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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62화 (262/818)

제262화. 푸른 화염

수혁과 류지안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대장로처럼 준이 화염갑옷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 푸른 불꽃이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저 정체불명의 ‘화염갑옷’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확실했다.

불꽃에 닿을 수 없는 상태라면 염력만을 이용해 공격해야 하는데, 저렇게 단단한 갑옷은 웬만한 염력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전 백청이 시전한 ‘피의 화살’이 별다른 손상을 입히지 못한 것을 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분명히, ‘화염갑옷’을 두른 준은 임수혁과 류지안조차 골머리를 앓을만한 상대임에 틀림이 없었다.

……

모두가 적막에 둘러싸여 있던 그때, 경기장 한가운데 있던 준이 파르르 몸을 떨더니 곧 그를 휩싸고 있던 푸른 화염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화염갑옷이 완전히 사라지자, 창백해진 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예전에는 ‘화염갑옷’을 만들려고 해도 두 번에 한 번 꼴로 실패하고는 했었고, 만든다 해도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어렵지 않게 화염갑옷을 만들 수 있었고, 완벽하게 제어해낼 수 있었다.

다만 화염 갑옷을 만들고 유지하는데는 엄청난 양의 염력과 영혼의 힘이 필요했으니,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겨우 5분 정도밖에 유지할 수 없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던 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청을 노려봤다.

미소를 띠고 있던 이준의 얼굴이 점점 차갑게 굳어가고, 검은 송곳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공격은 분명히 자신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화염갑옷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차갑게 식은 준의 표정에 백청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자, 장내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얼어붙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

곧이어 낮고 굵은 기합 소리가 백청의 목청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두 눈에는 아직도 핏빛이 가득했다. 부러진 창을 손에 쥔 백청의 몸이 앞으로 쏠리고, 붉은 섬광이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이준의 머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하지만 붉은 섬광이 준에게서 10미터 정도까지 다가갔을 무렵, 또 다시 푸른 화염이 솟구쳤다.

그리고 푸른 화염이 붉게 물든 장창을 감싸는 순간, 최상급의 강철로 만들어진 창이 엿가락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장창이 완전히 녹아 액체가 되기까지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장로들까지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준을 노려보던 백청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준의 눈을 마주 하는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 자식… 설마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의 머릿속에 공포스러운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백청의 눈앞에 나타났다.

……

“태초의 힘!”

퍼억!

낮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곧이어 새하얀 형상이 허공에 뜬채 족히 십 미터 이상을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경기장 한가운데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세를 유지하고 서있는 준의 모습이 보였다.

시체처럼 널브러진 백청의 모습에 관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조금 전 이준이 날린 주먹의 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났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백청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준이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털자, 그의 손에 맺혀있던 핏방울이 그의 손동작을 따라 바닥에 튀었다. 곧이어 그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몸을 푼 뒤 관중들을 주욱 훑어보고는 대장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자신을 향한 이준의 눈빛을 느낀 대장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백청을 한 번 흘깃 바라보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의 공격이라면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중상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쩔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백청이 먼저 이준에게 가했던 공격들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준을 탓하기도 애매했다.

옆에 있는 몇 몇 장로들과 눈길을 주고받은 대장로는 경기장 곳곳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요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진행요원이 경기장에 나타나 백청을 부축했다.

“흠, 이번 경기는… 이준 승.”

결과를 공표한 대장로는 이준을 바라보며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다음 번 대련에서는 다들 강도를 낮추도록. 선을 넘는 자는 참가 자격을 취소하겠다.”

대장로의 말에는 분명 경고가 담겨 있었다. ‘강자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련생이라면 모두 출중한 인재들이 분명하니,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자산이었다.

게다가 몇몇 수련생들은 꽤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을 딛고 경기장 위로 날아올라 자신에게 향하는 무수한 시선을 무시하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오라버니, 괜찮아요?”

준이 자리에 돌아오자, 이은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외상은 없었지만, 염력 소모가 상당했던 탓에 준의 호흡이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괜찮아. 화염 갑옷을 불러내는 데 염력을 좀 많이 써서 그래. 조금 쉬면 괜찮을 거야.”

준은 저장 반지에서 기력의 조각을 꺼내 입에 넣으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참이나 이준의 모습을 살핀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백청에게 그 정도 능력이 있는지 몰랐네요. 아까 그 ‘피의 화살’이라는 무투기, 최소 3격 중급은 되어 보이던데요.”

“그래. 게다가 비술까지. 하급이라 해도 절대 흔한 게 아닌데…”

이준 역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백청이랑 백성찬도 나름 알아주는 집안 출신이니까요. 대륙 전체에서 떨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류 세력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죠. 가한 제국 과 비교하자면, 가한제국 3대 가문에도 크게 뒤지지 않아요. 아마 그 비술도 가문의 것이겠죠.”

이은의 말에 이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뒷배도 없고 힘없는 그런 부류에 속하겠네?”

이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에게는 이렇다 할 배경이 없었다.

이씨 가문은 가한 제국에서도 별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운남종의 분노까지 산 판국이었으니 그에게 기댈 곳이라고는 자기 자신의 힘과 약로뿐이었다.

하지만 약로 역시 영혼체 상태로 ‘영혼의 궁전’의 추격을 받고 있으니, 사실상 자기 자신의 능력 외에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

“흥, 그런 말 말아요. 5레벨 연금술사면 투황급 투사와 동급인데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자신을 위로하려 애쓰는 이은의 다정한 말투에 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게다가 오라버니는 아직 젊잖아요. 이렇게 젊은 5레벨 연금술사라니,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면 투황이나 그 이상의 투사들도 오라버니와 안면을 트고 싶어 안달일걸요?”

준은 이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뒤 넓은 의자위에 앉아 자세를 잡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이준과 백청의 전투 이후, 대장로의 말을 무시하듯 학생들의 전투는 날로 거칠어지기 만했다.

이어지는 경기 중에는 10위권 안에 드는 강자들의 경기도 있었다. 10위권 내 강자들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 관객석에서는 감탄사와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터져나왔다.

그리고 대회가 중반 정도에 접어들었을 무렵, 드디어 오하늘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 전에 있었던 몇 번의 치열했던 전투들과는 달리, 하늘은 너무나도 가볍게 승리를 손에 쥐었다.

하늘의 상대였던 1성 투령은 실력 측면에서는 하늘보다 뛰어났지만, 전투 경험에서 그보다 크게 뒤처져 결국 경기가 시작된 지 고작 10분 만에 하늘에게 약점을 내보였고, 결국 패배를 맞이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하늘은 손쉽게 얻은 승리에 기뻐하기보다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본 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하여간 못 말리겠다니까.’

……

“37번!”

다음 번호가 호명되자 소란스럽던 경기장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잠시 멍하게 굳었던 시선들이 하나 둘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키 큰 사내에게 쏠렸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남자는 자신을 향하는 시선들은 느꼈는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 순간, 맹수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차갑고 거친 기운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류지안은 지난 번 수혁에게 패배한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이에게 진 적이 없었으며, 수십 번에 달하는 연승 기록에 아카데미의 수많은 강자들이 그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준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류지안의 모습을 바라봤다.

비할 데가 없는 압도적인 카리스마. 강력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내뿜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더욱 준의 눈을 끌었다. 머지않아 그는 대륙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엄청난 투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쿵!

마침내 난간 쪽에 다다른 류지안이 발을 구르자, 거대한 철탑과도 같은 그의 몸이 허공으로 솟았다가 경기장에 착지했고, 이내 지축이 울리며 먼지가 휘날렸다.

태산처럼 우뚝 선 류지안의 모습에 경기장 전체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류지안은 장내의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며 마치 황제처럼 위엄 있는 자세로 조용히 눈을 감고 상대를 기다렸다.

쉭!

곧이어 하늘색 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청년 하나가 죽을 상을 하고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첫 번째 상대가 류지안이라면 10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도 결코 약하다고 할 수 없는 강자였지만, 류지안을 상대로는 조금도 승산이 없었다.

“참가자가 다 모였으니, 이제 경기를 시작하지.”

두 사람이 무대에 오르자, 대장로가 손을 흔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청년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어 자신의 검을 꺼내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기이한 물결무늬가 은은하게 새겨진 하늘색 장검으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신비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늘색 장검이 나타나자 곧바로 사내의 몸에서 하늘색의 염력이 가닥가닥 피어올랐다가 팔뚝을 따라 흘려내렸고, 이내 장검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하늘색 염력을 빨아들인 장검에서는 파도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상대가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리던 류지안은 청년의 기운이 절정에 이르자, 그제서야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류지안 선배님, 낙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칼끝으로 류지안을 겨누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곧이어 류지안의 몸이 가볍게 떨리며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거대한 손바닥이 천천히 구부러지며 마치 날카로운 짐승의 발톱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가 오른 팔을 가볍게 흔들자, 보이지 않는 강풍이 순간 바닥을 내리치며 가벼운 흔적을 남겼다.

다음 순간,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장검이 새파란 염력을 머금은 채 류지안을 덮쳤다.

“상어 가시!”

낮은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자, 파란 빛이 순식간에 팽창하며 흉악하게 생긴 상어 대가리가 나타나 거대한 주둥이를 크게 벌렸고, 비린내 나는 축축한 염력이 류지안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의 공격은 아마도 그가 짧은 시간 내에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인 것 같았다.

물속성 염력은 그 자체로는 공격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그의 무투기가 부드러운 물과 합쳐졌을 때는 다른 속성의 염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공포스러운 파괴력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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