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2화. 7레벨 연금비약
연금비약은 전체가 붉었고, 대략 용안의 열매와 비슷한 크기였다. 어찌보면 피가 섞인 투명한 구슬 같아 보이기도 하는 그것의 한 가운데에는 암홍색의 붉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조그마한 눈동자 같아보여 왠지 모르게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영혼 감지력을 발휘해 다시 한번 연금비약을 살펴보니, 일반적인 연금비약과는 조금 다른 것이 느껴졌다. 어디가 다른지는 말로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 「초월의 비약」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이준이 그동안 보아왔던 연금비약 중 가장 높은 레벨의 연금비약이었다.
‘연금비약이 어떤 경지에 달하면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게 될 수 있다고 했었지…이 녀석도 그런걸까…’
준은 그렇게 혼자말을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병을 집어들었다.
병뚜껑 위에는 기묘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마치 어떤 봉인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7레벨 최정상급의 연금비약답군. 이런 곳에 담겨져 있을 줄이야…생각지도 못했어. 엄청난 에너지로 억제되어 있군.”
하지만 이준은 미간을 찌푸릴 뿐, 연금비약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런 레벨의 연금비약을 함부로 꺼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형이 연금비약을 얻었을 때, 다른 물건들은 없었어?”
동생의 질문에 이찬은 잠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반지 속에서 붉은 두루마리가 튀어나왔다. 그 두루마리 위에는 붉은 빛이 은은하게 어른거렸고, 매우 중요한 물건인 듯 굳게 봉인이 되어 있었다.
“이것도 같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열 수 없더구나.”
이찬이 붉은 족자를 건네주자, 준은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을 내려두고 그것을 받아들어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이게 바로 초월의 비약 조합표겠지.”
이찬은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없었을 뿐, 처음 연금비약을 얻었을 때부터 그 역시 짐작하고 있던 일 이었다.
“만약 이게 정말 초월의 비약의 조합표라면…운남종과 싸울 때 큰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초월의 비약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이 투기 대륙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유는 이 비약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수 십명, 아니 약재만 충분하다면 수 백명의 투왕으로 만들어진 군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운남종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할 판인 이씨 가문의 입장에서는 이「초월의 비약」보다 더 절실한 물건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건 어려워. 첫 째로는,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바쳐 운남종에 맞선다는건 어불성설이야. 가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운남종과 싸우려는 것인데, 운남종과 싸우려고 사람들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고? 절대 안돼. 게다가 7레벨 최정상 단계의 연금비약이야. 누가 이걸 만들어?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투기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거야.”
현재 투기대륙에서 7레벨 연금비약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금술사는 매우 드물었다. 설령 약로가 깨어난다해도, 육체를 되찾지 않는 이상 7레벨 연금비약은 무리일 것 같았다.
물론, 준의 실력 역시 크게 성장해있었고, 두 개의 천지의 불꽃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7레벨 연금비약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물건이었다.
이준의 말에 이찬이 조금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 해도 우선 챙겨두거라. 나는 연금술사가 아니니 나에게 있어봤자 무용지물이야.”
이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거절하지 않았다. 사용할 마음은 없었지만, 이런 물건은 자칫하면 큰 화를 부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이 나았다.
“이 물건에 관한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 만약 말이 새어나간다면…”
“걱정하지 말아라. 나도 바보가 아니니. 2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이 물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찬이 책상 위의 옥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마지막 남은 비약도 네가 가져가거라.”
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무거운 표정으로 약병을 저장반지에 집어넣었다.
“내가 이 초월의 비약과 조합표에 대해서 1년 안에 해결방법을 찾아볼게.”
하지만 이찬은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네가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내가 있든 없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니.”
이미 삶을 포기한듯한 형의 표정에 준의 얼굴에 순간 살기가 돌았다. 그는 말없이 주먹을 움켜쥐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먼저 가람 아카데미로 돌아갈게. 이틀 후, 한샘과 결판을 낼 거야.”
“한샘? 네가 그놈을 잡아서 뭐하게? 그놈은 투황의 최고봉에 있는 강자야. 게다가 천지의 불꽃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지간한 투종급 강자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게다가 놈에게는 지금 흑맹의…”
“하하, 걱정하지 마. 가람 아카데미에서 날 도와주기로 했어. 게다가 천지의 불꽃이라면 난 두 개나 가지고 있고.”
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이찬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데?”
“투왕 최정상급이야. 투황 단계가 멀지 않았어.”
사실 준의 말에는 조금의 과장이 섞여 있었다. 투왕 최정상급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투황이 되려면 아직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하지만 그는 형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치 곧 투황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거짓말을 했다.
“후…그래도 한샘이랑은 격차가 너무 크잖아.”
무언가 더 말하려던 이찬은 동생의 성정을 떠올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럼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나도 데려가거라.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너한테도 꽤 도움이 될 거야.”
“하하, 형이 다시 흑각성에 남아있는 건 나도 안심이 안 돼. 그럼 먼저 형이 부하들을 모아줘. 가람 아카데미로 가서 준비를 마치고 함께 출발하는 거야.”
* * *
준과의 약속에 따라, 이찬은 곧바로 대청 밖으로 나가 부하들을 소집했다.
앞선 전투로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아직도 100여명의 사람들이 그를 대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피의 종족 같은 거대한 세력들에 비하면 초라한 세력이었지만, 그래도 약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동료들을 잃은 원한을 풀지 못 하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던 100여명의 투사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찬의 뒤를 따랐고, 그 날 밤, 이준은 그 모든 사람들을 비행 마수의 등에 태우고 가람아카데미로 향했다.
* * *
이준은 이찬의 부하들은 모두 안전하게 가람성에 머물게 한 후 이찬만을 데리고 아카데미로 들어갔다.
이번 격전에 참여했던 비석의 구성원들이 투황 범로가 이준의 손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파하자, 곧바로 내원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준은 그런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곧바로 서천우를 만나러 갔다.
서천우 역시 이준이 범로를 죽였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을 가진 투왕 최정상급의 강자라면 최정상급 투황과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니, 전혀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준이 이찬을 데리고 내원에 들어온 것은 규정에 어긋난 행동이었지만 서천우는 이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 째로는 준이 2년 전 본원에서 세운 공로가 컸기 때문이고, 둘 째로는 앞으로 천계의 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준의 도움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흔쾌히 시간을 내서 구름 불꽃을 충전하러 와주겠다는 학생에게 그런 규정을 일일이 들이미는 것도 그가 생각하기에 썩 온당한 처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샘과 「흑맹」과의 전투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투왕 강자와 100여명의 투사를 이끌고 왔다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서천우와 이준은 이틀 후에 있을 전투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헤어졌다.
* * *
이준이 돌아오고 둘째 날의 여명이 밝아올 무렵, 내원의 모든 장로들이 오색찬란한 날개를 펄럭이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내원의 강자들은 지난 2년간 몇 번이나 이렇게 모여 누군가를 찾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오늘 실로 본원의 모든 강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상태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부러운 눈길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장로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갑자기 내원 한켠에서 아름다운 비취색의 염력 날개를 가진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샘…오늘에야말로 스승님을 대신해 네 놈에게 천벌을 내려주마.’
한샘은 2년 사이 자신의 거처 주위에 흑맹의 총사령부를 만들어 이를 중심으로 흑각성 내의 온갖 흉악한 무리와 강자들을 빠른 속도로 자신의 휘하에 집결시켰다.
이후 그곳은 온전히 흑맹의 땅이 되었고, 흑각성 내의 어떤 누구도 감히 흑맹과 한샘에게 저항하지 못 했다.
그리고 오늘, 흑맹 총사령부의 널따란 대청 안에는 흑맹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당연히 가장 상석에 위치한 것은 흑맹의 맹주인 ‘약황’ 한샘이었다.
한샘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김씨 형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밑으로는 흑맹에 가입한 각종 세력들의 우두머리들이 줄줄이 앉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
마침내 한샘이 입을 열자, 대청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 앉았다.
“이준이라는 놈이 살아있습니다. 이미 몇 몇 분들은 소식을 들었겠지요.”
하지만 약황의 한마디에 대청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지며 잠시 소란이 일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하나 같이 흑각성에서 이름 높은 강자들 이었으나, ‘이준’이라는 자의 실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 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흑맹의 범 종주가 이미 그놈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어지는 한샘의 말에 대청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범로가 죽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이 있었지만, 흑각성 10대 강자 중 하나인 그가 죽었다는 소문은 도저히 믿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맹주의 발언으로 투황 강자의 죽음이 확인되면서, 대청 안에는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 앉았다.
살인자와 범죄자들이 모인 조직인만큼 범로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자는 없었으나,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바로 다음은 자신들이라는 생각이었다. 투황인 범로가 죽었다는 말에 범로만 못한 실력을 가진 모든 이들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우리와 그놈이 마주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놈은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 놈 입니다.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중에는 그 때의 격전에 참여했던 분들이 적지 않으니,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한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범로의 실력은 흑각성에서도 뛰어나 10대 강자에도 들었지요. 그런데 결국엔 이준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 놈이 2년 새에 얼마나 성장했는지 짐작하시겠지요? 만약 그놈이 정말 복수를 하러 온다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김씨 형제를 제외한, 대청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돌이라도 씹은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중 몇 몇은 범로보다 강하거나 그 못지않게 강했으나, 범로를 죽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만한 실력자는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준을 만난다면 자신들도 범로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