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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96화 (296/818)

제296화. 악재

그렇게 준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이, 임수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염력을 끌어올렸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서천우가 피식 웃으며 장로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임수혁이 이준과의 대련에서 몇 합이나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

서천우에 말에 장로들은 하나 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님의 말씀은 이준의 실력이 임수혁보다 낫다는…”

그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대장로가 자신만만하게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3합. 내 장담하네, 허허허.”

대장로의 말에 곁에 있던 장로 하나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흐음…대장로님, 하지만 임수혁 장로는 이미 5성 투왕입니다. 이준도 아직 투왕 단계에 머물러 있을터인데, 설마 3합내에 승부가 나겠습니까?”

하지만 서천우는 빙그레 웃을 뿐 대답조차 않았다.

임수혁이 임전태세에 들어가자, 준은 가볍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 이준 자신조차도 그 위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작할까요 선배님?”

“좋습니다.”

이준이 범로를 쓰러뜨리던 날, 임수혁은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자신보다 어린 후배가 투황 강자를 쓰러뜨리는 모습은 그간 자신의 실력에 적지 않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을 경악케 한 천재는 그 날 탑안으로 사라지고 말았고, 그는 사라진 자신의 호적수를 떠올리며 2년간 미친 사람처럼 수련에 몰두해 왔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부단한 노력. 이 두 가지가 만나 지난 2년 사이 그는 5성 투왕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의 마음속에 커다란 벽처럼 자리잡고 있던 존재와 자웅을 겨룰 기회를 얻은 것이다.

쾅!

굉음과 함께 임수혁의 몸에서 푸른 염력이 솟구치자, 주위의 에너지가 응집되며 아름다운 장검 하나가 솟아났다. 장검의 끝부분에서는 바람이 몰아치며 섬칫한 소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푸른 염력을 머금은 칼날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순간, 이준의 발 아래에서 은빛 번개가 번뜩이더니 그의 몸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임수혁은 잽싸게 몸을 돌려 뒤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과연…2년 사이에 더욱 빨라졌구나.”

2년 전의 이준이라면, 빠르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 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위치를 모른다고 방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임수혁이 검을 들어 몸을 회전시키며 사방으로 염력을 내뿜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영문을 모른 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보기에는 아직 이준이 임수혁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임수혁의 염력에 의해 정면에 서있던 잔상이 흩어지는 순간이 돼서야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학생들보다 더욱 놀란 것은 자리에 있던 장로들이었다. 같은 투왕급 투사인 그들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소리도, 흔적도 없이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질 정도의 움직임이라니, 투왕이 아니라 투황급 강자라도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관객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갑자기 허공에서 비취색의 화염이 일어나 장검 주위를 둘러쌌다.

그 순간 염력으로 만들어 진 푸른 색 장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산산히 부서지고, 갑자기 임수혁의 등 뒤에서 청록색의 아름다운 화염이 일렁였다.

자리에 있던 학생들의 눈에는 순간 완전히 반대 위치에서 두 개의 화염이 치솟는 것처럼 보일 정도의 속도였다.

“바람의 그물!”

하지만 임수혁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가 재빨리 손을 휘두르자, 주위에서 빠른 속도로 파동이 일어나며 허공에 푸른색의 그물이 펼쳐졌다.

그러나 다시 한번 청록색의 화염이 폭발하자, 푸른 색 그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물을 뚫고 날아든 준의 주먹이 임수혁의 코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

광장에는 거짓말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백의 사람이 운집해 있건만, 마치 아무도 없는 듯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한 수. 단 한 수만에 5성 투왕이 무릎 꿇는 모습에 대장로인 서천우 조차 말을 잇지 못했다.

“선배님,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준은 주먹을 거두어들이며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자, 임수혁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2년을 기다렸건만 한 수만에 패배하다니, 허탈한 마음에 분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후배님 정말 대단하군요. 2년 사이에 이렇게나…”

임수혁이 염력을 거두며 탄식을 내뱉었다. 2년 이라는 시간동안 밤낮없이 수련에 몰두했건만, 1분도 버티지 못 하다니. 그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또래와의 대결에서는 패배를 모르던 그였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아닙니다. 여러모로 운이 따라주어 실력이 크게 상승한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는 선배님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준은 웃으며 임수혁을 위로했다. 임수혁 정도의 실력자를 이긴 것은 기쁜 일 이었으나, 언제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임수혁이 실의에 빠진 표정을 짓자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다.

두 사람이 웃으며 다시 단상에 올라서자 서천우가 놀란 표정으로 이준에게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2년 사이에 이렇게 성장한 것이냐?”

서천우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투종 단계에 이른 그가 보기에도 지금 준의 속도와 화염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불과 2년 사이에 정상급 투왕이 되다니! 게다가 그 청록색 화염은…대체 무엇이더냐? 상급 투왕이라 해도 임수혁의 염력을 그리 쉽게 무산시킬 수는 없을 터인데…”

말을 마친 서천우의 안색이 조금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이준의 실력은 둘째치고, 그가 보여준 청록색의 화염에서 실로 공포스러운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불꽃은 투종 강자인 자신이라 해도 쉽사리 막아낼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투황을 목전에 둔 수준이라고는 해도 투왕이 가진 불꽃이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그는 투종이 된 이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기분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쉭-!

그 때, 허공에서 오색찬란한 불빛이 번쩍이더니 정체불명의 그림자 하나가 탑을 빠져 나오며 준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누구냐!”

살기로 가득한 무지개 빛 염력이 준을 향해 날아들자, 서천우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 앞을 막아섰다. 두 염력이 맞부딪히는 순간,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두 강자의 충돌에 광장에 있던 수많은 학생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텅 빈 하늘에는 어떠한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하늘 위의 공간이 조금씩 진동하더니 요염한 자태의 미녀 하나가 허공에 나타났다.

냉담한 눈으로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던 그녀는 서천우의 곁에 흑색 망토를 입은 소년을 노려보며 또 다시 염력을 폭발시켰다.

쾅!

또 다시 무지개빛 염력이 폭발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광풍이 일며 자리에 있던 이들을 뒤로 밀어냈다.

대장로와 메두사 여왕의 힘이 맞부딪히며 만들어 낸 충격에 이준과 서천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귀하는 대체 누구시오? 이름을 밝히시오!”

“감히 날 방해해!? 꺼져라 늙은이! 난 오늘 저놈을 죽여야 해!”

자신의 공격이 두 번이나 막히자, 분노한 메두사 여왕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탑에서 나오자마자 서천우와 맞먹는 강자의 추격을 받다니…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광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준에게 꽂혔다.

“너 저 여자를 아느냐?”

이에 서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준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작은 오해라고 할까요. 심각한 것은 아니에요.”

준이 멋쩍게 웃으며 모호하게 말하자, 대장로가 끌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 너 이 녀석. 어떻게 했길래 탑 안에서도 투종 강자의 미움을 산게냐. 가한제국에서도 투종 강자의 미움을 샀다더니…”

서천우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얼핏 보기에도 그녀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거예요? 탑에서도 탈출했고, 몸도 찾았고, 그럼 서로 갈 길 가면 되는거 아니예요!? 어서 사막으로 돌아가라고요! 대체 왜 이러는건데!”

이준의 한마디에 메두사의 얼굴이 더욱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간악한 놈이! 네 놈을 죽이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

“허허, 이보게. 이준은 우리 본원의 학생이네.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진정하고 대화로 해결하는 것은 어떠한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천우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메두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또 다시 버럭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투종 강자가 널 보호해준다고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으냐! 흥, 저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평생 네 녀석을 따라다니지는 않겠지!”

말을 마친 메두사 여왕이 번개처럼 몸을 움직이자, 거짓말처럼 그녀의 모습이 허공에서 자취를 감췄다.

멀어져 가는 메두사 여왕을 바라보던 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운산에 이어 또 다시 투종 강자의 원한을 사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은 괜찮다지만 저 여인의 성질머리로 보아 언젠가 반드시 복수를 할 것 같구나. 쯧쯧…! 탑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리 골치 아픈 일을 만들었느냐.”

서천후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이준이 말없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탑 안에서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준의 말에 서천우가 순간 당황하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다른 중요한 일?”

“그… 어쩌다보니 제가 구름 불꽃을 흡수했거든요. 혹시 이것 때문에 더 이상 천계의 탑이 예전처럼 수련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거나…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겠죠?”

이준의 한마디에 서천후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뭐라 했느냐?”

“대장로님, 탑에 있는 불꽃의 기운이…정말 조금씩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오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것 같습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를 올리는 장로의 말에 서천우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준을 흘겨봤다.

하지만 자신이 이준을 구름 불꽃과 함께 봉인했고, 그 역시 살기 위해서 구름 불꽃을 흡수할 수밖에 없었으니 탓할수도 없었다.

만일 이준을 탓한다면, 구름 불꽃과 함께 이준을 봉인한 자신 역시 벌을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대장로와 장로들이 일 처리를 똑바로 하지 못 해 어린 학생을 그 지옥같은 곳으로 빠뜨려 놓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 돌아온 학생을 비난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뻔한 처사였다.

게다가 그 날 이준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구름 불꽃이 한샘의 손에 넘어가거나, 본원 전체가 불타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계의 탑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단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계의 탑이 없다면 본원과 외원이 다른 점이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람아카데미가 우수한 학생들을 계속해서 배출할 수 있는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 방식이 훌륭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구름 불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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