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71화 (271/818)

제271화. 폐막

관객들은 급속도로 확산되는 에너지 폭풍에 놀라 넋을 놓고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풍이 관객석을 향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공간봉쇄!”

그리고 모두가 사색이 되어 몸을 돌리려는 찰나,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 인영 하나가 관객석을 막아섰고, 이내 광장 전체로 퍼지던 에너지 폭풍이 벽에 가로막힌 듯 덜컥 멈춰 섰다.

“푸훗!”

곧이어 이준과 류지안, 두 사람의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새어 나오며 둘의 몸이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지만, 주인을 잃은 두 개의 에너지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또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거대한 에너지는 맞부딪히고 뒤엉키며 점점 더 큰 폭발력을 만들어 냈고, 이미 주인들의 통제를 벗어나 살아있는 괴수마냥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대장로가 손을 휘두르자,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폭풍이 서서히 잦아들더니 얼마 가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곧이어 대장로가 손을 흔들고, 이에 맞춰 심판석에 있던 두 명의 장로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그들은 폭발로 무너져 내린 경기장에서 전신에 피를 뒤집어쓰고 쓰러져 있는 두 선수를 안아 들었다.

광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경기장 가운데 이미 의식불명이 되어버린 이준과 류지안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본원에 있는 학생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뛰어난 인재였지만, 이준과 류지안이 보여준 괴물 같은 실력 앞에 하나 같이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

대장로는 경기장 가운데에 서서 엉망이 된 경기장을 둘러보며 연신 쓴 웃음을 지어댔다. 오랫동안 무수한 경기가 치러졌던 곳이지만, 이토록 엉망이 된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그는 몸을 굽혀 정신을 잃은 둘의 몸속에 염력을 흘려보냈다. 다행히도 둘 모두 부상이 심했지만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높은 누각 위에서 다수의 장로들이 번개처럼 내려와 대장로의 주변을 빽빽하게 에워쌌다.

“생각지도 못했군…이준 후배가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근처에서 이준을 바라보고 있던 임수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 두 사람의 격돌이 만들어 낸 에너지는 그의 눈에도 실로 무시무시한 것으로, 천하의 임수혁이라 해도 감히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그 때, 이준이 쓰러져 있는 곳 주위로 세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비석의 간부인 이은과 오하늘, 이윤영 이었다.

“괜찮다, 준이는 아무 일 없을게야.”

대장로가 걸어와 웃으며 말을 걸자, 오하늘과 이윤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서천우는 본원 최고의 실력자로 평소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자로 유명했지만, 지금 그의 태도는 분명히 준과 무언가 친분이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은은 서천우를 바라보며 은은하게 미소만 지을 뿐 담담한 표정으로 준의 얼굴에 흘러내린 선혈을 닦아줄 뿐 이었다.

“대장로님, 두 명 모두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이번 경기는 누가 이긴 것으로 해야 합니까?”

쓰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장로 중 하나가 물었다. 이 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귀를 기울이며 긴장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항이 아닌가.

대장로는 곤혹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역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규정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경기장을 벗어났고, 지금은 모두 정신을 잃었지. 누가 이겼는지 정확하지가 않구나….”

하지만 다음 순간, 피에 젖은 손이 가늘게 떨리며 장로의 손을 붙잡았다.

“크윽…저, 저는 아직 깨어있습니다.”

힘겹게 눈을 뜨는 소년의 모습에 순간 장내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검은 망토를 두른 소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자신이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대장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의 집념 어린 모습에 대장로가 쓴 웃음을 지으며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허나 너희 둘 모두 10위 안에 들어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흐릿하게 들려오는 대장로의 말에 소년은 안도한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그의 의식이 깊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빠져 내려갔다.

……

소년이 다시 눈을 감자, 대장로가 뜻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로님, 만약 이 둘이 무승부로 끝났다면 이번 대회에서는 10명이 아니라 11명이 선발되는데…앞으로도 11명을 선발하고자 하십니까?”

그 때, 대장로의 결정에 의문을 느낀 장로 하나가 머뭇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할 수 없지. 심연의 불꽃이 귀중한 것은 사실이나, 오랫동안 내원에 비축해둔 것이 있으니, 지금 하나를 더 뽑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두 사람을 어찌하겠느냐? 두 사람 모두 한계를 넘어섰으니 승패를 가리기도 어렵고.”

하지만 대장로의 단호한 태도에 질문을 한 장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경기는 예비 경기장에서 시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준과 류지안은 부상을 입은 관계로 경기에는 계속 참가할 수 없다. 게다가 이미 10인 명단에 올랐으니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구나. 뒤에 남은 순서대로 경기를 재개하거라. 나머지 학생들도 이 둘이 빠져서 다행이라 여길 것이니 큰 문제는 없겠지.”

서천우가 주변을 둘러보고 담담히 웃으며 말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두 사람이 앞선 경기에서 보여준 엄청난 실력은 다른 학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았으니, 그들이 경기 명단에서 빠졌다는 사실에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임수혁은 조금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류지안과 이준이 제외되어 버렸으니 계속되는 경기에서 기대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 * *

사람들의 경탄 어린 시선 속에서 정신을 잃은 이준과 류지안이 사람들의 등에 업힌 채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준과 류지안 두 사람의 퇴장 후, 경기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앞선 두 사람의 경기에 비할만한 전투는 없었다. 이어지는 경기 역시 제법 수준이 높았지만, 이준과 류지안의 경기로 인해 관객들의 눈이 높아진 터라 기대했던 만큼 박수나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순위 쟁탈전은 오후가 되서야 막을 내렸고, 격렬했던 전투가 끝나고 나니 새로운 강자 명단이 채워졌다.

1위는 여전히 ‘작은 괴물’ 보람이었다. 그녀의 괴력은 인간의 그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실제로도 인간이 아니지만) 심지어 장로들조차 그녀를 두려워했다.

2위는 이준과 류지안이 모두 쓰러지는 통에 자연스레 임수혁이 차지하게 되었다.

3위는 본래 류지안이어야 했지만, 이미 그는 이준과의 전투로 인해 퇴장한 터라 다른 인물이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류지안의 자리를 차지한 행운의 주인공은 상당히 예상 밖의 인물로, 본래 9위 였던 임동수가 마지막까지 남아 3위를 차지했다.

계속해서 6개의 순위전이 격렬하게 벌어졌고, 경기가 막을 내리면서 최후의 6인이 선정되었다.

앞서 10인으로 선정되었던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대회의 후반부에 출전한 선수들이었다.

제비뽑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운이 좋아 순위에 든 것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들지 못할만한 실력을 가진 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3위는 임동수가 아니라 이준과 류지안이었다.

이 날의 전투로 인해 본원의 누구도 감히 이준의 실력을 의심하지 못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인 ‘비석’의 명성 역시 날이 갈수록 높아지게 되었다.

* * *

순위 쟁탈전이 종료된 후, 관행에 따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10위권 내에 들어간 이들에게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상위 10명의 실력이 너무나 압도적인 탓에 감히 누구도 손을 들지 못했다.

단 한 명, 늘 이준의 곁을 지키고 있던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지명한 것은 놀랍게도 모두가 최강자로 인정하는 ‘임수혁’ 이었다.

둘의 경기는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지만, 그 결과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은의 가벼운 공격 몇 번에 임수혁이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염력을 끌어올렸고, 그 순간 푸른 옷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다음 순간, 소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금색 불꽃이 피어오르며 임수혁의 염력을 모두 흩어버렸고, 이에 본원의 최강자는 허탈한 표정으로 패배를 시인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 이었다. 이은이 패배를 시인하려던 임수혁에게 다가가 무언가 귓속말을 건넨 뒤 기권을 선언하고 조용히 경기장 밖으로 사라진 것이다.

* * *

순위 쟁탈전이 끝난 지 3일 후, 본원 곳곳에서는 이준과 류지안, 그리고 이은과 임수혁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본원에 온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생이 몇 년간 본원을 호령하던 두 강자 중 하나인 류지안과 비긴 것도 놀라운 일 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언제나 조용히 준의 곁을 지키던 소녀가 보여준 무서운 실력이었다.

류지안과 버금가는 강자의 등장에, 임수혁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자까지…이로 인해 본원의 선배들 중 그 누구도 감히 비석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신입생들이 건방지게도 조직을 만들었다며 비석에게 시비를 걸어왔던 선배들 중 대다수가 비석의 조직원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돌리고 달아나듯 자리를 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 *

비석의 작은 누각에 있는 밀실.

소년 하나가 침대 위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아직 조금 창백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 미약하나마 붉은 기가 돌고 있었다.

“이준 저 녀석은 어떻게 3일 내내 수련을 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온 몸의 혈관이 다 엉망이 되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짧은 시간만에 멀쩡해질 수 있는 거야?”

윤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오하늘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너희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잔뜩 심통이 난 듯한 보람의 모습에 이은과 이윤영, 오하늘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겨? 저 놈이 정신을 못 차리면 난 또 맛없는 약재를 생으로 씹어 먹어야 한다고!”

보람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지르자, 이은이 다가가 어린 아이를 달래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준이 오라버니는 이번에 큰 부상을 입었잖아요. 몸속에 있는 염력을 몽땅 소진해 버린걸요. 그래도 이번 전투 덕에 1성 이상 계급이 올랐을 거예요.”

“무슨 소리야…대련 한 번에 두 단계나 승급을 한다고? 아무리 귀한 연금비약을 먹더라도 어려운 일이잖아. 심지어 승급에 도움이 되는 연금 비약을 먹는다고 해도 한 번에 두 단계를 뛰어넘는 건 하늘에 별 따기라고.”

이윤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이은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할 뿐 이었다.

“아니, 이번 전투는 확실히 오라버니에게 엄청난 기회였어. 내가 확신할 수는 없는 건 한 가지, 오라버니의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느냐야. 최소한 이번 일이 오라버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니 여기는 나에게 맡겨.”

곧이어 이은이 이준을 바라보며 오하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휘젓자, 결국 나머지 셋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방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아, 맞다. 그리고 임수혁이 또 비석에 왔어.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네.”

윤영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하자, 이은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정말이지 난처하네. 준 오라버니는 지금 누굴 만날 상황이 아니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