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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65화 (265/818)

제265화. 흑수(黑水)의 결계

검은 액체의 또 다른 쓰임새를 눈치 챈 준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물 위에서라면 성치윤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잠깐…물?’

그 때, 준의 머릿속에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끈적하든 , 색깔이 이상하든, 독성이 있든, 일단 액체라는 소리잖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열손가락에서 푸른색 불꽃을 피워냈다. 신비한 푸른 화염이 나타나자 경기장의 온도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라!”

다음 순간, 이준이 손가락을 굽혔다가 튕기자, 열 개의 불꽃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푸른 불꽃에 실린 무시무시한 열기를 감지한 치윤은 빠르게 몸을 날려 그 불꽃을 피했다.

하지만, 불꽃의 목표는 치윤이 아니라 경기장 바닥에 고여 있는 검은 액체였다. 신비한 화염은 바닥에 닿자마자 무시무시한 온도를 토해내며 바닥에 널린 물을 순식간에 말려버렸다.

순식간에 증발해가는 검은 물을 보며 적지 않은 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준이 이런 방법으로 치윤의 공격에 맞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

“하하, 이런 수단이 있을 줄이야. 정말 대단한데?”

이미 반이나 줄어든 액체를 보며 임수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것도 이준이니까 할 수 있는 거야. 저 독성 있는 액체를 증발시키려면 평범한 불 가지고는 어림없을걸…”

엄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어찌됐든 재밌게 됐네.”

불꽃이 경기장 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성치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이미 바닥 위에는 자신이 자랑하는 검은 물이 한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골치 아픈 검은 물을 모두 날려버리는데 성공하자, 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상대를 비웃었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생각이지?”

하지만 성치윤은 전혀 물러설 마음이 없는 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시 칼자루를 움켜잡았다.

“흥…닥쳐. 네 놈의 비술에는 분명 시간제한이 있을 텐데? 어차피 그 비술이 끝날 때 까지만 버티면 내 승리다.”

“그래? 그럼 한번 버텨봐.”

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팔을 흔들자, 푸른색의 염력과 함께 푸른 불꽃이 검은 송곳을 감싸기 시작했다.

곧이어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준의 형체가 사라졌다.

다음 순간, 등 뒤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에 성치윤은 사색이 되어 두 발을 굴렀고, 이내 그의 발에서 시커먼 연기가 터져 나왔다.

……

“쳇!”

검은 송곳을 휘둘러 연기를 걷어낸 준은 이미 저만치 멀리 달아난 치윤을 보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일단 한번 거리를 벌린 성치윤은 잠시 준의 눈치를 살피다 다시 염력을 끌어 올렸다.

그는 또 다시 단검을 빙글 빙글 돌려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빌어먹을…신경 쓰여…’

상대가 단검을 빙글 빙글 돌린 뒤에는 꼭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는 것을 눈치챈 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성치윤의 손에서 춤을 추던 단검이 멈췄다.

‘이번에는 또 뭐야…’

그러나 ‘검은 물’처럼 무언가 성가신 것이 나올 것이라는 준의 예상과 달리, 성치윤이 선택한 것은 ‘정면돌파’였다.

그는 불길한 빛을 띤 두 자루의 단검을 손에 쥔 채 준을 향해 화살처럼 몸을 날렸다.

또 다시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자, 준은 있는 힘껏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그러나 성치윤은 돌연 몸을 회전시켜 검은 송곳의 검격을 피해낸 뒤 준의 몸에 찰싹 붙어 정신없이 단검을 휘둘러댔다.

성치윤의 공세에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성치윤은 마치 상대와 맞잡고 춤이라도 추듯 적에게 바짝 달라붙어 빙글 빙글 회전하며 상대의 급소를 향해 연신 단검을 찔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임수혁을 비롯한 강자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 채 조용히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준의 대응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 정도의 속도와 전투 경험을 갖추고 있는 자가, 굳이 불리한 거리를 내준 것이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이준치고는 상대의 접근을 너무 쉽게 허용한 것 역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최강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황금 같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성치윤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단검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단검이 준의 양팔을 향해 내리쳐지는 순간, 성치윤은 승리를 확신했다. 상대가 팔을 잃지 않기 위해 무기를 놓고 만 것이다.

……

“먹구름 환상!”

곧이어 섬뜩한 외침과 함께 두 자루의 단검이 파르르 떨리며 검은 염력이 그 위를 뒤덮었다.

상대의 공격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어낸 준은 재빠르게 자신의 염력 회오리 속에서 대지의 불꽃을 소환해 냈고, 순식간에 이준의 몸 위에 푸른색의 화염 갑옷이 생성됐다.

챙!

하지만 회심의 일격이 준의 화염 갑옷에 적중하는 순간, 미소를 지은 것은 성치윤이 아니라 공격을 당한 준이었다.

엄청난 열기가 단검을 타고 올라가 성치윤의 손에 화상을 입힌 것이다.

“빌어먹을!”

그러나 무시무시한 열기에 당황한 치윤이 뒤로 몸을 날리는 찰나, 갑자기 준의 입에서 원형의 음파가 뿜어져 나와 상대의 몸에 적중했다.

“사자의 포효!”

“우욱…!”

음파가 자신의 몸에 적중하자, 성치윤은 눈앞이 아찔해지며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음파 공격은 성치윤의 몸에 부상을 입힐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현기증이 일어 도저히 균형을 잡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회심의 한 수를 적중시킨 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태초의 힘!”

쾅!

곧이어 염력을 실은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성치윤의 가슴팍에 내리 꽂혔다.

“크흡!”

흉부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성치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이내 그의 입에서 시뻘건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성치윤이 피떡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다 죽은 사람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 하게 되자, 광장 안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그렇게 몇 분간 적막히 맴돌다가 마침내 경쾌한 박수소리가 하나 둘 울려퍼졌고, 이내 환호성이 터져나오며 경기장의 분위기가 뜨겁게 들끓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박수 소리에 이준은 고개 들어 이은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은 역시 그 곳에서 밝게 웃으며 우아한 손짓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준은 이은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은 뒤 고개를 돌려 류지안 일행을 바라보았다. 류지안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본 경기는 이준의 승리다!”

그 때, 심판석에서 대장로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서천우의 한마디에 박수 소리가 한층 더 커지며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준은 먼지더미에 나무 토막처럼 쓰러져 있는 치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자신의 보라색 날개를 펼쳐 관중석 위로 날아올랐다. 구경꾼들은 준의 등 뒤에 달린 신비한 날개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 했다. 관객들 역시 모두 본원의 학생이고, 재능이 넘치는 투사였지만, 보물 중의 보물인 비행 무투기 앞에서는 부러움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오하늘 역시 그 아름다운 날개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역시 최고라니까.”

“저런 희귀한 무투기도 갖고 있는지는 몰랐네…정말 희한한 녀석이라니까.”

윤영도 이준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이준 후배님, 축하합니다. 성치윤을 이겼으니 10위 안에는 들겠군요.”

자리로 돌아온 준을 향해 임수혁이 박수를 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운이 좋았을 뿐인 걸요. 마침 제 불꽃이 흑수의 결계와 상극이라 망정이지…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이준이 겸손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비행 무투기가 있는데 흑수의 결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나저나, 류지안 얼굴이 아주 볼 만하던걸요. 애써 태연한척 하기는 했지만, 적잖이 놀란 것 같더라구요. 류헤이는 아주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더군요.”

임수혁의 거듭되는 칭찬에 준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저는 10위권에 이름 올리는 게 목표라서요. 1위나 10위나 별 차이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이준이 대회에 참가한 목적은 10위권에 들어 천계의 탑 더 깊숙한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자격을 받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말도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준이 민망해 하는 듯 하자 임수혁은 씨익 웃으며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정말이지 보기 드물게 예의가 바르고 배려가 넘치는 사내였다.

“하하. 저는 대회가 끝나면 다시 산에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후배님도 관심이 있다면 같이 가는게 어떨까요? 거기 있는 물건이 후배님에게도 꽤나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임수혁이 ‘지하의 유액’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자, 준은 조금 속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하하, 배려는 감사하지만…제 실력으로는 아직 조금 무리가 있어서요. 그곳에는 강력한 마수들도 많으니까요.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해보자는 거죠. 그 물건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후배님도 알고 있을테니까요.”

수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 역시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지하의 유액’은 너무 귀한 보물이었다.

그 때, 갑자기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는 통에 이준과 임수혁의 대화가 자연스레 끊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지하의 유액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준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준의 경기 뒤로도 난폭하고 화려한 전투가 이어졌다. 본원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만 모아놓은 곳이나 보니 대회 2일차 부터는 한경기 한경기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명경기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어진 시합 중에는 임동수의 경기도 있었기 때문에, 준은 처음으로 임동수의 실력을 볼 수 있었다.

이준이 그의 몸에 남아 있는 독을 제거해준 뒤로 그의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으로 발전해 있었다. 준이 보기에는 아마도 본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것 같았다. 그의 상대는 강자 목록 19위에 이름을 올린 강자였지만, 임동수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단 몇 수만에 상대를 무릎 꿇리는데 성공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이준을 비롯한 관객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다리는 경기는 바로 ‘류지안’과 ‘임수혁’의 경기였다.

두 사람은 걸출한 천재들이 모여 있는 본원에서도 단연 가장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인재이니만큼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리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마침내 류지안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석 전체가 들썩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상대는 강자 목록 11위의 투사로, 무려 8성 투령에 오른 실력자였다. 그 정도 순위와 실력이면 본원에서도 상당히 상위권에 속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제 아무리 8성 투령이라 해도 류지안 앞에서는 감히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의 결과는 이준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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