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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09화 (309/818)

제309화. 제왕의 권

“역시! 이거였어!”

신이 난 이준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검은 두루마리 안으로 염력을 밀어넣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염력을 불어넣자, 새까만 두루마리에 마른 땅이 갈라지듯 자잘한 균열이 일어나며 그 사이로 은은한 금빛 섬광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더 이상 두루마리가 준의 염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쾅!

곧이어 바위가 깨지는 듯 굉음과 함께 흑색의 두루마리가 휘황찬란한 금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홀린 듯 두루마리를 바라보던 준의 눈 앞에 황금색의 문자가 스쳐 지나가고, 두루마리를 둘러싼 금빛 섬광이 마치 살아있는 것 마냥 꿈틀거리다가 갑자기 준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아악!”

금빛 섬광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순간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고통은 불과 1분도 지속되지 않았으나, 준은 통증이 사라지기 무섭게 곧바로 지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젠장, 도대체 이건 뭐야?”

한참 뒤…정신을 차린 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휑한 밀실 안에서 그의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했다.

준은 또 다시 한참을 끙끙대며 고민하다가 자세를 바로잡고 눈을 감았다.

* * *

정신을 집중하자, 휘황찬란한 금빛 섬광이 그의 눈 앞을 수놓았다. 수천, 수만자의 글자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장면은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것이었다.

“제왕의 권…산과 바다, 대지, 하늘, 대기, 다섯 개의 힘을 융합시켜 어떤 상대라도 멸할 수 있다고…? 최소 투왕급의 투사만이 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니…투제가 만들어낸 전설의 무투기…!?”

눈 앞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글자들을 읽어내려가던 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대단한건 알겠는데…수련법이 없잖아! 수련법이!”

바로 그 때, 허공 위를 떠나니던 글자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준은 또 다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머릿속을 헤집는 정보들을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그의 예상대로, 이번에 그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것은 「제왕의 권」의 수련법이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했다. 두루마리에는 분명 다섯 개의 힘을 합치면 어떠한 적이라도 멸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건만, 그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것은 단 두 개, 산의 힘과 바다의 힘 두 가지의 수련법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머지 세 개인 대지의 힘, 대기의 힘, 하늘의 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고 두루마리 안의 모든 정보를 꼼꼼히 확인해 보아도 나머지 힘과 관련된 수련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준이 또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음성이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준 오라버니, 만약 두루마리를 열었다면 내가 남긴 말이 들리겠죠? 이 두루마리를 열었다는 것은, 오라버니가 투왕이 됐다는 거겠죠. 정말 축하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산처럼 쌓여있지만…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없는게 너무 아쉽네요. 이 「제왕의 권」은 우리 가문에서 가장 수준 높은 무투기 중 하나예요. 사실 뒤에 있는 세 개의 힘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알지 못 해요. 그래서 일단 제가 찾은 두 개의 힘에 대해서만 오라버니에게 넘긴거죠.”

몇 년 만에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에 준의 눈가에 촉촉하게 물기가 어렸다.

“하지만 다섯 개의 무투기 중 가장 약한 ‘산’의 힘을 손에 넣는데에도 최소 투왕급은 되어야 해요. ‘바다’의 힘을 익히려면 투황 단계에서 수련해야 하죠. 그리고…이 무투기를 익히게 되거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이 무투기는 우리 가문이 가진 가장 귀한 보물 중 하나로, 누군가가 이 무투기를 사용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그러니 이 무투기를 익히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목숨이 위험할 때가 아니면 사용해서는 안돼요.”

모든 설명을 마친 이은의 목소리는 긴 한숨을 내쉰 뒤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오라버니…보고 싶어요. 항상 건강해야해요.”

* * *

이준이 밀실에서 나왔을 때, 널따란 대청에는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흐음…”

준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뒤 의자에 앉아 상쾌한 공기를 깊이 들이 마셨다. 시원한 밤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삐걱…

이준이 눈을 감고 잠시 상념에 잠겨있을 때, 대청의 문이 열리며 문 틈새로 왠 여자 하나가 고개를 내밀어 대청 위를 살피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다시 문을 닫았다.

“하하, 다 들어와 놓고서는 왜 나가?”

대청 위에 울려 퍼지는 부드러운 음성에 여인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상처는 다 나았어?”

“하하. 못 본 사이에 성격이 많이 변했네? 왜 이렇게 다정해진거야?”

몰래 이준의 상태를 살피고 사라지려던 여인의 정체는 바로 그의 친척인 ‘이옥’이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자마자 넉살 좋게 농을 건네는 이준의 태도에 이옥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하, 2년 동안 별 일 없었어?”

이준이 다시 웃으며 말을 걸어오자, 이옥 역시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는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불구덩이에 빠져서 그 성질머리 좀 고치고 왔으면 했는데 말이야.”

“하하하, 이제야 좀 누나같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철없던 시절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워대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가문이 위기에 빠져서인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묘한 끈끈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휴…그래. 어찌됐든, 네가 천계의 탑에 봉인된 사이에 혁이하고 안이도 본원에 들어왔으니 알고 있어. 그 아이들도 모두 비석에 들어왔으니까.”

“오…정말? 이씨 가문에 생각보다 인재가 많은데?”

이준이 또 다시 넉살좋게 웃음을 터뜨리자, 이옥이 걱정과 짜증이 뒤섞인 말투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너만한 인재가 없는게 사실이니까, 앞으로는 좀 조심했으면 좋겠네. 지금 네 위치를 자각하고는 있는거지? 우리 가문의 명운이 너한테 달려있다고.”

누이의 따끔한 한마디에 이준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위험이 따르니까. 할 수 없다고.”

이에 이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척해진 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준이 느끼고 있는 무거운 중압감과 책임감을 그녀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더 이상 그를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하하, 됐어 됐어, 그런 것보다, 아직도 남자들 몰고 다니고 그래?”

누이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이준이 또 다시 농을 건네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흥, 시끄러워. 쓸데없는 소리 마.”

하지만 이옥은 준의 농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반지 속에서 카드를 몇 장 꺼내 준에게 내밀었다.

“이건 비석이 가지고 있던 네 카드야. 오하늘과 이윤영이 건네주라고 했어. 누가 뭐라해도 네가 비석의 진정한 지도자라는 말과 함께 말이야.”

그러나 준은 겸손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 이었다.

“비석이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내 힘이 아니야. 그리고 난 가람 아카데미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어. 그러니 이건 비석에서 관리하는게 나을거야.”

“떠난다고? 어디로?”

이어지는 준의 말에 이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당연히 가한 제국으로 돌아가야지.”

“역시…그럼 나도 함께 가. 가문 사람들이 무사한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하하,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누나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가. 이번에는 너무 위험해. 누나와 다른 사람들은 여기 있어. 미안한 말이지만…운남종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다른 사람들을 지켜줄 여유는 없을테니까.”

이준의 결연한 표정에 이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분하지만, 아직 자신의 실력으로는 운남종과의 전쟁에서 걸림돌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면, 누나와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시 가한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이준이 다정한 표정으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이옥이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후…그래. 그리고 찬 오라버니에게 가봐. 오라버니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그래. 알았어.”

* * *

“형…”

“상처는 다 나았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동생을 발견하자, 이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자신의 동생을 한번 끌어안고는 조용히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흑맹이 와해되면서 흑각성의 모든 세력이 엄청난 혼란에 빠졌어. 난 이게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 흑각성에는 실력자들이 많으니까. 괜찮은 실력자들을 추려 조직을 만들면 운남종과의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거야.”

일리가 있는 제안이었지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었다. 이준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육에 미친 자들이야. 말처럼 쉽겠어?”

“하하,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닌 놈들이 많기야 하지. 결국 그놈들을 굴복시키려면 압도적인 힘이 있어야겠지.”

이찬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봐. 비석의 구성원들은 강하지만 모두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이야. 얽혀있는 것도 많고, 어찌됐든 이 일은 우리 이씨 가문의 일이지 아카데미와는 무관하니 장로들이 학생들을 이끌고 가한제국에 가는 걸 용납할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흑각성은 다르지.”

“흐음…확실히 형 말대로야. 만약 흑각성을 완전히 장악할 수만 있다면…운남종과의 전쟁에서 큰 힘이 되겠지.”

“너도 동의하는 거지?”

동생의 답변에 이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좋아. 그럼 형이 나서줘.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나를 부르고.”

“하하, 좋아. 박력 있네. 그런데…한가지 다른 문제가 있어.”

“뭔데?”

갑자기 진지해진 형의 표정에 이준의 안색 역시 어두워졌다.

“본원”

“본원?”

“본원은 흑각성을 못마땅해 하니까. 우리가 흑각성의 세력을 통합하는 것을 달가워 할 리가 없어.”

“흐음…”

이찬의 날카로운 지적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용병단을 운영해 본적이 있던 형이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흑각성을 통합하는 문제에 직접 나서지 않고 형을 내세운 것 역시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네가 서천우 대장로를 만나서 얘기를 해봐.”

“흠…본원이 흑각성을 못 마땅히 여기는건 그들이 본원에 해를 끼칠까봐 그런 거잖아. 그런데 우리가 흑각성의 세력들을 통합하는게 본원에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할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이런 일은 아무리 신중해도 과하지 않아.”

“좋아. 그럼 내가 대장로님을 찾아가서 말해 볼게. 만약 동의하신다면 형은 바로 흑각성으로 갈 준비를 해줘.”

대화를 마친 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찬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만일 이 일이 계획대로 잘 풀린다면, 운남종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큰 힘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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