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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12화 (312/818)

제312화. 3대 세력

귀신처럼 소리 없이 나타난 청년의 목소리에 삼대 세력의 수장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가 뿜어내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반면 이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넌 누구지?”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시체처럼 말라비틀어진 노인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팔뚝에 사자 문신을 새긴 거한이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찬의 말에 그의 얼굴이 또 다시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 분이 바로 이씨 가문의 진짜 수장입니다.”

이찬의 발언에 세 강자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었다. 이찬 정도가 상대라면 손쉽게 샘화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를 상대로는 그 누구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친구…어딘가 낯이 익군.”

노인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이준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준이라고 합니다. 혹시 어딘가에서 절 만난 적이 있으신지요?”

‘이준’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대청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준? 그럼 당신이 범로와 한샘을 죽였다는 그 이준이란 말이야?”

검은 꽃 문신을 한 여인이 호들갑을 떨어대자, 이준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그다지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제 손에 죽은 건 사실입니다. 혹시 그 두 사람에 대한 복수라도 하러 오신 겁니까?”

세 사람은 모두 투황급 강자로, 그 실력은 범로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은 정도였고, 한샘에 비하면 크게 뒤떨어졌으니,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왠 신흥세력이 「샘화」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자신만만하게 이곳으로 쳐들어왔건만, 이런 거물이 연루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것이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저희는 흑맹이 위세를 떨칠 때도 그의 밑에 들어가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여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자, 이준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면 세 분은 무슨 일로 우리 ‘샘화’까지 찾아오신 거죠? 혹시 이 곳을 강탈하려고 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얼음처럼 냉랭한 이준의 표정에 세 사람은 모두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이준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준이 무섭기는 했지만, 이 도시는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으니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시선이 오고 가기를 수 분…갑자기 세 사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이찬은 곧바로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흑각성은 본래 매일 같이 죽고 죽이는 싸움이 반복되는 곳,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투황 강자들이니 결국 샘화를 포기하기보다 목숨을 걸고 연합해 이준에 맞서려는 선택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그 때, 이준의 등 뒤로 대리석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레 등장한 여인의 모습에 돌연 이찬이 염력을 뿜어냈다. 그도 이미 몇 번이니 메두사가 자신의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으니, 그녀를 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세 명의 투황급 강자와 맞붙으려는 순간에 등장하다니…

준은 금방이라도 창을 들고 달려들 기세로 메두사를 노려보는 이찬을 제지한 뒤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고, 이에 이찬은 어리둥절한 창을 붙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동생의 그런 행동은 눈 앞에 나타난 여인이 더 이상 적이 아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한편 삼대 세력의 수장들 역시 귀신처럼 불쑥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투황급 강자가 셋이나 있는데 그 누구도 그녀가 다가오는 것조차 알지 못 했다. 게다가 여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강력한 기운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농후하고 강대했다.

“투종이라니…”

세 사람 중 누군가가 홀린 듯 중얼거리자, 이준의 입가에 또 다시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이씨 가문에 이런 강자가 다 있는지 몰랐네요. 우리 세 사람이 그걸 미처 몰라 봤어요.”

여자가 입을 열자, 다른 두 수장도 애써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성질이 불같기로 명성이 자자한 사자단의 수장마저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고 가만히 눈치만 볼 뿐이었다.

이준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세 사람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없이 웃음을 지었고, 결국 두 사람이 주는 무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흠흠…젊은이…자네가 이곳의 주인이 되었다면 할 수 없지. 우리가 이 성을 탐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듣도보도 못한 신흥 세력이 이곳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잠시 욕심을 냈을 뿐, 그 세력의 주인이 자네인 이상 우리도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군. 흑각성은 본래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니, 자네도 너무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네.”

“호호, 그렇지요. 하지만 오늘 저희가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니, 언젠가 이에 대해 제대로 사과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 했으면 좋겠네요.”

말을 마친 여인은 황급히 등을 돌려 살벌한 기운이 가득한 그곳을 떠나려 했다. 옆에 있던 두 사람도 서두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세 분, 잠시만요.”

하지만 세 사람이 문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이준이 그들을 불러세웠다.

“세 분이 샘화에 이렇게나 관심이 많으시니 그냥 보내기는 조금 아쉽군요. 저와 거래를 하나 해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거래? 무슨 거래 말입니까?”

이준이 뱉어낸 말에 세 명의 투황 강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샘화의 경매장이나 시장에서 거두어 들이는 이윤은 누구라도 군침을 흘릴만한 것이지요. 저희 이씨 가문과 세 세력이 나눠가져도 충분할 정도이니까요.”

“네? 그…그 말은…”

뜻밖의 제안이 나머지 두 사람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노인이 무언가를 눈치 챈 듯 의미심장한 말투로 되물었다.

“하하…설마 저희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눈치가 빠르시군요. 사실 저희 이씨 가문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힘만으로는 그들에게 대적할 수 없어 믿을만한 동맹을 구하는 중이지요.”

이준이 언급한 ‘적’이란, 당연히 운남종이었다. 그가 흑각성에서 세력을 확장시키려 하는 것은 사실 모두 운남종에 대적할만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니, 세 명이나 되는 투황을 동맹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샘화의 이윤 일부를 나누는 것 따위는 전혀 아까울 것이 없었다.

“적?”

뜻밖의 요청에 세 사람은 잠시 망설이며 또 다시 눈짓을 주고받았다. 한샘을 죽인 이준조차 감당할 수 없는 적이라니, 제 아무리 욕심에 눈이 멀었다 해도 흔쾌히 응할만한 제안이 아니었다.

“호호, 그 「적」이라는 것이 누구인지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여인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이준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운남종.”

“운남종?”

세 투황은 귀에 익은 이름을 중얼거리며 잠시 고민에 빠졌고, 또 다시 노인이 세 사람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운남종에도 투종 강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흐음…저도 소문을 들었어요. 운남종에 ‘운산’이라는 투종급 강자가 있다고…”

여인이 한마디를 덧붙이자, 곁에 있던 사내 역시 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저 멀리 있는 가한제국의 투종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검은 뿔 구역과 가한제국은 4000km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투종은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수에 불과했으니, 운산에 대한 소문이 이곳까지 퍼져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투황은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투종이라니, 제 아무리 간이 커도 미치지 않고서야 응할만한 거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준님, 저희를 원망하지 말아주십시오. 흑각성과 운남종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쉬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운남종은 가한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알고 있는데, 저희가 힘을 보탠다고 큰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노인의 말대로였다. 운남종은 투기대륙의 서북지역을 주름 잡을 정도의 일류 세력이었다. 검을 뿔 구역에도 제법 이름난 강자가 많다지만 그 어떤 세력을 데려다 놓아도 운남종과 비교하기에는 급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투종은 오직 운산 한 사람 뿐, 운남종이 데리고 있는 투황은 많아봐야 셋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투왕이나 투령급이고, 투왕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발을 빼려는 듯 하자, 이준이 차분한 말투로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종 강자는 저희 쪽에도 있습니다. 또, 운남종의 투황 중에 한샘보다 강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투기 대륙 전체를 뒤져도 그보다 강한 투황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텐데요. 그러니 제게 힘을 보태줄 사람 몇 정도만 구한다면, 운남종을 무너뜨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준의 막힘없는 설명에 세 수장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속으로 득실을 따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법 지대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었다. 이에 이준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욱 달콤한 조건을 내걸었다.

“저는 샘화를 발판으로 앞으로 흑각성 전체로 제 세력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하나 힘으로 굴복시켜나간다면, 흑맹보다 더 큰 세력을 만드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요. 세분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 앞으로 얻을 모든 보물들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만일 흑각성 일대를 모두 제 손에 넣는다면, 여러분은 흑각성에서 나는 모든 재화의 2할 가량을 나눠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합니까?”

순간 세 사람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이준만 해도 흑각성에서 손에 꼽을만한 강자인데, 그의 뒤에는 정체를 모를 투종강자가 있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그의 말대로 흑각성 전체를 통일하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였다.

세 사람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화하자, 이준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하하, 역시 흑각성을 주름잡는 강자이니만큼 설득하기가 조금 어렵군요. 그렇다면 황금의 비약은 어떻습니까? 설마 황금의 비약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황금의 비약」이라는 단어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황금의 비약은 6레벨 최고급 연금비약으로, 투황 강자가 아주 단시간 내에 1성에서 2성 정도를 승급하게 해주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게다가 승급을 하고 남은 약 기운으로 신체 강화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투황 강자라면 누구나 눈이 뒤집혀 손에 넣으려 하는 물건이었다.

투황급 강자들은 보통 한 계단을 뛰어넘기 위해 수년을 소모해야 했으니, 「황금의 비약」은 실로 투황 강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연금비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6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할 수 있는 연금술사는 대륙 전체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들이 6레벨 연금비약의 대가로 요구하는 물건들 역시 상상을 초월했으니, 대다수의 투황에게 황금의 비약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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