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93화 (293/818)

제293화. 융합

완전히 흡수된 구름 불꽃은 마치 착한 아이처럼 주인의 의지에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으며, 이전의 사납고 포악스럽던 성질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준은 정신을 집중해 구름 불꽃을 몸 곳곳으로 흘려보냈다. 전신의 혈관을 따라 몇 번 정도 순환한 뒤, 구름 불꽃은 빠르게 텅 비어버린 염력 회오리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준이 정신을 집중하자, 회오리 중심에 위치한 납령 속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대지의 불꽃의 출현에 고요히 있던 구름 불꽃이 갑자기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론 주인의 몸 속에 들어온 새로운 천지의 불꽃에 반응한 것은 구름 불꽃만이 아니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몇 번이나 준을 구해준 대지의 불꽃 역시 거세게 타오르며 본능적으로 맞은 편의 이화를 집어삼키려 하기 시작했다.

“과연…! 스승님이 하나의 천지의 불꽃만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니, 천지의 불꽃이 이렇게까지 서로를 배척할 줄이야.”

두 불꽃이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것을 바라보던 준이 고개를 저으며 낮게 읊조렸다.

“만약 「불개」가 아니었다면 이 두 가지를 합치는 것은 꿈도 못 꿨겠어.”

정신을 집중하자, 「불개」의 수련법에 따라 혈관을 타고 염력이 흐르더니 조심스럽게 염력 회오리 가운데로 들어가 대지의 불꽃과 구름 불꽃 사이에 선명한 경계선을 만들어냈다.

곧이어 두 종류의 불꽃을 억압하고 있던 힘이 전부 흩어져 사라지고, 맹수가 포효하듯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화염이 거센 기세로 함께 충돌했다.

쾅!

두 불꽃은「불개」의 염력이 만들어 낸 벽에 거세게 맞부딪히며 서로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불타올랐고, 준은 조심스럽게 「불개」의 염력을 조종해 두 화염을 떼어냈다.

「불개」의 염력이 끊임없이 혈관을 따라 움직이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던 두 개의 불꽃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과연…대단해!’

두 개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드는 모습에 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시동안 자신의 염력 회오리를 바라보던 준은 두 불꽃이 완전히 얌전해지자, 그제서야 신중하게 두 개의 무시무시한 불꽃을 가로막고 있던 염력을 서서히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염력막이 완전히 사라지는 찰나, 마침내 푸른색과 유백색의 두 화염이 맞닿았다.

서로 맞닿은 두 개의 화염은 잠시동안 호수처럼 잔잔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준이 가볍게 한숨을 쉬는 사이, 낮고 묵직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잽싸게 자신의 염력 회오리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자, 청색과 백색의 화염이 화산이 폭발하듯 미쳐 날뛰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젠장, 결국 융합될 수 없는 건가?”

끊임없이 자잘한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두 이화를 바라보며 준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화약과 불꽃이 만난 것처럼, 두 이화는 맞닿자마자 격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두 개의 화염이 갈수록 거세게 폭발하는 광경에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염력 회오리를 중심으로 서서히 통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준의 머릿속에는 순간 두 개의 불꽃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의 몸을 산산조각 내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준은 포기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 염력을 온 몸 곳곳으로 흘려보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온 정신을 집중해 「불개」의 염력을 흘려보내는 것뿐이었다.

이 방법은 순간적으로 생각해낸 것이었지만, 효과는 꽤 괜찮았다.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불개」의 염력에 몸 안에서 들려오던 폭발음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두 불꽃은 여전히 준에게 복종하지 않았지만, 잠시 동안이나마 거세게 들려오던 폭음이 잦아들고 있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되는건가?’

스승이 없는 상태이니,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해야 했다. 방금전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불개」의 주황색 염력은 두 불꽃을 융합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불꽃이 완전히 융합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언제 또 다시 두 개의 불꽃이 폭발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준은 곧바로 눈을 감고 수련 상태에 들어갔다.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이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생각하면, 자신의 염력을 모두 털어 넣어도 부족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계까지 주황색 염력을 자신의 염력 회오리 안으로 밀어 넣고, 두 불꽃이 잠시 휴전을 하고 있는 사이 수련 상태에 들어가 다시 염력을 충전하는 것이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잊은 채 준은 자신의 염력 회오리 가운데에서 뒤엉켜 있는 두 불꽃의 움직임을 조용히 주시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하기는 했지만 어느새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침범하던 푸른색과 유백색의 불꽃이 뒤섞여 있었다. 비록 아직 융합이 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융합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만은 분명했다.

정신 없이 주황색 염력을 조종해 염력 회오리 속으로 밀어넣고, 다시 염력을 회복하고, 회복된 염력을 다시 염력회오리 속으로 밀어넣고 반복하기를 수 시간, 무언가를 발견한 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 자신의 염력 회오리 한가운데에는 두 개의 화염이 완전히 뒤엉켜 청백색의 화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청백색의 화염은 점점 더 단단히 결속되며 은은한 빛을 뿜어내다가 마침내 비취같은 청록색의 화염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융합이 시작되었구나!”

청백색의 화염이 조금씩 청록색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준의 얼굴 위로 참을 수 없는 기쁨이 퍼져나갔다.

융합의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었지만, 두 불꽃을 융합하는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속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도 청백색의 불꽃이 모두 청록색으로 변화하면 「불개」가 진화할 것이고, 그 때 자신의 실력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력해질 것이다.

그리고 두 천지의 불꽃이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대지의 불꽃도, 구름의 불꽃도 아닌 새로운 천지의 불꽃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화염을 뭐라고 불러야할까? 또, 그 불꽃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할까? 준은 청록색 화염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상상하며 흥분으로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가한제국 수도의 서쪽.

고요하고 맑은 호수 곁에 연보라색 옷을 걸친 여인 하나가 우아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여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햇볕을 받아 흔들리는 수면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허허, 그 녀석을 생각하고 있느냐?”

갑자기 들려온 노인의 목소리에 여인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동해 선배님!”

동해는 웃으며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주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녀석이 가한제국을 떠난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났구나.”

“뭐…워낙에 총명한 아이니…잘 지내고 있겠죠.”

“허허, 그래. 그 녀석은 누구보다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이씨 가문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운남종에게 쫓기고 있지. 정말로 이씨 가문의 씨를 말릴 모양인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몰래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씨 가문은 진작에 씨가 말랐을 거야. 녀석의 형이 소식을 전하러 가람아카데미로 갔는데 그 후로 연락이 끊겼으니…조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구나.”

“으음…하지만 지금 준의 실력으로는 돌아와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똑똑한 아이잖아요. 성급히 돌아와 죽임을 당하느니 조용히 참으며 실력을 쌓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그랬으면 좋겠구나.”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다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희는 이미 조금씩 유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유씨 가문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동해가 그녀를 지지하고, 그녀 자신의 능력도 의심할바 없이 뛰어났기에, 가문내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비록 뛰어난 투사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수완은 유씨 가문 제일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고, 그녀가 관리하는 정보 조직은 운남종을 비롯해 가한제국 전체의 중요한 세력의 일거수 일투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참, 내가 듣기로는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수도로 보냈다던데…그곳은 운남종과 너무 가깝지 않느냐?”

“본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요. 게다가 유씨 가문이 돕고 있으니 제 아무리 운남종이라도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운남종이 이씨 가문 사람들을 발견한다 해도 황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수도에서 함부로 날뛰지는 못할 테지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그래. 네 뜻대로 하거라. 지금까지 네 의견대로 해서 일이 틀어진 바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잘 되겠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북쪽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구름 사이로 얼핏 보이는 산봉우리의 모습에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 죽지도 않는 늙은이가 도대체 무얼 하려는 건지 모르겠구나. 갓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와의 원한 때문에 이렇게 온 제국을 들쑤시고 다니다니…운산 답지 않아.”

동해의 말에 주희가 눈썹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 조사에 따르면, 운남종이 이씨 가문에게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찾는다고? 그들을 움직이게 할 만한 물건을 이씨 가문이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아마 착각이겠죠.”

“에휴, 지금의 운남종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진율희가 물러나고 다시 운산이 실권을 지배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운산 그 늙은이가 다시 속세에 나온 이 후의 행보가 심상치 않구나.”

동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다. 사람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어. 예전의 운산이라면 이리 하지는 않았을 텐데… 황실도 그 변화를 감지한 것인지 은밀히 운남종의 행적을 쫓고 있는 듯 하더구나.”

동해의 말에 주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운남종은 세력은 컸지만 속세의 일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기다려보지요. 지금 이러는 사이에도 준이는 몰라보게 성장하게 있을테니까요. 그 아이가 돌아오면 뭔가 수가 생길거예요.”

주희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 느낌으로는 그 날이 멀지 않은 것 같구나.”

* * *

붉은 세상 속에서는 시뻘건 용암이 흐르며 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 불꽃의 융합은 달팽이가 기어가듯 아주 느릿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길고 지루한 융합 작업도 마침내 끝이 보이고 있었다.

준의 염력 회오리에서 가느다란 폭음이 들리는 순간, 갑자기 온 몸을 따라흐르던 그의 염력이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회오리 속에서 부드러운 청록색 광선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

그의 염력 회오리 속에 자리하고 있던 청백색의 화염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이 융합되어 생성된 청록색의 화염만이 가득했다.

“성공했나?”

한참이나 멍하니 그 청록색 화염을 바라보던 준의 눈가가 갑자기 붉게 달아올랐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가한제국의 추격을 피해 마침내 가람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 가문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이를 갈며 그 치욕을 속으로 삼켰던가…

준은 조심스럽게 청록색 화염을 통제해 그것을 염력 회오리 한 가운데 있는 납령 속으로 집어넣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