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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76화 (276/818)

제276화. 고통

이곳에 봉인된 이래 구름 불꽃은 매일 같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난동을 부려왔었다. 하지만 어째서 갑자기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그 신비한 불꽃은 이 봉인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봉인은 어떠한가?”

“저희와 내원의 장로들까지 모두 18명이 힘을 모아 5일 간, 봉인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전에 충돌하며 흩어진 봉인도 완벽하게 보완했습니다.”

“대장로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첫 번째 봉인이 폭파됐었지만, 그것은 탑 표층부일 뿐입니다. 게다가 당초 본원의 장대인께서 친히 봉인을 설계하셨으니, 구름 불꽃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 곳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장로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서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구름 불꽃을 얕잡아 보지 말게나. 구름 불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갖추고 있는 불꽃 중 하나야.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응집해있으면서 더욱 더 강력해졌지. 만약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긴다면 본원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파괴되고 말 것일세. 물론…그렇게 된다면 즉시 외원에서 응원 병력이 달려오겠지만…그래도 안심할 수 없네.”

“알겠습니다!”

대장로의 엄중한 경고에 두 명의 장로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던 서천우가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은 여기에 남아 저들을 잘 살펴보도록. 어떤 사고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나는 직접 마지막 층까지 내려가서 구름 불꽃의 동태를 확인해 보아야겠네.”

* * *

무형의 화염이 몸속으로 들어간 직후, 학생들의 얼굴은 화로에 던져진 숯마냥 벌겋게 달아올랐다. 화염은 몸 안쪽에서부터 모든 것을 재로 만들듯한 열기를 내뿜으며 그들의 전신을 불태워댔다.

무형의 화염이 신체 곳곳에서 스며 나오며 체내에 있는 모든 것을 휘감았고, 심지어 힘의 수정에 비축된 염력까지도 모두 불꽃의 먹이가 되어 버리고 있었다.

눈 앞이 아찔해지는 통증에 준은 체내에 있는 힘의 수정을 들여다 볼 여력조차 없었다. 하지만 힘의 수정에 있는 염력이 모두 끓어오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뼈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탓에 일 분 일 초가 마치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통 속에서 준은 무형의 화염이 휘몰아치면서 뼈와 내장, 혈관을 비롯한 신체의 모든 기관이 강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요 몇 년 동안의 수련과 경험을 통해 준은 자신이 제법 강인한 인내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일찍이 약로가 자신의 몸에 발라주었던 「불의 숨결」부터 시작해 「대지의 불꽃」을 흡수할 때 느꼈던 고통,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시련에서 느꼈던 고통까지, 아픈 것을 참는데에는 이골이 나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몸 속을 뒤집어 놓는 고통은 그런 준에게도 견디기 힘들만큼의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견디자, 이를 악물고 견디자, 견디다 의식을 잃거나 투왕이 되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자. 준은 그렇게 수 천 번을 되뇌며 세포 하나하나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견뎌냈다.

마침내 화염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준은 눈 앞이 아찔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 준의 체내에서무언가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5성 투사가 되면서 불순한 상태로 엉성하게 흩어져 있던 자신의 염력이 빠른 속도로 응집되며 깨끗하고 순수하게 정화되기 시작한 것 이다.

곧이어 그의 힘의 수정에도 변화가 일어나며 빠른 속도로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한 염력이 농밀하게 응축되기 시작했다.

……

그간 워낙 많은 고통을 겪어왔던 준과 달리, 다른 이들은 끝내 심연의 불꽃을 이겨내지 못 했다.

심연의 불꽃이 체내에 들어간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한 명의 학생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발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마치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덜덜 떨었다.

이준을 비롯한 일행들을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던 두 장로는 그 학생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하자마자 그의 뒤로 가서 동시에 손바닥을 내뻗었다.

두 장로의 거대한 염력이 학생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창백했던 안색이 다시 불그스름하게 변하며 새빨간 피가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다.

심연의 불꽃을 이겨내지 못한 학생은 피를 한사발이나 토한 후에야 정신을 차렸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좌절하며 머리를 쥐어 뜯어댔다.

“너는 저쪽에서 먼저 쉬거라. 심연의 불꽃을 다스리는 데에 실패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아라.”

회색 도포를 입은 장로가 좌절한 학생을 바라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학생의 몸이 빠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 두 장로는 쓴 웃음을 지으며 그 학생의 곁으로 가 화염의 불꽃을 강제로 빼내었다. 두 사람의 실패 이후에도 한 시간 동안 무려 세 사람이 더 쓰러졌고, 덕분에 두 장로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돌보았다.

마지막으로 실패한 학생을 돌본 후, 두 장로의 시선은 곧바로 남아 있는 여섯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얼굴 역시 화로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호흡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그제야 두 장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 여섯 명은 가장 위험한 순간을 잘 견뎠으니, 계속해서 집중만 잘 한다면 큰 문제 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전보다 훨씬 많군요.”

한 장로가 땀으로 가득 찬 손을 문지르며 말하자, 다른 장로가 고개를 끄덕인 뒤 실패로 잔뜩 위축된 다섯 명의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남아서 저 아이들을 잘 봐주시오. 나는 저 아이들을 탑 밖으로 데려다줘야겠군.”

그렇게 다섯 명의 학생은 끝내 투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들어왔던 길을 따라 밖으로 나가야 했다.

* * *

준을 비롯한 6명은 무려 3일이라는 시간에 걸쳐 심연의 불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 그들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으며, 혈관과 골격을 비롯해 신체 전체가 더욱 단단하고 강해졌다.

그리고 3일째 밤이 지나고 나흘째 새벽이 될 무렵, 마침내 불그스레했던 안색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온 몸에서 농밀한 염력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심연의 불꽃을 받아들이기 전과 염력의 크기 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염력의 순도는 더 없이 높아져 티끌 한점 없이 맑은 얼음과도 같았고, 힘의 수정은 염력이 더더욱 응축되고 압축되어 금강석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사흘째 되던 날 동이 터올 무렵, 탑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구름 불꽃의 동태를 살피던 서천우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 * *

천계의 탑의 가장 깊은 곳에는 상층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으로 인해 탑의 내부는 마치 지옥처럼 뜨거웠고,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열기로 인해 일그러져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숨을 들이쉴 때 마다 폐부를 파고드는 끔찍한 열기로 인해 마치 공기 대신 불꽃으로 숨을 쉬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최하층의 중앙 지역에도 거대한 동굴이 있었는데, 이곳의 동굴은 앞서 보았던 상층부보다 훨씬 커다랗고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단 한줄기의 빛조차 흐르지 않았으며, 응결된 피처럼 검붉은 색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동굴의 입구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원기둥 형태의 보호막이 에너지가 새어나오는 것을 봉쇄하고 있었다. 보호막의 표면에는 온갖 기이한 문양이 가득했는데, 마치 뱀이 지나간 것처럼 에너지가 지나갈 때마다 기묘한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보호막의 바깥 쪽 한 구석에서는 서천우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서천우의 염력이 천년의 탑 최하층부를 둥글게 둘러싸자, 어떤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그의 감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개미 한 마리가 좁쌀을 떨어뜨린다면, 그것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미친듯한 열기가 흘러넘치는 탑의 최하층부 어딘가에서 돌연 액체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강물이 넘쳐흐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이 소리를 듣자마자 서천우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대장로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소리나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소리의 출처는 바로 탑의 중심에 있는 그 동굴이었다.

서천우는 바람처럼 몸을 날려 동굴의 가장 자리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처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던 그곳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노인은 고민에 빠진 듯 조금 망설이다가 두 손을 천천히 동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투왕급 투사 한명쯤은 거뜬히 해칠 수 있을법한 광폭한 에너지가 그의 손길을 따라 급속도로 안정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에 사람 하나가 지나갈만한 통로가 생겨났다.

보호막에 구멍이 생기자마자 서천우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의 가장 자리에 두 발이 닿자, 엄청난 열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대장로는 즉시 소매를 휘둘러 거대한 염력으로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며 그 열기를 차단했다.

기초적인 방비를 끝마친 서천우는 신중한 표정으로 동굴 속을 바라보았다.

동굴 가장 깊은 곳에 흐르는 마그마 호수를 살펴보니, 마그마의 색이 평상시와 달리 유달리 선명한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한 서천우의 얼굴이 점점 더 심각하게 굳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직접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제 아무리 가람아카데미의 대장로라도 그곳으로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상하군. 너무 조용해. 그렇다면 내가 느낀 그 섬뜩한 에너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곳에는 분명 구름 불꽃의 본체 외에는 아무 것도 살지 못할 터…’

쾅!

그 때, 마그마 호수 속에서 다시 한 번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서천우의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마그마 호수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여전히 서천우가 그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웠다.

쾅!

서천우의 귓가에 또다시 시작된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이번 소리는 전보다 더욱 크게 울리고 있었다. 마치…미지의 무언가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쾅!

또다시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전보다 한층 더 큰 소리였다.

“쾅!”

이번에는 5분 후에 들려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삼 분 후, 또 한 번은 일 분 후….

소리가 들려오는 간격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대장로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마그마 호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광폭하고 농밀한 에너지가 천천히 마그마 호수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마그마 호수 일대에 거대한 붉은 파도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마치 산봉우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에너지는…….”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익숙한 에너지에 서천우의 안색이 더욱 더 창백해졌다. 그는 이미 이 에너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왜…이, 이래서야 봉인이 아무런 효과도…”

그는 이 광기에 휩싸인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구름 불꽃의 에너지였다. 구름불꽃의 에너지는 전에 없이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즉시 사람들을 불러 봉인을 강화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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