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95화 (295/818)

제295화. 전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광장에 또 다시 소란이 일었다.

“와아…!「본원의 사신」오하늘과 비석의 창립자 중 하나인 이윤영이야!”

“정말이네? 평소에는 보기 힘들잖아. 왠일이지?”

오하늘과 이윤영은 모두 2년 사이 강자 목록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상태로, 준이 사라진 이후 비석을 이끌어온 것은 바로 그 둘이었다. 그 사이 둘은 본원 전체에 그 명성을 떨치며 ‘비석의 두 기둥’ 이라고까지 불리고 있었다.

“어머, 휴가가 끝난거야?”

이옥이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두 사람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이준이 구름 불꽃과 함께 봉인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원의 선발전을 거쳐 그의 친척인 이옥이 본원으로 들어왔고, 이에 이윤영과 오하늘은 친히 이옥을 비석으로 데려왔다.

이준에 대한 예우 때문인지, 그녀의 지위는 비석의 최강자인 보람이나 비석의 창립 당시부터 중책을 맡아왔던 이윤영과 오하늘과 거의 비슷했다.

보람과 이옥에 이어 도착한 이윤영과 오하늘이 동상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사이, 돌연 묵직한 종소리가 광장 위로 울려퍼지며 광장안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종소리가 멎자, 몇 개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와 광장 한켠에 있는 단상 위에 올라섰다.

선두에 선 사람은 놀랍게도 백발이 성성한 대장로 서천우였으며, 그 뒤를 비슷한 연령대의 연로한 장로들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비범한 기운을 내뿜는 세 명의 젊은이가 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갓 스물을 넘긴 듯한 그들의 가슴에는 본원의 장로임을 상징하는 휘장이 달려있었다.

본원의 장로가 되려면 최소한 투왕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임수현과 류지안, 임동수 이 세 사람이 계속 남아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다른 애들은 대부분 본원을 떠났으니까.”

단상에 있는 익숙한 세 명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하늘이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굳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수련을 하겠다니까. 게다가 임수혁 저 고집스러운 녀석은 이준과 함께 할 거라나 뭐라나 하면서 아예 본원에 눌러 앉을 모양이고.”

이윤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때, 무거운 표정으로 광장에 우뚝 선 동상을 바라보던 서천우를 향해 장로 하나가 보고를 올렸다.

“대장로님, 흑맹에서 마구잡이로 다른 세력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의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보고에 대장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으음…과연 흑각성의 약황이라는 말이 허명은 아니구나. 불과 2년 사이에 조직을 키워 우리 가람아카데미에 대항하려 하다니…”

아직 흑맹의 세력은 가람아카데미에 미치지 못했지만, 6레벨 연금술사가 가진 잠재력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절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사안이었다.

“됐다. 이 시간에 더 이상 그런 유쾌하지 않은 일은 꺼내지 말자꾸나. 일단은 오늘 일에 집중해야지. 천계의 탑을 개방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장로의 명에 따라 본원의 장로들이 빠르게 천계의 탑 주위로 흩어져 염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장로들의 염력이 검은 대문 주위를 감싸자, 육중한 철문이 움직여 천계의 탑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기억하거라. 모두 질서를 지켜 들어가도록 한다. 오늘은 싸움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일주일 동안…”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던 서천우의 얼굴이 돌연 크게 일그러졌다. 그의 예민한 탐지능력에 무시무시한 열기를 품은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탑에 변고가 생겼다! 빨리 문을 닫거라! 어서!”

서천우의 고함소리에 순간 광장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서천우의 고함소리를 듣자마자 장로들은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른 채 곧바로 육중한 대문을 닫았다.

하지만 탑의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천지에서 무시무시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젠장, 구름 불꽃이야! 그것이 또 폭발을 일으키는 것인가? 모두 즉시 광장을 벗어나라!”

쿵!

또 다시 거대한 소리가 천계의 탑 꼭대기 주위에 울려 퍼졌다.

쿵!

계속해서 굉음이 들려오고, 탑 정상에는 어느새 엄지손가락 만한 크기의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쾅!

그리고 서천우가 손을 써보기도 전에 견고한 봉인이 찢기며 새빨간 용암이 봉인을 뚫고 치솟아 올랐다.

이에 서천우를 비롯한 장로들이 염력 날개를 펼치는 순간,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탑 안에서 튀어나왔다.

“하하! 드디어 탈출했어!”

기이하게도 탑의 봉인을 뚫고 솟아올랐던 용암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탑을 감싼 채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돌처럼 굳어 웃음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공에는 청록색의 날개를 가진 정체불명의 사내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순간 오하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이 익숙한 열기, 낯익은 웃음소리…

“이…이준!?”

학생과 장로들 뿐 아니라 대장로 서천우 역시 얼이 빠진 표정으로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 목소리는…”

“대장로님, 이준입니다! 틀림없어요! 하하! 그것 보십시오! 녀석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오하늘과 대장로에 이어 준의 웃음소리를 알아챈 임동수가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임동수는 시종일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준이 이화에 삼켜져 끝을 알 수 없는 용암 호수에 끌려 들어갔을 때에도 그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년 내내 언젠가 이준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정말로 살아있었다니…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넋을 잃고 중얼거리는 서천우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가늘게 떨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설마 정말로 살아있을 줄 이야.”

임수혁과 류지안이 서로를 마주보고 웃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용암 회오리가 갈라지며 검은 망토를 걸친 소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라보기도 두려운 무시무시한 열기를 내뿜은 용암 속에서도 전혀 열기를 느끼지 못 하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은 광장안에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훑어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탑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는 사람들을 잔뜩 만나네! 다들 오랜만입니다!”

“이녀석! 정말 살아있었구나!”

지난 2년간 단 한번도 웃지 않았던 서천우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 오랫동안 못 뵈었는데, 대장로님은 나이가 드실수록 더 강해지시는 것 같군요.”

이준이 웃으며 소매를 휘두르자, 하늘을 뒤덮고 있던 붉은 용암이 거짓말처럼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용암 기둥을 수족처럼 부리는 청년의 모습에 본원의 학생들은 모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 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이준의 발끝에서 은색 섬광이 번쩍이더니 단상 위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실로 번개와도 같은 속도에 자리에 있던 이들 중 대장로를 비롯한 몇 몇 장로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투왕에 올라선 것이냐?”

“그럴걸요.”

이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애매하게 대답했다. 두 불꽃을 결합한 뒤, 자신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 시험삼아 임수혁과 한번 겨루어 볼테냐?”

서천우가 웃으며 말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 청년의 실력이 과연 어느 단계에까지 도달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여태 임수혁 선배와는 정면으로 겨루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준이 가볍게 웃으며 서천우의 뒤쪽에 서 있는 임수혁을 바라보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공터로 몸을 날렸다.

“저도 한번쯤은 후배님과 꼭 겨루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군요.”

갑작스럽게 성사된 대결에 학생들을 비롯한 장로들마저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현재 아카데미에 남아있는 학생들 중에는 이준을 한번도 보지 못 한 자들도 제법 많았지만, 비석의 창립자의 명성과 전적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한편 임수혁은 비석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세력인「늑대 이빨」의 창시자로, 현재는 그 조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았지만, 「늑대이빨」의 조직원들은 여전히 그를 흠모해 마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불과 약관의 나이로 본원의 장로가 된 자이니만큼 본원의 모든 학생들이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다.

이런 두 사람의 대결이니만큼 모든 학생들은 숨조차 쉬지 못 하고 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게다가 이준의 실력과 활약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것들 뿐 이었으니, 이준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은 모두 그 전설의 진위 여부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준’이라는 자는 본원에 입학하자마자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그 조직을 1년도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 최강의 세력 중 하나로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연금술사 연합의 수장과 연금술 대결을 펼쳐 승리한 연금술사이면서, 투사로서는 당시 아카데미의 최강자 중 하나인 류지안과 무승부를 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천지의 불꽃을 두고 그 유명한 흑각성의 강자 ‘약황’과 겨루었으며, 투황 강자인 ‘범로’를 패퇴시켰다니, 제 아무리 증인이 많다 해도 직접 두 눈으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반면 임수혁의 실력과 재능이야 모르는 자가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거짓말 같은 전설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한편, 광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을 바라보던 이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원이라고 치기에는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원은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학생들도 많지. 네 실력을 모르는 아이들도 많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진정한 강자란 무엇인지 보여주거라.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게다.”

대장로가 인자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이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2년이요?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2년이나 흘렀다니. 말도 안 돼요.”

“야! 이준! 임수혁에게 지면 죽여 버릴거야! 아직도 비석의 수장은 너라고! 네가 지면 비석이 개망신을 당하는거야!”

이준이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보람이 빽빽거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준은 그녀의 가슴에 걸린 비석의 휘장을 발견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보람의 곁에는 오하늘과 이윤영뿐 아니라 이옥이 함께 있었고, 그 뒤로는 얼굴조차 모르는 신입생들이 새까맣게 줄을 서 있었다.

준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에 걸린 휘장만은 너무나도 익숙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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