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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98화 (298/818)

제298화. 생사의 기로

익숙한 방안에 들어서자, 수 십 개의 뜨거운 눈동자가 검은 망토를 걸친 청년에게로 향했다.

“하하, 마침내 우리의 대장이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다는군. 만약 우리와 함께 목숨을 걸고 흑각성의 강자들과 맞부딪힐 각오가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오하늘이 대청 가득 새까맣게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준이 없는 사이 조직을 이끌면서 성격이 조금 변한 탓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돌아온 이준을 보고 반가워서인지, 오늘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예전과 달리 말수도 제법 많았다.

쿵!

곧이어 절도있게 발을 구르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몸을 일으키는 이들을 바라보며 준의 마음 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14명의 정상급 투령에, 나머지도 모두 투령이군. 어때 대장?”

보람이 서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돌려 이준에게 물었다.

“응, 충분해.”

준은 활짝 웃으며 보라색 말총머리를 한 작달막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2년이나 지났는데 별로 크지 않았네?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완벽한 마수의 구슬을 제련해줄게.”

이준의 한마디에 보람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다. 준이 없는 동안 맛없는 약재를 씹어 먹으며 갖은 고생(?)을 했던 이 작은 괴물은, 비석의 대장이 돌아온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었다. 비록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지만…

“흥, 2년 동안 얼마나 맛없는 것만 먹었는 줄 알아!?”

뾰로통한 표정으로 심통을 부려대는 보람의 모습에 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보람과 대화를 마친 준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 십명의 강자들을 향해 말을 던졌다.

“거두절미하고,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일이 성사되고 무사히 돌아온다면, 여러분에게 크게 한 턱 내겠습니다!”

2년 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대장의 한마디에 모두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가자!”

돌아온 비석의 영웅이 발걸음을 옮기자, 수 십 명의 젊은이들이 기세등등하게 그 뒤를 따랐다.

깊은 산을 지나 은밀히 숨겨져 있던 대문을 활짝 열자, 비행마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이 비행마수들은 뭐지?”

마치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서 있는 비행마수들의 모습에 준은 잠시 넋이 나가고 말았다.

“밖에는 이미 십여 마리의 비행마수가 기다리고 있어. 저들이 곧바로 너희들을 태우고 목적지로 날아갈 거야.”

그 때, 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건 대장로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신 거야.”

임동수의 설명에 준은 또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본원의 규율에 따르면 개인적인 일로는 절대 본원 사람들을 동원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대장로는 이준이 자신의 형인 이찬을 구하기 위해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을 눈감아 주는 것을 넘어서, 본원의 비행 마수까지 동원해 그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대장로님…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이준은 본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린 뒤 곧바로 대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 * *

본원의 깊은 곳, 뒷짐을 지고 본원의 대문을 바라보던 서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갔구나.”

“대장로님, 본원의 학생들을 데리고 흑각성에 가도록 하다니요.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서천우의 등 뒤에서 한 장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하, 걱정 말아라. 이준의 실력이라면 분명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을 게야. 게다가 이렇게 목숨을 건 싸움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 이준과 함께 간 학생들도 많은 것을 배우고 올걸세.”

말을 마친 서천우는 곧바로 엄중한 목소리로 장로에게 명을 내렸다.

“자네는 즉시 본원의 장로들에게 내 명을 전하게. 모든 장로들과 본원의 실력자들이 모여 3일 후 흑맹을 쓸어버릴테니, 준비를 마치라고 말이야.”

“네, 대장로님.”

* * *

아득한 하늘 위, 십여 개의 조그마한 검은 점들이 매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어딘가로 향했다.

십 여 마리의 비행 마수 위에는 수 십명의 청년들이 올라타 있었고, 무리의 선두에는 검은 망토를 두른 소년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우리 이미 흑각성의 성내로 들어온 거, 맞지?”

이준이 입을 열자, 곁에 있던 오하늘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자신의 반지 속에서 지도를 꺼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정보에 따르면, 그 거대 세력들이 이곳으로 왔어. 네 형님도 분명 여기에 있을 거야. 이 속도라면 내일 새벽쯤에 도착하겠지.”

이준은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비행마수의 널따란 등 위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비행 마수를 탄 덕분에 비석의 일원들은 조금의 체력도 낭비하지 않고 결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동시간도 크게 줄어 겨우 하룻밤 만에 이미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만약 걸어서 왔더라면 서둘렀더라도 사나흘은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 은은한 안개로 뒤덮인 산이 가까워질수록 준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결국 참지 못한 준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 먼저 갈게. 너희들도 따라와.”

이준의 말에 오하늘 등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를 말리지는 않았다. 형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니, 조급해지는 것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이준의 실력은 5성 투왕인 임수혁을 단 한 수만에 무릎 꿇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임수혁 역시 정상급 투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강자였으니, 어줍잖은 투황급 강자 정도로는 감히 준의 상대가 되지 못 할 것이다.

오하늘과 임동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준은 곧바로 청록색 날개를 펼쳐 비행 마수의 등 뒤에서 뛰어내렸다.

아름다운 청록색 섬광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모습에 비행 마수의 등 뒤에 올라있던 수많은 강자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하, 그럼 우리도 속력을 더 높여볼까. 늦장 부리다가는 대장이 적들을 다 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빠르게 사라져가는 이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오하늘이 손을 휘두르자, 십여 마리의 비행마수들이 크게 울부짖으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 * *

사방이 기둥처럼 거대한 나무로 가득한 숲 속에는 짙은 안개와 울창한 수풀로 인해 햇볕조차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둡다 못해 음침한 느낌을 주는 숲 속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들어진 조그마한 마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에 가득한 수풀과 안개로 인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바로 옆을 지나더라도 마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마을 중심에 있는 단상 위에는 전신에 검은 옷을 뒤집어 쓴 사내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사내의 몸에는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어, 그 곁을 지나는 누구라도 그 냄새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정도였다.

단상 아래로는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 역시 모두 단상 위에선 사내처럼 온 몸을 검은 옷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온 광장에는 검은 옷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가느다란 발소리만이 들렸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달려와 단상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대장님, 염탐한 바에 따르면 초소 중 7곳이 이미 적들에게 돌파 당했습니다. 숲 속의 흔적으로 보아서는, 저희의 위치를 이미 파악한 것 같습니다. 이곳도 이미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흑맹놈들…마침내 움직이는구나.”

단상 위에서 검은 두루마리를 입은 이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이준의 둘째 형인 이찬이었다.

“우리측 사상자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음에도 이찬의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 싸늘한 표정이었다.

“최소한 2백명 정도입니다. 개개인의 실력은 모두 약하지 않았으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놈들의 대장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토벌에 동원된 세력 중 피의 종족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범로가 대장으로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범로라…시간이 얼마 없다. 그러니 오늘, 놈을 죽여야 한다. 설령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말이지.”

생각을 마친 이찬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수조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전투와 후퇴를 반복하며 저들의 전투력을 소모시켜라. 죽을 때는 반드시 한 명의 적이라도 죽이고 가야 한다. 결코 그 목숨을 헛되이 쓰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이찬의 명령이 떨어지자, 단상 아래 있던 이들이 살기로 눈을 번뜩이며 답했다.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감히 겁을 먹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마을을 지켜라.”

“알겠습니다.”

남은 이들이 질서정연하게 마을 곳곳의 어두운 구석으로 사라졌다.

싸늘한 눈으로 부하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이찬은 천천히 눈을 감고 읊조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준아…반드시…반드시 복수해줄게.”

* * *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돌연 무수히 많은 폭음이 숲 속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전신에 살기를 두른 그림자들이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암살을 하기 위해 움직이느라 적지 않은 손실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모두 전투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주 확실하게 적의 전력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

“대장님, 살수조로 투입된 동지들 중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측은 저희보다 배 이상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만 적에게는 세 명의 투왕과 한 명의 투황이 있고, 그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단상 위에 서있던 이찬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속도라면, 십 분내에 마을 바깥쪽에 도달하겠군. 모두 흩어져서 전투를 준비해라.”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찬은 후퇴를 명하지 않았고, 수하들 역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듯 망설임 없이 그의 명을 따랐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시커먼 그림자들이 숲을 뚫고 나타나 단상 주위를 포위했다.

“네놈이 그 이름 없는 조직의 우두머리냐?”

그 때, 하늘 위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 위에 네 개의 그림자가 떠 있었다.

네 명의 강자들 중 선두에 서있는 자를 바라보는 이찬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범로…”

다음 순간, 이찬의 손에 새카만 장창이 나타나며 은색 염력이 번개처럼 솟구쳤다.

“죽여라!”

범로의 명령에 뒤에 있던 세 명의 투왕 강자들이 이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투왕 세 명의 연합 공격에도 이찬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장창을 움켜 잡았다.

“죽어라!”

“버러지 같은 놈! 감히 흑맹을 건드리다니. 정말이지 분수도 모르는구나!”

세 명의 투왕에 맞서 이찬이 장창을 휘두르자, 창 끝에 은색 섬광이 몰려들었다가 매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

쾅!

곧이어 거대한 소리와 함께 흉폭한 기운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광풍이 일었다.

이찬의 일격이 가진 무시무시한 위력에 세 명의 투왕들 역시 잠시 주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압도적인 열세. 이찬에게는 조금도 승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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