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7화. 천계의 탑의 비밀
그 사이 용암 호수에 또 다시 거대한 해일이 일었다. 마치 어떤 것이 마그마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출렁이던 마그마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훅!
곧이어 잔잔한 마그마 표면 위로 다시 거센 파도가 용솟음쳤다. 마그마가 떨어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파도가 부서지고, 투명한 불 이무기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자, 거대한 음파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음파가 퍼져나감에 따라 용암 호수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화염이 토해졌다.
놈은 서천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파괴적인 무형의 에너지를 쏟아내며 거대한 몸을 바짝 움츠렸다.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쿵…!
또다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나면서 순간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무언가가 동굴 입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놈이 봉인을 깨트리려 한다!”
서천우는 재빠르게 가장자리로 몸을 옮겨 번개처럼 보호막을 빠져나온 후, 봉인을 봉쇄했다. 그러자 깊숙한 동굴 입구 근처에서 에너지와 보호막이 맞부딪혔다.
“모든 장로들은 즉시 탑으로 오라! 학생들은 전부 천년의 탑에서 백 미터 이상 떨어지거라!”
대장로의 목소리가 천계의 탑을 뚫고 본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불 이무기가 사방으로 에너지를 뿜어대자 주변의 공간들이 출렁이며 보다 강력한 보호막이 생성됐다.
곧이어 마치 호수 표면에 거대한 바위를 던진 것처럼 거대한 파문이 보호막 전체로 퍼져나갔다.
펑!
핏빛의 마그마가 깊숙한 곳에서 폭발하며 연신 보호막을 때리고, 탑의 하층부 전체를 뒤흔드는 소리가 울리며 보호막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서천우가 파랗게 질려 보호막 위로 뛰어드는 찰나, 쟁쟁한 파열음과 함께 보호막이 폭발하고 말았다.
구름 불꽃의 불꽃이 광기 어린 마수처럼 사방으로 에너지를 뿜어대는 광경에 대장로는 저도 모르게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호막이 산산조각나자 붉은 용암 기둥이 동굴 아래에서부터 치솟아 올랐다.
“이…이런! 천계 봉인이…!”
……
천년의 탑 8층에 있던 학생들은 귓가에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서천우의 고함소리에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준은 곧바로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구름 불꽃이 또 다시 봉인을 깨려는 것이 분명했다.
계속해서 심연의 불꽃을 흡수한 학생들을 살피던 두 장로 역시 서천우의 고함소리를 듣더니 안색이 크게 변하여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너희는 빨리 탑을 나가거라! 여기에 남아선 안 돼!”
회색 도포를 입은 장로가 멍하니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어서 탑에서 나가라!”
학생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장로들의 반응으로 보아 무언가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준에게는 대지의 불꽃 덕분에 구름 불꽃의 에너지가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엄청난 열기가 동굴 아래 응집해있었다.
무시무시한 열기를 품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는 분명히 빠른 속도로 동굴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눈에 잡힐 듯이 보였다.
“이준, 빨리 여길 떠나거라!”
다시 한 번 장로가 소리를 지르자, 이준은 말없이 보람의 손목을 붙잡은 채 재빠르게 임수혁의 뒤를 쫓아 계단을 올랐다.
이준 등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확인한 두 장로는 곧바로 번개처럼 몸을 날려 탑의 중심부로 향했다.
이준과 다른 학생들은 어둑어둑한 통로를 지나 황급히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어이, 이준. 탑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
동수가 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질문을 던졌다.
준은 잠시 당황하다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보람이 대신 해맑게 웃으며 동수의 질문에 답했다.
“탑 하층부에 있는 화염이 폭발했겠지.”
이에 동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크지는 않았잖아. 예전에도 탑 내부에서 에너지 폭발이 있긴 했지만, 대장로님이 이러는 건 처음이라고.”
“그래, 여태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폭발이야. 심연의 불꽃을 받아들이고 난 뒤 감각이 더 발달한 것 같군…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그 에너지가 느껴져.”
앞에 있던 임수혁이 돌연 몸을 돌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어, 이건 우리가 간섭할 일이 아니야. 대장로님이랑 다른 장로님들 실력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준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젓자, 나머지 학생들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원의 뛰어난 실력자들은 그의 말에 전혀 귀 기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이준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오히려 이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바삐 발걸음을 움직일 뿐 이었다.
그렇게 십 여분을 빠르게 달리자, 마침내 어두운 통로가 끝나고 탑 1층의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 순간, 이준이 중앙의 거대한 동굴 근처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내부에서 붉은 핏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동굴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원형 기둥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기둥 주위로 무형의 에너지가 맞부딪히며 연신 파문이 일었다.
순간 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원기둥 주변의 보호막은 동굴에서 불 이무기가 뛰쳐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만일 동굴에서 뛰쳐나온 불 이무기가 탑과 충돌한다면…
이준은 처음 탑을 보았을 때를 회상했다. 칠흑같이 새까만 탑의 외벽에는 강력한 봉인이 새겨져 있었다. 구름 불꽃이 그 봉인과 부딪친다면, 적지 않은 에너지가 사라질 것이다.
임수혁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도 중앙에 생성된 보호막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됐어, 가자. 장로님들의 명령을 따라야 해. 우리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하지만 동굴 속 불그스름한 빛을 바라보던 임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다른 학생들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엄청난 소리와 함께 불줄기가 솟아올랐다.
무시무시한 굉음에 반사적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자, 동굴의 입구가 새빨갛게 빛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한 사람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심상치 않은 붉은 빛에 이어 쿵쿵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준은 동굴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보람마저 그 폭발적인 에너지에 겁을 먹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이준의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쾅!
그 때, 동굴 입구 근처의 모든 원기둥 주위로 일제히 파문이 일며 분노에 가득찬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호막은 견고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 앞에 결국 1분도 버티지 못 하고 서서히 그 힘을 잃고 있었다.
마침내 보호막이 폭발하는 순간, 거대한 마그마 기둥이 치솟으며 탑의 꼭대기를 강타했다.
붉은 마그마 기둥은 계속해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마지막 최후의 봉인인 탑의 꼭대기에 거세게 몸을 부딪혀댔다.
펑!
거센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고, 거대한 천계의 탑이 흔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학생들은 모두 창백한 얼굴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마그마를 바라봤다.
핏빛의 마그마 기둥은 계속해서 탑의 꼭대기를 세차게 때려대고 있었다.
곧이어 마그마 속에서 수많은 돌덩이들이 분출되며 주변에 있는 보호막 위로 쏟아졌다. 하지만 보호막의 강한 폭발력에 의해 모두 가루로 부서졌다.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핏빛 마그마 기둥은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잠시 뒤로 물서 섰다가 다시 이글거리는 화염을 내뱉어댔다.
“저…저건 뭐야?”
그 순간, 거대한 머리통과 엄청난 몸집을 가진 무형의 불 이무기를 발견한 임수혁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동굴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준은 그 무시무시한 물체가 무엇인지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역시…내가 천계의 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보았던 그것이 구름 불꽃의 본체였어.’
“구름 불꽃이 저렇게나 성장했을 줄이야…! 예전에는 평범한 마수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약로의 목소리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준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스승의 목소리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스승님, 어떻게 하죠? 정말 제가 저놈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이 상태로는 무리다. 우선은 본원의 장로들을 기다리거라.”
그 때, 마그마 기둥 속에 있던 무형의 불 이무기가 이준 일행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대한 마수가 자신들을 노려보는 것을 느끼는 순간, 학생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놈은 학생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탑의 꼭대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탑의 천장에는 검은색의 보호막이 기이한 파문을 일으키며 회전하고 있었다.
“쉬익-!”
놈이 날카로운 숨소리를 내뱉자, 새카만 보호막에서 거대한 파문이 일며 탑 전체가 몸을 떨었다.
급속도로 요동치는 보호막을 바라보며 준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럴수가…그냥 내지르는 음파가 내 황금 사자의 포효보다도 강해…완전히 괴물이잖아. 이걸 정말 사로잡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음파가 보호막에 가로막혀 사라지자, 놈은 곧바로 입을 벌려 화염을 내뿜었다.
순간 탑 안의 온도가 솟구치며 탑 곳곳에서 아지랑이가 일었다. 화염과 보호막이 맞부딪힌 곳에서는 끊임없이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놈이 계속해서 불꽃을 토해내자, 견고하기 짝이 없던 보호막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얇아지기 시작했다.
새카만 보호막이 얇아지는 것을 느낀 불 이무기는 다시 한 번 세차게 울부짖으며 더욱 거센 기세로 불꽃을 토해냈다.
결국 5분 정도가 지나자 검은 보호막이 눈에 띄게 엷어지더니 서서히 파열되고 말았다.
“이놈의 자식들,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게냐?”
그 때, 돌연 십 여 명의 장로들이 나타나 학생들을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선두에 있던 대장로는 학생들을 발견하자마자 크게 노해 고함을 질러댔다.
“젠장, 탑의 봉인이 깨졌다. 놈이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강력해졌어!”
“대장로님, 이제 어떻게 하지요?”
서천우의 곁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봉인이 깨지고 나서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장로들은 즉시 나를 따라오게! 봉인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당장 원장님이 남겨두었던 진법 봉인으로 가야 해!”
말을 마친 서천우가 탑 밖으로 몸을 날리며 다시 한 번 학생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뭐하는게야! 어서 탑을 나가!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라! 누구도 들어오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
놀라운 속도로 사라져 가는 장로들을 보며 이준 등은 감히 그 곳에 더 있지 못하고 황급히 탑 밖으로 뛰어 나갔다.
‘천년의 탑도 구름 불꽃을 붙잡아 둘 수 없구나…일단은 장로들을 믿어봐야겠어. 지금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장로들이 놈을 약화 시켜 주길 기대해볼 수 밖에…’
결국 준 역시 한숨을 내뱉으며 탑 밖으로 몸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