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63화 (263/818)

제263화. 본격적인 사투

낙연의 장검으로 인해 경기장 바닥이 온통 습기로 축축해졌고, 어느새 땅바닥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하지만 류지안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상대의 공격을 응시하며 가볍게 손을 들 뿐이었다.

'헙!'

촤악!

곧이어 용솟음치며 다가오는 흉악한 상어를 담담하게 바라보던 류지안이 손톱을 구부리니 그의 손끝에서 옅은 금색 한 가닥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가 오른쪽 손톱을 내밀자, 번개와도 같은 형상을 띤 빛줄기 하나가 뿜어져 나와 흉악한 상어 형상의 검과 맞서기 시작했다.

퍽—

다음 순간 거센 소리와 함께 류지안의 손바닥 위로 옅은 금색 빛이 솟아올랐고, 이에 낙연의 검은 강한 충격에 맞은 듯 무너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슈욱, 슉!

첫 번째 검이 파괴되자 낙연의 낯빛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염력을 끌어올려 이전과 똑같은 형상의 검 두자루를 꺼내들었다.

상어의 형상을 한 두 자루의 장검은 모양은 첫 번째로 꺼내든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첫 번째 것의 배 이상은 되어보였다.

그러나 류지안이 짐승의 발톱처럼 구부린 두 손바닥을 뻗자, 두 자루의 장검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단단히 끼워졌고 과자처럼 부스러져 사라졌다.

그렇게 4성 투령을 쓰러뜨리고도 남을 위력을 가진 검들이 눈 깜짝할 새에 가루가 되는 광경에 낙연은 완전히 투지를 잃고 말았다.

“끝이다.”

다음 순간 류지안이 담담하게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며 손을 휘둘렀고, 돌연 강풍이 몰아치고 낙연이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경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류지안의 압도적인 힘 앞에 경기장 전체에는 또 다시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

‘흐음…’

누각 위에서 류지안의 경기를 바라보던 준의 시선이 못 박힌 듯 류지안의 커다란 손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낙연이 선보였던 공격도 꽤나 훌륭했지만, 그 강력한 세 개의 검을 맨손으로 박살낸 류지안의 무투기 앞에 준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류지안의 장기야. ‘창의 분열’과 ‘발톱 분열’. 그 자체로도 상당한 상급 무투기이지. 류지안 정도의 괴물이 사용하면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저놈은 저 두 가지 무투기에 10년 이상을 매달려 있었으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돌리자, 어느새 임수혁이 그의 곁에 서 있었다.

“흐음…정말 대단하군요. 그래도 선배님은 저 류지안을 꺾으셨잖아요.”

준의 칭찬에 임수혁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배님이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군요. 그 때 녀석을 이겼던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로 저 녀석과 다시 맞붙는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뒤이어 임수혁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후배님과 맞붙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군요.”

이번에는 이준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류지안이 방금 전 보여준 것은 분명 오늘 있었던 모든 경기 중에서 손에 꼽을만한 압도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상대가 부족해 그의 위력을 모두 끌어내지는 못한 것이었으니, 류지안의 실력은 실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류지안의 경기에 임수혁은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임수혁의 경기는 성사되지 않았다. 임수혁의 상대로 뽑힌 학생이 승부를 포기하고 기권을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임수혁의 경기가 무산된 뒤로도 다른 학생들의 경기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결국 첫 째 날의 마지막 경기인 25번째 경기가 끝나자, 어느새 해가 저물어 사방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관객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날 경기를 기약했다. 첫 째 날의 경기도 대단했지만, 진정 멋진 경기는 오늘 승리한 강자들이 맞붙는 둘 째 날, 셋 째 날에 나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밤이 깊어지자, 온종일 떠들썩했던 가람아카데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반짝 반짝 빛을 발하는 별빛들이 넓은 아카데미를 아름답게 비추자, 높고 가파른 산봉우리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준은 자신의 방안에서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곧이어 사방에 가늘고 은은한 에너지가 모여들어 그의 체내로 빨려들었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그의 얼굴에 서서히 화색이 돌았다. 낮 동안에 소진된 염력이 모두 회복된 것이다.

“후…”

자신의 몸안에 다시 원기가 충만해지자, 준은 조용히 머릿속으로 류지안의 무투기를 되새겨 보았다.

자신이 수련한 무투기 중 가장 오래된 태초의 힘이라 해보았자 2,3년 정도 수련한 것 불과했다. 이는 류지안의 두 가지 무투기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10위 안에 들어야 해.’

* * *

한편 이준의 방에서 멀지 않은 고요한 방 안에서는 한 노인이 이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가씨, 벌써 1월인데, 정말로 떠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며칠만 더 기다려 주세요. 오라버니가 10위 안에 드는 것을 보고 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은의 간곡한 말투에 세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말없이 그림자가 되어 사라졌다.

……

한 줄기 햇살이 하늘 끝에서 부서지듯 내려오자, 밤새 고용하던 아카데미가 금세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불과 한 두 시간 사이, 광장은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고 30분이 지나자, 장로들이 연이어 도착해 자리를 빛내주었고, 대장로인 서천우가 도착하자 정식으로 순위 쟁탈전의 둘 째 날이 시작되었다.

"어제의 경기를 거쳐 이제 25명의 참가자들만이 남았습니다. 다시 제비뽑기를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원이 안 맞아 떨어져서 한 사람이 남는 관계로, 오늘은 12차례의 전투만 치르고,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이 조건 없이 올라갈 것 입니다."

서천우의 말에, 광장에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실력이 있는데도 운이 나쁘게 떨어지는 학생들이 있는데, 부전승이라니, 너무 불공평한 처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장로의 말에 관중석에는 더욱 소란이 일었다.

“허허! 그리고 공평을 기하기 위해 대전없이 올라가는 한 명은 ‘보람’으로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관객석의 반응과 달리 남아있는 강자들 중 대부분은 천만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기까지 했다.

“참가자 여러분, 이의 있습니까?”

대장로가 다시 한 번 참가자들의 의사를 묻자, 임수혁과 엄호, 류지안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참가자들 역시 잇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럼 제비뽑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상황을 대충 정리한 노인이 탁자 위의 대나무 통을 가리키자, 곧바로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7번, 이준은 자기 대나무에 적힌 번호를 힐끗 보고는 다른 참가자들을 따라 경기장으로 돌아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순위 쟁탈전 2일차! 첫 번째 경기는 3번이다! 빨간 색으로 적힌 3번과 파란색으로 적힌 3번 모두 무대 위로 올라 오거라!”

제비뽑기가 끝나자마자, 대장로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곧이어 두 개의 그림자가 무대 위로 번쩍하고 나타났고, 거센 기운이 순식간에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첫 번째 대결을 맡은 두 사람은 한 사람이 20위, 또 한사람이 22위로 상당히 비등한 실력을 가진 자들간의 대결이었다.

“경기 시작!”

대장로의 목소리를 신호로 양측에서 흉악한 기운이 터져 나오며 정면충돌이 일어났다. 첫 번째로 대결을 벌이는 둘 모두 상당히 공격적인 무투기를 가진 듯, 염력이 충돌하며 폭발하는 기세가 사납기 짝이 없었다.

“어이, 이준.”

이준이 한창 전투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동수가 미간을 찌푸린 채 질문을 던졌다.

“7번 맞지?”

“그런…데요?”

“으휴, 정말이지 왜 번호를 숨기지 않는 거야? 여기 있는 놈들 죄다 네가 몇 번인지 알고 있다고.”

“숨긴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후…덕분에 네 상대가 바뀌었다. 성치윤이 7번을 뽑은 다른 놈이랑 번호표를 바꿨거든.”

동수의 말에 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죠? 번호를 바꿔도 되는 거였나요?”

“경기 번호는 자기 외에는 아무도 몰라. 그래서 대부분 자기 번호를 꽁꽁 숨기려 하지. 너 같이 번호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두는 사람은 없다고.”

다음 순간, 동수가 히죽대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준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가슴 쪽에서 제비를 꺼내 흔들어댔다.

“어때, 우리도 바꿀까? 내 상대는 19위야. 강하긴 하지만, 성치윤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말이야.”

동수의 의도는 명백했다. 일단 이번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10위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니, 준이 10위권 내에 들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었다.

이미 5~6위권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로써는 성치윤이든 19위이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19위쪽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준을 위해 대전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굳이 번호표를 바꿔가면서까지 저를 상대하고 싶어 하는데, 제가 도망을 치면 영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아요. 이래봬도 한 조직의 수장인데, 두고두고 비웃음을 살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흐음…그래? 내가 보기에 성치윤은 최소 15위권 안이야.”

동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은근히 권유했지만, 이준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려보니, 성치윤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 *

대회의 2일차 역시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기는 매번 경기장에 참가자들이 하나 둘씩 올라와 맹렬한 전투를 한 바탕 펼친 뒤, 한 사람은 웃고 한 사람은 우는 것으로 결말이 났고, 준은 여전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조용히 그 광경을 감상했다.

지금 경기장 위에 있는 것은 바로 ‘비석’의 간부인 ‘오하늘’ 이었다.

애석하게도 오하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세에 몰려 패색이 짙어보였다. 불운하게도 오늘 그의 상대는 강자 명단의 10위권 안에 드는 강자였으니, 현재 그의 실력으로는 승산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20위대 상대를 만났으면 붙어 볼만 했을 텐데…그래도 오하늘 성격상 이런 일로 아쉬워하진 않겠죠?”

준의 곁에 있던 이은이 피식 웃으며 묻자, 준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가 대회에 참가한 것은 단순히 진정한 강자와 맞붙고 싶다는 승부욕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했다. 그의 성정상, 낮은 순위에 있는 사람들만 만나 10위권 안에 드느니, 진정한 강자를 만나 화끈하게 패배하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그보다, 오라버니, 다음 상대가 성치윤이죠? 몸조심하세요. 오라버니에게 원한이 깊은 것 같던데…”

“걱정 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은의 모습에, 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준의 손이 자신의 머리에 닿자, 이은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참, 오라버니, 그리고 최종 10명을 어떻게 정하는지 들었어요? 그리고 오늘 승리한 12명 중에서 무작위로 6명만 뽑아 10위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붙인다고 해요. 승리한 사람은 나머지 행운의 6명이랑 그대로 10위에 들어갈 수 있대요.”

이은의 설명에 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되물었다.

“뭐? 그럼 선발되지 않은 나머지 여섯 명은 싸우지도 않고 바로 10위에 들어설 수 있는 거야? 그럼 죽어라 싸운 여섯 명한테는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규칙이 그렇다니 어떻겠어요. 운도 실력이라는 의미로 생각해야죠 뭐. 따진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그래도 여섯 명이서 겨루면 승자는 셋이잖아. 거기에 싸우지 않은 여섯 사람을 합쳐봤자 9명인데?”

“나머지 하나는 뻔한 거 아니겠어요?”

이은의 한마디에 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확실히 보람이라면 대결을 해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 학생들 사이에서 최강자로 손꼽히는 임수혁과 류지안도 감히 그녀에게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 하니, 보람이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