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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79화 (279/818)

제279화. 재봉인

대건 등의 등장으로 이미 극한에 몰렸던 장로들의 눈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모두 들어라, 장로들과 교대해!”

외원에서 날아온 십여 명의 장로들이 몸을 날리자, 간신히 불 이무기를 붙잡고 있던 장로들이 하나하나 그들과 교대하여 지상으로 내려갔다.

대건이 데려온 외원의 장로들은 본원에 있는 장로들보다 실력이 모자랐지만,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한 불 이무기를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불 이무기의 공격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서천우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한한 힘을 가진 것처럼 미쳐 날뛰던 괴물도 어느 새 제법 힘이 빠져 있었다.

탑에서 백 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불 이무기를 지켜보던 학생들 역시 외원의 장로들이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원의 장로들에 이어 외원의 장로들까지 가세했으니, 이제 상황이 정리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족히 서너 시간을 날뛰던 괴물의 기세는 눈에 띄게 약해져, 더 이상 장로들의 염력 그물에 몸을 부딪치지 않았다.

……

“대장로, 이렇게 대치해서는 안 될 것 같소. 천계의 그물은 염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니 저 놈이 저렇게 가만히 있는 다면 결국 나가떨어지는 것은 우리가 될거요.”

대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대장로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놈의 기세가 많이 약해졌으니 단 시간 내에 강한 공격을 할 수는 없을 것 이오. 조금만 버텨주시오. 우리가 그 시간동안 다음 봉인을 준비하겠소.”

“음, 좋소. 외원의 장로들이 「천계의 그물」을 유지할 테니 대장로가 내원의 장로들과 함께 봉인을…”

부원장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자, 대장로는 곧바로 천계의 탑 위로 몸을 날렸다. 대건의 실력은 서천우만 못 했지만, 그 역시 정상급 투황이었으니, 힘이 빠진 서천우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천계의 탑 꼭대기에 도착한 서천우는 즉시 주위를 둘러보며 특유의 위엄 어린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내원의 장로들은 즉시 각자 자리를 잡아라! 봉인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서천우의 명령에 조용히 앉아 염력을 회복하고 있던 본원의 장로들이 일제히 눈을 뜨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본원의 장로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로 이동해 자리를 잡은 후 재빨리 염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만큼 그 기세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열 명이 넘는 투왕급 강자들이 모여드니 순식간에 대기를 진동시킬 정도의 염력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 주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88명의 강자들이 하나하나 염력을 끌어내 그들에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봉인진을 펼쳐라!”

대장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즉각 수 십 줄기의 염력이 분출되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곧이어 거대한 구체가 서천우의 몸 앞에 생겨나더니, 이내 2~3미터 가량의 원기둥으로 변화했다. 대장로의 몸에서 새어나온 염력이 그 가운데를 꿰뚫자 원기둥이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허공에 응축하는 강한 에너지를 느끼자, 힘을 회복하고 있던 불 이무기가불안한 듯 몸을 뒤틀며 사나운 눈길로 서천우를 노려봤다.

놈은 분노한 표정으로 대장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염력 그물을 내리쳤다.

“모두 조심해라! 절대로 「천계의 그물」이 깨져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대건의 명에 따라 외원의 강자들이 큰 소리로 답하며 염력을 분출하자, 염력 그물이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지며 찬란한 빛을 발했다.

“쉬익!”

불 이무기가 거대한 운석과도 같은 몸을 이끌고 재차 날뛰기 시작하자, 순간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외원 강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놈이구나…”

서천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욱 빠른 속도로 눈앞의 원기둥에 염력을 불어넣었다.

“대장로, 빨리!”

대건의 외침에 호응하듯 대장로가 손을 휘두르자, 원기둥이 점점 더 작게 압축되며 광풍이 불어 닥쳤다.

곧이어 서천우가 자신의 손바닥만하게 압축된 원기둥을 쏘아내자, 눈부신 섬광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불 이무기를 향해 날아갔다.

“이놈! 어서 탑으로 돌아가거라!”

눈부신 광채를 내뿜는 작은 원기둥이 놈의 머리 위에 도달하는 찰나, 서천우가 즉시 손을 휘두르며 염력을 폭발시켰다.

“키이이!”

다음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작은 원기둥이 거대한 감옥이 되어 불타는 괴물을 가둔 채 탑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계 봉인!”

불 이무기가 탑 위에 도착하자, 서천우의 입에서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고, 탑의 꼭대기 부근에 다시 새까만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와아…!”

구름 불꽃이 다시 봉인되는 모습을 바라보던 학생들은 일제히 감탄사를 내질렀다.

“스승님….”

하지만 단 한 명, 이준만큼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아직 기회가 있느니라. 게다가…다른 세력들도 이곳의 파동을 느낀 것 같구나.”

스승의 한마디에 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흑각성의 사람들인가요?”

“가람아카데미 주변에는 흑각성 뿐이니, 그러하겠지.”

한편, 하늘 위에서는 서천우가 긴 한숨을 내쉬며 구름 불꽃이 봉인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들려온 가벼운 웃음소리에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하하, 본원에 천지의 불꽃을 숨겨놓았다니… 생각지도 못했소. 서천우 대장로, 나를 감쪽같이 속였군요.”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허공에 나타난 무리로 향했다.

그 중 연금술사 의복을 입은 사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천우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었다.

“누군가 했더니만, 흑각성의 약황 한샘이 아닌가.”

“하하, 약황이라니요. 그저 흑각성의 사람들이 제 멋대로 그리 부르는 것뿐입니다. 저에게는 과분한 호칭이지요.”

한샘이라 불린 사내가 서천우를 바라보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한샘, 이곳은 우리 가람 아카데미의 땅임을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 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대건이 싸늘한 눈빛으로 한샘을 쏘아보며 대장로의 곁으로 날아왔다.

“저자가 한샘?”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준은 ‘한샘’이라는 이름에 눈을 가늘게 뜬 채 유심히 그 사내를 바라봤다.

한샘은 무너진 천계의 탑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천지의 불꽃은 투기대륙 최고의 보물입니다. 특히 저 같은 연금술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지요. 헌데 이런 곳에 가둬두고 썩히다니…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대장로님, 부탁하건데 천지의 불꽃을 풀어주시지요. 이것은 금덩어리를 땅속에 묻어두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입니다. 세상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입니다.”

사내의 말에 대장로를 비롯한 가람아카데미 장로들이 일제히 미간을 찌푸렸다.

“하, 거 참 웃기는 말이구려. 우리 가람 아카데미의 장로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당신이 대동한 이들은 모두 흑각성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들인데, 세상을 위해서 천지의 불꽃을 풀어달라니?”

대건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곧바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른 장로들이 날개를 펼치고 번개처럼 그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서천우는 한샘의 뒤에 서 있는 면면들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허허, 과연 약황이라 불리기 손색이 없군. 피의 종족과 지화종, 팔선문의 수장을 모두 끌어들이다니…참으로 대단하군. 아마 이 정도의 인물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것은 자네뿐이겠지.”

“하하, 대장로님, 저희 연금술사들에게 이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아시겠지요? 이화를 저에게 넘겨주신다면 제 명예를 걸고 대장로님께서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지요.”

한샘이 거래를 제안하자, 서천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 놈이 어떤 놈인데, 내가 아직도 모르겠느냐? 만약 너의 스승이 그 말했더라면, 고민이라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 놈 따위에게 놀아날 가람 아카데미가 아니다. 100년은 더 수련하고 오거라.”

대장로의 답변에 한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온화했던 표정이 점차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장로님이 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니, 방법이 없군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샘의 몸에서 물처럼 새파란 화염이 피어오르며 주위의 온도가 치솟기 시작했다.

“천지의 불꽃?!”

새파란 화염의 출현에 허공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무서운 속도로 주위의 온도가 치솟기 시작하자, 멀찍이서 한샘을 바라보던 이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역시…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었어!”

그 때, 준의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 반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스승님…!”

당황한 준은 다급하게 마음 속으로 약로를 불렀다. 지금 스승은 자신을 배신한 옛 제자의 등장에 이성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 안돼요! 이곳에서 스승님의 존재가 발각되면…!”

잠시 후, 숯덩이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반지가 서서히 식으며 깊게 가라앉은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제 괜찮다. 걱정하지 말거라. 단지 저 놈을 보니…”

“마음 놓으세요, 스승님. 반드시 제가…”

“아니, 지금의 너는 아직 저놈의 적수가 되지 못 한다. 저놈의 수련 시간은 너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게다가 지금 저놈은 천지의 불꽃까지 가지고 있으니…내가 허락할 때 까지는 결코 저놈과 맞서서는 안 된다.”

약로의 걱정 어린 말투에 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약로의 말대로, 지금의 그는 전투 실력으로나 연금술로나 모두 자신의 사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스승님, 평범한 연금술사라면 하나의 불꽃만 가질 수 있지 않나요? 한샘에게는 이미 천지의 불꽃이 있는데…”

준의 물음에 약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다가 한참 후에야 낮게 가라앉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건…저놈이 ‘불개’를 수련했기 때문이다!”

스승의 한마디에 순간 준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저놈이 수련한 ‘불개’는 각권에 불완전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게 무슨 뜻이죠?”

“저놈이 내 제자였을 당시, 나를 배신하고 ‘불개’를 훔쳤다. 하지만 그것을 수련하다가 내게 들켰었지. 그래서 저놈은 수련법의 극히 일부분만을 익히고 있다.”

그 때의 기억이 생각나자, 약로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잦아들었다.

“괜찮다. 저 놈 역시 연금술의 천재가 틀림없지만, 너보다는 못하니…그나저나 저놈이 두 번째 천지의 불꽃을 구하려 들다니,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있는 자신의 사형을 긴장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속에는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살의가 치솟고 있었다.

살의를 가라앉히기 위해, 이준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재 허공에 있는 두 세력 중 인원수로 보자면 가람 아카데미 쪽이 더 많았다. 하지만 모두 투왕 수준의 강자뿐이었고, 투황은 대건뿐이었다.

반면 한샘 측은 인원수는 적었지만 모두 투황급 강자이거나 투왕 최상위 단계의 강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본원에는 투종인 대장로님이 계시니…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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