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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83화 (283/818)

제283화. 전세역전

붉은 색의 기둥안에는 오른손에 혈창을 든 범로가 흉악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는 핏빛 염력이 일렁이며 끊임없이 혈창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흡수되는 염력이 점점 많아지면서 혈창의 색깔 역시 점점 짙어졌다. 잠시 후, 농후한 피비린내가 하늘 가득 퍼져나갔다. 혈창의 끝 부분에서는 붉은 빛이 음산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빛나는 창날은 마치 어떠한 방패라도 꿰뚫을듯한 예리함을 뽐내고 있었다.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고, 혈창이 더욱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광경에 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기세로 보아 범로의 이번 공격은 아마도 이전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자랑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준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은 송곳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온 몸에서 염력을 끌어 모았다. 약로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준의 몸에서는 마치 바닥이 없는 것처럼 끝도 없이 염력이 흘러나왔다.

두 명의 강자가 염력을 끌어올리자, 주위에는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얼핏 보기에도 두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담은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일격으로 승패가 갈릴 것 같았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마침내 범로의 손에 있던 혈창이 염력을 빨아들이기를 멈췄다. 붉은 염력을 모조리 흡수한 혈창은 살아있는 것 마냥 몸을 떨며 공간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애송아, 이제 끝이다.”

모든 기운이 모여들자, 차가운 한마디와 함께 범로가 준을 향해 붉은 창을 집어던졌다.

“혈귀의 창!”

혈창이 손을 벗어나는 순간, 농후한 피비린내와 함께 짙은 냉기가 퍼져나가며 청명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핏빛 기운으로 가득 차고, 하늘과 땅이 온통 음산한 기운으로 뒤덮였다.

범로의 공격으로 인해 하늘과 땅의 색이 변하자, 하늘 위에서 벌여졌던 전투도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모든 이들은 저도 모르게 전투를 멈추고 범로와 이준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혈귀의 창이라니!”

“범로가 저 애송이 때문에 혈귀의 창을…!”

붉은 혈창은 어느새 핏빛 섬광으로 변해 허공을 가르며 상대의 심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역질이 날 정도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예리한 붉은 섬광이 준의 목전에 도달했다.

그 순간, 열풍이 휘몰아치며 칠흑같이 새까만 송곳이 하늘 높이 고개를 들었다. 새까만 송곳은 마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듯 짙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잠시 후, 땅이 무너지는 듯한 묵직한 폭발 소리가 터져나왔다.

“태양검!”

매서운 목소리와 함께 수 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푸른 에너지가 솟구치며 검은 송곳의 끝에 몰리고, 유리가 깨지듯 공간이 갈라지고 깨지며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수 백 개의 눈동자가 집중된 아래, 푸른 에너지와 하늘과 땅을 뒤덮은 붉은 빛이 거세게 맞부딪혔다.

콰앙-

산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 소리가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귀를 찢어 놓을 것만 같은 묵직한 소음에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곧이어 온 천지를 뒤덮는 파문과 함께 푸른 색의 에너지와 붉은 색의 에너지가 뒤섞이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빛을 발했다.

본원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간신히 눈을 뜰 무렵, 두 에너지가 맞부딪힌 곳에서부터 폭풍이 일어나며 주위의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결전이 벌어진 곳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던 학생들은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고 말았다.

폭풍은 순식간에 본원의 한 켠을 무너뜨린 후에야 조금씩 약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하늘 위에서 폭풍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장로들의 입가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저런 식의 폭발이 이어진다면 구름 불꽃이 아니더라도 본원이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흑각성의 강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리 허공에서 범로와 맞서고 있는 정체불명의 청년을 바라봤다.

“믿을 수 없군…혈귀의 창을…저런 새파랗게 어린 놈이 막아냈다고?”

“저놈은 대체 누구야! 가람 아카데미에 대건과 서천우 두 노인네를 제외하고 저런 강자가 있었다고? 그것도 저렇게 어린?”

“이상하군…저 정도 위력이라면 2격은 되어야할텐데…저런 애송이가 설마 2격 무투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전 대륙에서 2격 무투기를 익힌 강자를 찾는 것이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대륙 곳곳에 숨어 실력을 갈고 닦는 강자들 중에도 2격 무투기를 가지고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투왕급 이상의 강자라 하더라도 염력을 단련하는데 집중할 뿐, 보통 3격 상급 정도의 무투기를 완벽하게 익히는데에 만족했다.

그리고 염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면 그 자체로 고급 무투기와 맞먹는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하지만 염력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고급 무투기를 익힌 자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2격 무투기라면 염력에서 꽤 격차가 난다해도 그 격차를 뒤집을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잘 단련된 신체와 전투 경험 역시 전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면, 염력이 부족하더라도 자신보다 상위 수준의 강자와 맞붙을 수 있었고, 염력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필승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준은 지금껏 염력에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무투기와 잘 단련된 신체, 두터운 전투 경험으로 인해 그 격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종합적인 능력을 감안한다면, 지금 준의 실력은 투왕급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이렇게 갑작스런 강자의 출현에 시작부터 한샘쪽으로 기울어있던 전황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 * *

회심의 일격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사라지자, 범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혈귀의 창’은 투황급 강자인 그에게도 부담스러운 무투기로, 여태까지 그 일격을 상처없이 막아낸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 애송이의 실력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구나…빌어먹을!”

칼날 같은 핏빛 손톱이 달려있는 그의 손 끝에 힘이 들어가며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갑자기 이렇게까지 실력이 증가하다니…하지만 갑자기 실력을 늘려주는 비술은 제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시간 제한이 있으니, 비술의 효력이 끝나는 순간 끝장을 내주마.”

그러나 범로가 승부를 내지 않고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결심한 찰나, 준의 손에서 검은 송곳이 사라지며 은빛 섬광이 번쩍였다.

“이…이런!”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은 은빛 섬광과 함께 검은 잔상을 남기며 크게 회전해 범로의 왼쪽에 나타났고, 깜짝 놀란 범로는 자신의 붉은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저만치 뒤로 몸을 물렸다.

이어서 귀청을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뇌성이 울려퍼지며 검은 그림자가 또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범로는 침착한 표정으로 다섯 개의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둘러 정확하게 준의 목을 노렸다. 준 역시 상대의 날카로운 반격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곳 저곳으로 몸을 날리며 빈틈을 만들어 내려했다.

쾅!

마침내 묵직한 주먹이 가슴에 적중하자, 범로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준은 멈추지 않고 번개처럼 좌우로 치고 빠지며 주먹을 휘둘러댔다. 은빛 섬광과 함께 그의 몸이 이리저리 사라졌다 나타날 때 마다 잔상이 생겨나고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일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노도와도 같은 상대의 기세 앞에 범로는 쉴 새 없이 몸을 뒤로 물리며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땅 아래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의 눈에는 하늘 여기저기에서 번개가 이는 것처럼 보일뿐,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붉은 염력을 두른 범로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보아, 이 준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한편, 하늘 저편에서는 여전히 서천우와 김씨 형제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쪽의 속도는 범로와 이준 측보다 더해 아예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토록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진 적은 없었기에 학생들은 저마다 주먹을 꼭 쥐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너무나 대단한 강자들의 대결인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자신들도 저 대열에 합류할만한 강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 * *

수 백개의 눈동자가 하늘 위를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빛덩이에 집중되어 있는 사이, 무너져 내린 천계의 탑 정상에 있던 검은색 보호막이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한다면 검은 보호막 아래 거대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지만,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운 이무기의 동공이 천천히 하늘을 향하더니, 한샘과…이준에게서 멈춰섰다. 두 사람의 몸에서 이화가 거세게 용솟음칠 때마다 이무기의 눈동자 역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쪽빛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대한 파문이 수 백 미터를 퍼져 나갔다.

본원의 대부분은 이미 전투의 여파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주먹을 움켜쥔 채 점점 멀리 후퇴하며 그 여파로부터 몸을 숨겨야만 했다.

“준이 이길 것 같다.”

천계의 탑에서 멀리 떨어진 한 건물의 옥상에서 류지안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현재 학생들 중 오직 이준만이 본원을 침략한 무법자들에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실력은 류지안과 임수혁 뿐 아니라 심지어 보람마저 아득히 초월해 있었으니, 뭇 학생들은 동경과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준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성치윤과 류헤이마저도 저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쥔채 이준을 응원하고 있었다. 지금 본원의 장로들을 도와 침략자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학생들 중에는 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저마다 이준을 응원하고 있는 사이, 돌연 사방에서 천둥 소리가 울려퍼지며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태초의 힘!”

그 순간, 범로에게 다가선 준의 어깨 위에서 돌연 날카로운 기운이 솟구치더니, 검은 그림자가 번개같이 몸을 날려 범로의 가슴 팍으로 주먹을 날렸다.

펑!

하늘 가득 울려 퍼지는 파공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또 다시 준에게 집중되었다.

범로의 몸을 한 겹 둘러싸고 있던 붉은 색 보호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준의 맹공에 범로의 염력은 완전히 말라버리고 말았고, 그의 몸을 지키고 있던 마지막 방어막마저 이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끝이 보이고 있었다.

“쿨럭!”

또 다시 준의 몸이 흐려졌다가 은빛 섬광과 함께 나타나자, 창백했던 범로의 얼굴이 일순 붉어지며 입술 사이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곧이어 수 많은 시선 속에서, 범로의 몸이 황폐한 폐허 속으로 추락했다.

범로의 패배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투황 강자 한 명의 패배는 흑각성에게 있어 참으로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 상황이 나쁜 것은, 범로가 이준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는 점 이었다. 만일 이준이 다른 전투에 개입한다면, 팽팽하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 자명했다.

이 점은 전투에 참여하던 강자들뿐 아니라 아래에 있던 본원의 학생들 역시 알고 있었다.

따라서 범로가 피를 토하며 떨어지는 그 순간,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얼싸 안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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