있었고, 그 줄의 가장 앞에는 김씨 형제를 비롯해 흑맹의 간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땡!

그 때, 갑자기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순식간에 소란이 가라 앉으며 수 백, 수 천개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향했다.

곧이어 누대 위로 이찬이 걸어 나오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던 경매장 안에 다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번 경매를 주최한 자는 분명히 삼대 세력을 무릎 꿇린 세력의 수장이라 했는데, 지금 누대 위에 서 있는 자는 끽해야 투왕 정도의 실력 밖에 되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저는 이씨 가문의 사무관 이찬이라고 합니다. 이번 경매 자리에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찬이 자신을 소개하자, 김씨 형제가 기다렸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쪽이 현재 샘화의 통치자인가? 정말로 당신이 이씨 가문의 대장이라면 이번 경매는 못 열 것 같은데 말이지. 제 아무리 흑각성이 무법 천지라 해도 한샘이 죽자마자 이렇게 족보도 없는 투왕 하나가 낼름 샘화를 집어삼키는 것은 좀 아니지 않냐 이 말이야. 게다가 보란 듯이 경매까지 열고. 아직 흑맹의 간부들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데, 응? 그렇게들 생각하지 않나?”

흑각성의 최강자인 김씨 형제의 한마디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하하하, 한샘을 꺾은 자가 샘화를 통치하겠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한샘이 죽자마자 꼬리를 말고 도망친 옛 흑맹의 간부들보다는 내가 이곳을 통치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울려퍼진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김씨 형제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준?”

김씨 형제의 입에서 튀어나온 두 글자에 경매장 안에 다시 소란이 일었다.

마침내 이준이 모습을 드러내자,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강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준과 김씨 형제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준의 이름은 흑각성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한샘의 오른팔 이었던 김씨 형제가 눈앞에 나타난 사내를 ‘이준’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니, 그 자가 이준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흑각성을 호령하던 약황 한샘을 죽인 강자가 이토록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라니, 자리에 있던 자들은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만이 유일한 진리인 이곳 흑각성에서, 제 손으로 당당하게 한샘을 꺾고 샘화를 차지하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흥, 샘화는 흑맹의 땅이야! 한샘이 죽었다 해도 흑맹의 구성원이 돌려받는 것이 마땅하지.”

“푸하하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도둑놈이라도 된 것 같군요. 주인이 목숨을 잃을 때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뿔뿔이 달아난 흑맹의 간부들이, 이제 와서 샘화를 집어 삼키시겠다? 당신들이야말로 한샘이 죽자마자 낼름 이 도시를 집어삼키려 드는 도둑놈들이 아닌가?”

이준의 날선 말투에 장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어수선해졌다. 흑각성 전체를 뒤져봐도 감히 김씨 형제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흥, 네 놈이 두려워 달아났겠느냐! 본원의 빌어먹을 투종 늙은이가 있었으니 물러난 것이지!”

김씨 형제가 노발대발 하는 모습에 군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을 향했다. 두 명의 투황은 오만하고 자존심이 세기로 이름이 높았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들을 향해 모욕적인 말을 쏟아낸 이준을 당장 찢어 죽인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대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씨 형제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염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경매장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파랗게 질려 경매장을 나가려 했고, 소수의 강자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투황급 강자들이 싸움에 말려들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쯧쯧, 저 두 인간,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군.”

한편 경매장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반달, 은빛 칼날, 사자단의 세 수장은 이 광경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찰 뿐 이었다.

“오늘은 우리 이씨 가문이 경매를 여는 날입니다.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두 분도 예외가 아니고요.”

“하하. 말로는 뭘 못하나. 오늘 서천우는커녕 본원의 장로들조차 없는데 네 놈 혼자서 우리를 당해낼 수 있겠느냐?”

그리고 김씨 형제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다시 한 번 염력을 끌어올리는 찰나, 이준이 피식 웃으며 조용히 손을 들었다.

“번거롭겠지만 저 두 인간 좀 조용히 시켜줘.”

그 순간, 이준의 오른편에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김씨 형제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졌다.

눈앞에 나타난 여인은 분명히 한샘의 숨통을 끊어놓은 바로 그 투종 강자였다.

“젠장. 저 여자는 분명 이준을 죽이려고 쫓아다니지 않았어? 왜 갑자기 나서서 저 놈을 도와주는 거지?”

두 형제 중 금색 옷을 입은 자가 먼저 기운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김씨 형제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투종 강자와 맞먹을 정도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천우급과 비등한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승산은 5할에 못미쳤다. 실제로 가람아카데미와 흑맹간의 대전에서도 끝내 서천우를 이기지 못 했던 그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인은 한 눈에 보기에도 서천우를 한참 웃도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준과 그녀의 협공을 받는 순간 두 사람은 곧바로 황천길을 걷게 될 것이 뻔했다.

이준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린 김씨 형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한판 벌일 것 같은 기세로 기운을 끌어올리시더니.”

“오해일세. 내 잠시 흥분해서 기운을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생각해보니 자네의 말도 틀리지 않네. 게다가 남의 경매장에 와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것도… 흠흠… 확실히 예의는 아니지.”

김씨 형제가 고양이 앞에 놓인 쥐 마냥 꼬랑지를 말자, 경매장 밖으로 황급히 몸을 빼던 강자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대체 방금 나타난 여인이 누구길래 천하의 김씨 형제가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순순히 고개를 숙인단 말인가. 게다가 두 형제의 등 뒤에 있던 옛 흑맹의 간부들은 하나 같이 고개 한번 들지 못 하고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오해를 했군요. 그럼 김씨 형제와 옛 흑맹의 간부분들도 저희가 샘화를 관리하는 것에 불만이 없는 것으로 알아도 되겠지요?”

“그…그렇네.”

이준의 여유로운 태도와 대비되는 흑맹 강자들의 비굴한 태도에 경매장을 찾은 모든 사람들은 오늘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직감했다. 흑각성 최강의 2인과 옛 흑맹 강자들이 모두 모여도 감히 말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대가 그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아까는 잠깐 소동이 조금 있었습니다. 너무 염려 마시지요. 이제 연금비약 판매가 시작할 예정이니 모두들 안심하고 경매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이준의 자신만만한 말투는 오늘의 경매가 얼마나 안전할지를 말해주는 보증 수표나 다름이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이 자리에서 소란을 피울 자는 없었다. 이준은 아주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오늘의 경매가 어떤 자리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교활하고도 무시무시한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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