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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81화 (281/818)

제281화. 도움의 손길

범로의 살의가 솟구치는 것이 느껴지자, 보람의 하얗고 보드라운 얼굴에도 진지한 빛이 깃들었다.

그러나 범로가 다시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두 개의 그림자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준을 지원하기 위해 날아온 것은 바로 임수혁과 류지안 이었다. 본원의 학생들 중 보람과 준을 제외하면 오직 이 두 사람만이 공중전이 가능했다.

깜짝 놀란 준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바라보니, 어느새 본원의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초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원의 큰 사건이니, 힘을 모아보지.”

류지안이 고개를 돌려 핏빛 그물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이준 후배의 담력에는 다시 한 번 놀랐어. 투황 강자와 맞설 생각을 하다니.”

류지안의 곁에는 임수혁이 기다란 장검을 쥔 채 염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며 준은 저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러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죠…’

“나한테 삼 분만 시간을 줘!”

갑자기 준이 세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준의 말에 보람 등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허, 투왕 세 명? 심지어 두 명은 이제 막 투왕이 된 애송이군. 그런데도 감히 내 앞을 막겠다는 것이냐?”

“영감탱이, 쫄았어?”

범로의 호통소리에 보람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곧이어 그녀는 조그마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임수혁과 류지안, 두 강자를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 간다, 너네는 너네가 알아서 조심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보람은 두 사람의 대답조차 듣지 않고 곧바로 범로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보람의 갑작스런 공격에 수혁과 지안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번 상대는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했던 그 어떤 상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으니, 한 번의 실수로 중상을 입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몸을 날린 것이다.

갑자기 아카데미의 강자들이 총 집결해 정체불명의 투황과 맞서자, 이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전투에 끼어들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애송이 놈들이 맹랑하구나.”

세 사람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던 범로가 창백하고 비쩍 마른 손을 거칠게 휘두르자, 세 개의 핏빛 구체가 기이하게 뒤틀리며 붉은 뱀으로 변화했다. 곧이어 그가 손가락을 구부리자 피 냄새를 풍기는 뱀 세 마리가 커다랗게 입을 벌린채 보람 일행을 덮쳤다.

“하압!”

그러나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보람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터져나오며 공간이 뒤흔들리고, 보람을 향해 날아오던 혈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짓뭉개져 핏빛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류지안과 임수혁 두 사람은 핏빛 뱀을 단번에 물리치지 못하고 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보람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뒤 곧바로 번개처럼 범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다음 순간, 보람의 자그마한 몸이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범로의 앞에 나타나고, 가느다란 다리가 채찍처럼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해 보이는 다리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찰나, 범로는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이 자그마한 소녀가 괴력으로 자신의 혈창을 날려버리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범로가 비쩍 마른 시체 같은 손을 급하게 휘두르자, 핏빛 에너지가 뿜어져나오며 그의 몸 주위로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기는 원형의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쾅!

그리고 보람의 발이 진득한 핏빛 보호막을 걷어차는 순간,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파문이 일며 그의 보호막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보람의 발차기가 다시 한 번 범로의 얼굴과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폭발하며 두 사람을 멀찍이 밀어냈다.

“흥!”

보람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한번 삐죽 내밀더니 재차 범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자그마한 소녀는 한줄기 벼락처럼 허공을 가르고 날아들어 범로의 가슴 팍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는 어떠한 무투기도, 심지어 염력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속도와 파괴력만큼은 실로 투왕의 그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이런! 피의 갑옷!”

상상을 초월하는 무식한 육탄 공격에 당황한 범로는 곧바로 염력을 끌어 모아 검붉은 갑옷을 몸에 걸쳤다.

꽝, 꽝!

보람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다시 한 번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의 갑옷을 맨주먹으로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붉은 갑옷은 금강석처럼 단단해 바위조차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보람의 일격에도 조금도 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산을 들어 내리치는듯한 무시무시한 괴력 앞에 범로의 몸은 매번 뒤로 밀려났고, 이에 범로의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꽝! 꽝! 꽝!

핏빛 갑옷을 두른 사내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가는 동안에도 보람은 성난 파도처럼 미친 듯이 상대를 때려댔고, 결국 금강석 같던 핏빛 갑옷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허나 갑옷이 부서진 것에 기뻐할 틈도 없이, 범로의 몸에서 농후한 피 냄새가 풍겨오자, 보람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흡혈귀의 주먹!”

그 순간 범로의 입에서 살기 어린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며 보람의 머리 위에 거대한 두 개의 주먹이 생겨나 보람을 향해 내리꽂혔다.

“바위의 분열!”

그러나 거대한 핏빛 주먹이 보람을 덮치려는 순간, 벽력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금빛 바람이 날아들어 범로의 염력과 충돌했고, 천지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이럴수가…이게 정말로 이제 막 투왕이 된 놈의 공격이란 말인가? 이 공격은…5성급 이상의 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위력이 아닌가!’

“보람!”

깜짝 놀란 범로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푸른 그림자가 돌연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나 장검을 휘둘렀다. 푸른 염력에 휘감긴 장검 주위에는 십여 개의 회오리가 소용돌이치며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곧이어 십여 개의 회오리가 장검에 모여들며 검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더니 아무런 소리도 없이 범로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이…이런!’

범로가 임수혁의 공격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그의 머리 위로 검이 떨어지고 있었다.

“흡혈귀의 방패!”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 범로가 필사적으로 염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머리 위에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냈다.

푸른 검신이 순식간에 피바다에 들어서며 강한 힘을 내뿜자, 피바다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주인의 머리를 가르려드는 칼날을 막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결국 수혁의 푸른 장검은 범로의 머리 위 대략 50센티미터 정도를 앞두고 멈춰섰다.

“젠장!”

회심의 일격이 막히자, 임수혁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가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전, 갑자기 거대한 피의 방패가 출렁이며 강렬한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쿨럭!”

묵직한 충격에 수혁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다. 이와 동시에 등 뒤의 염력 날개가 흐릿해지더니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혁이 중상을 입음과 동시에 보람을 향했던 거대한 피의 주먹이 류지안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류지안이 공격을 당하려는 찰나, 조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앞으로 나오며 거칠게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공기가 압축되며 무형의 공기탄이 만들어지면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거인의 그것과도 같은 붉은 주먹을 깨부수며 붉은 안개를 만들어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범로는 자신의 핏빛 날개를 움직여 빠르게 몸을 이동시켰다.

“이 잡것들, 한 번에 해결해주마.”

곧이어 그의 머리 위에 펼쳐졌던 방패가 액체처럼 녹아내리며 그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고, 이내 사방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주먹만 한 크기의 피구슬을 날려댔다.

쾅! 쾅!

허공을 수놓는 피구슬에 맞서 보람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러 대자, 피구슬과 공기탄이 맞부딪히며 끊임없이 파문이 일어났다.

산봉우리가 무너질 듯한 엄청난 소리에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둘 사이로 집중됐다.

“흥!”

“힘만 센 투왕이라…건방진 계집이!”

다음 순간, 피바다 속에서 차가운 음성이 울려 퍼지더니 범로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피가 수 십 미터 크기로 솟구치며 검붉게 물들었다.

“죽어라!”

범로가 고함을 지르자, 검붉은 피 기둥 곳곳에서 사람 머리 크기 정도의 탄환이 만들어져 보람을 향해 발사됐다.

쾅! 쾅!

대포알과도 같은 위력의 탄환은 보람의 공기탄과 맞부딪혀 크기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주먹만 한 탄환과는 달리 완전히 흩어지지 않았다. 이에 보람 역시 더욱 빠르게 주먹을 휘둘러 탄환을 막아내려 했지만, 결국 몇 개의 탄환이 방어를 뚫고 그녀의 자그마한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범로의 공격이 보람의 몸에 부딪치기 직전,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푸른 화염이 허공을 수놓았다.

“이봐, 아무리 그래도 이런 조그마한 여자 아이에게 이런 공격이라니. 투황이라는 작자가…!”

잠시 후, 탄환이 증발되며 만들어낸 핏빛 안개 사이로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 하나가 걸어 나왔다.

투황급 강자의 기세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강렬한 기운을 가진 청년의 등장에 수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폭발적인 기운 앞에 한샘 역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이게 뭐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건 투황, 아니 그 이상의…! 아니, 그보다… 누구지? 어딘가 익숙한 기운인데…’

한샘은 굳은 표정으로 대장로와 김씨 형제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씨 형제와 투종 강자의 전투이지만, 김씨 형제가 밀리는 것 같지는 않군. 게다가 대장로는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이미 상당한 기력을 소진한 상태였어. 여차하면 내가 개입해서 상황을 정리해야겠군.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기운의 주인공이 개입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거야. 그 전에 서천우 다음의 고수인 이 늙은이를 정리해둬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한샘은 곧바로 두 손을 펼쳐 자신의 푸른 불꽃을 불러냈다.

한샘의 손에서 요동치는 푸른 불꽃에 대건의 안색이 심각하게 변했다. 한샘의 실력이라며 어지간한 투황 강자라도 아차 하는 순간 재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네 놈 따위에게 무너질 가람아카데미가 아니다! 이놈!”

다음 순간, 거대한 염력이 솟구치며 노인의 의복이 펄럭이고, 천둥과도 같은 호통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한샘의 코앞에 다시 나타났다.

* * *

“너희 먼저 돌아가, 내가 할게.”

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보람과 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류지안과 보람은 투황급 강자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운을 뿜어내는 준의 모습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었다. 어떤 비술을 써도 투령이 투황이 될 수는 없다. 최고급 비술이라 해도, 투령을 투왕으로는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고작이다. 무슨 수를 써도, 투령이 투황급의 힘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투황급의 그것이었다.

“야! 너 무슨 비약을 먹은 거야!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강해져?”

이에 보람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렇게 효과가 강한 연금비약이 어디 있어.”

하지만 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자, 어서 저 둘을 데리고 가. 여긴 나한테 맡기고.”

준의 담담한 말투에 보람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저 늙은이는 혼자서는 무리야. 내가 다시 돌아와서…”

“문제없어.”

보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였지만, 준은 그것마저 거절하고 범로를 쏘아보며 다시 한 번 기운을 끌어올렸다.

준의 기운이 한층 더 강해지자, 보람은 잠시 망설이다 두 사람을 품에 안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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