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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05화 (305/818)

제305화. 비장의 패

“너… 천지의 불꽃을 바꾼 것이냐? 어…어떻게…?”

한샘이 경악하는 모습에 이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준의 손끝에 있는 청록색 화염이 춤을 출 때 마다 그 주위의 공간이 묘하게 뒤틀리며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사형, 스승님이 그 때 느꼈던 고통을, 오늘 제가 스승님을 대신해서 당신에게 돌려드리죠.”

싸늘한 한마디와 함께 준이 오른손을 쥐자 단단하고 시커먼 송곳이 그의 손위에 나타났다. 그 검은 송곳을 휘두르자, 묵직한 바람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이에 한샘은 곧바로 화염을 응집시켜 거대한 화염장검을 만들어냈다.

“그딴 식으로 지껄이지 말아라. 네 놈은 내 기분을 모른다. 먼저 날 배신한 것은 그 늙은이야. 천하제일의 수련법을 얻고도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네놈이 짐작이나 하겠느냐.”

“과연 금수만도 못하구나.”

싸늘한 한마디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동시에 준의 발밑에서 눈부신 은색 섬광이 번쩍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잔상? 2년 동안 이렇게나 강해질 줄은 생각도 못 했군. 그 늙은이의 힘을 빌리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실력이라니. 허나…내 상대가 될 성싶으냐?”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잔상이라는 것을 한 눈에 간파한 한샘은 피식 웃으며 미끄러지듯 뒤로 몸을 날릴 뿐이었다.

그리고 한샘이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가 서있던 위치로 검은 송곳이 수직으로 내리 찍히며 허공에 검은 획을 그렸다.

“사제, 나이치고는 제법이지만 말이야. 자네가 밥을 먹은 횟수보다 내 손에 목숨을 잃은 자들의 숫자가 더 많을 걸세.”

한샘은 이준의 공격을 피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그가 팔을 흔들자, 그의 화염장검이 교묘한 각도로 검은 송곳을 빗겨나가 준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

하지만 한샘의 매서운 공격에 이준 역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손목을 살짝 구부려 검은 송곳을 빠르게 회수해 화염장검을 막아냈다.

다시 한번 한샘이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화염장검이 여러 개로 나뉘어져 사방에서 준을 덮쳤다.

쾅!

그 순간 준의 발끝에서 다시 한번 은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준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 십 개의 장검을 피해내는 동시에 검은 송곳을 휘둘러 완벽하게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챙!

“하압!”

곧이어 이준의 입에서 힘찬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오자, 청록색의 불꽃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바다의 불꽃을 응집시켜 만들어낸 장검들을 빠른 속도로 파괴했다.

“저놈의 불꽃은…대체 뭐지?”

바다의 불꽃으로 만들어 진 검을 형체도 없이 박살내버리는 청록색 화염의 위력에 한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지금 상대의 불꽃은 명백하게 자신의 불꽃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었다. 대지의 불꽃은 바다의 불꽃보다 약한 불꽃이다. 헌데 어째서 바다의 불꽃을 응집시켜 만들어 낸 불꽃이 대지의 불꽃을 당해내지 못한단 말인가.

한샘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 검은 송곳 위로 청록색의 화염이 번져갔다.

“빌어먹을!”

비취색의 화염에 휩싸인 시커먼 송곳이 날아들자, 한샘은 곧바로 자신의 팔에 바다의 불꽃을 단단하게 응집시켰다.

챙!

짙은 청색의 화염이 응집된 팔과 검은 송곳이 맞부딪히는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러나 준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검은 송곳에 감겨있던 청록색 화염이 마치 점액처럼 그의 팔에 들러붙어 바다의 불꽃을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바다의 불꽃이 타들어가는 모습에 한샘은 지금 상대가 사용하는 불꽃이 결코 2년 전 사용했던 대지의 불꽃이 아님을 확신했다.

상대의 팔에 자신의 불꽃이 옮겨 붙은 것을 확인한 준의 입가에 순간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한샘이 염력을 발산하며 거세게 팔을 휘두르자, 청록색 화염은 너무나 간단하게 그의 팔에서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한샘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불꽃에서 벗어나는 모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스승의 말대로, 투사로서도, 연금술사로서도 한샘의 재능은 가히 천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늙은이가 거둔 제자라고, 역시 쉽지는 않구나. 내가 널 너무 얕보았었구나.”

하지만 한샘 역시 준의 불꽃에 적잖은 위협을 느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허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놈은 내 상대가 되지 못 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샘의 몸속에서 화산처럼 용암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폭발한 강렬한 염력에 격전을 벌이고 있던 이들이 모두 멈칫하며 경악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한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 녀석… 결국 투종 단계에 진입한 것인가….”

한샘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에 흑맹과 본원의 모든 강자들의 얼굴이 각양각색으로 일그러졌다. 몇 년 동안, 한샘은 자신의 실력을 철저히 숨겨 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한샘이 저 정도 단계에 올랐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그가 이미 투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돌연 화산처럼 터져 나온 염력 앞에 서천우와 김씨 형제마저 전투를 멈추고 한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샘을 바라보는 김씨 형제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질투가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투황의 최정상 단계에서 장장 십 년을 머물고 있었지만, 여전히 투종이 될 수 있는 길이 묘연했다. 하지만 한샘은, 겨우 5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투종의 경지에 오르고 만 것이다. 김씨 형제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한샘이 투종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서천우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져 있었다.

최정상급 투황과 투종은 겨우 한 단계 차이였지만, 전투력 차이는 수 배에 달했다. 게다가 한샘처럼 천지의 불꽃을 가진 자라면…그 차이는 더욱 컸다. 투종의 경지에 이른 한샘이 사용하는 천지의 불꽃이라면, 서천우라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순간 서천우의 머릿속에 최악의 사태가 그려졌다. 한샘이 이준을 사로잡고 김씨 형제와 연합한다면 자리에 있는 장로들 중 몇 명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리고 투종의 경지에 이른 한샘이 이준을 사로잡아 불꽃을 빼앗고 더욱 강력해진다면, 가람아카데미의 존망 자체가 위험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투종 강자인 서천우조차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도 이준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녀석아…이번에도 한샘을 막을 수 있겠느냐?”

순간 대장로는 끝을 모를 저력을 가진 눈앞의 청년에게 가람아카데미의 존망이 달려있음을 직감했다.

한샘의 몸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염력에 이준의 안색이 조금씩 흐려졌다.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준 역시 2년 동안 한샘이 투종 단계에 발을 내딛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바다의 불꽃의 힘이 더해지니, 어지간한 투종급 강자라 해도 감히 그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지난 2년 간 내 힘을 모두 드러내게 한 것은 네놈이 처음이다.”

한샘은 염력 날개조차 없이 천천히 허공을 걷고 있었다. 외부 에너지 없이도 허공에 머무는 것은 투종 강자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느다란 눈으로 하늘에 떠 있는 한샘을 쏘아보던 이준이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제 고작 투종 단계에 한 발 걸쳤을 뿐이면서 자신감이 과하군.”

“큭큭… 사제야말로 자신감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대체 뭘 믿고 그리 자신감이 넘치는지 모르겠군.”

한샘이 손바닥을 뒤집자, 농후한 염력이 넘실대며 주위의 공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저건…”

준 역시 이에 맞서 손바닥 위로 청록색의 화염을 불러일으킨 뒤 그것을 두 개의 화염으로 나누었다.

청록색의 화염이 푸른 화염과 무형의 화염으로 나뉘는 순간, 한샘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구름 불꽃! 어째서 네놈이…!”

한샘의 몸을 휘감은 염력이 거세게 날뛰며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럴수가…그 구름 불꽃이 네 녀석을 잡아 먹은게 아니라 네놈이 구름 불꽃을 길들였다고!?”

갑자기 나타난 청록색의 화염, 상대의 화염에 겁을 집어먹은 듯 물러나던 바다의 불꽃의 모습…정체불명의 청록색 불꽃이 두 개의 불꽃으로 나뉘는 순간, 한샘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불개」가 대단하기는 하구나! 네놈 따위가 그곳에서 구름 불꽃을 길들일 수 있을 줄이야! 반드시 네 놈을 죽여 그 수련법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큭큭, 잘됐다. 잘됐어! 오늘 2년 만에 만난 사제가 아주 선물을 보따리로 들고 왔구나. 두 개의 천지의 불꽃에 완벽한 수련법이라니!”

하지만 준이 피식 웃으며 무형의 화염에 휩싸인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한샘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심장의 불꽃…?”

구름 불꽃이 가진 그 특수한 힘은 투종의 반열에 오른 한샘이라해도 얕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심장에서 시작되어 전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열기에 한샘의 얼굴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곧이어 한샘의 손 위에서 들끓고 있던 염력이 빠르게 떨리고 허공에 거대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장의 불꽃의 방해를 받아서인지, 그의 염력은 처음 정체를 드러냈을 때의 그것에 비하면 한 눈에 보기에도 크게 약해져 있었다. 제 아무리 투종이라 해도 심장의 불꽃을 방치한 채로 전투를 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준이 주먹을 쥐자,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며 청록색 화염에 휩싸인 검은 송곳이 나타났다.

준의 몸속에 자리하고 있던 염력이 폭발적인 기세로 검은 송곳으로 주입되니 검은 송곳이 조금씩 청록색으로 변하며 주위의 온도가 조금씩 치솟아 올랐다.

그렇게 염력을 쏟아붓기를 수 초, 마침내 검은 송곳의 검신 전체가 청록색으로 변하자, 주변의 공간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질투와 광기가 뒤섞인 눈빛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한샘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벽력같은 고함과 함께 자신의 손 위에서 일렁이던 염력을 쏘아냈다.

“감히…네놈이…네놈 따위가! 죽어라!”

한샘의 손에서 쏘아진 눈부신 빛줄기는 거대한 손 모양으로 변화하며 준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거대한 손이 태양을 가리자, 순간 이준의 주위가 시커멓게 어두워졌다.

“태양검!”

하지만 준이 옥으로 만든어진 것 마냥 신비한 청록색으로 물든 검은 송곳을 높이 쳐드는 순간, 거대한 청록색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주위를 환히 밝혔다.

두 개의 엄청난 에너지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맞부딪히는 찰나, 활화산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온 천지가 뒤흔들렸다.

괴물 같은 두 개의 거대한 에너지가 만들어 낸 무시무시한 파동이 저 멀리 있는 흑각성까지 뻗어나가는 광경에 서천우를 비롯한 모든 강자들이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엄청난 파괴력은 투황 최정상 강자들간의 결투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구름처럼 온 하늘을 뒤덮은 에너지의 여파가 천천히 흩어지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록 조금 지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반면 이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있었고, 호흡도 끊어질 듯이 약해져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큰 부상을 입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하, 작은 사제, 실력이 말 재주만 못 하군. 벌써 염력이 부족해졌나? 보아하니 이 사형이 사제를 너무 높게 평가했나 보군.”

한샘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웃음을 터트리며 사제를 조롱했다. 하지만 준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사형을 비웃을 뿐 이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급한 것에는 변함이 없군요 사형, 그 때도 구름 불꽃을 손에 넣은 것 마냥 건방을 떨다가 저에게 구름 불꽃을 뺏기시더니, 오늘은 또 무슨 꼴을 당하시려고 그렇게 쉽게 승리를 확신하십니까?”

말을 마친 이준이 손을 뻗자, 그의 소매 안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연꽃 모양의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 이걸 만드는 건 여전히 염력 소모가 많네.”

비취색의 화련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한샘의 얼굴이 또 한 번 크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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