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화. 한샘 VS 이준
태산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대장로의 모습에 김씨 형제의 안색이 급변했다.
두 세력이 충돌을 일으키는 사이, 준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가장 먼저 구름 불꽃의 본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구름 불꽃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 대지의 불꽃을 응집시켜 푸른색의 화염갑옷을 두른 채 무형의 화염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준의 손 위로 불꽃이 피어나며 푸른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푸른 불꽃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무형의 화염과 닿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칼날 같은 통증이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준은 이를 악문 채 대지의 불꽃을 조종하여 구름 불꽃의 본체를 감쌌다.
“조심하거라. 구름 불꽃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몸 내부에 불꽃을 심어 그것을 증식시키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몸 안에서부터 피어오른 열기로 인해 타죽고 말 것이야.”
스승의 조언에 준은 이를 악문채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에서부터 시작해 전신을 관통하는 열감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통증은 구름 불꽃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준과 구름 불꽃의 본체가 대치하는 사이, 갑자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란 준이 급히 발을 놀리자 은빛 섬광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그의 몸이 구름 불꽃과 십 여 장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몸속에서 요동치던 구름 불꽃의 기세가 조금누그러 드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바람 소리가 들려온 곳에 한샘이 서 있었다.
준은 곧바로 구름 불꽃의 본체를 향해 달려드는 한샘을 가느다란 눈으로 쳐다보며 그의 등 뒤로 푸른 불꽃을 날렸다. 한샘은 구름 불꽃과 가까워질 때 느끼는 통증을 아직 겪어보지 못 했으니, 지금이 그를 죽이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다.
쉭!
구름 불꽃을 눈앞에 두자, 한샘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환희가 가득 차올랐다.
그는 구름 불꽃을 손에 넣자마자 빠르게 이곳을 떠난 후 은밀한 곳에 숨어 그 보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서천우가 아니라 내원의 그 늙은 원장이 돌아와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구름 불꽃은 내 것이다!”
그러나 구름 불꽃을 움켜잡으려는 순간,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쾅!
그리고 한샘의 몸이 멈춰서는 찰나, 먼 곳에서 이를 바라보던 준의 신형이 사라지며 엄청난 뇌성이 고막을 때렸다.
벽력같은 소리가 귓등을 때리고 나서야 한샘은 자신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을 때는 이미 푸른 화염이 그의 코 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어떻게든 그 불꽃을 막아냈겠지만, 몸 속 깊숙이 파고 든 구름 불꽃의 불씨로 인해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쾅!
자신의 공격이 먹혀든 것을 확인한 준의 입가에 미소가 막 피어오르려는 순간, 돌연 한샘의 어깨에서 짙푸른 화염이 피어올랐다.
“이런…!”
곧이어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진한 청색의 화염 덩어리가 준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미 상대의 회심의 일격에 적중당한 채 급하게 날린 불꽃으로는 준의 화염갑옷을 완전히 뚫어낼 수 없었고, 준은 그저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듯 둔중한 통증을 느낄 뿐이었다.
반면 황급히 화염갑옷을 만들어 상대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낸 한샘의 어깨에서는 팔이 떨어져 나갈듯한 통증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다급해진 한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로들과 자신이 데려온 흑각성의 강자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흑각성의 무리들이 먼저 자신을 지원하러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한샘은 돌연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더니 친근한 척 눈 앞의 소년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하하, 아우님, 당신도 연금술사인가 보지요?”
하지만 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염력을 끌어올릴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역시 아우님도 연금술사로군요.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흠, 한 사람 몸에는 하나의 천지의 불꽃만 받아들일 수 있지요. 만약 두 번째 불꽃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두 천지의 불꽃이 서로 반발하며 몸이 터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저 구름 불꽃은 아우님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저에게 양보해주신다면, 제가 6레벨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어떻습니까?”
이어지는 한샘의 말에 이준은 더욱 더 싸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서리라도 내려앉은 냥 서늘한 목소리에 상대가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한 한샘은 곧바로 손을 들어 준을 향해 자신의 화염을 쏘아냈다.
“어쩔 수 없군. 어린놈이 재능이 출중한듯하여 목숨을 살려주려 하였더니 네가 화를 자초하는구나!”
“흥, 당신같이 음흉한 사람이 퍽이나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한샘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던 준은 잽싸게 진청색의 불꽃을 피해낸 뒤, 은빛 섬광과 함께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달아나기는커녕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준을 보며 한샘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어렸다. 그의 두 손에는 진한 청색의 화염이 겹겹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좋아! 대지의 불꽃의 힘을 보자! 어디 나의 바다의 불꽃처럼 강력한지!”
한샘이 노기어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내지르자, 밀집되어 있던 짙푸른 화염이 순식간에 폭발하며 거친 파도 소리와 함께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이 왜 쓸데없이 시간을 끄나 했더니, 불꽃의 힘을 압축시킬 힘을 벌기 위한 것이었구나. 조심하거라! 저것은 거의 천지의 불꽃의 본체에 맞먹는 위력이니라!”
약로의 경고에 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신을 집중하여 몸속에 있는 대지의 불꽃을 최대치로 끌어냈다. 그러자 대지의 불꽃이 끊임없이 솟아나며 준의 머리 위에 응집된 화염들이 점점 더 청록색으로 변해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화염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대지의 불꽃이 응집되어 한 송이의 청색 연꽃이 만들어졌다.
맑은 비취색의 청색 연꽃이 푸른 마그마처럼 끊임없이 울렁이는 모습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곧이어 준이 손을 휘두르자, 연꽃이 손앞으로 날아왔다가 강력한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가 한샘의 진청색 화염에 맞섰다.
쾅!
두 불꽃이 맞부딪히는 찰나, 격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비취색에 가까운 푸른색과 남색에 가까운 진청색의 두 불꽃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온 하늘을 뒤덮고, 그 무시무시한 기운에 구름이 갈라지고 쪼개져 점점이 흩어졌다.
갑자기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엄청난 굉음에 본원의 장로들과 흑각성의 강자들마저 잠시 손을 멈췄다. 두 불꽃이 뿜어내는 기운은 이미 투종의 경지에 오른 서천우조차 경악을 금치 못할만한 것이었다.
불길이 조금씩 사라지자, 하늘 위에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준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팔 주위를 감싸고 있던 옷은 너덜너덜 찢겨 엉망이 되어 있었고, 손바닥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건너편에 있는 한샘 역시 준보다 나쁘다면 나빴지,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의 의복 역시 이리저리 찢겨져 있었고, 귀신처럼 산발을 한 채 거친 숨을 몰아시고 있었다.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창백하게 질려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넋이 나간 듯한 한샘의 표정에 준이 참지 못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을 지었다.
“알아챘나?”
한샘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준을 가리키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네, 네놈, 이…이 수련법은…이걸 어떻게 네가…?”
흑각성의 약황이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당신이 제일 잘 알 텐데?”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의 격돌로 인해 한샘은 이준의 염력 수련법이 자신의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상대의 수련법이 자신의 것보다 더 뛰어났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불개. 자신은 그것을 얻기 위해 스승을 배신했다. 그러나 천벌이라고 받은 것일까?
그는 목적을 다 이루지도 못하고 간신히 불완전한 수련법을 손에 얻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 불완전한 수련법으로 바다의 불꽃을 손에 넣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실력과 명성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준과 격돌하던 그 순간. 한샘은 상대의 수련법이 자신보다 훨씬 순수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느꼈다.
불완전한 ‘불개’보다 훨씬 정순하고 완벽한 공법은, 세상에서 하나뿐이었다.
갑자기 하늘을 뒤덮는 차가운 살의에 모두가 직감했다. 흑강성의 약황이 눈 앞에 있는 청년을 반드시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이에 서천우는 사나운 기세로 염력을 토해내며 김씨 형제를 뒤로 날려버리고는 곧바로 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일찍이 본 적 없던 기묘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
“이 느낌은…준아, 내가 이 두 놈을 해치우고 너를 도와주러 가마! 그 동안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
“하하, 대장로님, 걱정 마시고 저들을 상대하십시오. 저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준은 당당한 태도로 씨익 웃음을 지을 뿐이었고, 그런 이준의 태도에 서천우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그래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널 도우러 가마!”
곧이어 서천우의 몸속에서 대하와도 같은 염력이 흐르며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노인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매서운 공격이 김씨 형제를 향해 쏟아졌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의 손끝에서 다시 푸른 화염이 춤을 추듯 일렁였다.
“날 죽이고 싶어?”
장난기 어린 준의 말투에 한샘의 얼굴이 더욱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너 이 자식…대체 어디서 그 수련법을 배운 것이냐?”
그러나 준은 피식피식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 그의 몸속에 있던 웅대한 영혼의 힘이 준 자신의 힘과 합쳐지며 폭발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스승님?”
갑작스런 변화에 준이 당황하며 머릿속으로 되물었다. 이렇게 약로의 힘을 합쳐버리면, 한샘이 자신의 반지 속에 숨어있는 스승의 정체를 알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허허, 저놈은 간교하기 이를데 없는 놈이다.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저놈을 더 놀라게 해주자꾸나.”
그러나 약로는 웃으며 계속해서 준의 몸에 자신의 영혼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얼음 불꽃의 정수’보다 더 차가운 살의와 더 뜨거운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잠시 멈칫하던 준도 약로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한샘을 이곳에서 죽여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약로의 힘이 준에게 흘러들자, 준의 주위에 있던 푸른 화염이 점점 더 기운차게 흔들리더니 갑자기 용솟음치며 계속해서 쉭쉭거리는 소리를 냈다.
더욱 더 세차게 불타오르는 준의 불꽃을 보던 한샘의 눈이 일순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솟구치는 푸른 화염 속에서 느껴지는 무척이나 익숙한 기운에 그의 머릿속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스쳐갔다.
살의로 가득했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며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잠시 후, 그는 전신의 기운을 쥐어 짜내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당신이 죽지 않았다고?! 그럴 리가 없어!”
“당신 덕분에 내가 스승님을 만날 수 있었지.”
“스승님?”
‘스승’이라는 단어에 한샘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이준을 노려보았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서 창백함이 조금 가시기 시작하더니, 두 눈이 다시 살의로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