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화. 결착
이준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자, 구름 불꽃이 미쳐 날뛰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용암 호수 안을 떠다니던 녹색의 점은 더욱 더 선연하게 빛나며 흉흉한 살기를 내뿜어 댔다.
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고개를 들어 그 녹색 점을 쳐다보며 히죽 히죽 웃음을 지었다.
“이거 어떻게 하나? 그렇게 오랫동안 날 불태우더니, 결국 실패한거야?”
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름 불꽃의 표면이 갑자기 옥처럼 빛나더니 이글거리는 무형의 화염이 갑자기 사방으로 솟구치며 그의 주위를 빼곡히 둘러쌌다.
“아직도 이렇게 한단 말이지.”
하지만 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한번 가볍게 튕기자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내뿜은 푸른 화염이 무형의 화염을 막아섰다.
곧이어 몸속에 파고든 심장의 불꽃을 몰아내려던 준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심장의 불꽃이 몸속에 파고든 것과 거의 동시에 기이한 빛이 폭발하며 그것을 몰아낸 것이다.
“이게…뭐지? 심장의 불꽃이 겁을 먹고 공포를 느낄만한 것이 내 안에 있다는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 1년, 연화대와 수많은 약재, 연금비약들이 융합된 기이한 액체가 심장의 불꽃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준의 신체를 회복시켰을 뿐 아니라 더욱 강하게 바꾸어 놓았지만, 의식을 잃고 있었던 준의 입장에서는 도통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여하튼 심장의 불꽃도, 무형의 불꽃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거지? 푸하하,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자, 그럼 이제 다시 술래잡기를 시작해볼까?”
심장의 불꽃도, 무형의 불꽃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준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내려 앉았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제 구름 불꽃을 삼키기만 하면 된다.
“키이이!”
또 다시 살기등등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새하얀 무형의 화염이 춤을 추자, 용암 호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멍청하기는”
거세게 저항하는 구름 불꽃의 모습에 준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치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모두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가볍게 손을 한번 휘두르자 온몸을 휘감고 있던 푸름 화염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푸른 화염이 물러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무형의 화염들이 굶주린 이리처럼 거칠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화염이 준의 몸에 닿는 찰나, 그의 몸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무형의 화염을 뿌리쳤다. 기세 등등하던 무형의 화염은 마치 고양이를 만난 생취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확실히, 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빛을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호오…영문은 모르겠지만 이게 무서운 모양이지?”
빠르게 물러나는 구름 불꽃을 바라보며 준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준의 눈동자가 기이한 빛으로 가득 차자, 구름 불꽃의 주위가 투명해지며 흰색의 자그마한 불 이무기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불 이무기 역시 상대가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사납게 두 눈을 치켜뜨며 무형의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저게 구름 불꽃의 본체라는거지?”
주변의 모든 화염이 마치 모두 구름 불꽃인 것 같지만, 가장 핵심인 부분은 저 작은 불 이무기가 있는 곳이었다. 즉, 저놈을 잡는다면, 구름 불꽃을 확실하게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준이 손을 들자, 활활 타오르는 청색 화염이 그의 주먹을 감싸고, 다음으로 강렬한 빛이 다시 한번 그 위를 둘러쌌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불 이무기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것처럼 꼬리를 한번 휘두르더니, 가느다란 신형을 번개처럼 움직이며 상대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사방이 화염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만약 정말로 도망을 가려고 했다면, 주변의 화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이준의 몸속에 있는 천지의 불꽃을 삼킬 수 없었으니, 불 이무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연신 분노 섞인 울음을 토해낼 뿐이었다.
“도망치려고?”
작은 불 이무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던 이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이토록 입장이 뒤바뀌다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준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리더니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고, 은빛 섬광과 함께 푸른 불꽃을 두른 준의 주먹이 불 이무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키이이이!”
청색의 아름다운 불꽃과 기이한 빛을 두른 준의 손은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너무나도 손쉽게 구름 불꽃의 본체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하하하하!”
준은 자기도 모르게 미친 사람마냥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한번 목숨을 잃기는 했던 것 같았지만, 눈을 뜨니 투왕이 되어 있고, 꿈에도 그리던 구름 불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구름 불꽃의 본체가 전력으로 뿜어내는 고온조차 두렵지 않을 정도의 몸이 되어 있다니, 앞으로 이 능력이 자신의 연금술과 수련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투황, 아니, 투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긴장된 눈으로 미친 듯이 요동치는 작은 불 이무기를 바라보던 준은 검은 반지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씨익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 성공할 수 있겠죠?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단 해볼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세를 잡은 뒤,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작은 불 이무기를 천천히 몸속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구름 불꽃이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준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드디어 진정한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만약 이준이 두 번째 천지의 불꽃을 삼켜 연화하는데 성공한다면, 그의 실력은 다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번 한 번, 이번 한번만 견뎌낸다면…! 하지만 견뎌내지 못한다면, 두 불꽃의 충돌에서 발생한 힘이 그의 몸을 가루로 만들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 때가 되면 어떠한 기적도 그를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두 개의 불꽃을 합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이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구름 불꽃을 집어 삼켰다.
구름 불꽃이 이준의 몸속에 들어가자, 곧바로 대지의 불꽃과 기이한 빛이 달려들어 구름 불꽃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구름 불꽃의 본체는 비록 크지 않았지만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것이기에 절대로 만만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으윽…!”
과연 구름 불꽃의 본체를 직접 몸 안에 들이자, 대지의 불꽃과 새롭게 태어난 준의 능력으로도 어찌할 도리 없는 고통이 온 몸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구름 불꽃은 여전히 자신의 의식을 또렷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격렬하게 몸을 뒤흔들며 사방으로 불꽃을 쏘아내고 있었다.
구름 불꽃을 사로잡은 지 일각의 시간이 지난 후, 심장의 불꽃을 몰아냈던 기이한 빛이 준의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완강히 저항하던 구름 불꽃의 움직임이 서서히 약해졌고, 준은 곧바로 대지의 불꽃을 사용하여 완벽하게 구름 불꽃의 본체를 둘러쌌다.
하지만 푸른 불꽃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와중에서도 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계속되는 강렬한 열기에 준의 평온했던 얼굴에도 조금씩 고통스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후우…”
준은 이를 악물고 한숨을 내쉬며 푸른 불꽃을 응집시켜 청록색 화염구를 만들어낸 뒤 그 안에 구름 불꽃을 가두었다.
유백색의 작은 이무기를 완벽하게 집어삼킨 청색 화염구는 연신 이무기의 몸을 불사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구름 불꽃은 지능이 있기 때문에, 구름 불꽃을 완벽히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장 먼저 그 지능을 없애버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천지의 불꽃이 서로 반발하며 폭발해버릴 것이다.
따라서 준은 심혈을 기울여 놈의 지능을 없애버리려 하고 있었다. 물론 구름 불꽃 역시 준의 의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안간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구름 불꽃은 도마 위에 놓인 생선처럼 서서히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했다.
결국 끊임없이 몰아치는 대지의 불꽃에 구름 불꽃이 조금씩 약해져 가기 시작했다. 비록 변화의 속도는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릿했지만, 준의 가슴은 기쁨으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마침내 구름의 불꽃이 굴복하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확연이 다른 불 이무기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주인에게 용서를 비는 강아지의 울음 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용서해달라고?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너도 나와 스승님을 삼키려고 했잖아. 이제와서 약한 척 말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푸른 화염이 더욱 더 맹렬하고 빠르게, 조금의 자비도 없이, 구름 불꽃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 *
침식이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으나 준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천지의 불꽃이다. 게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지능까지 가지게 된 불꽃의 본체이니 이 정도 시간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준은 마치 명상에 빠진 노승처럼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온 정신을 유백색의 화염에 집중했다.
이 느릿한 침식이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한달? 어쩌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이 불로 둘러쌓인 이곳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무척이나 흐릿했다.
푸른 화염구 속,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푸른 화염에 유백색의 화염이 서서히 잠잠해지고 있었다. 구름 불꽃의 지능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카아악!”
마침내 푸른 염화로 겹겹이 둘러싸인 구름 불꽃이 부드러운 유백색의 화염을 뿜어내는 순간, 준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번져갔다.
미쳐 날뛰는 짐승마냥 거칠던 구름 불꽃이 부드러운 불꽃을 뿜어낸다는 것은, 그것이 지능을 잃고 자신에게 길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휴우…드디어 된 건가?”
구름 불꽃의 지능이 사라지자 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확한 시간을 재보지는 못했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침식에 소모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하! 됐어!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지 간에, 이곳에 영원히 갇혀있는 것보다야 낫지.”
준이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정신을 집중하자, 구름 불꽃을 둘러싸고 있던 푸른 화염구가 빠르게 흩어졌다. 길들여진 구름 불꽃이 뿜어내는 불꽃은 그에게 털끝만큼의 위해도 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좋아…그럼 마무리를 해볼까!”
다시 집중하고 구름 불꽃을 천천히 혈관속으로 이동시킨 뒤 「불개」의 수련법에 따라 염력을 흘려보내자, 생각보다 수월하게 구름 불꽃이 온 몸을 따라 흘렀다. 대지의 불꽃을 삼킬 때 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순조로웠다.
물론 순조롭다고는 해도 구름 불꽃을 침식할 때만큼이나 느린 속도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더뎌도 구름 불꽃은 이미 자신의 것이 되었고, 대지의 불꽃 때처럼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았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마침내 구름 불꽃을 완전히 길들인 뒤, 준은 곧바로 구름 불꽃과 대지의 불꽃을 융합시키기 시작했다.
이번 단계가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단계였다.
만약 두 불꽃이 성공적으로 융합된다면, 실력이 대폭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개」역시 크게 성장할 것이다. 어쩌면 2격 수련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상상조차 하지 못할 참혹한 결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준은 마지막으로 긴 한숨을 한번 내쉰 뒤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