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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03화 (303/818)

제303화. 폭풍전야

“하하, 한 형제. 우리가 흑맹을 세운 것은 이러한 상황을 위함이 아니오? 우리가 모두 모여 있는데, 그 놈이 2년 사이에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겠소?”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의 말에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노인의 말에 한샘 역시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맹을 만든 것은 본디 가람 아카데미의 보복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놈 하나가 가람아카데미 전체보다 강할 수는 없으니,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곧 이준의 행적에 대해 보고가 올라올 것입니다. 만약 소식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즉각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그놈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합니다.”

한샘의 말에 대청에 있던 사람들 역시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이준은 항상 그들의 마음 속에 가시처럼 존재했었다.

“만약 그 때 이준을 사로잡는다면, 저에게 그놈을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 반드시 보답을 하겠습니다.”

한샘의 말에 대청에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샘이 이준의 천지의 불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천지의 불꽃이 제 아무리 귀하다 해도 연금술사가 아닌 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필요도 없는 것을 가져다 바치고 막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한샘은 조용히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노리는 것은 천지의 불꽃보다도 「불개」였지만, 굳이 그런 것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불개」 비록 불완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준이 가지고 있는 완전한 수련법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수련하기만 한다면, 분명 두 개, 아니 자신의 재능이라면 먼 훗날 세 번째 불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불꽃만으로 투황 정상급에 불과한데도 어지간한 투종에 버금가는 실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만일 두 개의 불꽃을 손에 넣는다면…? 그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천하가 자신의 발 아래 있는 기분이 들었다.

허나 지금 자신의 수련법으로는 바다의 불꽃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 했다. 하지만 완벽한 수련법을 익힐 수만 있다면 이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대청에서 사람들이 이준을 어떻게 사로잡을지 계획하는 동안, 자는 듯 마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던 김씨 형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굳은 얼굴로 남쪽 하늘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와 동시에 한샘 역시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남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흑맹의 다른 강자들은 갑자기 안색이 변한 김씨 형제와 한샘을 보고는 어리 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들의 실력도 결코 낮지는 않았지만, 한샘과 김씨 형제 세 사람만큼의 예민한 감각을 가지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한 형제, 김씨 형제, 무슨 일이요?”

잠시 후, 흑색 도포를 입은 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킬킬, 우리의 오래된 친구가 다시 오는구만.”

김씨 형제 중 금색 옷을 입은 자가 기괴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에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니 떠들썩하게 웃어대며 말했다.

“가람아카데미 놈들, 웃기지도 않군요. 매번 혼쭐이 나고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큭큭큭…”

하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한샘은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몸속에 자리한 ‘바다의 불꽃’이 무언가에 공포를 느낀 듯 어지러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길하구나. 대체 무엇이 바다의 불꽃을 두려워하게 만든단 말이냐…’

* * *

아득한 하늘 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작은 점들이 빠른 속도로 숲을 지나 흑맹의 총사령부로 향했다.

“곧 흑맹 총사령부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모두들 조심해라!”

대장로들을 향해 명을 내린 서천우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이준을 바라봤다.

“조심하거라. 지난 2년 동안 몇 번이나 맞부딪혔지만, 한 번도 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네. 확실히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몇 몇은 그 때 가람아카데미에 쳐들어왔던 놈들이군요.”

이준의 말에 서천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저놈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어 가람 아카데미의 적수가 되지 못했었다. 허나 흑맹을 세운 뒤로는 한번도 우리가 우세를 점하지 못 했지.”

“흑맹이 그렇게나 강한가요?”

이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묻자, 대장로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음, 가람 아카데미의 장로들은 대부분 투왕 정도이니까. 하지만 흑맹에는 투황급 강자도 적지 않고, 인원면에서도 가람아카데미의 장로들을 웃돌고 있다. 또, 김씨 형제가 나를 막아서면 나도 다른 장로들을 지원하기 쉽지 않지. 게다가 내가 틈을 봐서 다른 장로들을 도우려 할 때마다 한샘이 천지의 불꽃으로 이를 막아내니…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생각만해도 울화가 치미는지, 대장로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몇 년 동안 장로들의 실력 역시 크게 성장했지만, 흑맹과 비교하자면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 너 역시 연금술사이니 6레벨 연금술사가 갖는 힘을 알 것이다. 한샘의 도움을 받아 수련을 한다면, 천계의 탑에서 수련을 하는 것에 뒤떨어지지 않는 수확을 거둘 수 있으니, 결국 지난 2년 사이 우리는 한번도 흑맹놈들을 처단하지 못 한 것이다.”

대장로는 설명하면서 표정 역시 눈에 띄게 나빠졌다. 불과 2년이라는 시간동안 6레벨 연금술사의 영향력을 이용해 흑각성의 무뢰배들을 한데 모으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람아카데미에 대적할만한 세력으로까지 키워내다니…실로 대단한 수완이었다.

물론 가람아카데미에는 아직도 서천우 이상의 강자들이 남아있었지만, 그들은 세상 일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2년 전 구름 불꽃이 날뛸 때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런 일에 끼어들 리가 만무했다.

“한샘은 저에게 맡기고, 대장로님이 김씨 형제를 상대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천지의 불꽃에 대적하려면 천지의 불꽃이 있어야 하니까요.”

“흐음…좋다. 그 두 놈들이 협공을 펼치면 나와 대적할만하나, 투종과 투황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내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어. 네가 한샘을 잘 막아주기만 하면 시간이 좀 걸릴 뿐, 내가 반드시 김씨 형제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네, 그럼 제가 책임지고 한샘을 막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장로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대장로님, 만약 이번 전투에서 한샘을 붙잡으면, 저한테 넘겨주실 수 있나요?”

이에 서천우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그 속뜻을 파악한 듯 웃음을 지었다.

“네가 바다의 불꽃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게냐?”

하지만 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바다의 불꽃은 실로 진귀한 보물이지.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연금술사는 하나의 천지의 불꽃 만 가질 수 있다고 하던데…너는 어찌하여 두 개의 불꽃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냐? 설마 세 번째도 가능한 것이냐?”

“힘을 얻으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요. 대장로님은 제가 두 개의 불꽃을 가진 것은 아시지만, 제가 그 지하 속에서 받았던 고통에 대해서는 모르십니다. 감히 기대조차 못할 정도의 천운이 따르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곳에서 살아나오지 못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고통을 이겨내고 두 번째 불꽃을 손에 넣었습니다. 세 번째 불꽃을 손에 넣으려면 그 이상의 고통이 따를지도 모르지요. 허나, 저는 포기할 마음이 없습니다. 설령 이번에는 정말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말입니다.”

“허허…어린 놈이 자기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구나.”

준의 말에 잠시 멍해져 있던 서천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그리 급하게 굴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내 오랜 시간 가람아카데미의 대장로로 있어왔다. 또한 견문이라면 투기 대륙 전체를 뒤져도 나만한 이가 몇 되지 않으리라 자부한다만…너 정도 재능있는 젊은이는 보지 못 했다.”

“급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준의 짤막한 답변에 서천우의 등줄기에 한줄기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실로 무시무시한 집념이었다.

‘이놈이…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야망이 큰 놈이구나. 이미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동년배 중에서는 감히 어깨를 견줄 자가 없을텐데…’

“좋다. 만약 이번에 우리가 크게 이기고 한샘을 사로잡는다면, 한샘을 너에게 넘기도록 하마.”

잠시 침묵하던 서천우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만약 기회가 있다면 약존에게 안부라도 전해주거라. 당시 원장 대인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와 친분이 있었으니.”

서천우의 한마디에 준의 등 뒤에서 펄럭이던 청록색 날개가 돌연 우뚝 멈춰섰다.

“대장로님… 어떻게 아셨어요?”

“이 녀석아, 내 말하지 않았느냐. 견문이라면 투기대륙 전체에도 나만한 이가 몇 없다고. 게다가 나는 예전에 약존 어르신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준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가자, 서천우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 일은 다른 이들에게 발설하지 않을 터이니. 하지만 네가 한샘에게 원한을 품은 것으로 보아, 대충 예상할 수 있겠구나. 어르신이 왜 사라졌는지 말이야.”

잠시 대장로의 눈치를 살피던 준은 그의 눈 속 깊숙이 자리잡은 존경의 빛을 읽어내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 때, 서천우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서늘한 목소리로 눈앞에 서있는 거대한 탑을 가리켰다.

“허허, 그래. 도착했구나. 자, 준비하거라.”

대장로는 준의 어깨를 두드린 뒤 곧바로 멈춰서서 다른 장로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자! 오늘이야말로 놈들에게 가람 아카데미의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보여주거라!”

“알겠습니다!”

다음 순간, 형형색색의 날개가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눈앞에 위치한 검은 탑을 향해 돌진했다.

* * *

“한샘!”

잠시 후, 날카로운 목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 퍼지며 20여명의 강자들이 속속들이 저마다 염력을 폭발시키며 전투에 들어갔다.

그리고 수 십명의 강자들 사이, 마침내 약로의 두 제자가 다시 마주섰다.

“이준!”

2년 만에 다시 나타난 준을 보자마자 한샘의 눈에 시뻘겋게 핏대가 섰다. 대지의 불꽃은 분명히 바다의 불꽃보다 약한 불꽃이다. 하지만 지금 바다의 불꽃은 분명하게 이준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2년 전에도, 바다의 불꽃은 대지의 불꽃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헌데 지금은 왜…순간 그의 마음속에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한샘이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이준의 살기 등등한 목소리가 또 다시 하늘 위에 울려퍼졌다.

“한샘! 내가 왔다! 오늘은 결코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건방진 놈, 그 늙은이의 힘을 빌려 목숨을 건진 주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흥, 오늘은 당당하게 내 힘으로 너를 처단할 것이다!”

“하하하하하! 그럴 실력은 되는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한샘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놈의 대답으로 미루어보아, 그 날 자신이 느꼈던 그 힘은 자신이 배신한 스승의 그것임이 틀림없었다.

순간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스쳤다. 그 정도로 강한 영혼체라니…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린다면, 굳이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아도 옛 스승과 빌어먹을 사제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에 막 싸움을 시작하려던 수 십 명의 강자들이 일순 우뚝 멈춰선 채 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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