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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04화 (304/818)

제304화. 화염 연꽃

한샘의 스승이 「약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호령한 ‘약선’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당시 투기 대륙 전체를 풍미한 전설적인 강자이자 최고의 연금술사였으며, 대륙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는 압도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헌데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라니? 설마 약존이 살아있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그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둘의 대화로 인해 다시 한 번 그들의 뇌리에 이준이라는 이름이 똑똑히 새겨졌다. ‘약존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온 대륙의 주목을 받을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하, 서천우 장로님, 지겹지도 않으십니까? 대체 왜 이러시는지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군요.”

그 때, 준과 대화를 나누던 한샘이 갑자기 눈을 돌려 그 곁에 있는 서천우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이놈…네 놈이 정말로 뻔뻔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감히 대 가람아카데미의 본원을 습격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말씀이 너무 과하시군요. 세상을 위해 크게 쓰일 수 있는 보물을 자신들이 봉인해두고는 저를 도둑놈 취급하시다니요. 저는 다만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네 이놈…! 오늘 흑맹을 박살내고 네 놈의 목을 베어 가람아카데미를 우롱한 자의 말로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마!”

서천우의 노기 어린 일갈에 한샘을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장로님…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애시당초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며 저를 도둑놈으로 모는 것도 모자라, 갑자기 나타나 저의 조직을 와해시키고 목을 베겠다니. 이런 식이라면 저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번 해보면 알겠지.”

서천우는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허공에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투종 강자의 웅대한 염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온 천지를 뒤덮었다.

“껄걸, 서 장로, 노망이라도 든 것 아니오? 2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달려와서는 꽁지를 감추기 바쁘더니, 오늘은 또 갑자기 나타나 흑맹을 해체하고 우리의 수장인 약황의 목을 베겠다니요.”

그 때, 돌연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금색과 은색의 옷을 입은 사내 둘이 서천우의 앞을 막아섰다.

“하하하! 서천우 대장로님, 우선 김씨 형제를 쓰러뜨리고 오시지요. 저는 그 사이 제 사제와 회포라도 풀겠습니다.”

이에 한샘은 여유롭게 웃으며 다시 이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흑맹의 전력이 가람아카데미를 압도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전 흑맹원들은 들어라! 오늘 이놈들에게 흑맹의 위용을 똑똑히 보여주거라!”

“알겠습니다.”

한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각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일시에 대답하며 무기를 빼어들었다.

“가람아카데미의 장로들은 듣거라! 오늘 저놈들에게 가람아카데미가 어떤 곳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거라!”

서천우의 우렁찬 호령소리에 본원 장로들의 눈빛에도 일제히 살기가 돌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가람아카데미의 장로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지난 2년 내내 가람아카데미를 침범한 흑각성의 무뢰배들을 응징할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 뜻을 이룰 날이 왔으니, 목숨을 걸고 흑맹의 강자들을 처단할 생각이었다.

“이준, 한샘은 너에게 맡기겠다. 오늘 전투의 승패는 너에게 달려있으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김씨 형제를 박살내고 너에게 가세할 때 까지 그놈을 붙들어 두거라.”

양측의 강자들이 제각기 웅장한 염력을 쏟아내며 대치하는 사이, 대장로가 고개를 돌려 준에게 당부했다.

“네, 대장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다. 오늘이야말로 저 흑각성의 더러운 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씻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한샘의 외침을 신호로 일대 강자들의 대혈투가 막을 열었다.

“가라! 저들을 죽여라!”

한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위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김씨 형제였다.

해일과도 같은 두 개의 염력이 서로 뒤엉키며 서천우를 향해 날아들었고,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온 하늘에 거대한 파문이 일어났다.

하지만 서천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두 형제의 공격을 막아냈다.

2년간 김씨 형제와 수 십번을 겨룬 그는 한샘의 지원만 없다면 자신이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샘에 대적할 자도, 김씨 형제에 대적할 자도 자신뿐이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한샘을 맡아줄 자가 있으니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손으로 두 무뢰배를 찢어죽이고 마침내 오명을 씻을 수 있으리라.

“한샘은 너한테 맡기마.”

대장로는 준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남기고 곧바로 화살처럼 몸을 날려 두 투황 강자를 향해 매섭게 두 손을 휘둘렀다.

한 명의 투종과 두 명의 투황은 서로 어지러이 얽히며 격전을 벌였고, 마치 들불이 번져나가 듯 이곳 저곳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투황의 수는 흑맹이 더 많았기 때문에, 본원 측에서는 세 명의 투왕을 한 조로 하여 그들에게 맞섰다. 그들의 목적은 대장로와 본원의 다른 투황들이 승리를 거두고 자신들을 지원할 때까지 적의 발을 묶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이찬 역시 곧바로 자신의 장창을 꺼내들었다.

“형! 잠깐만!”

그 때, 이준이 돌연 이찬을 불러세우더니 옥병 하나를 건넸다. 병 안에는 연꽃 같은 형상의 청록색 불꽃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마냥 꿈틀거리고 있었다.

“성가신 상대를 만나면 약병에 염력을 불어넣고 놈에게 이걸 집어던져.”

“이건?”

“음…내가 이번 전투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화염 연꽃’ 이라는 물건이야.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을 융합시켜서 만든 물건이니까, 투황 강자를 만나더라도 제법 유용할거야. 이틀 동안 급하게 만든데다가 아직 시험중이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투황의 발을 붙잡아두는데는 무리가 없을거야.”

‘화염 연꽃’은 구름 불꽃을 삼킨 뒤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무기로, 이전의 그라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두 개의 불꽃을 융합하고 그것을 폭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이 물건을 만드는데는 적지 않은 염력이 소모되고, 2~3일 정도가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기 때문에 많이 비축해둘 수는 없었지만, 이런 전투에서는 제법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넌 항상 이런 물건들을 만들기 좋아했었지.”

이찬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도 조심해. 한샘 저 자식은 정말 위험한 놈이니까, 만일 조금 밀린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야해. 기억해. 너에게 이씨 가문의 운명이 달려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알았지?”

말을 마친 이찬은 번개 같은 은색의 염력 날개를 펄럭이며 그 자신이 한 자루 창이 된 것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잠시 전장으로 향하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그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고개를 돌리자, 한샘 역시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얼굴에 담긴 짙은 살기를 읽어냈다.

그렇게 말없이 살기 어린 눈빛을 주고 받기를 수 십 초…갑자기 두 사람의 몸이 흐릿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

쾅!

다음 순간, 허공 위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뒤엉키며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제, 이번에는 늙은이가 도와주지 않나 보군?”

차가운 한마디와 함께 한샘이 주먹을 휘두르자, 짙은 청색의 화염이 사방에서 준을 덮쳐왔다. 하지만 2년간 용암 호수속에서 구름 불꽃에 시달려왔던 준에게 그런 공격이 먹힐 리가 만무했다.

“흥, 속내만큼이나 입버릇도 더러운 사형이군.”

“큭큭…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왜 그 빌어먹을 늙은이는 나에게 「불개」를 주지 않은거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내가 그 자를 배신하지 않았을거야. 네 재능이 나보다 낫다는거냐? 응!? 대답해봐!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나에게 그 수련법을 넘기지 않은거지? 내가 자신을 뛰어넘을까봐 두려웠던거냐? 말해봐!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너에게 뭐라고 하더냐!”

살기 어린 표정으로 스승에 대해 욕설을 퍼부어대는 사형의 모습에 준은 저도 모르게 살의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더러운 놈. 오갈 데 없는 천애 고아를 거두어 주었더니 고작 수련법 따위가 탐이나 친부모나 다름없는 스승님을 죽이려 들어!? 네 놈의 그 개만도 못한 인성을 알아보신 게지!”

“하하!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그것도 그 빌어먹을 노친네가 말해준 것이냐? 나한테 그것을 전수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더냐?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은 것을, 어째서 네놈한테 알려준 것이냐? 자, 말해보거라. 네 놈도 그것을 손에 얻었으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고 있겠지? 내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지 않느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세상 사람이 다 네놈 같은 줄 아느냐! 정말 개만도 못한 잡놈이구나! 스승님이 마음이 약해 네 놈의 악랄함을 알고도 차마 내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구나! 너의 그 추악한 속내를 알고 계시니 차마 세상을 위해 너에게 「불개」를 전수해주시지는 못한 것이겠지!”

계속되는 이준의 욕설에 한샘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갑자기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또 다시 다정한 말투로 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제, 그러지 말고 나에게 불개를 넘기게. 그럼 내가 흑맹을 넘겨주고, 연금술도 가르쳐주지. 내가 가진 모든 연금비약의 조합표와 보물들을 주고, 자네가 더욱 훌륭한 연금술사가 되도록 내 사력을 다하겠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게. 내 ‘약황’의 이름을 걸고 뭐든지 얻어주지.”

사형의 제안에 준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내려앉았다가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좋아! 그럼 네 목숨을 내놓아라!”

“어리석은 놈! 좋아! 마지막 기회를 차버린 것을 스스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네가 주지 않는다고 내가 얻어내지 못할 것 같으냐! 네놈을 사로잡아 내 스스로 불개를 얻어낼 것이야! 그리고 그 때는 네 몸속에 있는 대지의 불꽃도 거두어 주마!”

한샘의 음산한 말에 이준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같은 버러지 인간에게 흡수당한 바다의 불꽃이 불쌍하군. 천지의 순수한 에너지가 응축된 영물이니 버러지 인간에게 흡수당한 것이 원통하겠지! 그러니 당신의 불꽃은 내가 거두어 주겠어!”

“하하하! 어린놈이 입심이 제법이구나! 노친네가 주둥아리 놀리는 꼬라지를 보고 널 제자로 삼은 모양이지? 어디 실력도 그리 대단한지 보자!”

한샘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몸속의 염력을 맹렬하게 운용하자, 그의 손에서 짙푸른 화염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진한 청색의 불꽃이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주위에 있던 강자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쏠렸다.

“2년 동안, 나도 투종 강자의 벽에 조금씩 가까워졌지. 지금의 나는 전보다 훨씬 강하다. 지난번에는 그 늙은이의 힘을 빌린 네놈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한샘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거대한 화염을 불러내 준을 불태우려 했다.

그러나 준은 고통스럽기는커녕 조금의 열기도 느끼지 못하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고개를 들어 천지를 뒤덮은 짙푸른 색의 화염을 바라보던 이준이 소매를 가볍게 휘두르자, 청록색 화염이 그의 몸속에서 일렁이며 그의 온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청록색 화염?”

청록색 화염이라니…대지의 불꽃은 그런 색이 아니었다.

의아함을 느낀 한샘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갑자기 그의 ‘바다의 불꽃’이 위세를 잃고 급격하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자신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모습에 한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자, 준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어렸다.

“사형, 사형의 불꽃이 제 불꽃을 두려워하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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